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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무릉도원

by 한국의산천 2022. 7. 2.

[‘한국의 무릉도원’을 찾아서 | 유래 및 역사] 복숭아꽃 만발한 전설 속의 이상향

글 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사진 정정현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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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8.24 10:53


혼란스런 속세 벗어나려 찾은 듯… 지금은 피서지로 개념 변질

지리산 삼신봉에서 발원한 물은 청학동계곡으로 합류해서 흐른다.


사람들이 여름만 되면 무릉도원을 찾는다. 무릉도원이 어떤 곳이기에 여름 복더위만 되면 등장할까. 그리고 누구나 무릉도원을 꿈꾸며 산다. 하지만 그 실체와 존재 여부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어렴풋한 문헌과 구전으로만 전해질 뿐이다. 동양에서는 무릉도원이지만 서양에서는 유토피아로 통한다. 일종의 이상향이다. 과연 무릉도원이 어떤 곳인지, 어디서 유래했는지,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 정확히 한번 살펴보자.

무릉도원은 중국 도연명陶淵明(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온다. 핵심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진나라 태원太元 연간(376~396)에 무릉의 어느 고기잡이가 계곡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던 중 양쪽 언덕이 온통 복숭아나무숲으로 덮여 있는 곳에 다다랐다.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는 때라 고기잡이는 노를 저으며 정신없이 바라봤다. 

복숭아나무숲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꽃잎은 푸른 잔디 위로 펄펄 날리고 있다. 계곡 발원지에 도착하자 숲도 함께 끝나고 산으로 가로막혀 있고, 산 밑으로 조그마한 바위굴이 하나 있다. 굴속에서 무언가 빛이 났다. 그 속으로 들어가자 별천지가 나왔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어부에게 밖에 나가서 절대 이곳 얘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곳을 나온 어부는 후일 다시 찾았으나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속세와 떨어져 있는 별천지란 뜻으로 무릉도원이란 말을 쓰게 됐다. 

무릉도원에는 주씨와 진씨 두 성이 서로 사돈을 맺어 내려왔다 해서 서로 사돈이 되는 것을 주진지의朱陳之誼를 맺는다고 한다.’

4~5세기 도연명이 살았던 중국은 당시 매우 혼란했다. 

위진남북조 시대로 중국은 진과 한 이후 다시 여러 나라로 나눠진 상황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연명이 우연히 찾은 무릉도원은 산 속 깊은 계곡 끝에 있는 좁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비옥한 땅에 농사를 지으며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만 보면 영락없는 이상향이다. 

난세에 이런 행복한 장소를 꿈꾸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중국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심취했던 고려 말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청학동에 대한 첫 언급이 나온다. 

무릉도원은 산 속 깊은 계곡 끝에 조그만 동굴을 지나 복숭아꽃이 만발한 이상향으로 알려져 있다.

 

계곡·동굴·복숭아꽃이 무릉도원 키워드

무릉도원의 중요한 키워드는 깊은 산 속, 계곡, 동굴, 복숭아꽃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복숭아꽃은 영적인 열매를 상징한다. 신선이 사는 곳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나무와 꽃이 복숭아꽃이다. 

무릉도원의 제1 요소다. 

동굴은 전형적인 신선이 사는 장소이고, 반드시 산 속 깊은 계곡 끝에 나타난다. 

도교에서는 이를 동천洞天이라 한다. 속세를 벗어나고 싶은 강한 열망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위자연사상과도 통한다. 바로 은둔사상으로 연결된다. 

이 모든 개념이 혼란스런 상황을 벗어나 이상향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그것이 곧 무릉도원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와서는 청학동과 무릉계, 우복동 등의 개념으로 살짝 각색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선으로 알려진 최치원도 혼란스런 상황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개인 욕망의 좌절로 속세를 벗어나 결국 산으로 들어갔다. 

당나라에서 관리를 하면서 당의 국교인 도교의 무위자연사상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최치원이 실제로 신선이 됐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이인로의 <파한집>에서 청학동 최초 언급

고려 말 무신정권으로 인한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속세를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여러 군데서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기록이 바로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이다. 

무릉도원, 아니 청학동에 관한 한국 최초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무릉도원은 고려 말 이인로에 의해서 유래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파한집>에 청학동 전설을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지리산은 두류산頭留山이라고도 한다. 

(중략) 

옛 노인이 서로 전하여 이르기를 “이 산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다. 

구부리고 엎드려 몇 리를 가야 넓게 트인 땅이 나타난다. 

사방이 모두 좋은 밭과 기름진 땅으로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을 만하다. 

청학이 그 가운데 깃들어 살므로 청학동靑鶴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개 옛적에 속세를 등진 사람이 살던 곳인데, 무너진 담장과 집터가 아직도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다”고 했다.’


구전되는 내용을 소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이인로는 도연명에 매우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스스로  <도화원기>를 거듭 읽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인로는 자신의 거처를 도연명이 누워 있는 마루방이라는 뜻으로 ‘와도헌臥陶軒’이라고 불렀다. 

또한 <와도헌기>에서는 속세의 영화를 뿌리치고 은일했던 도연명의 의지를 동경하고 매우 높이 샀다는 내용도 나온다.

1 이인로의 <파한집> 표지.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2 <도화원기>를 쓴 중국 도연명. 출처 중국 인명사전.

 

도연명의 <도화원기>와 이인로의 <파한집>에 소개되는 내용을 봐도 중요한 키워드가 비슷하다. 

산 속 깊은 계곡과 좁은 동굴, 좁은 동굴 지나 큰 평원, 복숭아꽃, 속세 등진 사람들 등의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인로는 실제로 혼란스런 상황을 피해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결국 청학동을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파한집>에 밝히고 있다.

‘지팡이 짚고서 청학동 찾아가니
숲속에선 부질없이 원숭이 울음소리뿐

누대에서 삼신산이 아득히 멀고 먼 데
이끼 낀 바위에는 네 글자가 희미하네

묻노라 신선이 사는 곳 그 어디인가
꽃잎 떠오르는 개울에서 길을 잃고
헤매네’
- 이인로 <파한집>

그러면 무릉도원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청학동의 의미를 한 번 살펴보자. 

 

무릉도원은 무릉과 도원의 복합명사로 굳셀 武, 큰 언덕 陵, 복숭아 桃, 근원 源의 뜻을 가진다. 

 

즉 무릉에 있는 복숭아의 근원이란 뜻이다. 이것이 확대되어 신선들이 사는 이상세계나 이상향, 도원경, 별천지 등으로 해석된다. 

 

예로부터 복숭아는 신선이 머무는 장소에 항상 등장하는 영적인 나무를 상징한다. 

청학동은 푸를 靑, 학 鶴, 동굴 洞으로, 이것도 청학과 동의 복합어다. 

청학은 태평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나 운다는 전설의 새를 말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청학동이라 불렀다. 

무릉도원과 청학동, 둘 다 의미상으로 혼란스런 상황을 피해 이상향을 찾아간 사실을 그대로 알 수 있다.

고려 말 이인로 이후 조선시대 들어서도 청학동을 찾는 선비들은 줄을 이었다. 특히 청학동과 무릉도원이라는 지명이 전국 곳곳에 잇달아 등장한다. 김종직은 지리산에 올라 <유두류록>이라는 유산록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 곳곳을 헤맸다. 그는 피아골을 청학동이라 여겼다. 이어 김일손은 불일폭포를, 유성룡의 형인 유운룡은 세석평전을 청학동이라 각각 주장했다. 하지만 개인의 의견일 뿐 확신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예언서 <정감록>에도 ‘진주 서쪽 100리 석문을 거쳐 물 속 동굴을 10리쯤 들어가면 그 안에 신선들이 농사를 짓고 산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그곳이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아무도 모르고 밝혀진 바도 없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지리산 남쪽 자락 마을인 악양의 매계梅溪를 청학동이라 했다. 

근래에 비로소 인적이 조금씩 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감록>의 십승지가 청학동이자 무릉도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 주장은 풍수지리설과도 연결된다. 우복동이란 개념은 풍수에 의해서 나왔다. 

소의 배에 해당하는 지형으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장소라는 말이다. 

따라서 풍수설의 길지가 바로 청학동이자 무릉도원이라는 것이다.

 

지리산 청학동 도인촌에 가면 옛날 초가집이 그대로 있어 정말 무릉도원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늘 아래 신선들이 사는 천하의 명승지라는 뜻의 ‘선구영부천하승지’란 석각이 보인다

계곡서 휴식이 힐링이고 신선놀음일 듯

시대가 흐를수록 그 개념도 조금씩 변천하기 마련이다. 

현대 들어서 청학동이나 무릉도원을 찾는 것은 신선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 휴식과 힐링을 위해서라고 본다. 

 

속세를 벗어나 신선이 되는 장소에서 몸과 마음을 맡기면 저절로 신선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겠다. 

그렇게 보면 신선의 현대적 의미가 힐링으로 볼 수도 있다. 

혼란스런 속세를 잠시 벗어나 자신을 찾고자 하는 행위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여름에 청학동과 무릉도원을 찾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도화원기>나 <파한집>을 근거로 유추하면, 여름에 이런 장소들을 찾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시기는 봄이 한창 무르익는 4월 즈음이기 때문이다. 

단지 계곡과 동굴은 시원하기 때문에 봄보다 여름에 많이 찾는다. 

여름의 무릉도원은 비록 복숭아꽃은 없지만 시원한 계곡 물 속에 앉아 신선놀음을 하면 이게 바로 무릉도원이고 청학동이지 않을까 싶다.

이인로의 <파한집>이란 제목 자체가 심심풀이로 쓴 시화집이란 의미니, 

청학동을 갈망하고 찾는 행위도 결코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전설 속의 이상향을 심심풀이로 그냥 써본 것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시원한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면 그것이 곧 신선놀음이고,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고 청학동이지 않을까 싶다. 본인이 편하고 마음에 드는 장소면 그곳이 바로 청학동이라는 말이다.

[574호] 2017.08
한국의 무릉도원

 

[‘한국의 무릉도원’을 찾아서 | 어디에 있나?] 지리산·오대산이 전통 무릉도원
[574호] 2017.08  글 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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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8.25 10:34


서쪽엔 보령 만수산 심연계곡에… 피서객 유치 위해 몇 십 년 전 명명한 곳 많아

 

조선 안평대군이 꿈에서 봤다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전형적인 이상향이자 무릉도원이다. 출처 한국의 미술가


무릉도원이나 청학동이 실제로 존재할까?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로 지정된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이상향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 그림으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 그림 속의 장면을 무릉도원이나 청학동으로 추정한다.

그 그림 속의 장면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려 말 이인로가 최초로 찾으러 갔던 지리산 청학동이나 조선시대 김종직, 김일손, 유운룡 등이 찾았던 지리산 청학동은 전부 다르다. 

청학동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아마 영원히 미궁으로 존재할지 모른다. 

청학동이나 무릉도원 자체가 실재하지 않은 이상향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학동이나 무릉도원을 자처하는 마을은 전국에 몇 군데 있다. 

지리산에는 여러 곳이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지리산 청학동마을로 널리 알려진 일명 도인촌이다. 

그곳에 들어서면 석각 하나가 눈길을 확 끈다. 天藏地秘家천장지비가. 하늘과 땅이 감춰둔 비밀스런 집이란 뜻이다.

 ‘정말 이럴 수가…, 이런 곳이 있었나’ 하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갓 쓰고 도포 입고 흰 수염을 가슴까지 기른 현지 노인은 “이곳에서 약 60년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전에는 몇 가구 없었지만 20여 년 전 지금과 같이 조성했다고 한다.

지리산 청학동으로 자처하는 삼신봉 아래 하동군 묵계리 도인촌을 비롯해 바로 아래 있는 삼성궁과 산청군 시천면 고운동,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쌍계사 화개동천 불일폭포 부근, 세석평전 등지를 청학동 마을 후보로 거론한다.

퇴계 이황이 영월군수로 있을 때 영월군 수주면에 갔다가 그 동네 풍광이 너무 좋아 무릉도원이라 이름을 붙인 적이 있다. 실제로 여름 되면 많은 사람들이 피서지로 찾는다. 

이곳을 영월군은 2016년 11월 수주면에서 무릉도원면으로 아예 지명을 바꿔버렸다. 

영월군은 관광홍보 차원에서 김삿갓면, 무릉도원면 등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지닌 개념을 행정지명으로 바꿔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명주(강릉의 옛 지명) 청학동 소금강도 있다. 명승 제1호로 지정된 곳이다. 

입구에는 입석 바위에 ‘무릉계’라고 새겨져 있다. 역시 무릉도원과 청학동은 같은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율곡 이이는 1569년에 <유청학산기>를 남겼다. 그 내용 중에 ‘예부터 식당암이라고 불러오던 바위를 비선암이라 개명하고, 골짜기를 천유동天遊洞이라 이름 붙였다. 

또한 절벽 바위 밑에 있는 못을 경담鏡潭이라 하고, 이 산 전체를 통틀어서 청학산이라 명명했다’고 나온다. 소금강 계곡은 율곡 이이가 <유청학산기>를 기록한 이전부터 청학동으로 불린 사실을 알게 해준다. 

현지인들은 옛날에는 계곡 입구에 복숭아꽃이 만발했으나 언제부터인가 흔적도 없이 깡그리 사라졌다고 한다.

 무릉마을 촌로들도 “옛날에는 복숭아나무가 많았다”고 전한다.

통도사가 있는 양산에도 무릉도원이 있다. 이곳은 전설 속의 무릉도원이라기보다는 여름 피서지로서의 계곡이다. 

시원하게 휴식과 힐링을 취할 수 있다고 해서 무릉도원이란 명칭을 사용한 듯하다.

1 지리산 청학동 못지않게 오랜 지명을 유지해 온 오대산 청학동계곡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2 동해 무릉계곡은 고려시대, 늦어도 조선시대부터 무릉계곡으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릉계곡을 대표하는 경관인 무릉반석.

무릉도원·청학동 같은 개념으로 쓰인 듯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무릉계곡은 전통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두타산과 청옥산, 고적대에서 발원한 계류들이 합류해 깊은 계곡과 더불어 운치를 자아낸다. 

산수의 풍치가 절경을 이뤄 금강산에 빗대 소금강이라 부른다. 오대산 청학동 소금강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 

고려 말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가 “신선이 사는 곳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명명했다는 설과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명명했다는 설이 전한다. 

1977년 일찌감치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이외에도 무릉도원이라 이름 붙인 계곡들이 전국에 수두룩하나 대부분 피서객을 유치하기 위해 몇 십 년 전 상업적으로 명명한 장소들이다.

청학동계곡은 이미 언급한 지리산과 오대산 외에도 남양주 별내 수락산 자락에도 있다. 

서울 근교 계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이제는 오염이 심해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수락水落’이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 폭포가 여러 개 있어 계곡의 운치를 더한다.

충남 보령 심연계곡에도 청학동이 있다. 

성주산~문봉산~만수산으로 둘러싸인 산세 중간에 위치한 심연계곡은 유일하게 한반도 서쪽에 있는 청학동계곡이다. 

한반도 지형이 동고서저형인 사실에 비춰볼 때 서쪽에서 이 정도 깊은 계곡이 생기기도 쉽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피서지로 즐겨 찾는다. 

주변에 불과 5km도 안 되는 거리에 만수산자연휴양림과 성주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이와 같이 전국에는 무릉도원이나 청학동 같은 신비의 지명은 아직 유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계곡을 끼고 있다. 

반면 풍수적으로 유명한 우복동이나 금계포란형 같은 지역은 대개 산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무릉도원이나 청학동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띤다. 

하지만 무릉도원이나 청학동도 복숭아꽃과 청학이 여전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이름만 남아 자취를 전할 뿐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무릉도원이나 청학동은 속세를 벗어나 신선이 되는 이상향이었다면 현대 들어서는 피서지로서의 개념이 굳어지는 느낌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개념도 다소 달라지는 듯하다. 복숭아나무가 없는 무릉도원과 청학이 없는 청학동으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됐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원래 없었고, 찾고 싶고 살고 싶었던 이상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릉도원
Copyrights ⓒ 월간산.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7] 무릉도원의 꿈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6.24 03:00

 

중국인이 꿈꿨던 이상향(理想鄕)은 도화원(桃花源)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흔히 무릉도원(武陵桃源), 중국은 보통 세외도원(世外桃源)이라고 적는다. 

쾌락과 환희의 뜻으로도 쓸 수 있지만 본래 ‘사람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의 지칭이다.

동진(東晋)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년)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했다. 

어느 날 고기잡이 어부가 물길 따라 계곡으로 들어가다 복숭아꽃 흐드러진 숲을 만난다. 

이어 더 깊은 골짜기 안쪽에서 마주친 곳이 ‘도화원’이다.

이곳에서 어부는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들을 만난다. 

“진(秦)나라 때의 난(亂)을 피해 이곳으로 왔다”는 주민들은 어부에게 “지금이 어느 세상이냐?”고 반문한다. 

그 다음에 들어선 왕조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심은 푸근했다. 

음식을 가져와 어부와 함께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 낯선 사람 반겨주는 심성의 소유자들이다. 

주민들끼리도 격의 없이 소통하며 서로 챙기는 분위기다.

도연명이 글에서 나열한 이 몇 가지는 중국인들이 그리는 ‘이상향’의 조건이다. 

삶을 위협하는 전란(戰亂) 등이 없고, 나름대로 자족(自足)할 수 있는 물질적인 환경을 갖춰 원만하고 따뜻한 사람 사이의 사회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곳이다.

그 기준으로부터 요즘 중국은 더 멀어졌다. 

우선 강대국 지향의 ‘중국 꿈[中國夢]’이 외부와 큰 마찰을 불렀다. 

나아졌던 경제는 끈질긴 관료 부패 등의 덫에 걸려 휘청거리고, 전제주의의 완고한 틀은 사람이 서로 불신하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연명 글 속의 어부는 살던 곳으로 돌아오며 표지를 남겨 다시 도화원을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중국인의 도화원은 늘 ‘실종 상태’다. 이러다가 말의 속뜻도 ‘아예 갈 수 없는 곳’으로 변할지 모르겠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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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대한민국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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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산천

거친 호흡 몰아쉬며 바람 저편 굽이치는 산맥 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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