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성(唐城 사적 217호) 과 제부도 매바위 둘러보기
[2007. 9. 23(추분).일요일 날씨: 구름이 많이 끼고 흐림 한국의산천 ]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물쭈물 살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영국의 극작가(1856∼1950), 소설가, 영국의 근대극을 확립한 세계적인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하트퍼드셔의 시골집에서 숨을 거두기전에 남긴 묘비명 이다.
인생은 짧다.
하고픈 일은 준비하고 실천한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곧 중지해야 한다. 우물쭈물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
아침 6시 일어나서 이발을 하라는 엄명을 받고 집을 나와 동네 이발소로 가지 않고, 제부도쪽으로 차의 기수를 돌려 당성 답사를 갔다.
답사코스 : 인천 - 시화 방조제 - 대부도 - 전곡항 - 당성 - 제부도 매바위
▲ 한가로운 시화 방조제를 지나며 ⓒ 2007 한국의산천
▲ 전곡항 ⓒ 2007 한국의산천
시화 방조제를 지나 대부도를 지나며 전곡항에서 멋진 요트 풍경.
▲ 당성이 있는 구봉산 전경 ⓒ 2007 한국의산천
남양반도의 서신, 송산, 마도면의 경계가 교차되는 중심부 가까이에 위치한 해발 165.7m인 구봉산(九峰山)
▲ 당성 안내표지판 ⓒ 2007 한국의산천
서신면에서 제부도 쪽으로 가다보면 생태 동물 이동 터널 현장이 나온다. 터널을 지나 약 300m 정도 제부도 방향으로 가면 길가에 이정표가 보인다.
▲ 당성 입구 ⓒ 2007 한국의산천
당성표지판에서 길을 따라 들어서면 세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해서 들어간다. 시멘트 도로 중간에 왼쪽으로 난 아스팔트길을 따라가면 개인소유 밤나무 밭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 당성 안내문 ⓒ 2007 한국의산천
당성 (唐城 사적 217호)은 계곡을 둘러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남북으로 길다란 네모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는 동문, 남문, 북문 터와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성의 내벽은 흙으로 쌓고, 외벽은 돌로 쌓았다.
이 지역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하였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이라 하고,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성벽은 쌓은 벽이 무너져 마치 흙과 돌을 합쳐서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벽 쪽에 약간 남아있다.
당성이 소재하는 남양지역은 지금은 화성시이지만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해서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당항성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당성(唐城 사적 217호) 사적비 ⓒ 2007 한국의산천
▲ 넓은 초지 ⓒ 2007 한국의산천
당성 사적비 뒤로는 넓은 초지가 있다. 이곳에서 만난 이곳 어르신의 말씀으로는 이곳에 밤나무가 많았으며 그 옛날에는 성안의 훈련장이었다고 말씀하신다.
▲ 당성 입구 ⓒ 2007 한국의산천
당성 사적비에서 약 20m 정도 오르면 왼쪽으로 성의 끝이 보인다.
당성(唐城) 사적 제217호
분류 : 유적건조물, 정치국방, 성, 성곽
면적 : 134,545.46㎡
지정일 : 1971.04.15
소재지 : 경기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
시대 :삼국시대
삼국시대에 축조된 이 당성은 서신, 송산, 마도 3개면의 경계선이 교차되는 중심부 가까이 위치한 구봉산에 소재하고 있으며, 성의 높이는 약 2.5m, 하단부의 폭은 7∼8m이며, 성둘레는 약 1,200m이나,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1993년부터 성곽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이 성은 신라가 이 곳을 개축하여 '당항성' 이라 하였고, 서해를 통한 중국과의 교통 요충지로 활용되었으며 남양홍씨의 발상지로 전해지고 있다.
성의 둘레는 내성 1150m, 외성 300m, 높이 3m로 외벽은 석축, 내벽은 토축이었는데 지금은 성지만 남아있고 성내의 망해루도 초석만 남아 있다.
백제 후기의 전형적 축성방식을 보이고 있어, 처음에는 백제가 축성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고구려가 축조한 성으로 신라가 점유한 후에는 당항성이라하여 중국과의 교역의 관문이었으며, 신라 말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하여 강화의 혈구진, 완도의 청해진과 더불어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 성곽 따라 돌기 ⓒ 2007 한국의산천
예전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성곽을 밟고 걸으면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의 본 뜻은 성이 견고하게 다져지게 하기위해 성위를 걷게 하는 말이다. 고창읍성에서도 매년 머리에 돌을 이고 성벽을 도는 축제가 열린다.
남양반도의 서신, 송산, 마도면의 경계가 교차되는 중심부 가까이에 위치한 해발 165.7m인 구봉산(九峰山) 정상부와 동향한 계곡 및 서남쪽 능선을 에워싼 3중의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상에 오르면 서해의 여러 섬들이 그림과 같이 바라다 보인다. 산성의 전체 모양은 남북으로 길다란 장방형에 가까우며, 작은 계곡을 두른 포곡식에 가까운 형식을 취하고 있는 본성(本城)이 있고, 서남쪽의 남문 밖으로는 한층 낮아진 능선 대지를 다시 두른 부곽(副郭)이 이중으로 외성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이 외곽의 서남쪽 능선을 따라 토루가 계속 이어져 행성(行城)을 이루며 보다 서남쪽의 염불산(念佛山) 봉수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 ⓒ 2007 한국의산천
이 지역은 처음 백제(百濟)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高句麗)의 영토로 당성군(唐城郡)이라 하였으나, 신라(新羅)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唐項城)이라 하고, 서해 바다를 건너 중국과 교통하는 출입구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기록에는 이 산성을 고당성(古唐城)이라 하여 당항성과 관련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신라 하대(下代)에는 당성진(唐城鎭)이 설치되고, 신라의 왕도(王都)에서 상주와 삼년산성을 거쳐 이곳에 이르는 길을 당은포로(唐恩浦路)라 하였다.
▲ 서해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2007 한국의산천
이 성에는 남문터와 북문터가 정상부 아래의 기슭에 있고, 동문터와 수구터는 계곡 쪽에 있다. 수구터의 안쪽에는 지금도 샘이 있어 물이 사철 나오고, 주변에 건물터가 있다. 서벽에 연한 정상부에는 노목이 우거진 숲이 있고, 여기에 성황당(城隍堂)이 있다. 이밖에 망해루(望海樓)로 추정되고 있는 건물지에 초석들이 남아 있다. 한편 본성의 서남쪽에 이어진 외성은 성의 서남쪽의 제일 높은 곳에서 한층 낮아진 평탄 대지를 주머니 모양으로 둘러서 본성의 남문을 보호하는 옹성처럼 축조한 흔적을 찾을 수 있고, 둘레는 230m이다. 이 외성에서 다시 능선을 따라 낮아지는 곳에도 보다 작은 제2의 외성을 만들어 남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는 최소한 2개의 벽을 통과하여야 되도록 특수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제 2의 외성에서 계속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 성벽은 희미하긴 하지만 보다 남쪽의 안부(鞍部)를 지나 계속된다.
성벽은 석축된 벽체가 무너져 마치 토석혼축처럼 보이지만 당초 토축의 석축으로 개축되면서 쌓아 올린 석축의 일부가 남벽쪽에서 약간 남아 있고, 문터의 좌우와 성벽의 회절처(回折處)마다 곡성(曲城)을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문화재청 자료참고]
▲ 성벽길을 따라 걷기 ⓒ 2007 한국의산천
▲ 서쪽으로는 영흥도와 서해바다가 훤히 보인다. ⓒ 2007 한국의산천
▲ 북쪽으로는 관악산과 청계산이 보인다. ⓒ 2007 한국의산천
▲ 잘 짜여진 성벽 ⓒ 2007 한국의산천
▲ 영흥도가 보인다. ⓒ 2007 한국의산천
▲ 성안으로 내려오는 오붓한 오솔길 ⓒ 2007 한국의산천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곳 당성
원효대사가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장소가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의 당성(唐城) 일대라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앙대 역사학과 진성규 교수가 문헌 기록과 대중 교역현황 분석 등을 통해 이같은 주장을 제기하며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 교수는 지난 8일 수원대학교에서 화성시, 화성문화원, 해외민족연구소가 '당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주제로 공동주최한 학술회의에서 중국 송대(宋代)의 승려인 찬녕(贊寧)의 저술 송고승전(宋高僧傳)을 인용해 "원효가 의상과 같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잠을 청했던 곳은 당성 즉, 지금의 남양만 일대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송고승전에 의상이 바다의 바다의 관문인 당주(唐州) 지역에 도착해 큰 배를 구해 창파를 건네려고 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여기서 당주는 당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또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 유학길에 올랐던 661년, 당성은 신라가 중국과 왕래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면서 "원효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갈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현재 당성이 있는 화성시 서신면을 비롯한 남양만 일대는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을 점령하면서 당성군(唐城郡)이라고 하였고, 이후 신라의 영토로 바뀐뒤 경덕왕때 당은군(唐恩郡)으로 개명됐다.
▲ 임도 같은 길을 따라 내려 오면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 2007 한국의산천
▲ 제부도 건너가기 ⓒ 2007 한국의산천
제부도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중략... 충청도 당진과의 사이에 작은 바다가 있을 뿐이어서 매우 가까우며 밀물 썰물이 통한다...육지가 끝나는 바닷가에 화량포 첨사의 진(鎭)이 있고 바닷길을 10리 쯤 건너면 대부도(大阜島)가 있다. 모두 어민이 사는 곳이다. 그러므로 남양부의 서쪽 마을이 한강 남쪽의 생선과 소금의 이익을 독차지하게 된다.
대부도는 화량진에서 움푹거진 돌맥이 바다속을 지나서 된것이다. 돌맥이 꼬불꼬불 벋었고 그위는 물이 매우 얕다.
옛날에 학이 물 속에 있는 돌맥 위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보고 섬사람이 따라가서 그 길을 발견하게 되어 그 길을 학지(鶴指)라고 부른다.
오직 섬사람만이 그 길을 익히 알고 다른 지방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병자년에 섬사람들이 호병에게 쫓겨 돌맥위를 따라 도망쳤는데 호병은 길을 모르면서 따라오다가 빠져버렸다. 그리하여 섬은 온전 할 수 있었다.
섬은 땅이 기름지고 백성이 많으며 남쪽으로 오는 뱃길의 첫 목으로서 강화, 영종 두섬의 바깥문 구실을 한다. 하략...
▲ 오른쪽으로 보이는 누에섬 ⓒ 2007 한국의산천
제부도를 건너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누에섬과 그 섬위에 누에섬 전망대(등대)가 보인다.
섬의 생긴 모습이 누에와 꼭 같다.
▲ 매바위 주변에서 굴 따기ⓒ 2007 한국의산천
매바위 주변에는 자연산 굴이 많이 있기에 관광객들이 굴을 따고 있다.
▲ 삼형제 바위 ⓒ 2007 한국의산천
제부도에 들어서서 왼쪽 해안선을 따라 들어거면 제부도 남쪽해안에 버티고 있는 삼형제 바위(매바위)가 보인다. 정확히 가까이 가보면 매바위까지 4개의 바위로 이루어져있다.
바위모양이 보는 각도에 따라 ‘매의 머리' 혹은 ‘매의 부리'모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이 바위가 예전에 섬에 많이 서식하던 ‘매‘의 쉼터였다는 설도 있다.
※ 제일 끝에 있는 뾰족한 매바위는 풍화,해식작용으로 일부 붕괘되고 계속해서 무너지므로 가까이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 매바위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 일명 삼형제 바위라고도 한다.ⓒ 2007 한국의산천
▲ 매바위와 연인 ⓒ 2007 한국의산천
▲ 매바위 ⓒ 2007 한국의산천
▲ 매바위 ⓒ 2007 한국의산천
▲ ⓒ 2007 한국의산천
▲ ⓒ 2007 한국의산천
▲ 제부도에서 차창에 비친 자화상 ⓒ 2007 한국의산천
아침 6시 일어나서 이발을 하라는 엄명을 받고 집을 나와 동네 이발소로 가지 않고, 제부도쪽으로 차의 기수를 돌려 당성 답사를 갔다.
당성을 둘러본 후 제부도를 둘러보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머리를 안짤랐기에 저녁에 또 한 소리 듣겠네.
머리 짜르기 정말 싫다. 머리 짜르는 그 시간은 정말 아깝다.
주변 둘러볼 곳
융건릉 http://blog.daum.net/koreasan/11275811
용주사 http://blog.daum.net/koreasan/11275807
남이장군 묘, 봉림사, 홍남파 생가 http://blog.daum.net/koreasan/258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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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섬 등대 전망대 http://blog.daum.net/koreasan/6299814
화성 둘러볼곳
융건릉, 남양성지, 궁평리해수욕장, 남양만, 남양향교, 남양호, 남이장군묘, 누에섬, 당성, 만년제, 만의사, 봉림사, 수원 고읍성, 시화호, 용주사, 정원채 고가, 제부도,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전곡항, 화성 고정리의 공룡알 화석 산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