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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별 신경림

by 한국의산천 2014. 1. 24.

가슴으로 읽는 詩 [기사 정리: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 신경림(1935~ )

 

 

  나이 들어 눈은 어두워졌는데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니 이것은 무슨 뜻일까. 육안(肉眼)은 닫히지만 심안(心眼)이 열린다는 뜻이겠다. 세상은 비록 '탁한 하늘'이지만 그 내부 깊숙한 곳에서 '별'을 발견할 수 있는 예지가 생겼다는 의미겠다. 그 예지도 '관계'를 볼 줄 아는 지혜겠다. 존재들 사이에 별이 있다고 바라보는 마음에는 재촉과 불안과 외면이 없다. 조화와 섬김과 위로와 행복이 있을 뿐.

  세월 앞에는 푸른 솔도 견디지 못한다지만 연치가 쌓일수록 마음의 통이 좀 커졌으면 한다. 팔순에 이른 신경림 시인은 신작 시집에서 "그동안 내가 모으고 쌓은 것이 / 한줌의 모래밖에 안된다"고 말한다. 또 "도무지 내가 풀 속에 숨은 작은 벌레보다 / 더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하심(下心)과 관대함이 노경의 마음 씀씀이라면 황혼에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눈 어두워지고 귀 멀어졌다고 탄식만을 보탤 일이 아닐 것이다. [ 문태준 시인]

 

▲▼ 함백산 정상에서 ⓒ 2014 한국의산천

 

팔순 신경림 시인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신경림 시인 6년만의 신작 ‘사진관집 이층’ 

 

 

 
 누구든 밤늦게 이 시집을 읽는다면 가슴이 먹먹해지리라. 그리고 까닭 모를 슬픔이 물밀 듯 밀려올 것이다. 올해 팔순에 이른 신경림(사진) 시인이 6년 만에 신작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을 내놨다. 시인이 걸어온 삶의 구비구비를 되돌아보고 있는 시집은 처연하면서도 담백하고, 아련하면서도 명징하다. 단순한 회고를 넘어 가난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로 가득하다.

 

  예컨대 시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에서 시인은 이렇게 읊는다. “떠나온 지 마흔해가 넘었어도/ 나는 지금도 산비알 무허가촌에 산다/ 수돗물을 받으러 새벽 비탈길을 종종걸음 치는/ 가난한 아내와 함께 부엌이 따로 없는 사글셋방에 산다/(중략)/ 전기도 없이 흐린 촛불 밑에서/ 동네 봉제공장에서 얻어온 옷가지에 단추를 다는/ 가난한 아내의 기침 소리 속에 산다/ 도시락을 싸며 가난한 자기보다 더 가난한 내가 불쌍해/ 눈에 그렁그렁 고인 아내의 눈물과 더불어 산다”. 40여 년 전에 사별한 아내와 지금도 “서대문구 홍은동 산 일번지”에 같이 살고 있다는 시인의 진술은 읽는 이의 눈시울을 붉힌다.

 

  시집에서 돌아보고 있는 가족들은 아내뿐만이 아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이것이/ 어머니가 서른해 동안 서울 살면서 오간 길이다”라며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고, “이 지번에서 아버지는 마지막 일곱해를 사셨다/(중략)/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이 지번에서 아버지는 지금도 살고 계신다”라며 아버지에 대해 회고한다.

 

  신 시인은 15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같은 회고조에 대해 “아마도 내가 가족들에게 (내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아픔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가족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시인은 이어 “삶을 같이 해온 가족이야말로 나 자신을 반추하는 존재들”이라며 “나이가 많다 보니 옛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시인은 또 “늙은 지금도 젊었을 때나 마찬가지로 많은 꿈을 꾼다”며 “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꾸지만 아무래도 지나간 날들에 대한 꿈이 많다”고 덧붙였다.

 

  시집엔 시인과 함께 했던 동시대인들에 대한 추억도 담겨 있다. 시 ‘세월청송로(歲月靑松老)’에선 “민병산 시인은 회갑 바로 전날 세상을 떴으니/ 세상에 만 예순해를 사신 셈이다”며 ‘거리의 철학자’로 불렸던 민 시인에 대해 회고했다. 시는 이어 “가족이 없는 그를 위해 친구와 후배들이/ 잔치를 열어준다는 걸 극구 마다했을 때/ 그의 뜻대로 했더라면 그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준비했던 잔치 음식은 장례 음식이 되고/ 회갑 옷은 그대로 수의가 되었다”라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한다.

가진 것 없는 자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외로운 존재들의 아픔을 다독거린다. 나아가 이들이야말로 ‘시대의 예수’임을 간증한다. 시 ‘나의

 

  예수’에서 시인은 “그의 가난과 추위가 어디 그만의 것이랴/ 그는 좁은 어깨와 야윈 가슴으로 나의 고통까지 떠안고/ 역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있다/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간혹 스치는 것은 모멸과 미혹의 눈길뿐/ 마침내 그는 대합실에서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중략)// 그 언 상처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도/ 사람들은 그가 부활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다시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그들을 대신해서 누워 있으리라는 걸// 그들의 아픔, 그들의 슬픔을 모두 끌어안고서”라고 적시한다.

 

  시집은 고졸(古拙·예스럽고 소박한 멋)의 경지가 어떤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예컨대 점점 어두워지는 눈을 통해 시인은 마침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된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시 ‘별’ 전문).

김영번 기자 

 

이 시를 읽으며 알퐁소 도데의 단편소설 별의 끝귀절이 생각났다

 

 양 치는 산골짝 소년에게 주인집 소녀 스테파네트가 식량을 전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던중 소나기에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다시 산 위로 올라온다

목동은 추위와 불안에 떠는 스테파네트에게 따뜻하고 마른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오두막 밖으로 나가 앉는다.

낯선 환경과 양들의 기척에 잠잠을 설친 스테파네트는 오두막에서 나와 밖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던 목동 곁으로 다가와 앉는다.

 

 

 7월 밤하늘을 가르고 별똥별이 흘러간다. 소녀가 저게 뭐냐고 묻자 소년이 말한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라고.

스테파네트는 어느 순간 소년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든다. 수많은 별 중에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 잃고 내려와 목동의 어깨에 잠들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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