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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음악

문인 문신 이규보선생(강화)

by 한국의산천 2006. 6. 18.

고려시대 문신,문인 이규보 

[답사 2006. 6. 18 ]

 

 ⓒ2006. 6. 18 한국의산천

ⓒ2006. 6. 18 한국의산천

 

이규보(1168~1241)고려시대의 문신, 문인으로 본관은 황려, 호는 백운거사, 지헌, 시호는 문순이다.

주요저서로는 '동국이상국집' , '백운소설'이 있다.   시, 술, 거문고를 좋아한다 하여 삼혹호선생이라고도 하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1189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 1199년(신종 2)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고 1202년(신종 5) 병마녹사 겸 수제(兵馬錄事兼修製)가 되었다. 

 

1207년(희종 3)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으로 발탁, 참군사(參軍事)·사재승(司宰丞)·우정언(右正言)을 거쳐 1219년(고종 6)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지방관의 죄를 묵인하여 계양도호부부사(桂陽都護府副使)로 좌천되었다.

 

1220년(고종 7) 예부낭중(禮部郞中)·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를 거쳐 30년 위위시판사(衛尉寺判事)가 되었으나, 팔관회(八關會) 행사에 잘못을 저질러 한때 위도(蝟島)에 유배되었으며 1232년(고종 19) 비서성판사(??書省判事)에 승진하고, 이듬해 집현전대학사(集賢殿大學士)·정당문학(政堂文學)·참지정사(參知政事)·태자소부(太子少傅) 등을 거쳐 1237년(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事)·태자대보(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명문장가였다.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저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작품:  시(詩)에 '천마산시(天摩山詩)', '모중서회(慕中書懷)', '고시십팔운(古詩十八韻)', '초입한림시(初入翰林詩)', '공작(孔雀)', '재입옥당시(再入玉堂詩)' , 초배정언시(初拜正言詩)', '동명왕편(東明王篇)', 문(文) :  '모정기(茅亭記)'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 등이 있다. [백과사전, 강화.com 참고] 

 

▲ 이규보 선생 문학비 ⓒ2006. 6. 18 한국의산천

 

술 없이는 詩 짓지 못한 酒仙, 이규보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시와 거문고와 술을 좋아해 스스로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고 했다. 이규보는 살아 7,000~8,000편의 시를 지었는데,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2,000편의 시가 전한다. 

 

그가 당대의 실력자 최충헌 앞에서 시를 짓게 되었을 때 최충헌의 아들인 최 우가 “이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시를 제대로 짓지 못한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우음’(偶吟, 시의 벗)

 

술이 없으면 시도 지어지지 않고 시가 없으면 술도 마시고 싶지 않아 시와 술을 내 모두 즐기니 서로 어울리고 서로 있어야 하네 손 내키는 대로 한 구절 시를 짓고 입 내키는 대로 한 잔의 술을 마셨지 내 어찌하겠나, 딱한 이 늙은이가 시버릇과 술버릇 함께 배운 것을 술이라고 해야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어서 천백수 짓는 시를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술잔을 마주하면 흥취 절로 일어나니 그 마음만은 끝내 알기 어려워라 그래서 내 병마저 깊어졌으니 죽은 뒤에야 그 버릇 없어지겠지 그러기에 나 혼자 속상한 것이 아니라 남들도 그 때문에 나무란다네 - ‘偶吟’ 전문-

 

그는 앓아 누워서도 술을 끊지 못하고 “맑은 정신으로 살아 있은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취해 지내다 저세상 가는 것이 도리어 좋을 텐데”라는 말도 전해온다.

 

▲ 사가재 (四可齋)ⓒ2006. 6. 18 한국의산천

 

사가재(四可齋)는 “밭이 있으니 경작하여 식량을 마련하기에 가(可)하고,뽕나무가 있으니 누에를 쳐서 옷을 마련하기에 가(可)하고, 샘이 있으니 물을 마시기에 가(可)하고, 나무가 있으니 땔감을 마련하기가 가(可)하다”라고 하는 네가지 가(可)에서 따온 이름이다.  


 

사가재 (四可齋)ⓒ2006. 6. 18 한국의산천 

 

이곳에서 사가재(四可齋)를 보니 문득 정약용선생의 사의재(四宜齋) 생각이 났다. 업무 노트 제일 앞장에 적어놓고 자주 보던 글이기에...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와서 처음 살았던 동문 밖 주막을 사의재(四宜齋) 라고 불렀다. 당시 이 주막 늙은 주모는 유배를 온 사람들을 홀대하던 것과 달리 다산 선생에게 호의적이었으며 주막의 방 한칸을 내줬다. (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다)

 

다산 선생은 이 방을 ‘생각·용모·말·행동 네 가지를 올바르게 지켜야 할 공간’이라는 뜻으로 생각을 맑게 하되 맑지 않으면 더욱 맑게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되 단정치 않으면 더욱 정숙하게 하고, 말은 요점만 말하되 요점이 전달되지 않으면 더욱 말을 줄이고, 행동은 무겁게 하되 무겁지 않으면 더욱 중후하게 하라는 뜻의 사의재.

 

 '사의재'에는 유배 초기 다산 선생이 올바른 삶을 살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던 간절함이 배어 있다.
 

ⓒ2006. 6. 18 한국의산천

 ⓒ2006. 6. 18 한국의산천

 

ⓒ2006. 6. 18 한국의산천

▲ 이규보묘.  인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인천기념물 제15호.ⓒ2006. 6. 18 한국의산천

 

 이규보는 1241년에 몽골족의 침략을 받아 고려가 강화로 천도했던 시절 강화에서 운명했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그의 무덤은 현재 강화도 길상면 길직리 백운곡에 있다.

 

이규보 선생은 이권에 개입하지 않은 문관이었고, 양심적이나 소심하였다. 학식은 풍부하였으나 그의 작품은 즉흥적으로 의식에 떠오르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2006. 6. 18 한국의산천

 

▲ 답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 흐렸던 하늘이 맑게 개이고 있다. ⓒ2006. 6. 18 한국의산천 

 

가는 길 강화도에 새로 놓인 초지대교를 건너 전등사가 있는 길상면 네거리를 지나 84번 지방도를 타고 강화읍쪽으로 3km쯤 올라가면 길 왼편으로 이규보 묘소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양호한 1차선 콘크리트 포장길을 약 500m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논 가운데 묘소가 보인다. 

 

▲ 섬 전체가 노천 박물관인 강화도 유적지 안내도(클릭,확대해서 보세요)ⓒ2006. 6. 18 한국의산천    述而不作(술이부작)
논어의 술이편(述而扁)에 나오는 말로서 공자의 성품은 겸손하여 자신의 저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옛사람의 설을 저술했을 뿐 창작한 것은 아니다.” 
참된 창작은 옛것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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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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