본문 바로가기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교동도

by 한국의산천 2007. 9. 16.

인천 강화 교동도 가는 길   

[2007. 9. 16. 일요일 날씨: 맑음, 점차로 흐리며 비]     

태풍 나리가 제주도에 상륙한다는 뉴스를 들으며 새벽 5시 집을 나섰다.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교동도행 첫배 7시 30분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

날씨는 흐리지만 다행히 조금 개이고 있었다.   

낚시가방을 맨 사람이 많았으며, 카메라 백을 맨 사진 동호회가 많이 대기하고 있다.

 

1편. 바다 그리고 넓은 황금 들판.

2편. 時間이 멈춰있는 듯한 교동도 풍경 >>> https://koreasan.tistory.com/12534009

1. 바다 그리고 넓은 황금 들판 교동도  (2편은 아래 웹페이지에 연속해서 이어집니다)  

 

▲ 창후리 선착장에서 바라 본 교동도 ⓒ2007 한국의산천 

 

강화도 서쪽 석모도의 바로 뒤 북쪽에 자리잡은 교동도는 석모도보다 작지만 동서로 약 12Km 남북으로 약 8Km 둘레 37.5Km 면적이 47.2 킬로 입방미터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열네번 째로 큰 섬이다.   역사적으로 본 교동도 

 

택리지에서는 강화도에 이어 교동도(橋桐島)를 다음과 서술하고 있다
강화에서 나온 한 맥이 서편 언덕을 따라가다가 움푹 꺼진 돌맥이 되고, 작은 개 하나를 지나서 교동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색이" 바닷물 끝없고 푸른 하늘 나직한데 꽃 그림자 나직하고 해는 서로 넘어가네. 산아래 집집마다 흰술 걸러 내어 파 뜯고 회치는데 닭은 홰에 오르려 하네"라고 노래한 교동도가 개성의 안산(安山)이 되고 섬북쪽은 한강인데 휴전선이 지난다. 
조선 인조때 조정에서는 통어영을 설치하고 경기, 황해, 평안 삼도의 수군을 거느린 수군 절도사를 두어 바다를 지키게 하였다.

 

 또한 전남의 해남지역이 선비들의 유배지였다면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였다.

정쟁에서 패한 인물은 한양에서 먼 곳으로 보내졌지만 왕권에 치명적일 수 있는 왕족 등 거물은 가까우면서도 완전히 격리된 곳에서 늘 동정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한양에서 하루, 이틀 거리인 교동도는 해안과 가깝지만 급한 조류로 접근이 쉽지 않아 유배지로서 최적의 땅이었다.


교동도로 유배되어 끝내 뭍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왕으로는 고려의 희종과 조선시대 연산군이 있고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도 이 섬에서 삶을 마쳤다.    

1494년 열아홉의 나이로 조선 10대 왕에 즉위한 연산군은 초기의 선정과는 달리 무오, 갑자 두 차례의 사화를 거치며 폭정을 일삼다가 끝내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12년간의 왕권에서 물러나 교동도로 유배 되고 1506년 11월 그의 나이 31세에 전염병으로 죽는다. 유배생활 2개월 만의 일이다.

연산군의 유배지로는 신골(봉소리), 연산골(고구리), 읍내리 세 곳이 추정되고 있으며 월선포 선착장에 세워져 있는 안내지도판에도 세 곳 모두 연산군 적거지(추정)로 표시하고 있다.  

 

 

 

 ▲ 아침 일출 ⓒ 2007 한국의산천 

 

 ▲ 백련사 입구 고인돌 유적지를 지나며 ⓒ 2007 한국의산천 

 

 ▲ 창우리 선착장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탑승권과 또 한장의 종이에는 이름, 주소,전화번호를 적어서 내야 한다. 편도 요금 일인 1500원 승용차량은 편도 14,000원

 

 

  ▲ 창우리 선착장에서 차량 탑승 승선 ⓒ 2007 한국의산천

빨간 명찰 막강해병이 승선하는 사람들을 직접 검표를 하고 있으며, 3일 이상 섬에 묵으려면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얼마전까지 쉽지 않은 교통과 이런 제약들이 아직껏 이 섬이 크게 때 묻지 않고 옛 모습을 그런대로 간직하게 해준 셈이다. 

 

 ▲ 빽빽히 자동차를 실었다.ⓒ 2007 한국의산천

아침 7시 30분 첫배에는 차가 빼곡히 실렸으며 미쳐 승선하지 못한 차량은 다음 배로 들어온다.(휴일은 배가 자주 다닌다)

 

 ▲ 배 후미에 서있는 어린이들 ⓒ 2007 한국의산천 

 

 ▲ 뒤로 보이는 창우리 선착장 ⓒ 2007 한국의산천

 

 

이른 아침 강화도 창후리 포구에서 배가 떴다.무심한 섬이 하나 있다. 그저 조용히 자리만 지켜온 섬. 강화도 옆의 교동도가 그곳이다.
서울에서 지척이고 국내에서 14번째로 큰 섬임에도 휴전선이 섬을 휘돌아가는 탓에 교동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엄격한 통제를 뚫어야만 했다.

가깝지만 편치 않은 곳, 그래서 외면 받았던 땅이다. 하지만 통제의 사슬은 개발의 손길 또한 막아 원형의 자연과 우리 농촌의 순박함을 그대로 남겨놓았다.

조용하고 때묻지 않은 신선함을 맡고자 한다면 교동도로 떠나라. 섬에 가득한 소박함이 온몸에 온기가 되어 퍼질 것이다. 배 앞으로는 목적지인 교동도 화개산이 길게 누워있다.

 

 

 

  ▲ 촬영하기. ⓒ 2007 한국의산천

 

 ▲ 다음 출항을 준비하는 화계 7호 ⓒ 2007 한국의산천

우리는 첫배 화계 9호로 교동도로 이동했다.  

 

▲ 창후리 앞 바다에 있는 등대 ⓒ 2007 한국의산천

등대 뒤로는 출발한 창우리 선착장이 보인다. 

 

▲ 갈매기에게 새우깡 던지기ⓒ 2007 한국의산천 

 

▲ 갈매기의 날개짓 ⓒ 2007 한국의산천 

 

 

 

 

 

 

▲ 교동도 도착 (약 20분 소요)ⓒ 2007 한국의산천  

 

 

▲ 가을을 알려주는 전령사 코스모스 ⓒ 2007 한국의산천 

 

▲ 향교와 화개사 입구에 있는 비석거리 ⓒ 2007 한국의산천

 

‘황복마을’로 더 유명한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카페리를 타고 약 15분이면 (썰물 때는 약 50분)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에 도착하여 읍내리 방면으로 향하다 읍내리 직전에 화개사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39기의 비석이 모아져 있는 비석군이 있다.

현 교동양조장 앞부터 서쪽으로 수 십 여 개의 비석이 흩어져 있던 것을 훼손과 멸실을 방지하기 위해 1970년대 옛 교동의 관문이었던 남산포길 옆으로 이전하였다가 1991년 이곳 향교 입구에 옮겨 놓은 것이다.

39기 대부분이 겸부사의 선정비인데 이 중 거사대라는 특별한 양식의 비가 3기 포함되어 있다. 

 

 

 

 

 ▲ 교동향교 입구의 홍살문과 하마비 ⓒ 2007 한국의산천

 

교동향교 (유형문화재 28호) 원래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년) 때 각주에 향교가 세워졌을 때 화개산 북쪽인 고구리 향교골에 세워졌으며 교동읍이 읍내리로 옮겨짐에 따라 부사 조호신이 영조 17년(174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교동향교 원터(소재지 : 고구리 향교골) 고구리의 향교골에 위치한 향교원터는 원래 충렬왕 12년(1286년)에 고려 유학자 안유의 제자들이 원나라에 갔다오는 길에 우리나라 최초로 공자상을 들여와 봉안한 장소 (나중에 개경으로 옮김)이다.

 

교동은 우리나라와 중국 산동성과 무역을 하는 길목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중국을 갈 때 이곳을 들렀는데 안유의 제자들이 공자상을 가져들어오면서 서해로 귀환하면서 날씨 관계로 교동에 일시 기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교동향교의 문묘(대성전)를 우리나라 최초로 공자상을 봉안한 곳이라하여 '수묘'라 칭한다. 그러나 향교원터는 지금은 잡목이 우거지고 그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태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동향교 ⓒ 2007 한국의산천 

 

창우리 항에서 배를 타고 교동도에 처음 닿는 곳이 월선포 이다. 

이 월선포에서 진입도로를 타고 오길을 따라 약 10분정도 들어가면 오른쪽 화개산 아래 길가에서 교동향교와 화개사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교동향교는 비석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으로 들어가야 하며 평소에는 평소에는 문이 닫혀 있고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에만 문을 연다고 한다.

비석거리 삼거리에서 왼쪽 길은 화개사로 올라가는 길이다.홍살문앞에 승용차 10대 정도를 주차 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주차비 없음) 향교는 조선시대 각 군과 현에 설치되어 공자 등 옛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유생과 마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역할을 한 교육기관이다.

 

교동의 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먼저 공자상을 중국으로부터 가져다 봉안한 유서 깊은 향교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 고려 유학 제거로 있던 문선공 안유(安遊) 선생이 원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닻을 내려 공자상 (孔子像)을 들여와 이 문묘에 봉안하였다.

이어 다시 김문정 등을 중국에 보내 유학성현들의 화상 10여점과 제기 등을 구해 오게 했다. 이후 경향 각지에 문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교동은 옛날 중국을 고가는 바다 길목에 있어 대부분의 배 들이 그곳을 거쳐 갔다.

안유가 교동 향교에 처음 봉헌한 까닭이다. 

고려 인종 5년(1127년) 때 각주에 향교가 세워졌을 때 화개산 북쪽인 고구리 향교골에 세워졌으며 교동읍이 읍내리로 옮겨짐에 따라 부사 조호신이 영조 17년(174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현존하는 우리나라 243개의 향교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동향교 ⓒ 2007 한국의산천 

 현존하는 우리나라 243개의 향교 중 가장 오래된 교동향교 (인천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28호)가 있다.

고려 충렬왕 때 문선공 안향(안유)이 원나라에 다녀 오며 공자상을 갖고 와 이 향교에 봉안하였다고 전해지며 이 후 각 고을에 향교가 생겼다고 한다.

 

건물로는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제기고 등이 있다. 대성전은 열간이며 봄 가을로 석전을 봉행한다.

동무는 아홉간이며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등 우리나라 9현을 봉안하고 배향한다. 

 

서무 역시 아홉간이며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등 우리나라 9현을 봉안 배향한다. 명륜당은 여섯간이며 유림들의 강론장이다. 

동재는 네간으로 유생들의 숙소이며 서재 역시 네간이며 유생들의 숙소였다. 건물의 배치가 고풍스럽고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 화개사 ⓒ 2007 한국의산천  

 

화개사의 창건연대는 고려때라고 전하는데 고려말의 문신 목은 이색(1328-1396년)이 독서하였다고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금불상 2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전한다.    

원 건물은 1840년경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건립되었으나 1967년 다시 화재가 일어나 1968년 중건하였다.

 

 ▲ 화개사에서 바라 본 바다  ⓒ 2007 한국의산천

 

비석군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약 1km 올라가면 고려 말 목은 이색이 머물며 공부를 했다는 화개사가 자리하고 있다. 절 마당에서 바다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일품이다. 

 

 ▲ 황금 물결을 이루는 교동읍 대룡리 들판 ⓒ 2007 한국의산천  

 

▲ 기름진 교동도 평야 ⓒ 2007 한국의산천

간척지의 쌀이 명성이 좋듯이 교동도 쌀 역시 밥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 도로는 배가 들어올때 잠시 지나는 차가 있지만 그래도 한적한 도로이다. 걷기 좋은 길이다. 

 

 ▲ 교동도 ⓒ 2007 한국의산천

 

교동도는 유원지 또는 관광지가 아니다. 또한 어업보다도 오히려 농업이 발달한 섬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것은 아니지만 시원한 황금색의 들판이 눈과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詩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진정한 여행이란 ⓒ 2007 한국의산천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것이다.

 

 ▲ 걷고 또 걷고 쉬고,밥해먹고, 차 타고... ⓒ 2007 한국의산천

   

 

  

 

 ▲ 밥맛이 좋고 윤기가 나는 교동도 쌀이 나오는 교동도 벌판 ⓒ 2007 한국의산천

 

 

 

 

 

 

 ▲ 녹슨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북녘 땅 ⓒ 2007 한국의산천 

 

교동도의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좁은 2차선 도로를 타고 북쭉으로 가면 철조망이 가로막으며 바닷가가 나온다. 이곳에서 보면 섬 북서쪽을 지나는 휴전선 넘어 지척에 황해도 연백군과 개풍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어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 녹슨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북녘 땅 ⓒ 2007 한국의산천 

 

 ▲ 넓은 고구리 저수지 ⓒ 2007 한국의산천 

 

 ▲ 고구리 저수지 ⓒ 2007 한국의산천 

 

  ▲ 고구리 저수지 ⓒ 2007 한국의산천 

이곳 저수지에서는 지금 가물치 낚시가 한창이다.

 

 

 

 

 

▲ 바닷가의 꽃 ⓒ 2007 한국의산천

 

 ▲ 선착장에서 섬 중앙으로 약 5~6km 가면 교동읍내가 나온다.

 

이 읍내에 들어서며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예전의 건물들이 나온다.

마치 5~6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골목길이 많으며 개교 100 주년을 맞은 교동 초등학교가 있다. 

 

 

  ▲ 시계수리점의 벽걸이 시계 ⓒ 2007 한국의산천 

 

 ▲ 교동읍내 중앙통 ⓒ 2007 한국의산천 

 

 ▲ 교동도 개념도 ⓒ 2007 한국의산천

교동도 가는 길

48번 국도로 김포시 - 강화대교 - 강화읍 - 고인돌 유적지 - 창후리선착장 (화개해운 창후리선착장 : 032-933-4268)

 

계속해서 시간이 멈춘 듯한 60년대 풍경이 펼쳐집니다. 

교동도 2 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2534009

 

강화도 유적 명승지 둘러보기

고려산 낙조봉 낙조대 >>> https://koreasan.tistory.com/11292589

석주 권필 유허지 >>> https://koreasan.tistory.com/11324023

철종 용흥궁 잠저지 >>> https://koreasan.tistory.com/8482865

이규보 선생 사가재 >>> https://koreasan.tistory.com/8483258

강화도 고려궁지 >>> https://koreasan.tistory.com/3572337

강화도 석조여래입상 >>> https://koreasan.tistory.com/3572306

강화도 고인돌 >>> https://koreasan.tistory.com/3572163

홍릉(고려 고종),청련사 >>> https://koreasan.tistory.com/11292252

 마니산 정수사 >>> https://koreasan.tistory.com/2473989

덕포진 대명리 >>> https://koreasan.tistory.com/2745969

강화 석모도 >>> https://koreasan.tistory.com/2802174

강화 보문사 >>> https://koreasan.tistory.com/2797727

강화도 성공회 사적지 >>> https://koreasan.tistory.com/6010588

석모도 해명산 낙가산 >>> https://koreasan.tistory.com/6010962

삼랑성 정족산 사고 >>>  https://koreasan.tistory.com/8484517

강화 정족산 전등사 >>> https://koreasan.tistory.com/8484555

강화 백련사 >>> https://koreasan.tistory.com/11330344

강화 청련사 >>> https://koreasan.tistory.com/11292252

강화 적석사(적련사) >>> https://koreasan.tistory.com/11292260

강화 교동도>>> https://koreasan.tistory.com/12534010

이건창 생가, 사기리 탱자나무 >>> https://koreasan.tistory.com/12618711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MTB등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도  (0) 2007.09.26
당성 제부도  (0) 2007.09.23
교동도 2  (0) 2007.09.16
용현계곡 야영  (0) 2007.09.05
일락산 가야산  (0) 2007.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