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언시(小遺言詩) - 황동규-
▲ 고운말만 하고 살아도, 웃음짓고 살아도 모자란 짧은 인생이기에 즐겁게 살면서 열심히 달려야한다 ⓒ 2011 한국의산천
아름다운 사랑 - 임지훈
큰 가방 하나 흩날리는 머리 결 길을 나선 그대 보며 느낌을 주고 탈고 안될 마음 그 뭇 느낌으로 바라보는 마음으로 사랑을 준다
바닷가에 멈추어 선 그대를 보며 그리움에 길을 나선 한 사람이 흩날리는 머리 결로 스치어 가서 아름다운 사람이라 얘기할 테야
잠자는 갈매기 불을 지핀 연인들 모래밭 발자욱에 많은 아쉬움 잊지 못할 추억 그 안타까움에 머물렀던 발길 옮겨 어제를 걷나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대를 보며 그리움에 길을 나선 한 사람이 흩날리는 머리 결로 가까이 가서 아름다운 사람이라 얘기할 테야
살기 점점 더 덤덤해지면, 부음(訃音)이 겹으로 몰려올 때 잠들 때쯤 죽은 자들의 삶이 떠오르고 그들이 좀 무례하게 앞서갔구나 싶어지면, 관광객도 나대지 않는 서산 가로림만(灣)쯤에 가서
울/고/싶/다/
소유언시(小遺言詩) - 황동규-
열반에 머문다는 것은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 원효
1
살기 점점 더 덤덤해지면,
부음(訃音)이 겹으로 몰려올 때
잠들 때쯤 죽은 자들의 삶이 떠오르고
그들이 좀 무례하게 앞서갔구나 싶어지면,
관광객도 나대지 않는 서산 가로림만(灣)쯤에 가서
썰물 때 곰섬(熊島)에 건너가
살가운 비린내
평상 위에 생선들이 누워 쉬고 있는 집들을 지나
섬 끝에 신발 벗어놓고
갯벌에 들어
무릎까지 뻘이 차와도
아무도 눈 주지 않는 섬 한구석에
잊힌 듯 꽂혀 있다가
물때 놓치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듯이.
2
그냥 가기 뭣하면
중간에 안국사지(安國寺址)쯤에 들러
크고 못생긴 보물 고려 불상과 탑을 건성 보고
화사하게 핀 나무 백일홍들
그 뒤에 편안히 누워 있는 거대한 자연석(自然石) 남근을 만나
생전 알고 싶던 얘기나 하나 묻고
대답은 못 듣고.
3
길 잃고 휘 둘러가는 길 즐기기.
때로 새 길 들어가 길 잃고 헤매기.
어쩌다 500년 넘은 느티도 만나고
개심사의 키 너무 커 일부러 허리 구부린 기둥들도 만나리.
처음 만나 서로 어색한 새들도 있으리.
혹시 못 만나면 어떤가.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
나무, 집과 새들을 만났다.
이제 그들 없이 헤맬 곳을 찾아서.
4
아 언덕이 하나 없어졌다.
십 년 전 이곳을 헤매고 다닐 때
길 양편에 서서 다정히 얘기 주고받던 언덕
서로 반쯤 깨진 바위 얼굴을 돌리기도 했지.
없어진 쪽이 상대에게 고개를 약간 더 기울였던가.
그 자리엔 크레인 한 대가 고개를 휘젓고 있다.
문명은 어딘가 뻔뻔스러운 데가 있다.
남은 언덕이 자기끼리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날의 갖은 얘기 이젠 단색(單色) 모놀로그?
5
한 뼘 채 못 되는 시간이 남아 있다면
대호 방조제까지만이라도 갔다 오자.
언젠가 직선으로 변한 바다에
배들이 어리둥절하여
공연히 옆을 보며 몸짓 사리는 것을 보고 오자.
나이 늘며 삶이 점점 직선으로 바뀐다.
지난 일들이 빤히 건너다보이고.
6
곰섬 건너기 직전
물이 차차 무거워지며 다른 칸들로 쫓겨다니다
드디어 소금이 되는 염전이 있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든 억지로든
칸 옮겨 다님,
누군가 되돌아가지 못하게 제때마다 물꼬를 막는다.
자세히 보면
시간에도 칸들이 쳐 있다.
마지막 칸이 허옇다.
7
물떼샌가 도요샌가
긴 발로
뻘에 무릎까지 빠진 사람은
생물로 치지 않는다는 듯이
팔 길이 갓 벗어난 곳에서 갯벌을 뒤지고 있다.
바지락 하나가 잡혀 나온다.
다 저녁때
바지락조개들만
살다 들키는 곳.
8
어둠이 온다.
달이 떠오르지 않아도
물소리가 바다가 된다.
밤새가 울 만큼 울다 만다.
왜 인간은 살 만큼 살다 말려 않는가?
생선들 누웠던 평상 위
흥건한 소리마당 같은 비릿함,
그 냄새가 바로 우리가 처음 삶에,
삶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 자리!
그 속에 온몸 삭히듯 젖어
육십 년 익힌 삶의 뽄새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이 멈출 길 없는 떠남! 내 안에서 좀체 말 이루려 않는
한 노엽고, 슬거운 인간을 만난다.
곰처럼 주먹으로 가슴 두들기고
밤새처럼,
울고 싶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든 억지로든 / 칸 옮겨 다님, / 누군가 되돌아가지 못하게 제때마다 물꼬를 막는다.
자세히 보면 / 시간에도 칸들이 쳐 있다. / 마지막 칸이 허옇다.
가로림만 (加露林灣).
加露林(가로림) : 어설픈 실력으로 해석한다면 '숲에 이슬을 더하는 바다'라는 뜻인가?
▲ 서산 팔봉산에서 내려 본 가로림만 ⓒ 2011 한국의산천
이곳에 서면 황동규 시인의 작은 유언의 詩를 되뇌이게 된다.
충남 태안반도의 중북부 서산시와 태안군 사이에는 가로림만이라는 바다가 놓여 있다. 태안반도의 크고 작은 만들이 대부분 간척사업에 의해 육지로 바뀌었지만, 가로림만은 아직까지 자연 상태를 유지하며 남아있는 태안반도의 가장 큰 만이다.
내륙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으면서 서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은 그 폭이 불과 2.5km 정도밖에 되지 않아 늘 잔잔한 물결을 자랑한다.
해안선 길이 약 길이 25 km. 너비 2~3 km. 태안반도의 지협부(地峽部)를 끼고 남쪽 천수만의 반대쪽에 만입하여 태안군 이원면, 원북면, 태안읍, 서산시 팔봉면, 지곡면, 대산면(大山面)으로 둘러싸여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안도로가 없어 멀리서 가로림만의 겉모습 만을 스쳐볼 뿐이었는데 지금은 이원면 사창리에서 가로림만 쪽으로 우회하는 도로가 뚫려 바다와 접하면서 호수같은 바다의 섬들을 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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