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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소래습지공원 소금창고

by 한국의산천 2014. 5. 2.

소래습지공원 소금창고 [2014 · 5 · 2 · 흐리고 비오는 금요일] 

 

염전(鹽田)이란 한자 풀이 그대로 소금밭을 말한다.

흐리고 바람까지 불며 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마침 소금을 걷어들이는 작업광경을 볼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 오른손에 깁스를 아직 풀지 않았기에 아직도 자판치기가 어려운 날)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류시화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中에서) 

 

 

 

▲ 소염교를 건너서 소래습지공원으로 갑니다 ⓒ 014 한국의산천

 

 

 

 

 

▲ 헐 ~ 안내판 속에 제 포즈가 ~ ㅋ ⓒ 2014 한국의산천

 

 

 

 

 

인천 월곳의 소래염전은 일제 때부터 1996년까지 천일염을 생산하던 국내 최대의 염전이었다. 현재 소금창고는 몇개만 남아있다.

지금 남동구쪽의 소래포구 입구에 염전 일부가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소래포구와 어시장과 함께 둘러보는 가족 동반 나들이 코스로 추천합니다. (주차장 있음)

 

 

 

곰섬 건너기 직전 

물이 차차 무거워지며 다른 칸들로 쫓겨다니다
드디어 소금이 되는 염전이 있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든 억지로든
칸 옮겨 다님,
누군가 되돌아가지 못하게 제때마다 물꼬를 막는다.
자세히 보면
시간에도 칸들이 쳐 있다.
마지막 칸이 허옇다. -황동규의 소유언시 中- 

 

 

산다는 것은 스스로든 억지로든
칸 옮겨 다님,

누군가 되돌아가지 못하게 제때마다 물꼬를 막는다.

.

.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것은 염전이나 우리네 삶이나 똑 같구나..

 

 

▲ 타일판 염전 ⓒ 2014 한국의산천    

소금을 만드는 판에는 토판 옹기판 타일판 등이 있다.

소금을 만들 때 개펄 흙이 많이 섞이면 소금색깔이 하얗지 않기 때문에 바닥에 건축자재인 타일을 깔아서 좋은 소금을 생산한다.타일을 깔고 생산한 소금은 결정이 더 굵고 색갈도 더 좋아 가격을 더 쳐준다.

 

 

  소금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음식이자, 인체에 생리적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광물에서 만들어 낸 식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월급을 타는 사람, 샐러리맨(salary man)의 샐러리(salary) 어원은 라틴어의 소금(salt)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 시대에는 소금으로 월급에 가름하는 양을 주었다고 한다. 소금의 중요성의 알게 해주는 단어이다.  

 

 

 

소금 인형

            - 류시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 수집한 소금을 옮기는 과정 ⓒ 2014 한국의산천

 

 

▲ 염전에서 수집된 소금은 소금창고로 옮겨져서 보관됩니다 ⓒ 2014 한국의산천 

 

나는 기억한다 

바람과 뜨거운 여름햇살 아래서 태어나던 하얀 보석을

 

나는 보았다.

이 창고안에 가득 쌓여서 눈부시게 수정처럼 빛나던 소금을...  -한국의산천- 

 

▲ 시간이 멈추어 있는 곳 소금창고 ⓒ 2014 한국의산천

 

▲ 소금창고는 가까이도 멀지도 않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 2014 한국의산천    

우리 인간에게도 필요한 가까이도 아니고 멀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을 가르쳐 주고 있다.

 

현악기의 줄들이 같은 화음을 내면서도 혼자이듯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되 서로는 혼자있게 하라. 

 

서로의 가슴을 주되 서로 묶는 사슬이 되지 말라.

오직 신의 손길만이 너희 가슴을 품을 수 있다.

 

서로 잔을 채워 주어라.

하지만 어느 한 편의 잔만 마시지 말라.

 

함께 서 있으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 말라.

사원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 서 있듯

삼나무, 떡갈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는것을.. -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중에서 - 

 

▲ 나보다도 더 오랜 세월의 풍파를 지내온 흔적 ⓒ2014 한국의산천

소금창고는 무거운 소금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 벽체에 약간의 경사를 주고 만들어진다.
소금기를 머금어서인지 그 스스로의 벽체 나무는 단단하였으나, 바닷가의 바람은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세월 그것은 바람 한 번 가면은 다시 오질 않네

바람 저 부는 바람 우리 손으론 잡을 수가 없네

 

 

▲ 폐허가 된 소금창고. 드넓은 이곳의 소금을 실어 나르기 위해 수인선 협궤열차가 생겨났다 ⓒ 2014 한국의산천

 

  현재의 이곳 폐염전은 불과 70여년 전만 해도 갯벌이었다. 소래염전이 1930년대, 군자염전은 그보다 조금 이른 1920년대 초반에 생겼다. 군자·소래염전은 한반도 최대의 염전이었다. 우리나라의 천일염 역사는 1907년 일본인이 중국인 기술자를 고용, 주안에 1정보 규모의 시험용 염전을 만든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규모면에서는 이곳 염전이 가히 압도적이다. 조용하던 이곳의 지역적 정체성과 단일성이 흔들리는 최초의 사건이 염전에서 시작됐다.

 

 그때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왔으며, 그 바람에 일본 대신 중국의 천일염 기술이 전파되었다.3·1운동이 났던 해, 중국 산둥성에서 중국노동자들이 몰려와 염전 공사를 도맡았고, 자본은 일본인이 댔다. 재미있는 것은 그 무렵 남한보다 일찍 염전 기술을 익힌 평안도 사람들이 집단으로 남하해 이곳에 '평안도촌'을 형성했다는 사실이다. 평안도촌은 군자역 주변 마을로,1922년 군자염전 축조사업 때 평안도 용강 등지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오면서 취락으로 발전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이곳을 '피양촌'이라고 불렀다. 군자역 서북쪽 지역은 '웃피양촌', 북쪽 지역은 '아래피양촌'으로 불렸다. 또 군자역 뒤는 군자염전 염부들이 이사와 사는 곳이라 하여 염전이민사나 염전사택으로 불리곤 했다. 오늘날 전철 4호선 군자역이 바로 이 지역으로, 평안아파트에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일제는 소금을 실어나르기 위해 이곳에 협궤열차를 부설했다. 민간이 부설한 철도로, 순전히 경제적 목적의 철도였다. 처음에는 경동철도라 불리다가 후대에 수인선으로 바뀌었으며, 소래포구의 철교도 경동철교에서 나중에 소래철교로 바뀌었다. 

 

▲ 염전이 사라지고 소금창고 주변에는 잡초만이 무성하다 ⓒ 2014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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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지나가는 바람의 통로 ⓒ 2014 한국의산천     

 

소금창고는 이제 기둥만이 남아 몸체를 지탱하고 있다.   

바람이 만들던 소금 그러나 지금 아무곳에도 소금은 없다.

길떠나는 여행자처럼 바람만이 하릴없이 이리 불고 저리로 불어 갈 뿐. 

 

▲ 잡초속에 폐허가 되는 소금창고 ⓒ 2014 한국의산천  

 

▲ 오랜 시간을 흐르며 이제는 제 할일을 찾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소금창고 ⓒ2014 한국의산천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 할 수 있는것은 무엇일까? 무심한 바람만 불고 저 부는 바람은 우리 손으론 잡을 수가 없네. 세월 그것은 바람 한번 가면은 다시 오질 않네.

 

 

▲ 바람이 심상치 않다. 배낭속에 고어텍스 챙모자와 우의가 있음을 알기에 천천히 마음 놓고 돌아다녔다 ⓒ 2014 한국의산천

 

 

▲ 바닷물이 들어 오던 갯벌에 지금은 갈대가 무성하다 ⓒ 2014 한국의산천

바다물이 들어오던 이곳이 서서히 육지로 변하고 있다.광활하게 펼쳐진 공간속으로 바람이 분다. 이 공간의 풍경은 먼 시간의 바다로 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시간의 연속. 생성과 소멸 지속과 전환의 연속이었다. 벌판 저 멀리 보금자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어둠이 온다.

달이 떠오르지 않아도

물소리가 바다가 된다.

밤새가 울 만큼 울다 만다. 
왜 인간은 살 만큼 살다 말려 않는가? 
생선들 누웠던 평상 위 
흥건한 소리마당 같은 비릿함, 
그 냄새가 바로 우리가 처음 삶에, 
삶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 자리! 
그 속에 온몸 삭히듯 젖어 
육십 년 익힌 삶의 뽄새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이 멈출 길 없는 떠남! 내 안에서 좀체 말 이루려 않는 
한 노엽고, 슬거운 인간을 만난다. 
곰처럼 주먹으로 가슴 두들기고 
밤새처럼, 
울고 싶다. -소유언시(小遺言詩)중에서 . 황동규 

 

▲ 오월의 둘째날 비가 내린다. 봄비가 ⓒ 2014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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