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새소리
- 백석
▲박상훈
처마끝에 明太를 말린다
明太는 꽁꽁 얼었다
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明太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백석(1912∼1996 )'멧새 소리' 전문
이 시가 발표된 때는 1938년. 이 시를 쓸 무렵 백석은 함경남도 함흥에 살았다. 함흥에 살면서 동해(東海)에선 날미역 냄새가 난다고 썼고, 관북 지방에서 잡히는 가자미와 가무락조개에 대해 썼다.(그는 동해의 조개가 되고 싶다고 썼고, 가자미는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밥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올라오던, 먹어도 물리지 않는 생선이라고 썼다!)
이 시의 온몸에는 한기가 들어 있다. 민가 처마에 겨울 명태가 매달려 있다. 추운 세상에 명태에 고드름까지 달렸으니 더 여위고 기다랗고 두 눈은 퀭해보였을 터. 그 명태의 궁색을 화자의 처지에 겹쳐 놓았다.
객지에 사는 이의 외로움과 쓸쓸함의 높이 같은 것. 그런데 왜 제목이 '멧새 소리'인가. 멧새 소리는 뭍과 숲과 고향의 소리이니 바다와는 한참 멀다. 바다에서 잡혀온 명태나 고향을 떠나온 화자나 다를 바 없다. 처마 끝 꽁꽁 언 명태를 바라보는 이의 객수가 시린 뼛속에 더욱 사무쳤으리.
/ 문태준 | 시인
이 시의 '제목'과 '내용'이 아이러니하다. 제목은 '멧새 소리'지만 상반되는 내용의 '명태'를 상정하고 있다. 멧새는 산새로서 자유로운 날갯짓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고, 명태는 바다에서 포획된 물고기로서 주검 이후에도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외로운 존재다.
전반부의 명태는 춥고 냉혹한 시간에 노출되어 말라가다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고드름이 달린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후반부의 명태는 "門턱에 꽁꽁 얼어서/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라고 화자의 신체로 전치시킨다.
이것은 시인이 처한 현실의 부당함을 반어적으로 상징화시켜 놓은 시적 전략이다. 현실의 시인은 무의식에 내재된 억압의 커튼을 젖히고 부조리한 현실을 폭로할 수 없는 상태다. 따라서 명태를 통해 '통제'와 '구속'이라는 '증세'를 만들어 내고, 갈등을 조장하며 무의식을 의식화시킴으로써 자아 영역 밖으로 감정을 표출시킨다.
시인은 '멧새'처럼 자유로운 소리를 내야 하지만 반대로 '현실'은 입을 다문 '명태'처럼 얼어붙어 있다는 것이다. 즉 북한에서의 실상을 '멧새'와 '명태'라는 대상과 전치시킨 등가물로 억압된 감정을 드러낸다. / 권성훈(시인·고려대 연구 교수)
이름이 가장 많은 생선은?
가공 방법에 따라 황태·동태·북어, 포획 방법에 따라 조태·망태가 있고 계절에 따라 춘태·추태가 있어요
오래 저장해도 맛·영양 잃지 않고 예전부터 사랑받아온 생선이래요
동태, 생태, 황태, 북어, 코다리, 노가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요? 바로 우리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생선 이름이에요. 동태와 생태로는 찌개를, 황태로는 찜을, 북어로는 국을 만들기 좋지요. 부르는 이름도 다르고 어울리는 요리도 다르지만, 이 이름이 모두 '명태(明太)'라는 물고기 한 종류를 가리킨다는 것을 아나요?
명태는 '세상에서 가장 이름이 많은 물고기'라고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요. 갓 잡아 올린 것은 '생태', 생태를 얼린 것은 '동태', 말린 것은 '북어'와 같이 상태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지요. 낚시로 잡은 것은 '조태', 그물로 잡은 것은 '망태' 등 포획 방법에 따른 이름도 있어요. 봄에 잡은 것은 '춘태', 가을에 잡으면 '추태'와 같이 잡는 시기에 따라서도 다른 이름이 붙습니다. 명태의 새끼는 '노가리'라고 부르고요.
명태는 차가운 물에 사는 한류성 어종이에요. 그래서 1월에 알이 꽉 차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있지요. 명태는 머리와 입이 큰 특징을 가진 대구과(科) 물고기로, 등지느러미는 3개, 뒷지느러미는 2개이며 아래턱에 짧은 수염이 1개 있어요. 우리나라를 비롯한 러시아, 일본의 주요 수산물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우리나라 해안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해요.
수많은 물고기 중 명태가 오랜 시간 우리에게 귀중한 식량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를 꼽자면 오랫동안 저장해도 맛과 영양을 잃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음식이 상하는 이유는 공기 중 산소가 음식의 기름 성분과 반응하거나 음식에 달라붙은 미생물이 음식을 분해하며 독성 물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 조상은 겨울과 같이 먹을거리가 귀해지는 시기에 대비해 냉동법, 염장법, 건조법 등 다양한 저장법을 연구했어요.
음식을 냉동하면 미생물 활동이 느려지고, 소금에 절이면 미생물의 생체 기관을 망가뜨릴 수 있으며, 말리면 미생물을 말라 죽게 할 수 있지요. 동태는 냉동법을, 북어·황태·코다리 등은 건조법을 이용해 만든 것이랍니다. 그런데 왜 같은 건조법을 사용했는데도 이름이 다른 걸까요?
▲ /그림=정서용
먼저 북어는 보통 바닷가에서 부는 바람으로 빠르게 건조하여 만들어요.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맞지 않도록 거둬들이지요. 그러면 수분이 거의 빠져나가 살이 매우 단단해집니다. 코다리는 북어와 같은 방법으로 말리지만, 수분을 어느 정도 남겨두어 촉촉한 식감을 유지하도록 한 거예요. 하지만 황태를 만드는 방법은 이와 다릅니다.
물고기를 말리는 곳을 '덕장'이라고 하는데, 황태 덕장은 영하 10도 이하의 매우 추운 곳에 있어요. 그리고 황태를 만들 때는 북어와 달리 눈이 와도 그대로 매달아 두지요. 황태 덕장에 매달린 명태는 한밤중에 꽁꽁 얼었다가 낮에는 햇살을 받아 녹는 과정을 반복해요. 4~5개월 동안 얼었다가 녹는 과정을 거치면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한 황태가 만들어지지요.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황태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요. 환경 조건이 아주 까다롭거든요.
황태를 만들 때 바람이 너무 불면 육질이 흐물흐물해진 '찐태', 너무 추우면 꽁꽁 얼어붙은 '백태', 너무 따뜻하면 검게 변한 '먹태'가 되어 상품 가치가 사라져요. 그래서 좋은 황태를 만들 수 있는 장소는 강원도에서도 일부 지역뿐이라고 해요. 그 장소에서도 날씨에 따라 황태의 품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황태는 '하늘이 내린 음식'이라고도 하지요.
북어와 황태의 큰 차이는 육질에 있어요. 북어는 두드렸을 때 가루가 날리지 않지만, 황태는 가루가 날릴 정도로 속살이 부드러워요.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물의 상태 변화 때문이에요. 물은 얼음이 될 때 부피가 커지는 특징이 있어요. 밤에 명태 몸속에 있던 물이 얼면 부피가 커지면서 명태 살의 조직을 벌어지게 했다가 낮에 다시 물로 변하면 갈라진 조직 사이로 물이 스며들지요. 이 과정을 반복할수록 명태 살은 점점 잘게 쪼개지고 늘어나 포슬포슬해진답니다.
어떤가요? 물이 얼었다가 녹는 과정이 반복되어 맛있는 음식이 탄생한다는 것이 참 신기하지요? 그런데 얼었다가 녹는 것이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만드는 것은 아니에요.
동태는 명태를 잡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마치 생태처럼 신선하게 먹으려고 만든 거예요. 하지만 한번 얼렸다 녹인 명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조직이 갈라지고 세포가 파괴되기 때문에 생태보다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아주 빠르게 얼리면 얼음 결정이 아주 작게 만들어져 조직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해요
혼례상엔 '다산(多産)' 제사상엔 '재물' 기원하며 명태 올렸대요
◀ ‘임하필기’에‘명태’라는 이름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
'명태'라는 생선 이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유원이 조선과 중국의 사물을 고증해 놓은 '임하필기(林下筆記)'라는 책에는 명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선 인조임금 때 함경도에 새로 부임한 관찰사가 초도순시를 하다가 동해 연안의 명천군(明川郡)이란 지역에 들렀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명천군 관아에서 식사하게 되었다. 점심상에 여러 반찬이 올랐는데 그중에 생선을 넣고 끓인 국도 있었어요. 관찰사가 그 국을 먹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시원한 생선국이로다! 생선의 담백한 맛이 참으로 일품이오. 이 생선 이름이 무엇인가?" 하지만 군수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 중 누구도 생선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관찰사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든 사람을 불러 다시 묻자 음식을 만든 사람이 대답했어요. "생선의 이름은 저희도 모릅니다. 다만 명천에 사는 태(太)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아온 고기라고 하옵니다." 그러자 관찰사가 말했다. "이렇게 맛 좋은 생선에 이름이 없다니? 그러면 명천의 명(明) 자와 생선을 잡은 어부의 성인 태(太) 자를 따서 '명태(明太)'라고 부르면 어떻겠소?"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그때부터 그 생선 이름은 명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명태의 이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해요. 옛날 함경북도 오지 산골 마을에는 눈이 침침해지는 풍토병을 앓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겨울에 어촌에 내려가 명태 속에 있는 간유를 한 달쯤 먹고 나면 눈이 밝아져 돌아갔다고 해요. 그래서 눈을 잘 보이게 해주는 생선이라는 뜻으로 '밝을 명(明)' 자를 써서 명태라고 불렀다는 것이지요. 또 역시 함경도 지역에서 명태 간의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켜곤 했는데, '어둠을 밝히는 생선'이라는 뜻으로 명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명태 이름이 추운 지방인 함경도에서 생겨난 것은 명태가 한류성 어종이기 때문이겠지요? '맛 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는 속담처럼 명태는 우리 조상이 즐겨 먹은 생선이에요. 찌개나 국, 찜, 구이 등의 요리로 식탁에 자주 올랐고, 명태 알은 명란젓, 창자는 창난젓, 아가미는 아감젓으로 담가 먹기도 했어요. 또한 명태는 혼례나 제사용 음식으로도 사랑받았지요. 알을 많이 배는 명태처럼 혼례상에는 다산(多産)의 의미로, 제사상에는 재운을 기원하는 의미로 말이에요.
▲ 강원도의 황태 덕장 모습. 황태는 추운 겨울에 명태를 얼렸다가 녹이기를 반복하여 만든다. /전기병 기자
명태를 명주실에 감아서 가게나 이사한 집 문 위에 걸어놓는 풍습도 있지요. 명태가 밤에도 눈을 부릅뜨고 나쁜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준다는 의미가 담겼어요. 집에 재물이 많이 들어오며, 그 복이 명주 실타래처럼 길게 오래가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이렇게 예부터 우리 조상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명태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우리나라 해안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니 참 아쉽습니다.
무명(無名)의 설움을 겪던 명태, 어쩌다 국민 먹거리가 됐을까
한식이야기. 명태
때는 조선시대 후기, 함경북도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는 어제와 다름없이 나무로 만든 허름한 배를 이끌고 고기잡이에 나섰다. 추운 겨울이기 때문일까. 잡히는 물고기가 별로 없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공물도 바치고 장에도 내다 팔려면 두툼하게 살 오른 대구 몇 마리 건져 올려야 하는데 녹록지 않다. 대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이름 모를 생선만 드문드문 올라온다.
별 수 있으랴, 이름 모를 생선이라도 잡힌 것을 천운이라 생각하며 파도가 사나워지기 전에 뭍으로 돌아왔다. 잡은 생선 정리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때, 시찰 나온 도백(道伯 오늘날의 도지사)이 그를 붙잡고 손에 든 생선이 무어냐고 물었다. 얼른 생선 이름을 고해야 마땅하지만 알 길이 없었던 그는 우물쭈물 서있기만 한다. 주변에도 그 생선의 이름을 아는 이가 없다. 이에 도백은 명천(明川)의 태(太)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았으니 오늘부터 명태(明太)라 부르자고 한다. 그렇게 무명(無名)의 생선은 명태(明太)가 됐다.
명태를 얼린 동태. 사진=쿡쿡TV
명태의 이름에 얽힌 설화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명태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 후기부터다. 조선 초기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명태로 추정되는 무태어(無泰魚)라는 명칭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명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 인근 해에서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명태의 어획량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명태는 흔하디 흔한 물고기였다. 그럼에도 명태가 조선초기가 아닌 조선후기부터 각종 문헌에 등장하는 이유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름없는 물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는 미신이 존재했다. 근거 없는 미신 때문에 한반도 지천에서 잡히는 명태는 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름을 달고 난 후, 명태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명태 어업이 이루어지며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도 빠지지 않는 품목이 됐다. 각종 부산물도 빠짐없이 식용으로 사용했다. 명태의 알은 명란으로 명태의 창자는 창난젓으로 가공해 먹었고, 명태의 간은 물고기기름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무명의 설움 때문이었을까. 명태는 한가지 이름에 만족하지 않고 수많은 이름을 갖게 됐다. 말린 명태는 북어, 얼리면 동태, 얼고 녹기를 반복한 것은 황태, 반 건조하면 코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생물은 생태 등 가공방법에 따라 수많은 명칭이 부여됐다. 잡는 방법과 장소에 따른 이름도 생겨났다. 그물로 잡으면 망태, 낚시로 잡으면 조태, 강원도 인근 것은 강태, 함경도 연안에서 잡힌 작은 명태는 왜태라는 이름이 붙었다.
생태찌개(위)와 황태구이(아래)
우리나라에서 명태는 여전히 인기 있는 생선이다. 국내 어획량이 없다시피 한 생선치고 명태만큼 자주 먹는 생선도 드물 것이다. 잘 말린 북어를 결대로 쭉쭉 찢어 들기름에 달달 볶아 푹 끓여낸 북엇국은 술 먹은 다음날 해장용으로 그만이고, ‘후후’ 불어가며 먹는 얼큰하고 개운한 생태찌개는 계절상관 없이 입맛 돋우는 음식이다.
그 외에도 쫄깃한 황태에 매콤한 양념을 발라 석쇠에 구운 황태구이, 마른안주의 터줏대감 노가리, 콩나물 듬뿍 들어간 얼큰한 코다리찜 등 명태로 만든 음식 중 어느 것 하나 맛 없는 음식이 없다. 저렴한 가격도 매력적이다. 그야말로 국민먹거리다. /조선닷컴 라이프미디어팀 정재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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