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대교 건너서 무의도 실미도 라이딩 [2019 6 30 흐린하늘 일요일]
걸어서 무의도를 건너가자 !
영종도(잠진도)에서 배타고 건너가던 무의도까지 다리 준공
▲ 1968년 북파공작원 훈련병들이 이곳에서 집체훈련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꼭 5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당시 이곳 실미도는 교통이 매우 열악한 아주 먼 서해의 이름조차 없는 멀고 먼 작은 무인도였다
실미도 사건(實尾島事件; 1971년 8월 23일)
남북한 화해무드속에서 무관심하게 헌신짝처럼 버려진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1971년 8월 23일 훈련장이던 실미도를 탈출해서 버스를 탈취한 후 청와대를 향해 나섰지만 결국은 서울 노량진 유한양행 사옥 앞에서 모두 비참한 죽음을 당한 대북특수부대요원들 아깝게 스러져간 실미도 684부대원의 청춘을 다시금 기립니다 - 한국의산천
남북 분단의 아픔 수십년간 숨겨온 진실. 실미도 사건
1968년 대한민국 서해 외딴 섬 무인도 '실미도'
이곳에 기관원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강제 차출된 31명의 훈련병 684 북파부대.
그들에겐 이름도 없었다. 존재도 없었다.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1968년, 북한무장공비 김신조 일행의 청와대 습격사건으로 인하여 남북은 극도의 긴장상태에 이르렀고, 한국에서도 북파 특수부대 일명 684부대를 창설하게 된다.
그리고 이곳 실미도에서 조국의 부름에 따라 3년 4개월의 훈련을 받았으나 남북한의 화해무드로 인하여 북파되지 못한 실미도 특수부대 훈련병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사지의 땅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위해 실미도 이곳에서 훈련을 시키던 교관 및 감시병 18명을 살해하고 송도로 나와서 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로 향하다가 노량진 유한양행 사옥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대치하는 아군의 총탄에 젊은 청춘은 모두 울부짖으며 죽어갔다. 생포된 4명은 곧이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세상을 등졌다.
그들이 처음 접안했던 곳은 송도 아암도 일대로 현재 매립되어 신도시와 테크노타운이 된 동막. 그곳이 아닌가 기억된다.
그렇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기에 삶은 영원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기쁨,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어차피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세월이 간다. 아니 시간은 다가오고 사람이 과거로 밀려가고 있을 뿐이다 - 한국의산천
▲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실미도에서 훈련받던 북파공작원들
꼭 두달전인 지난 4월 30일 인천국제공항 인근의 잠진도와 무의도를 연결하는 '무의대교'가 임시 개통되었다
영종도 본섬에 들어서서 지금은 매립되어 이름만 남이있는 용유도와 잠진도를 거쳐서 배를 타고 가던 건너가던 무의도
이번에 무의대교 개통으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차로 약 1시간이면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거쳐 무의도에 갈 수 있게 됐다.
영종도 잠진도에서 무의도 간 교량은 길이 1.6km, 폭 8∼12m 규모로 지난 4월 임시 개통되었다.
무의도는 바다를 둘러 볼수있는 국사봉과 호룡곡산이 있으며 소무의도 등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천국의 계단' '실미도' 촬영지가 있으며 백사장이 좋은 실미도 해수욕장과 하나개 해수욕장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은 무의도에 입도하기 위해서는 잠진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으나 '무의대교'가 들어선 이후 이같은 불편이 해소되자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인천 중구 무의대교가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평일 약 9.4배, 주말 약 3.8배 늘어났다고 18일 밝혔다.
이제는 걸어서 무의도에 들어 갈수도 있고 버스를 타고 바로 들어거도 된다.
다리가 놓이고 나서 급증하는 차량으로 인하여 휴양지마다 쓰레기는 넘쳐나고 북적되는 인파로 인하여 '무의도'는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정체없이 샤방 샤방 구석 구석을 돌아보고 왔다.
▲ 10년전에도 무의도(실미도)는 배타고 자주 넘어왔던 섬
▲ 위 사진 역시 오래전 사진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 실미도
▲ 영종역에서 출발
공항철도를 타고 영종대교를 넘어서면 제일 첫번째 정차역이 영종역이다
라이딩 코스
영종역 ~ 구읍뱃터 ~ 남측 방조제 ~ 잠진도 ~ 무의대교 ~ 실미고개 ~ 실미도
▲ 구읍뱃터에서 해변을 따라 잠진도까지 길게 이어지는 제방을 따라 달려갑니다
무의도
무의도(舞衣島)라는 섬 이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의도가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세종실록지리지 13년(1431년)조 기록에 의하면, 말을 기를만한 곳을 찾으라는 명에 대해 무의도(無衣島)도 방목할 만한 곳(可以放牧處)이라 기록하였다. 그러니 처음 등장하는 무의도의 한자는 無衣島였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무의도가 기록되어 있는데 ‘무의도는 인천부 서쪽 57리에 있다. 둘레는 28리이며 목장이 있다(無衣島: 在府西五十七里 周二十八里 有牧場)’라 하였다. 여기에도 無衣島였다. 대동여지도에는 무의도가 그려져 있을까? 그려져 있는데 無衣島였다. 요새말로 하면 한결같이 누드(Nude) 섬이라 하니 참 무정도 하구나.
1789년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한술 더 떠 無依島라 하니 옷도 없는데 ‘기댈 곳조차 없는 섬’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1842년(헌종 8년)에 기록한 영종진읍지에 ‘舞衣島’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등장한다. 영종진지도에도 무의도는 ‘舞衣島’로 기록되니 이후 무의도는 ‘舞衣島’로 자리를 잡았다.
무의도의 ‘무’는 ‘물 때’ 의미 아닐까 여기에서 힘을 얻은 것일까? 요즈음 무의도를 설명하는 자료에는 장수가 갑옷 입고 춤추는 모습이라서 舞衣島라 한다는 내용이다. 더 나아가서는 5공주 중 춤추는 셋째 공주 설화도 생겨났다.
여름이면 춤 대회와 셋째공주 선발대회도 개최되고 있으니 무의도는 춤과 공주의 섬으로 진화 중이다. 그러면 무의도라는 이름의 어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명을 연구하는 분들의 설명은 큰무리, 뙤무리처럼 무리(물)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지금도 무의도에 가보면 간만(干滿)의 물때가 확실하다. 물(때) 확실한 섬 ‘물의 섬’이 곧 ‘무의도’이다
[출처:이한성의 옛절터 가는 길에서]
▲ 잠진도에 다가 갈때 자전거 길은 없고 도로를 따라 이동하기에 차량에 주의해야 합니다
▲ 은행나무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속해서 무의도를 향하여 라이딩
▲ 저 멀리 잠진도에서 이어지는 무의대교가 보입니다
▲ 지금 잠진도로 이어지는 도로 확장중.
몇해전만해도 길은 좁아도 한가한 도로였는데.
▲ '무룡호'를 타고 뱃머리만 돌리면 내려야 했던 무의도
이제는 걸어서 갈수도 있고 버스 또는 자전거를 타고 갈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면 섬안의 주차장과 도로 인프라는 예전 그대로이기에 매우 열악합니다.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며 느긋하게 기다리는 인내가 돋보이는 섬입니다.
▲ 계속해서 무의대교로 올라갑니다
▲ 해식애가 아름다운 무의도 해변
▲ 무의대교의 차도는 왕복 2차선이며 보행자 도로는 넓게 한쪽으로만 만들어졌다
실미고개에서 국사봉 임도를 타고 국사봉으로
▲ 국사봉에서 보이는 실미도
▲ 실미도 부대 난동사건 /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1971년 23일 오후 2시 15분 실미도 부대 훈련병들이 탈취한 태화운수 소속 경기영 5-1681버스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출동한 군경과 교전 끝에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춰 서 있다.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지난 2014년 1월 17일 서울고법의 한 법정. 재판장의 이 세 마디에 방청석에 앉은 자매의 어깨가 푹 꺼졌다.
판결 선고 후 한참이 지나도록 자매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들은 (그 당시)42년 전 사망한 임성빈씨의 여동생들이었다.
임씨는 1968년 4월 공군 제2325부대 209파견대의 부대원으로 선발됐다. 209파견대는 북파 특수임무를 띤 ‘실미도 부대’의 다른 이름이었다.
가혹한 훈련을 받던 임씨는 1971년 8월 섬을 탈출했다.
임씨와 동료 훈련병 24명은 열악한 처우에 항의하려고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3명이 육군과의 교전에서 사망했고 17명이 자폭했다. 임씨 등 4명은 붙잡혔다.
임씨는 초병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어 1972년 3월 서울 오류동에 있는 한 공군부대에서 국방부 장관 명령으로 형이 집행됐다.
그는 왼쪽 가슴에 표적지를 붙인 채 총살됐다.
당시 책임자 한모 중령은 실미도 사건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해 사형 집행 사실을 임씨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더욱이 임씨의 시신을 임의로 암매장해 그 위치조차 찾을 수 없도록 했다. [출처: 서울신문]
▲ 북파공작원들이 숙식하며 훈련했던 실미도를 배경으로.
썰물때에는 실미도까지 징검다리 돌다리를 딛고 걸어서 갈 수 있다
▲ 대략 10년전 사진
썰물때는 돌다리를 건너서 실미도에 들어 갈수 있다
▲ 무의도 끝단에서 넘어가는 동화처럼 이쁘고 작은 섬 '소무의도'
▲ 상당히 급경사를 이루는 실미고개를 넘어서 무의대교를 향하여
우리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세상 힘차게 달려요
김혜자는 '눈이 부시게'에서 치매에 걸려 한지민(어린 김혜자 역)의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김혜자를 연기했다.
'눈이 부시게' 마지막회에서 깊은 울림을 남겼던 대사로 수상소감을 전해 '눈이 부시게' 명대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 김혜자
▲ 오늘도 함께 힘차게 달려주신 '운산의 봄'님
날이 갈수록 더 힘차게 달리시는듯
더욱 더 건강하세요 ^^
감사합니다
▲ 화물청사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귀가
보석처럼 아름다운 작은섬
무의대교 준공 개통 >>> https://koreasan.tistory.com/15606906
소무의도 트레킹 >>> https://koreasan.tistory.com/15607898
소무의도 1 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560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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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의도 3 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5605669
소무의도 풍경 >>> https://koreasan.tistory.com/15606324
을왕리 마시란 해변 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5606325
전철타고 가는 섬 산행 국사봉 호룡곡산 >>> https://koreasan.tistory.com/15605970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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