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를 걷다 오봉산] 휴식 같은 산행…화룡점정은 옥정호 뷰
김광명 여행작가 입력 2024.08.2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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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장맛비가 쏟아진 뒤에 선명해진 산골짜기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 같았다. 골짜기마다 휘몰아치듯 일렁이는 구름이 장엄한 풍경을 뽐냈다.
다섯 ‘오五’, 봉우리 ‘봉峰’자를 쓰는 산이다.
전북 완주군 구이면과 임실군의 운암면 신덕면에 걸쳐 있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작은 마을을 가운데 두고 타원형 말굽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옛 사람들은 작은 산에 솟은 봉우리 하나하나마다 이름 붙이기를 대단히 귀찮아했던 것 같다. 봉우리 수가 산 이름이 된 경우가 많다. 팔봉산, 구봉산처럼. 나에겐 오히려 그것이 더 낫다.
지도에 표시된 다섯 개 봉우리가 마치 보물처럼 느껴지면서 그것을 하나씩 주워 배낭에 담아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좋아! 야심차게 한 판, 게임 산행 해볼까?
다섯 개의 봉우리 오봉산 숲길 안내도가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우리는 제1봉부터 제5봉까지 모두 돌아보는 2코스 총거리 6.6km 코스를 선택했다.
첫 번째 산행코스 _ 오봉산
지도를 살펴보니 완주군 소모마을에서 올라 1봉부터 5봉까지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를 도는 코스와 붕어섬을 조망할 수 있는 국사봉으로 향하는 코스가 있었다.
나는 오봉산 퀘스트(게임 용어, 다른 말로 ‘임무’다. 임무를 달성하면 보상이 주어진다)에 집중하고 싶어, 1봉부터 5봉까지 한 바퀴를 온전히 돌아보기로 했다.
오봉산의 다섯 봉우리는 그 형상이 각기 달라 활짝 핀 연꽃 형상의 연꽃봉, 떡시루 형상의 시루봉, 한 폭의 산수화가 그려져 있는 형상의 병풍바위, 여인의 치마 형상의 치마바위, 베틀바위 등의 기암괴석을 자랑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도를 다시 펼쳤다. 마음이 요동쳤다.
산세 완만해 초보자도 산행하기 쉬워
장맛비가 일주일 동안 내렸다. 물 퍼붓듯 쏟아지는 장대비는 맞고 싶지 않았다.
틈틈이 일기 예보를 들여다보며 산행 일정을 고심했다.
조선 후기 개성적인 문체를 빚어낸 문인 심노숭沈魯崇은 산행의 세 가지 요소를 동행자와의 약속, 행장 꾸리기, 날짜 정하기라고 한 바 있다. 동행자는 있으면 좋지만 없더라도 그만이고, 여비는 검소하게 준비해야 하며, 날짜는 계획이 정해져야 산행을 출발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기 예보는 번번이 틀렸고 내내 기다리다가는 오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는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들머리에서부터 제1봉까지 오르는 등산로는 꽤 거칠었고 경사도 제법 가팔랐다.
임실 옆 마을인 정읍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살고 있는 지인 최수현씨에게 연락했다.
“임실에 오봉산이라는 산이 있거든. 작은 마을을 끼고 다섯 봉우리를 연달아 오르는 코스인데, 같이 가자. 그런데 혹시 비가 내릴 수도 있어.”
그녀는 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대뜸 물었다.
“높아?”
나는 ‘높다’는 것이 어느 산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 재차 물을까 하다가, 그냥 태연히 답했다.
“아니, 그리 높지 않아.”
“그럼 좋아. 가자.”
산행 일정이 모두 정해졌다. 서울에서 세 시간을 달려 오봉산 들머리인 소모마을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등산 코스가 자세히 적힌 안내판과 쾌적한 공용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을 지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오봉산 등산로 안내판이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우리는 제1봉부터 제5봉까지 모두 돌아보는 2코스 총거리 6.6km 코스를 선택했다.
보통 오봉산의 제4봉, 제5봉을 지나 임실의 국사봉 방면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거리가 짧고, 붕어섬 조망이 아름다워 인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오봉산을 오롯이 만끽하고 싶었다. 제1봉부터 제5봉까지 차근차근 올라보기로 했다.
오봉산은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 않고 봉우리와 봉우리 간 거리도 길지 않다.
들머리에서 1봉까지 채 1km가 되지 않고, 1봉에서 2봉까지 1km 남짓, 3봉까지는 단숨에 치고 오를 수 있다.
3봉부터 5봉까지도 역시 1km가 되지 않고, 하산길이 2.5km 정도다.
산세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해 누구나 천천히 걸으면 하루 안에 다섯 봉우리를 모두 거칠 수 있다.
오봉산정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늘에는 비를 머금은 검은 구름이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제1봉까지는 0.75km(실제로는 약 0.95km). 우리는 쉬지 않고 단숨에 1봉까지 오르기로 했다.
등산로는 간밤에 내린 비가 채 마르지 않아 미끄러웠다.
오봉산 아래 오봉산정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주말이면 퍽 많은 등산객이 오봉산을 찾는다고 했다. 그런데 들머리에서부터 제1봉까지 오르는 등산로는 꽤 거칠었고 경사도 제법 가팔랐다.
우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1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제1봉까지는 완만한 경사가 이어진다. 소모마을 주차장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던 오봉산 ‘숲길’ 안내도가 떠올랐다. 대개 ‘등산로’ 종합안내도라고 쓰여 있는데, ‘숲길’이라고? 제1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왜 숲길이라고 표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금세 1봉에 도착했다. 첫 번째 퀘스트를 완료했다.
제4봉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나는 붕어섬 전망. 붕어의 꼬리부터 뒷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장맛비 내리는 오봉산에 빠져들다
짙은 숲 내음이 폴폴 났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개구리와 두꺼비를 요리조리 피하며 숲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오른쪽으로 골짜기마다 일렁이는 구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등산로 옆으로 몇 걸음을 내딛자 조망이 확 트였다. 그녀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위 위로 성큼 나아가 연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골짜기의 구름이 용처럼 꿈틀거리다 하늘로 훌훌 날아갈 것 같았다.
멀리 보이던 봉우리가 시야에서 점차 사라졌다.
우리는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빗방울이 차츰 굵어졌다. 오봉산에서 가장 힘든 구간은 아마도 1봉에서 2봉으로 오르는 길일 것이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가 가장 긴 데다가 비까지 내리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산은 조급한 마음을 달래주려는지 조망이 트일라치면 비를 그쳐 주었다.
오른편으로 콸콸 흐르는 폭포를 끼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2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양옆으로 펼쳐진 경치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했다.
울창한 숲과 멀리서 보이는 산그리메가 동시에 나타났다. 아! 여긴 동시상영을 하는 극장인가? 숲은 빗물을 한가득 머금고 그 빛깔을 더욱 뽐냈다.
마치 새로 산 초록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았다. 얼마 후 제2봉에 도착했다. 두 번째 퀘스트를 완료했다. 조망이 특별하지 않았다. 보상이 크지 않은 것 같아 내심 아쉬웠다.
3봉으로 향하는 길은 이전보다 나무들이 더 빽빽했다. 이정표가 성실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누가 와도 길을 헤맬 우려는 없을 것 같았다.
비가 그칠 분위기가 아니었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2봉에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큼 3봉에 올라섰다. 최수현씨가 한결 편해진 얼굴로 물었다.
“여기가 3봉이야? 벌써?”
“응. 거리상으로는 1봉에서 2봉이랑 2봉에서 3봉이 비슷한데 어쩜 느낌이 많이 다르네. 일찍 도착한 것 같지?”
하산길에 계곡물을 두 번 정도 건넌다.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안전히 건널 수 있었다.
산행이 얼마 안 남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4봉을 향해 출발했다. 4봉까지 거리는 짧았다. 금세 봉우리 정상에 올랐다.
여기서 임실의 국사봉으로 갈 수 있는 길과 오봉산으로 향하는 길이 나뉜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려 오봉산 5봉으로 향했다. 4봉에서 5봉 방면의 왼쪽에는 임실의 붕어섬이 조망된다. 화창한 날이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붕어섬 전망이 장관이라고 했다.
나는 산행 내내 그 모습을 보려고 숲 사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름으로 새하얗게 가려졌다가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잠깐 붕어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 옥정호 출렁다리와 붕어 모양의 섬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색적이고 몽환적이었다. 꿈속에서 이 풍경을 봤다면 잠에서 깨어 복권을 사러 갔을지도 모른다.
제2봉으로 가는 길,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위 위로 성큼 걸어가 연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제5봉 마지막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400m쯤 가는 그 짧은 시간에 안개와 구름에 붕어섬이 가렸다.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정상에 마련된 널따란 데크 전망대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소모마을 방면으로 재빠르게 하산을 시작했다.
장맛비로 등산로가 질퍽질퍽 미끄러졌다. 비탈진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와 오봉폭포 방면으로 내려갔다.
오른편으로 콸콸 흐르는 폭포를 끼고 걸었다. 산속에는 빗소리와 폭포 소리, 우리 두 사람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세 가지 소리 중 어떤 것이 더 시끄러운지 대결하는 것 같았다.
오봉폭포에 거의 도착하자 목재 계단이 보였다. 군데군데 보수가 필요해 보일 만큼 부서진 곳들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를 위해 등산로 한편에 목재를 잔뜩 쌓아 놓았다.
저 멀리 소모마을 등산로 입구가 얼핏 보였다.
장마가 지나고 난 뒤에는 오늘보다 한껏 더 아름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봉우리 구간마다 조붓한 오솔길이 가장 인상 깊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남의 명산을 묻는다면 다섯 개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오르는 오봉산이 있다고 말해 줄 것이다.
산행길잡이
오봉산 산행은 소모마을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소모마을에 도착하면 오봉산 등산로 안내 팻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오봉산정을 지나 마을 입구로 들어선다. 차량 통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들어서면 오봉산 등산 안내판이 또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1봉 방면으로 진입한다. 여기서부터 등산로 이정표를 따라가면 정상까지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길 찾기가 어렵지 않고 안내판과 등산 리본도 잘 갖추어져 있다.
조망처는 1봉을 지나 2봉으로 가기 전이 가장 좋다. 등산로에서 몇 걸음 벗어난 절벽의 조망이 가장 좋은데, 매우 미끄러워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4봉에 도착하면 오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국사봉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국사봉까지 다녀오면 약 2km 거리가 더해진다.
체력과 기상이 허락한다면 꼭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오봉산 등산로 구간 중 소모마을 오봉폭포~제4봉, 제5봉 구간이 오봉폭포 인근 낙석위험 및 등산로 정비로 올해 초부터 폐쇄 중이므로 하산길은 제3코스를 이용해야 한다.
교통
오봉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임실이 아닌 전주로 가야 한다.
서울에서 전주고속버스터미널행 버스는 10~20분마다 한 대씩 출발하며(첫차 5:30, 막차 24:00), 전주터미널에서 소모마을까지 시외버스로 2회 환승 후 도착할 수 있다(구이중 하차). 하지만 버스의 배차 간격이 길고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므로 택시를 타는 것을 추천한다.
거리는 약 25km, 30분 소요 예상, 요금은 3만 원 선이다.
가장 편리한 방법은 자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오봉산 소모마을 주차장(전북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105)은 무료이기 때문이다. 산행 후 옥정호반 드라이브 코스를 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맛집
오봉산 들머리인 소모마을 앞에 한식 음식점인 오봉산정과 닭요리 전문점인 무애곡이 있다.
무애곡(0507-1335-0411)은 능이닭백숙이 유명하다. 오봉산정(063-222-0118)은 백숙과 닭도리탕, 닭볶음, 파전과 야채전을 맛볼 수 있다.
산정 마당에 직접 키우는 닭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봉산정은 카페도 함께 운영 중인데, 가래떡 메뉴가 특이하다. 산행 전후로 아메리카노와 함께 가래떡을 주문하면 든든한 요기가 된다.
등산 지도 _ 특별부록 지도 참조
국사봉 정상에서 바라본 오봉산 방면 풍경이다.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봉우리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 산행코스 _ 국사봉 & 옥정호 마실길
일출 없는 국사봉 일출 산행
오봉산 제4봉 갈림길에서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국사봉을 다녀왔을 터였다.
붕어섬을 더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국사봉을 오르지 못한 것이 퍽 아쉬웠다.
이른 아침 또는 비 내리는 날에 더욱 아름답다는 붕어섬을 보기 위해 일출 산행을 준비했다. 오봉산을 함께 다녀온 최수현씨에게 재차 연락했다.
“지난번에 우리 국사봉 못 갔었잖아. 평일에 가볍게 일출 보러 다녀올까? 어때?”
오봉산에서 우중 산행의 묘미를 한껏 느낀 그녀는 단번에 승낙했다.
“좋아. 다음 주 월요일에 가자.”
국사봉(475m) 정상에 도착했다. 어느덧 날이 환히 밝았다. 정상 일대가 아주 넓어 화창한 날에는 간식을 먹기에도 좋아보였다.
오전 3시 30분, 우리는 임실로 향했다.
국사봉 등산로 휴게소에 차를 댔다. 서둘러 올라 국사봉 정상에서 일출을 맞이하기로 했다.
국사봉은 새벽의 물안개 피어오르는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가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명소다.
언제 가더라도 늘 두어 명의 백패커나 사진가들이 있다고 했는데, 이날은 덩그러니 우리 둘뿐이었다.
주차를 마치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주차장에는 공용화장실과 전기차충전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화장실 옆으로 잘 정비된 데크가 있었다. 어둑어둑한 새벽녘 랜턴 불빛에 의지해 산행을 시작했다.
데크가 잘 정돈되어 있어 새벽녘 산행도 어려운 것이 없었다.
오봉산 정상에서 멀리 조망되던 붕어섬이 어느덧 성큼 눈앞에 가까이 보였다. 제법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했는데, 깜깜했던 하늘이 푸르스름해졌다.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야트막한 산군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40분도 채 되지 않아 국사봉 정상에 도착했다.
물안개가 피어나는 환상적인 모습을 기대했지만, 예보에 없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날이 급격히 흐려졌다.
일출 풍경 없이 온 세상이 밝아졌다. 흐린 중에도 저 멀리 산봉우리들이 훤히 보였다.
국사봉 정상은 아주 넓은 데크로 잘 닦여 있었다.
화창한 날 간식을 먹거나 산멍을 하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멀리 오봉산도 보였다.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여러 개의 봉우리가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정상에서 원점회귀를 하지만 우리는 지난번 올랐던 오봉산 방면으로 가다가, 새벽녘에 보았던 갈림길의 다른 길로 하산하기로 했다.
비가 내리지 않는 화창한 날이었다면 의자 하나를 짊어지고 올라와 온종일 앉아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전망대는 소박한 맛이 있다. 붕어섬을 가장 쉽게 조망할 수 있으며, 길이 잘 닦여 있어 누구나 천천히 오를 수 있는 거리이다.
국사봉 정상을 지나면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목재 계단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군의 풍경이 또한 일품이었다.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야트막한 산군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앙증맞은 붕어섬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국사봉 정상 아래 숲길을 걸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숲속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와 우리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일출 없는 일출 산행이었지만 이른 새벽부터 올라 산의 아침을 함께 맞이한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국사봉에서 붕어섬으로 가는 중에 만난 옥정호마실길의 숲속 오솔길.
옥정호 마실길 - 옥정호 붕어섬 출렁다리와 생태공원
‘마실’은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라는 뜻이다. 나들이와 같은 말이다.
옥정호 마실길은 국사봉 주차장에서부터 붕어섬 일대의 요산공원과 양요정, 입석마을을 지나 어리동 정류장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길이는 총 7km, 호수길이며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국사봉 주차장에서 요산공원으로 내려가 붕어섬 일대를 걷고 돌아오기로 했다.
이른 아침 또는 비 내리는 날에 물새들이 수면을 박차는 모습과 함께 은은한 물안개 빛을 감상할 수 있다는 이 길, 비가 반가웠다. 조금 더 내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 마을 풍경을 감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 도로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섰다. 숲속의 아침 공기를 들이쉬자 정신이 맑아졌다.
요산공원 일대에 만개했다가 진 양귀비. 이곳은 초여름 만개한 양귀비 풍경으로 유명하다.
숲속 길을 한참 걷자 저 멀리 옥정호 출렁다리가 나무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요산공원에서 붕어섬까지 이어주는 출렁다리는 총길이 420m쯤 된다. 출렁다리를 건널 생각에 설레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뗐다. 조금씩 굵어지는 빗방울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생태공원 입구에 도착해 보니, 매주 월요일이 휴무일이었다. 우리는 좌절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을 고르고 고르다 보니, 하필이면 출렁다리의 휴무일이었다. 우리는 다리 가까이 다가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붕어섬 옆의 요산공원을 한 바퀴로 돌아보기로 했다. 공원 초입에 이르자 아침 산책을 하던 현지인이 우리를 보고 물었다.
옥정호마실길 도중에 바라본 요산공원과 붕어섬을 잇는 출렁다리의 모습.
“관광객이세요? 오늘은 붕어섬이 쉬는 날인데, 어쩐대요? 여기 마실길도 좋아요. 국사봉까지 올랐다가 구경 더 하고 가요.”
“아, 저희 국사봉에서 일출 보고 내려왔어요. 아쉽게도 출렁다리가 휴무일이었네요. 아침 운동 중이신가 봐요. 임실에서 또 추천해 줄 만한 곳 있을까요?”
“요즘 옥정호 주변으로 걷는 사람들 엄청 많더라고. 옥정호 따라서 저기 마암리부터 용운리까지. 국사봉도 너무 좋고요. 자전거 탈 줄들 알아요? 저기, 섬진강 자전거길도 너무 좋아요.”
붕어섬 생태공원 안내도.
임실의 좋은 곳이 어디인지 묻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만큼 그녀는 임실의 명소를 줄줄 읊었다.
요산공원 역시 관광객은 물론 임실 현지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할 만큼 아주 좋은 곳이라 했다.
현지인과 짧지만 알찬 대화를 마치고 공원 일대를 거닐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임실로 낙향한 최응숙崔應淑이 세운 양요정兩樂亭이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자의 이름인 양요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라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했다. 정자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망향의 탑을 지나 입석마을 초입까지 걸었다. 이내 차를 세워 두었던 국사봉휴게소로 돌아왔다. 장맛비가 지나고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오기 전에 이곳을 아주 길게 다시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옥정호 붕어섬 생태공원 입구.
산행길잡이
국사봉 산행은 코스가 길지 않고 등산로가 잘 갖추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천천히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이정표가 잘 갖추어져 있어 길을 헤맬 우려가 거의 없다.
코스는 국사봉 등산로 휴게소에서 출발해 전망대를 지나 정상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사봉에 조금 더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면 바로 옆의 오봉산과 연계해 타는 방법도 있다.
오봉산 1봉부터 4봉까지 올라, 4봉과 5봉을 보고 국사봉으로 넘어오는 등산로를 권한다.
또는 반대로 국사봉으로 올라 오봉산 4봉과 5봉을 경유했다가 돌아와도 된다.
옥정호 마실길이나 물안개길 등 도보여행 코스와 연계해서 국사봉을 올라도 아주 좋다.
교통
내비게이션에 ‘국사봉 등산로 휴게소(운암면 입석리 산32-9)’를 검색하면 국사봉 아래 널따란 주차장이 나온다.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서울 수서역에서 익산역(SRT), 익산역에서 임실역(무궁화), 임실역에서 임실-운암 간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으나, 배차 간격이 길고 여러 번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국사봉을 오르려면 대중교통보다는 자차가 용이하다.
옥정호 인근의 붕어섬 생태공원과 요산공원, 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옥정호 순환도로 드라이브 코스와 멋진 조망을 자랑하는 카페들이 즐비하기 때문.
맛집(지역번호 063)
옥정호를 둘러싼 일대에는 메기탕과 매운탕이 일품이다.
옥정호 물안개 길이 시작되는 용운 방면에 있는 자연산장(221-6186)의 메기탕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
운암교 가기 전에 있는 청호정(221-8080)의 매운탕과 해물탕도 얼큰하고 맛 좋기로 유명하다.
운암교 너머에 강남쌈밥(643-4167)은 식객 허영만의 백반 기행에 방영된 이후로 그 인기가 식지 않는다고. 주말이면 대기가 있을 정도이다. 참게장 정식과 수육 정식이 가장 인기 있다.
붕어섬 생태공원 내에 있는 임실엔치즈하우스는 음료보다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운암교로 향하는 방면에 옥쭹가든(010-3677-0028)에서는 시그니처 메뉴인 전라도넛과 팥빙수, 옥쭹라떼 등을 맛볼 수 있으며, 비밀의 정원(223-2515)에서는 다양한 에이드, 요거트스무디, 수제차를 맛볼 수 있다.
이밖에 전망 좋기로 소문난 브리즈, 하루, 미텐발트 등이 있다.
등산 지도 _ 특별부록 지도 참조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월간산
김광명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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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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