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16코스 망월돈대 창후리 무태돈대
[2020 · 3 · 1 · 흐리고 차분한 일요일(우한 폐렴은 시간이 갈수록 극성)]
3월의 첫날 강화 나들길 <서해 황금 들녘길>을 달리다
전편 계룡돈대에 이어서 망월돈대로 달려갑니다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아 ~ 일상 탈출
맑은 바람, 바다풍경, 운동과 문화유산 답사는 덤으로.
강화도 53개 돈대 둘러보기 클릭 >>> 강화돈대 둘러보기
▲ 계룡돈대에서 망월돈대로 이동하기
▲ 망월리 망월돈대부터 무태돈대까지 이어진 만리장성
끝이 안보이는 간척지 제방. 우리나라 최초로 고려말부터 간척 사업이 시작되었다
밀물시간이라 갯펄은 드러나고 끝없이 펼쳐진 망월리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바다와 평야의 경계를 달립니다
▲ 가을에는 황금 물결리 일렁이는 망월평야
망월리 마을의 역사와 유래
고려 후기부터 20세기까지 간척사업의 결과물로 얻어진 망월평야는 간척 평야로는 가장 넓은곳이다.
간척 평야에 설립된 마을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마을로 벌판 가운데있어 달을 먼저 바라본다고 하여 망월동이라하였다.
전체 면적 약130만평의 65%가 벼농사를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연간 약 760톤의 쌀을 생산한다.
망월리에는 망월돈대부터 무태돈대까지 이어진 만리장성이 있었으나 1998년 대규모 해일로 인해 한국 간척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망월평야의 만리장성 둑이 일부 소실 되었다.
망월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것은 고려 고종때 몽골에 대항하여 강화로 천도하면서 창후리에서 황청리에 이르는 만리장성 둑을 쌓으면서부터다.
이 둑의 길이는 5km 놀이 7m 너비 15m 규모였으며 내부에 수문 6개소 앞문 6개소까지 갖춰 방조제 역활을 하므로서 자연스럽게 간척지를 얻기에 이른것이다.
1960년 후반에는 만리장성 둑 바깥으로 제방을 쌓아 농지를 조성하였는데 새롭게 얻은 땅이 59헥타르(177,000평)이었다.<강화 걷기 여행/김우선 著>중에서
158. 망월동(望月洞)
- 화남 고재형(華南 高在亨, 1846~1916)
望月洞開大野中
망월동은 넓은 들판 가운데에 펼쳐있고,
烏橋春水鵲橋通
까마귀다리 봄물은 까치다리로 통하네.
水秧旱播隨天氣
비 오면 모내고 가물면 씨 뿌려 날씨를 따르지만,
穡事年年實有豊
해마다 농사일은 풍년이 든다네.
○ 망월동(望月洞)의 서쪽 아래에는 오교(烏橋)가 있고 위로는 작교(鵲橋)가 있으니 모두 큰 평야이다.
하점면 망월리이다. 마을이 벌판 가운데 있어서 달을 보기에 좋은 곳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다.
▲ 망월돈대
망월돈대는 1679년(숙종 5년)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진무영에서 직접 관할하는 영문 소속 돈대였다. 방형구조로 둘레 124m, 석벽의 높이는 180~300㎝이다.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고려저수지(일명:내가 저수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내가천 수로가 바다와 접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 망월리 일대는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는곳이다 이 간척지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국방강화를 위한 방편중 일환으로 강화도내 식량증산을 위해 바다를 막는 매우 큰 규모의 토목공사였다고 한다. 이렇게 긴 뚝방 중간에 위치한 망월돈대는 지형에 따라 역시 낮은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바다와 평야 쪽으로 가릴것이 없기에 경계를 위한 조망은 매우 좋은곳이다.
남쪽으로는 우리가 지나온 계룡돈대, 북쪽으로 우리가 가야 할 무태돈대가 있다.
망월돈대와 장성
돈대와 함께 있는 장성은 고려 고종이 이곳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해 쌓아 올린 것으로, 누각을 설치한 출입문이 6곳, 물길이 드나드는 문이 7곳 마련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광해군 10년(1618) 안찰사 심돈이 수리를 하였고, 영조 21년(1745) 강화유수 김시환이 다시 고쳐지었다.
'만리장성'으로도 불리웠으며, 지금은 홍수를 막거나 물을 저장해 두는 제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 방죽을 보호하기 위해 바닷물의 빠르기를 감소시키는 역활을 하는 그로인
▲ 그로인 위에서 여유롭게 낚시를 하는 멋진 사람들
▲ 내가 난독증인지 설명이 어려운것이지 위 그림판을 보고는 그로인을 이해하기 어려움
그냥 바닷가의 돌모양을 보면 그림이 없어도 설명으로 이해가 됨.
▲ 낚시 그리고 바다 건너보이는 교동도 화개산
▲ 창후리 포구가 가까워지며 별립산이 다가온다
녹슨 철조망과 폐허가 된 군 벙커를 몇개 지나니 창후리 포구가 가까워진다
별의 평야
- 박준(1983~)
군장(軍裝)을 메고 금학산을 넘다보면 평야를 걷고 싶고
평야를 걷다보면 잠시 앉아 쉬고 싶고 쉬다보면 드러눕고 싶었다
철모를 베고 풀밭에 누우면 밤하늘이 반겼다
그제야 우리 어머니 잘하는 짠지 무 같은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렸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中
군대 시절, 뙤약볕 내리쬐는 산길을 지나 밤 이슬 맺힐 때까지 하염없이 행군하다 보면 온갖 생각이 듭니다.
부대로 복귀하면 물을 벌컥벌컥 마셔야지, 고소한 건빵을 씹어야지, 감칠맛 도는 라면을 먹어야지….
'5분간 휴식' 구호에 군장을 베개 삼아 밤하늘 바라보면, 아!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어머니가 해주신 미역국에 잡곡밥이란 걸 깨닫고 일렁이는 별빛에 목이 메었습니다.
▲ 창후리 포구 화개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
오래전 그러니까 교동대교가 생기기 전이었지 이곳에서 배타고 교동을 돌아보던 추억이 새록 새록
13년전 이곳 창후리에서 배타고 건너기 >>> https://koreasan.tistory.com/12534010
▲ 무태돈대 입성
모든 외환에 대해 위태로움이 없고 부족함 없는 무태돈대
▲ 강화 하점면 창후리에 위치한 무태돈대
無 :없을 무 / 殆 : 위태 할 태
위태로움을 없앤다는 무태돈대.[無殆墩臺 ]
농로길을 따라 다시 건평항으로 돌아오기
▲ 드넓은 망월평야
강화도에서 가장 큰 간척지인 강화군 망월리 구하리 일원에 평야가 생긴 것도 여몽전쟁 이후 고려 공민왕 시절이다.
조선 시대에도 임진왜란이 끝난 뒤 강화에서 대규모 간척사업이 시작됐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11만명을 동원해 선두포언(船頭浦堰)이라는 이름의 제방을 쌓아 제방 안쪽을 육지로 만드는 공사가 추진되기도 했다.
제방을 쌓아 갯벌을 막은 뒤 제방 안쪽을 육지화하는 방식이다.
고려 시대부터 800년간 간척. 전시 수도 강화도 식량 확보 목적
1232년(고려 고종 19년) 7월. 고려 최씨 정권은 1차 여몽전쟁이 끝난 뒤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수전에 약한 기마병 중심의 몽골군을 방어하는데 육지보다 섬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천도를 결심한 것이다.
좁은 강화에서 십여만명이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식량을 구하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강화도를 지킬 군인이 먹을 식량도 부족했다.
당시 식량 문제의 해답을 '간척'에서 찾았다. 바다를 메워 만든 땅에서 식량을 생산해보기로 했다.
인천 강화도에 드넓은 평야가 만들어진 것은 이때부터다.
▲ 끝없이 이어지는 망월리 농로길
▲ 잘 정비된 그 유명한 강화수로
내가면 고려 저수지에서 이어지는 내가천이다.내가천이 바다에 닿은 그 자리에 망월돈대가 자리한다.
▲ 창후리 무태돈대 왕복 건평항 도착 (34km)
건전한 정신
건강한 삶을 추구하며
또 다시 내일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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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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