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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월악산 미륵리사지

by 한국의산천 2013. 12. 19.

충북 충주 월악산 미륵리 사지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인 이 즈음, 중원(中原) 땅으로 간다. 월악산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한 충북 충주 일대다. 적당한 산행과 적당한 역사와 적당한 스토리를 적당한 시간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름 하여, 중원 문화여행.

 

  한 집안이 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 나라가 망하는 판이었다. 그래서 1000년 전 경주에 살던 특별한 부자(父子)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아들: “마땅히 죽을 각오로 지키다가 힘이 다한 뒤에야 그만둘지언정, 어찌 천 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경솔히 남에게 준단 말입니까?”
아비: “죄 없는 백성으로 하여금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

 

  서기 935년이니 1000년 전 정확하게는 1079년 전 딱 이맘 때, 삼국사기에 따르면 특별한 아버지 경순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바로 항복 문서를 보냈고, 특별한 왕자는 ‘통곡하면서 왕에게 하직하고는 지름길로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가 바위를 의지하여 집으로 삼고 삼베옷을 입고 초식(草食)만 하면서 일생을 마쳤다(王子哭泣辭王 徑歸皆骨山 倚巖爲屋 麻衣草食 以終其身)’.

 

  금강산을 개골산이라 적었으니 겨울이었고, 실제로 삼국사기는 ‘겨울 10월’이라고 연대를 밝히고 있다. 경순왕은 신하였던 견훤이 천거해 왕이 된 사내였고, 세월이 흘러 신라가 이 지경에 빠진 원인이 바로 그 견훤이었으니 역사는 참 무상하고 무심타. 어찌되었건 나라는 고려에 넘어갔고 경순왕은 경주 일대를 다스리는 영주쯤으로 전락해 살았다. 왕의 아들은 팔도 방방곡곡에 많은 전설과 사연을 남기며 개골산에 칩거했다. 1000년 뒤 극작가 유치진은 ‘마의태자’라는 작품에서 왕과 왕자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비극을 창조해 사람들을 가슴을 매료시켰다. 우리가 떠날 여행은 바로 이 마의태자가 남긴 흔적이 있는 곳이다.

 

 

 

▲ 고등학교 2학년때 고3 수능을 앞두고 충주 둘러보기 여행을 왔는데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닌다. 세월 참 빠르다 ⓒ 2013 한국의산천  

 

 왕자, 마의태자가 금강산까지 걸어간 지름길(徑歸)은 하늘재다.

경북 문경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 미륵리로 이어지는 이 고개길은 서기 156년 신라 아달라왕이 개척한, 기록상 한반도 최초의 ‘계획도로’다.

훗날 문경새재가 개통될 때까지 하늘재는 한반도의 중추 교통로였다.

 

평강공주를 울리며 단양에서 전사한 장군 온달도 문경~충주~단양에 이르는 중원 땅을 지키던 장수였다.

하늘재의 남쪽 끝은 관음리, 북쪽 끝은 충주 미륵리다.

관음보살은 중생들 현세 생활에 자비를 베푸는 존재고 미륵불은 미래와 내세를 관장하는 존재이니, 마의태자는 현세와 내세를 가르는 갈림길에서 내세를 택했다.

 산불 조심 기간이 끝나면서 관음리~미륵리 하늘재 구간은 눈꽃 피어난 트레킹 코스로 변했다.

 

미륵리사지와 마의태자

 

▲ 미륵리사지는 유난히 푸르스름했다. 떨어지는 햇살도 파리했고 맵싸한 겨울바람도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우선 미륵리. 석불과 석탑 드문드문 서 있는 폐사지가 있다. 미륵리사지다.

공식적으로는 미륵대원사지라고 한다. 하늘재를 넘은 마의태자가 세운 절이라고 했다. 텅 빈 공간에 탑 몇 개와 멀리 보이는 돌부처가 전부. 그런데 이 땅에 있는 큰 폐사지들이 그러하듯, 묘한 분위기가 있다.

 

맵쌀한 겨울바람 속에 거대한 석물(石物)들이 천년 세월을 머금고 서 있다.

폐사지 끝에는 10m가 넘는 미륵불이 서 있다. 경주 석굴암처럼 3면에 석벽이 서 있고 그 한복판에 미륵불이 우뚝하다. 벽면에는 크고 작은 부처들을 모시는 감실이 뚫려 있는데, 서쪽면에는 아직 희미하게 부처상이 남아 있다. 그 규모에 일단 압도되고, 거친 돌로 쌓아 만든 낯선 풍경에 마음이 설렌다.

현세를 등지고 내세로 넘어온 태자. 56억7000만년 뒤에 현세를 찾아온다는 미래불, 미륵불을 여기에 모셔놓았다.

그것도 석굴(石窟)에다가.  

 

 

 

 

 

미륵불을 둘러싼 석벽에 있는 부처상 

 

너른 절터 맨 끝에는 미륵불 입상이, 그 앞에는 석등이, 그 뒤 폐사지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석탑이 일렬로 서 있다. 왼편으로는 또 다른 석등이 있고 그 뒤로 고졸하되 큼직한 귀부(龜趺)가 앉아 있다.

 

  폐사지란 것이 원래 전쟁과 세월에 나무와 쇠는 불타고 녹아 석물만 남는 게 정석이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거돈사지 또한 그 먹먹한 분위기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더군다나 이 매서운 계절에 흙과 눈과 얼음과 석물만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으니 마치 흑백 리얼리즘 사진처럼 딴 생각 전혀 나지 않고 폐사지 그 자체에만 온 마음을 집중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미륵리사지는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석굴형 절집이기에 시각적으로도 기이하다.

 

  미륵불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북쪽인 사실도 기이하다. 국내에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부처님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그 연유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석불과 석등과 석탑을 잇는 일직선을 북쪽으로 연장하면 산 너머에 또 다른 부처님을 만나게 되니, 상상 속에서나마 의문은 풀린다. 직선거리 5km, 시간으로는 10분 거리다. 덕주사 마애불이다.

북두칠성 아래 부처님

미륵리사지에서 나와 송계계곡을 따라 북상한다. 10분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덕주사 이정표가 나온다.

마의태자의 누나인 덕주 공주가 세웠다는 절이다.

옛 절은 6·25 때 불탔고 지금 절은 새로 지은 것이다. 옛 절은 지금 절에서 1.5km 산길 위에 있었다.

절은 간 곳 없지만 거기에 거대한 불상이 하나 있어 미륵리사지 돌부처를 바라보고 있다.

이름하여 덕주사 마애불이다. 사람들은 바로 덕주 공주 본인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 산 너머로 미륵리사지 석불을 바라보고 있는 덕주사 마애불

 

  기댈 데라고는 남동생뿐이었던 공주와, 세상을 등진 동생이 시간대를 초월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두 불상은 서로를 바라보며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년 동안 서 있다.

한날한시에 두 오누이 꿈에 현신한 부처님이 내린 ‘북두칠성 아래에 절을 지으라’는 계시에 두 사람이 동시에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 같은 겨울이면 초저녁부터 그 하늘 위로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반짝인다. 그래서 덕주사 마애불 뒤로 솟는 북두칠성을 찍기 위해 야간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지인 미륵리사지와 달리 덕주사 마애불은 산 중턱에 있다.

첫 이정표 이후 도무지 마애불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렵다.

산길 1.5km는 못해도 30~40분을 잡아야 한다.

마음 산란해질 때쯤 석축 위로 바위가 보이고, 바위에서 부처님이 세상을 바라본다. 한눈에 봐도 높은 신분을 모델로 삼았을 법하게 귀티가 난다.

 

태자 남매의 현세 인연을 내세에서도 이어주고 있는 돌부처들 앞에 서면 그 기분, 단순한 관광이나 등산과는 조금 다르다.

짧은 산행 내내 흰눈 덕분에 눈은 호강하지만 길은 미끄럽기 짝이 없고 오후 3시 정도면 어둑어둑해지니 서둘러야 한다.

세상을 경계하는 눈초리

 

▲ 사자빈신사지 구층석탑 탑신 한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절 주차장 약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계곡으로 나온다.

오른쪽은 충주호반 드라이브코스, 왼쪽은 수안보 온천 방향이다.

어디를 택하든, 왼쪽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사자빈신사지 구층석탑(보물94호)은 꼭 한번 보도록 한다. 탑신 한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이 사자 네 마리 호위를 받으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광명의 부처다. 미혹에 빠진 자들에겐 보이지 않고, 오로지 맑은 마음에게만 밝게 빛나는 부처다.

 

  탑신에는 ‘대평2년(1022년·고려 현종 13년) (음력) 4월’이라는 정확한 건립 연대가 새겨져 있으니, 때는 거란족 3차 침입이 지난 뒤다.

거란족 침입 이후 적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았다는 건립 목적 그대로, 세상을 경계하는 부처님 눈초리가 매섭다.

시간대를 초월해 중원 땅 한쪽에 중첩돼 있는 망국의 한(恨)과 나라를 잃지 않겠다는 서원을 눈앞에서 확인한다.

주택가 밭 한가운데 있는 자그마한 탑이지만, 외형적인 아름다움과 의미만으로도 일견할 가치가 충분하다.

 

  여행은 이쯤에서 끝난다. 외형은 예전만 못하나 물만은 여전히 좋은 수안보로 가서 온천욕을 즐기든 충주호로 가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자유다. 어디든 하룻나들이로 가능한 짧고 진한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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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무 - 주현미

월악산 깊은 골에 밤새가 울어 객창에 비친 달이 너무 섧구나 

꽃그림자 내려 밟고 님 떠날때 울밑에 귀뚜리도 슬피 울었지
아! 나그네 나그네 사연 사무친 옛 생각에 눈물 삼키며 재너머
강건너 흘러가는 나그네.

월악산 영마루에 달이 떠오르면 들려오는 피리소리 애닳프구나
떠난님 그리워 잠못 이룰 때  추풍에 지는 낙엽 함께 울었지
아! 나그네 나그네 사연 한서린 옛 생각에 가슴 적시며 영너머
청송길로 사라지는 나그네.

 

▲ 하늘재에서 약 3km를 내려오면 하늘재 표석이 서있다. 이곳을 지나면 미륵사지터가 나온다.  ⓒ 2013 한국의산천

    

중원 미륵리사지

 

  명승 제 49호로 무려 1850년전에 생긴 ‘우리나라 최초의 하늘길’ 하늘재.

하늘재는 월악산국립공원 내 포암산(962m)과 탄항산(857m) 사이에 있다.

경북 문경시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미륵리의 경계선을 잇는 백두대간의 고갯길로 지금도 당시의 길 거의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 몇해전 딸과 함께 걷던길 하늘재에서 ⓒ 2013 한국의산천

 

  하늘재(525m)는 삼국사기와 신라본기에 기록될 만큼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고갯길로 역사적인 의의가 큰 길이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재'란 의미로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서기 156년 신라 아달라이사금왕이 중원지역으로 진출키 위해 개척한 고개다. 당시에는 계립령(鷄立嶺)이라 불렀다. 계립령은 고구려 온달장군이 이 땅을 회복하려 나섰다 전사한 유서깊은 길이다.

 

 미륵사지 옆으로 우리나라의 최초로 만든 고개 하늘재(520m)가 나 있는 길,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길을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남진을 위해 다녔던 길, 고려의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경주로 몽진을 할때도 이용했던 길, 조선 태종때 문경새재 길이 새로 나면서 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지만 문경에서 충주로 넘어 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이재를 넘었다.

 

 

▲ 몇해전 딸과 함께 미륵리사지에서 ⓒ 2013 한국의산천

 

  우리가 흔히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절,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벌였던 싸움은 궁극적으로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자 하는 싸움이었다.

국토의 중앙을 흐르는 한강 주변은 국토 전체를 종횡으로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서해의 뱃길을 통해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당나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길목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나라 발전의 가장 중요한 땅을 손에 넣는 일이자 삼국간의 싸움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 한강 유역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한강 줄기를 끼고 있는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 일원이다.

이 지역은 다른 말로 ‘중원中原’이라고 불렸다.

문자 그대로 국토의 중심부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 형성된 문화권, 이른바 중원문화권은 고대 삼국문화의 접점을 이루고 있는 문화유적지라는 점에서 둘러볼곳이 산재한 곳으로 손꼽힌다.

 

  이들 유적 중에서 미륵리 절터와 덕주사 마애불은 신라의 마지막 왕족인 마의태자와 그의 동생 덕주공주의 애달픈 전설이 서려있는 흔적으로 중원문화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경주를 떠난 마의 태자일행은 망국의 한을 안고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병사를 양병코자 금강산으로 길을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에 이르게 되었다. 일행은 그곳 계곡 깊은 곳에 야영을 하고 하룻밤을 자게 되는데, 그 날밤 왕자는 관음보살을 만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관음보살은 왕자에게 말하기를 "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 터가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세우고 그 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리니 포덕함을 잊지말라 "

 

잠에서 깨어난 마의 태자는 꿈이 신기하기에 누이동생인 덕주공주를 불러 꿈 얘기를 전하고 그 내용을 물었더니 놀랍게도 같은 시각에 공주 역시 그와 같은 현몽을 받았다.

 

 

 

  두 남매는 서천을 향해 합장배례한 뒤 다음날 서쪽을 향해 고개를 넘으니 고개마루턱 큰 바위에 한 권의 황금빛 포경문이 놓여 있었다.

그 곳에서 일행은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파란 별빛을 받고 있는 최고봉이 보이는 장소를 택해 석불입상을 세우고 별빛을 받고 있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태자는 공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초지를 굽히지 않고 금강산(일설에는 설악산 한계산성)을 향해 떠났고 마지막 혈육인 오빠와 헤어진 공주는 절에 몸 담고 아버지인 경순왕을 그리워하며 태자의 건승을 빌었다 한다.

 

그러하기에 미륵리 석불입상은 마의 태자의 상이요 덕주사 마애불은 덕주 공주의 상으로 두 남매가 마주보기 위해 마애불은 남향이고, 석불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수첩

 

 

 

 

가는 길 (서울 기준)

내비게이션은 ‘수안보면 미륵리 5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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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대한민국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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