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들 애환을 질박한 생활언어로 노래한 '민중적 서정시인'
시인 신경림
시인 신경림이 쓴 ‘목계장터’마저 없었더라면 ‘목계’라는 지명이 끈질기게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릴 까닭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 신경림
떠나온 지 마흔해가 넘었어도
나는 지금도 산비알 무허가촌에 산다
수돗물을 받으러 새벽 비탈길을 종종걸음치는
가난한 아내와 부엌도 따로 없는 사글셋방에서 산다
문을 열면 봉당이자 바로 골목길이고
간밤에 취객들이 토해놓은 오물들로 신발이 더럽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얼려 공중화장실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잠에서 깬다
지금도 꿈속에서는 벼랑에 달린 달개방에 산다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골목 끝 잔술집 여주인은 한쪽 눈이 멀었다
삼분의 일은 검열로 찢겨나간 외국집에서
체 게바라와 마오를 발견하고 들떠서
떠들다 보면 그것도 꿈이다
지금도 밤늦도록 술주정 소리가 끊이지 않는
어수선한 달동네에 산다
전기도 안 들어와 흐린 촛불 밑에서
동네 봉제공장에서 얻어온 옷가지에 단추를 다는
가난한 아내의 기침 소리 속에 산다
도시락을 싸며 가난한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내가 불쌍해
오히려 눈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과 더불어 산다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뀌었는데도
어쩌면 꿈만 아니고 생시에도
번지가 없어 마을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서대문구 홍은동 산 일번지
나는 지금도 이 지번에 산다 <창비, 2011 여름호>
신경림(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2024. 5. 22. 소천
1956<문학예술>로 등단. 시집<농무> <새재> <달 넘세>
<가난한 사랑노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낙타> 등이 있음.
벌건 해가 산 너머로 얼굴을 내밀자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안개는 더러 조약돌 위에 서리처럼 얼어붙어, 갈대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 이곳에서 가까운 노은면 출생이신 신경림 시인의 詩 <목계장터> 시비 ⓒ 2021 한국의산천
목계장터
- 신 경 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목계나루에서 20리쯤 떨어진 노은면 연하리에 태를 묻은 신경림 시인에게 목계나루는 소중한 추억의 장소다.
시인은 광복 이듬해인 초등학교 4학년 때 목계나루 솔밭으로 소풍을 갔다가 목계장터를 보곤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당시까지만 해도 목계나루는 제법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시인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이어지다가 마침내 ‘목계장터’라는 명시로 열매를 맺는다.
목계나루 답사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 신 경 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머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물이 되고 별이 되고 꽃이 되면서
- 신 경 림
강물이 어찌 오손도손 흐르기만 하랴
큰물이 작은 물이 이끌고
들판과 골짜기를 사이좋게 흐르기만 하랴
어떤 땐 서로 치고 받고
또 어떤 땐 작은 물이 큰물을 덮치면서
밀면서 밀리면서 쫓으면서 쫓기면서 때리고 맞으면서
시게전도 지나고 다리밑도 지나는
강물이 어찌 말없이 흐르기만 하랴
별들이 어찌 늘 조용히 빛나기만 하랴
작은 별들과 큰 별들이 서로 손잡고
웃고 있기만 하랴
때로는 서로 눈 부라리고 다투고
아우성으로 노래로 삿대질로 대들고
그러다 떠밀려 뿔뿔이 흩어도 지지만
그 성난 얼굴들도 그 불 뿜는 눈빛으로
더 찬란히 빛나는 별들이
어찌 서로 그윽히 바라보기만 하랴
산비알의 꽃들이 어찌 다소곳 피어 있기만 하랴
큰 꽃이라 해서 먼저 피고
작은 꽃이라 해서 쫓아 피기만 하랴
빛깔을 뽐내면서 향기를 시새면서
뒤엉켜 싸우고 할퀴고 허비고
같이 쓰러져 분해서 헐떡이다가도
세찬 비바람엔 어깨동무로 부둥켜안고 버텨
들판을 산비알을 붉고 노란 춤으로 덮는
꽃들이 어찌 곱기만 하랴
산동네의 장바닥의 골목의 삶이 어찌 평화스럽기만 하랴
아귀다툼 악다구니가 잘 날이 없고
두발부리 뜸베질이 멎을 날이 없지만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이 엉켜
제 할일 하고 제 할말 하면서
따질 것은 따지고 밟을 것은 밟으면서
강물이 되고 별이 되고 꽃이 되면서
산동네의 장바닥의 골목의 삶이 어찌 밝기만 하랴
신경림시집 "가난한 사랑노래"중에서
가자 새봄엔
- 신 경 림
가자 이웃들 친구들
큰 파도가 되어 골목길 신작로를 메우며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서
들길을 지나 다시 철길을 질러
가자 버려진 우리들 마을을 찾아
거룻배 통통대는 배터로
말강구 설치는 시골 장터로
노래를 찾아 잃어버린 우리들
옛얘기를 찾아
가자 형제들 낯모르게 내 형제들
큰 바람이 되어
땀 밴 내 땅 두 발로 밟으며
피 엉킨 논밭 가슴으로 만지며
모든 숨결 큰 바람이 되어
가자 얻어 입은 누더길랑
벗어던지고
얻어 먹은 음식찌끼 시원히 토해내고
휴전선도 짓밟으며
지뢰밭 총칼밭 파헤치며
가자 친구들 이웃들 형제들
한덩어리 되어
큰 불길이 되어
뜨거운 노래로 눈보라를 녹이며
반백 년 어러붙은 하늘과 땅 녹이며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갈대
- 신 경 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2024. 5. 22. 소천
1956<문학예술>로 등단. 시집<농무> <새재> <달 넘세>
<가난한 사랑노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낙타> 등이 있음.
겨울밤
- 신 경 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 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 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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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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