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멋’ 경북 봉화 여행
트레킹으로… 밤열차 타고… 오지의 신비를 만나다
▲ 승부역에서 ⓒ 2013 한국의산천
기차로만 접근할 수 있다는 경북 봉화의 오지에 새 트레킹 길이 열렸다.
봉화군 석포리 양원역과 승부역을 잇는 ‘양원~승부 비경길’이다. 낙동강이 품은 비경을 줄곧 옆구리에 끼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코레일은 이에 맞춰 ‘별밤열차’도 내놨다.
분천역과 강원 태백의 철암역을 오가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의 ‘밤 버전’이다. 낮엔 오지 트레킹으로 자연을 만끽하고, 밤엔 별밤열차 타고 낭만을 즐기고, 돌팔매질 한 번에 참새 두 마리 잡으라는 뜻이다.
▲ 여행객들이 ‘양원~승부 비경길’을 따라 경북 봉화의 오지를 둘러보고 있다. 기차 외엔 접근할 수 없었던 산간지역을 잘 정비된 트레킹 코스를 통해 가까이서 마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코레일 제공
경북 봉화는 오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북의 오지 ‘무진장’(무주·진안·장수)에 견줘 경북의 ‘BYC’(봉화·영양·청송)라 불릴 정도였다.
중앙고속도로가 놓이고 36번 국도가 확장되는 등 나날이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긴 하나, 여전히 닿기 힘든 곳이 많다. 특히 경북 울진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 그렇다. 이 지역에 ‘낙동강 세평하늘길’이 조성되고 있다.
봉화군이 코레일과 함께 개발 중인 트레킹 코스로 철길과 낙동강 상류의 물길, 그리고 산길이 한데 어우러졌다. 오로지 철길에만 허용됐던 오지를 걷는 길이라 보면 알기 쉽겠다.
세평하늘길의 총길이는 32㎞다. 소천면 임기역에서 승부역을 잇는다.
길은 모두 네 구간으로 구성됐다. 분천에서 승부까지 ‘협곡 트레킹’,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 ‘낙동강 비경길’, 양원역에서 구암사까지 ‘수채화길’, 승부역에서 비동임시승강장까지 ‘가호 가는 길’ 등이다.
‘양원~승부 비경길’은 이 가운데 양원역과 승부역을 잇는 5.6㎞ 구간을 일컫는다. 겨울에만 운행하는 ‘환상선눈꽃열차’의 하이라이트 구간이기도 하다. ‘가호 가는 길’은 앞서 조성됐고, 나머지 두 개 구간은 개발 중이다.
‘양원~승부 비경길’의 들머리는 승부역이다. 역사 왼쪽의 동구마을 방향으로 접어들면 ‘영암선 개통비’와 만난다.
1955년 12월 영암선 개통을 기념해 세운 비다. 마을을 지나면서 강변길이 시작된다.
태백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 최상류의 모습이 더없이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다. 주변 산세는 험하다. 오미산(1071m)이 우뚝하고, 비룡산(1129m)의 자태도 늠름하다.
▲ 양원역에 정차한 별밤열차. 10분 남짓한 정차 시간 동안 간이역 음악회 등의 이벤트가 펼쳐진다.
박준규(‘뉴대한민국 기차여행의 모든 것’ 저자, traintrip.kr) 제공
산길은 약 3㎞쯤 된다. 그 안에 모두 169개의 계단을 세워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했다.
길을 걷다 보면 낡은 풍경과 만나기도 한다. 각금터널을 돌아서면 인적이 끊긴 마을이 나온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옆 나무엔 리어카가 걸려 있다. 나무가 자라면서 리어카를 땅에서 들어 올린 것.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승부터널을 지나면 철길과 물길 사이를 걷게 된다. 철길은 여태 단선이다. 그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른다. 열목어가 산다는 청정수역이다. 사방을 둘러친 협곡의 모습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길의 끝은 양원역이다. 딱 ‘손바닥만 한’ 역이다. 규모는 작지만 엄연히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역사다. 한데 민간 자본으로 역사가 세워진 과정이 애처롭다.
양원역과 마주한 마을은 경북 울진 원곡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봉화 5일장에서 생필품을 조달하곤 했다. 장터에서 산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서 기차에 오른 주민들은 양원역에 이를 때쯤 가져온 짐을 차창 밖으로 내던졌다.
마을 위쪽의 승부역에서 빈손으로 철길을 되짚어 와 짐을 찾을 요량이었다. 오래전엔 분천역과 승부역 사이에 기차역이 없었다. 그 탓에 원곡마을 주민들은 꼼짝없이 무거운 짐을 들고 승부역에서부터 철길을 걸어 내려와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이 기차와 부딪혀 다치는 등 사고의 우려도 높아졌다. 참다 못한 마을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직접 양원역을 지었고, 여기저기 탄원을 내 마침내 기차를 세울 수 있게 됐다. 그게 25년 전쯤의 일이다. 그 시간의 흔적이 역사 내부 서랍장의 ‘GOLD STAR’ TV 위에 더께로 쌓여 있는 듯하다.
양원역 왼쪽으로 기가 막힌 길이 또 하나 숨어 있다. 이른바 ‘체르마트길’이다. 원래 이름은 분천역과 양원역 사이 7.2㎞ 구간에 있던 ‘가호 가는 길’이다. 지난 5월 분천역이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하면서 이를 기념해 ‘체르마트길’이란 새 이름을 갖게 됐다.
별밤열차는 야간에 운행하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을 이르는 이름이다. 객차 내부를 발광 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밝힌 열차는 겨울밤의 낭만을 싣고 분천역에서 철암역까지 낙동강 상류를 따라 달린다.
백두대간 협곡과 낙동강 비경 구간을 서치라이트 불빛으로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승무원의 우쿨렐레 공연과 딜라이트 조명쇼, 신청음악 방송(이상 분천→철암행) 등 이벤트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별밤열차가 정차하는 분천역과 승부역, 양원역엔 경관 조명이 설치돼 긴 겨울밤을 밝힌다. 풍경이 빼어난 승부역과 양원역엔 10분씩 정차한다. 특히 양원역에서는 간단한 야외공연도 펼쳐질 예정이다.
별밤열차는 내년 3월까지 매주 금·토요일 각 1회 운행한다. 오후 6시 분천역을 출발해 오후 7시 7분 철암역에 도착한 뒤 다시 오후 7시 45분에 철암역을 출발, 오후 8시 51분 분천역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손원천 여행전문 기자
충북 단양의 겨울풍경…
빛의 향연에 빠져 첫눈 속 날아올라
소담하게 눈이 내렸다. 계절은 이제 겨울의 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겨울의 진수는 역시 눈 쌓인 풍경일 터. 어디로 갈까. 충북 단양이 좋겠다.
우리네 ‘팔경’ 문화의 원조쯤 되는 곳. 그만큼 볼거리도 많다. 단양에서 겨울 풍경 곱기로 온달산성이 꼽힌다. 눈 쌓인 산성은 고요하다. 뒤로는 구봉팔문(九峰八門)의 산자락이 불끈 솟았고, 앞으로는 시린 물빛의 남한강이 굽이쳐 흐른다.
절제미를 한껏 드러내는 자태다. 소백산을 걸개그림처럼 새긴 풍경 전망대도 있다. 두산(頭山) 활공장이다. 인적 드문 두산 정상에 서면 180도 쫙 펼쳐진 소백산맥이 온전히 당신만의 것이 된다.
▲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원들이 두산활공장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오르고 있다. 이처럼 두산활공장에 서면 고산준봉들이 남한강과 한데 어우러진 장쾌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소백산맥이 걸개그림처럼 펼쳐진 두산 정상은 여기서 30분쯤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
도담삼봉(명승 제44호)은 단양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다.
단양팔경 가운데 제1경이기도 하다. 도담삼봉이 펼쳐내는 풍경의 진수와 마주하려면 이른 아침이나 저물녘에 찾아야 한다. 겨울철엔 특히 그렇다. 해뜰녘이면 잔잔한 강물 위로 물안개가 피고, 강 중심엔 도담삼봉이 그림처럼 떠 있다.
멀리 소백산 위로 해가 떠오르며 사방으로 붉은 햇살을 펼쳐낸다. 붉은(丹) 태양(陽)이 머문다는 고을 이름은 바로 이 장면에서 완성되는 듯하다. 저녁 무렵엔 도담삼봉 주변으로 경관조명이 켜진다. 해거름과 어우러진 빛의 향연이 제법 볼 만하다.
도담삼봉 옆의 석문(石門)도 잊지 말고 돌아보는 게 좋겠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 낸 비경으로, 단양팔경 중 제2경이다. 도담삼봉 음악분수 앞의 가파른 계단을 오른 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끝에서 가운데가 뻥 뚫린 구름다리 모양의 돌기둥이 나타난다. 이게 석문이다. 석문 너머로는 남한강이 유장하게 흘러간다. 강 건너 도담마을의 자태도 소박하다.
단양엔 ‘풍경 전망대’가 두 곳이다. 두산(700m) 활공장과 양방산(664m) 활공장이다. 두 곳 모두 패러글라이딩 등의 이륙장으로 쓰인다. 예서 맞는 풍광이 빼어나다. 두산 활공장이 특히 그렇다. 단양 읍내를 휘감아 도는 남한강과 해발 1400m를 넘나드는 소백의 준령들이 한눈에 담긴다.
두산은 가곡면 사평2리 두산마을의 뒷산이다. 단양읍에서 고수대교 건너 고수재를 구불구불 돌아 내려가면 고개 끝자락 어름에 두산활공장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구절양장의 좁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두산마을이다.
활공장은 마을 위에 있다. 차로도 오를 수 있지만, 눈 쌓인 겨울엔 두산마을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산길을 15분쯤 걸어 올라가야 한다. 폭설이 내린 날엔 마을로 오르는 길마저 차량통행이 금지되곤 한다.
두산활공장에 서면 눈 덮인 단양 인근의 산들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을 품고 굽이치는 남한강 물길도 까마득하다. 여기 풍광만 해도 압도적이다. 한데 기막힌 전망대가 한 곳 더 숨겨져 있다. 두산 정상이다. 두산활공장에서 30분 정도 더 발품 팔아 올라야 한다.
두산 정상은 두산활공장의 보조 이륙장이다. 아래쪽 주 이륙장의 풍향이 맞지 않을 때 주로 쓰인다. 주민들은 춤추는 소백의 준령들을 눈에 오롯이 담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 말 틀린 거 없다. 연화봉과 비로봉, 국망봉, 신선봉 등 해발 1400m를 넘나드는 소백산의 준봉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병풍이든 걸개그림이든, 뭐라 상찬해도 모자랄 게 없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다. 그 덕에 비경을 오래 독차지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 단양팔경 중 제1경인 도담삼봉의 이른 아침 풍경.
▲ 고구려 장수 온달이 전사한 곳으로 알려진 온달산성.
▲ 단양다누리센터에 전시된 토종 물고기들.
이야기가 있는 산길을 찾는다면 ‘온달·평강 로맨스길’이 제격이다.
소백산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소백산자락길(단양·영주·봉화·영월 12구간 총 142㎞) 제6코스다. 고드너머재~방터 화전민촌~온달산성~온달관광지~영춘면사무소를 잇는 13.8㎞ 구간으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 구간의 핵심 볼거리는 온달산성이다. 역사상 가장 ‘저명한’ 바보로 꼽히는 고구려 장수 온달(?~590)이 신라군과의 전투 끝에 이 성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둘레 682m(외벽)의 작은 석성이지만, 주변을 둘러친 남한강 물줄기와 소백의 집산연봉들이 어우러지며 빼어난 전망을 선사한다.
로맨스길 전체를 도는 게 부담스럽다면 화전민촌에서 온달산성을 잇는 핵심 구간만 돌아볼 수도 있다. 최가동 마을 윗자락에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이정표를 따라 30분 정도면 온달산성에 닿는다.
단양읍내에선 다누리센터가 볼 만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민물고기 전시관 중 하나로 꼽힌다.
센터 내 수족관 수는 137개다. 개관 당시 82개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크고 작은 수족관엔 황쏘가리(천연기념물 제190호) 등 국내 민물고기뿐 아니라 중국의 보호종 홍룡과 아마존의 거대어 피라루크 등 세계 각지의 희귀물고기 155종 2만 5000마리가 전시돼 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담수용량 650t 규모의 메인 수조다.
건물 3층 높이(8m)의 아치형 수조로, 철갑상어 등 3000여 마리의 다양한 민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다. 담수용량 9.1t의 원통형 수족관도 오는 24일 선보일 예정이다. 수족관 위 낚시박물관도 볼 만하다. 500여점의 다양한 낚시도구와 가상 낚시체험 공간으로 조성됐다. 글 사진 단양 손원천 기자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 북단양나들목에서 우회전해 5번 국도를 따라 직진하면 도담삼봉에 이어 단양읍내에 닿는다. 두산활공장은 읍내에서 고수대교 건너 좌회전한 뒤 59번 국도를 타고 고수재 중턱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들어간다.
온달산성은 59번 국도를 따라 직진하다 군간교 건너 우회전해 522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영춘교 건너 우회전, 온달관광지를 지나 최가동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온달관광지에도 등산로가 있지만 된비알이어서 다소 힘들다. 최가동 마을 윗자락에 차를 댈 만한 공간이 있다. 예서 이정표를 따라 온달산성까지는 30분 남짓 걸린다. 아이젠과 스패츠 등의 장비 착용은 필수다.
→맛집:
단양에서 뜻밖에 놀란 게 다양한 음식들이다. 갈 때마다 새로운 맛집들이 튀어나온다. 단양은 육쪽마늘의 산지다. 마늘을 주요 재료로 이용한 음식도 발달했다. 단양 읍내 끝자락의 성원마늘약선요리(421-8777)는 마늘 관련 요리로 정식을 차려내는 집이다. 정식 1만 5000원, 평일 점심특선 1만원. 다원(423-8050)은 마늘떡갈비로 알려져 있다. 1인 1만 3000원. 대명리조트 앞에 있다.
단양터미널 옆 경주식당(423-4367)은 복매운탕을 칼칼하게 끓여내는 집. 아침식사로 그만이다. 1인 8000원, 다슬기국 7000원. 멍석갈비(423-5171)는 동태우거지찜을 잘한다. 된장을 기본으로, 고추장을 살짝 푼 양념에 우거지 듬뿍 넣고 자글자글 끓여내는데, 입에 착착 감긴다. 1만 5000원(2인분). 갈비살도 200g에 3만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잘 곳:
가족 단위라면 대명리조트 단양(420-8311)이 최적의 숙소다. 남한강을 끼고 단양읍 한복판에 고즈넉하게 자리를 잡았다. 부대시설로 스파도 있어 추위에 언 몸을 녹이기 좋다. 인근의 단양관광호텔(423-7070)도 깔끔한 편이다. 남한강변을 따라 시설 좋은 모텔도 늘어서 있다. 최근 문을 연 그리다모텔(421-4120) 등이 추천할 만한 숙소다.
단양 도담삼봉의 초겨울 풍경 [2013 12월 09일]
일출 땐 은은한 수묵화 해 지면 화려한 데칼코마니
요즘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은 유행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지역 내 대표 풍경을 뽑아 8경, 9경, 10경 식으로 번호를 달아 이름을 붙이곤 한다. 이렇게 해 놓으면, 그 경치가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고 명소로 부각시키기가 용이해질 것이다.
이 중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게 8경인데, 8경의 원조 격인 곳이 바로 충북 단양군이다.
단양팔경은 관동팔경과 함께 우리 땅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오래된 8경이라고 할 수 있다. 단양팔경을 선정한 이는 조선 중기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이다. 이미 500여 년 전인 16세기 초에 8경이 지정될 정도로 단양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단양은 경남 함양군과 함께 국립공원을 두 개 보유한 국내 ‘유이한’ 지역이기도 하다. 함양에 지리산과 덕유산이 있다면, 단양에는 소백산과 월악산이 있다. 흔히 월악산은 충북 충주와 제천에 속해 있는 국립공원으로 알고 있는데, 단양에도 상당 부분이 걸쳐 있다. 소백산과 월악산, 그리고 그 사이로 남한강이 흐르는 단양에는 8경과 함께 ‘신8경’을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경승지가 널려 있다. 퇴계를 비롯해 삼봉 정도전,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등 수많은 시인·화가가 이 경치에 반해 단양을 찬미하는 시와 그림을 남겼다.
화려했던 가을이 떠나고 단양에도 이제 겨울이 찾아왔다. 며칠 전에는 소담스러운 첫눈도 내렸다. 소백산의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에는 아직도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새하얀 눈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초겨울에도 단양 여행의 출발점은 도담삼봉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퇴계가 꼽은 단양 1경도 도담삼봉이다.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한낮에 이곳을 찾으면 자칫 밋밋하다고 느낄 수 있다.
▲ 단양팔경 중 제1경인 도담삼봉은 새벽녘(사진 위)과 해거름 직후(사진 아래 )에 찾아야 그 진가를 알게 된다. 소백산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비치는 삼봉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은은한 맛이 일품이고, 어둠이 깔린 후 조명이 비칠 때는 더 생동감 있고 화려하게 느껴진다.
도담삼봉은 새벽 일출이나 해질녘에 찾아야 그 진가를 알게 된다. 이른 아침이면 남한강 수면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거울처럼 고요한 강물 위로 봉우리 세 개가 데칼코마니처럼 반영된다. 도담삼봉 뒤로는 멀리 소백산맥이 보이고, 그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그러면 삼봉 아래 강물에 그 붉은 해의 닮은꼴도 그대로 비친다. 수많은 시인·묵객이 이 풍경을 보고 ‘선경’이라고 극찬했다.
도담삼봉은 단양의 대표적인 야경 명소이기도 하다. 몇년 전에 이곳에 조명을 설치했다. 해거름 직후 하늘은 잠시 엷은 코발트빛으로 변한다. 이때 조명이 비치기 시작하면 이 일대는 환상적인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은은한 미색 조명을 받은 삼봉은 산수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 훨씬 더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도담삼봉에서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북 봉화 출신인 정도전은 외가인 단양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로 도담삼봉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정도전이 주인공인 설화도 전해온다. 강원 정선 땅에서 홍수로 떠내려 온 도담삼봉을 놓고 단양과 정선 간에 다툼이 벌어지자 소년 정도전이 나서 기지를 발휘해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 단양팔경 중 2경인 석문. 돌기둥 옆 사람과 비교해 보면 그 엄청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도담삼봉 옆에는 또 하나의 절경, 석문(石門)이 있다. 단양팔경 중 2경인 석문은 도담삼봉 주차장 뒤쪽의 음악분수 앞이 입구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산길을 조금 걸으면 절벽 위에 바위 가운데가 뻥 뚫린 무지개다리가 나타나는데 이게 바로 석문이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 낸 비경으로, 석문 너머로는 푸른 남한강 물결과 강 건너 도담리 농가의 모습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이곳 무지개 모양의 돌기둥은 그 높이가 수십m에 달해 구름다리 모양의 자연경관 중에서는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석문에 오르면 급하게 휘어져 돌아가는 남한강 물줄기, 도담삼봉의 뒷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대강면의 사인암은 단양팔경의 5경. 하늘 높이 치솟은 약 50m 높이의 기암절벽으로, 암벽에 가로·세로로 금이 가 있는데, 거대한 돌을 일부러 섬세하게 끼워맞춘 듯 느낌을 준다.
지명도는 도담삼봉이 최고지만, 사인암을 최고의 절경으로 꼽는 사람도 많다. 사인암 바로 옆에는 고려 말에 세워진 작은 암자, 청련암이 있다. 사인암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절벽 어깨쯤에 삼성각이라는 작은 전각이 자리하고 있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 들어선 모양새는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삭풍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인지 그 안에 서면 더할 나위 없이 안온한 느낌을 준다. [세계일보 단양=글·사진 박창억 기자]
신간안내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간 퇴계 이황의 가슴 아픈 사랑
[세계일보 2013년 12월 10일]
◀ 박세연 첫 장편소설 ‘두향’
‘동방의 주자’로 추앙받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 고려시대 유입된 성리학을 정착시킨 조선의 뛰어난 학자인 그에게도 가슴 아픈 사랑이 있었다고 한다. 개인사로만 보면 퇴계의 삶은 불우했다. 첫 아내와 두 번째 아내까지 쉬 사별하고 몸은 늘 병중에 있었으며 아들마저 젊은 나이에 자진했다. 박세연(53·사진)의 첫 장편소설 ‘두향’(휴먼앤북스)은 이 고달픈 생의 여정에서도 죽음 직전까지 암향(暗香)을 품고 간 퇴계의 사랑을 천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박세연의 유장하고 따뜻한 문체에 있다. 이제 첫 소설을 썼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튼튼한 문장과 당대의 세목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묘사가 돋보인다. 늘 중앙의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해 후생을 가르치고 싶어 했지만 불려나가길 반복해야 했던 이황. 그가 느지막이 단양 군수로 내려가서 그곳의 기생 두향과 맑은 정을 통했다.
청백리이자 여색과는 거리는 멀었던 퇴계에게 시와 거문고에 능했던 두향은 ‘정인’이 되었다. 일년도 채 안 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황은 단양군수를 떠나면서 두향의 기적을 파기해 면천해주었다. 이후 이들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두향은 남한강가에 초막을 짓고 수절하다가 이황이 죽자 22년 만에 자결했다고 한다.
설에서 이황은 두향의 치마폭에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死別已呑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더라(生別常惻側)”는 두보의 시를 남겼다.
박세연씨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단국대 법학과를 나와 정부투자기관을 거쳐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다. 첫 소설을 상재하는 박씨는 작가의 말에 “두향과 퇴계의 사랑이야기에 대한 진위 논쟁이 있지만 그들은 어려운 사랑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성취했다고 믿는다”고 썼다. 퇴계는 소설에서 두향에게서 받은 것으로 상징되는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죽기 직전 유언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월악산 경치의 ‘백미’ 옥순봉과 구담봉
충주호에 우뚝 솟은 월악산 암벽기둥들이다. 옥순봉은 희고 푸른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올라 있는 모습이 마치 죽순 같아서 옥순(玉筍)이며, 구담봉은 거북이 한 마리가 절벽을 기어오르는 형상을 취한 구담봉(龜潭峰)이다.
옥순봉은 재미있게도 제천과 단양 두 고장에서 나란히 절경에 포함한 봉우리다. 제천 땅에 속해 있으면서도 제천 10경뿐만 아니라 단양 8경에도 포함된다. 이는 이 고장에 전해 내려오는 퇴계 이황 선생과 관기 두향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옥순봉은 예부터 청풍부에 속해 있었다. 단양 관기 두향은 옥순봉의 절경에 감탄해 당시 단양군수로 부임한 이황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포함시켜 달라고 청원했다. 이에 이황이 청풍부사에게 건의했지만 허락하지 않자 옥순봉 절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고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후 이황은 단양군수로 부임한 지 9개월 만에 풍기군수가 되어 단양을 떠나야 했다.
이황을 간절히 사모했던 두향은 매화나무 한 그루를 선물하며 가슴 찡한 이별시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황은 훗날 “매화에 물을 주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을 정도로 매화를 아끼고 사랑했다. 20여년 뒤 이황이 숨을 거두자 두향도 이황과 함께 거닐던 강선대 아래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봉우리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이용하면 된다. 선상에서 불어오는 호수바람을 맞으며 두 봉우리를 가까이서 쳐다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이 절로 난다. 옥순봉의 모습은 김홍도가 조선 정조 때 그린 산수화와 풍속화를 모은 ‘김홍도필 병진년 화첩’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말발굽 산성엔 흰눈 뽀드득 고산준령·남한강 풍광 마음에 찰칵~
단양 온달산성·두산 활공장·보발재
소백산·월악산을 끼고 있는 단양에는 고산준령이 많고, 그 사이를 남한강 물굽이가 한껏 휘어져 돌아 나간다. 그래서 단양에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남한강 물줄기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봉우리가 여럿이다.
영춘면 온달산성은 역사적 의미가 상당한 유적이면서 빼어난 전망 포인트다. 삼국시대에 지어진 이 산성에는 평강공주와 결혼해 고구려 평원왕의 부마가 되는 ‘바보 온달’의 설화가 깃들어 있다.
온달장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전해지는 이곳은 해발 472m로, 경사가 70도에 이를 정도로 가파른 산비탈에 성곽이 쌓여 있다. 납작한 돌을 쌓아 올린 성곽은 매끈한 말발굽 형태다. 산성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해 영월을 거쳐 굽이굽이 부드럽게 흘러내려오는 남한강의 물길이 산성과 어울려 빚어낸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 고구려 온달장군의 설화가 서린 단양 온달산성은 가파른 산비탈에 말발굽 형태로 쌓인 석성이다.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산성 아래로 남한강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온달관광지를 거쳐 온달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꽤 가파른데, 소백산 화전민촌 쪽으로 올라가면 한결 수월하다. 화전민촌 입구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고, 갈림길에서 온달산성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겨울에는 눈이 쌓여 있을 공산이 크므로 갈림길에서부터 차를 세워놓고 걸어가야 하는데, 완만한 평지이므로 별 부담이 없다. 이 소백산 화전민촌은 테마파크 형식으로 재현된 것이지만, 옛날 화전민들이 살았던 산골 오지마을의 정취는 그런대로 맛볼 수 있다.
단양의 전망 포인트로 두산 활공장과 양방산 활공장도 빼놓을 수 없다.
단양읍에서 59번 국도를 타고 영월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덕천교 근처에 두산마을이 있다.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면 평평한 지형의 활공장이 나타나고, 그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과 주변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강변 수변무대 맞은편에 우뚝 솟은 양방산 활공장에서는 단양 읍내 전경과 읍내를 U자로 감고 돌아가는 남한강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양방산 활공장에서 즐기는 패러글라이딩과 단양 읍내가 어우러진 장면은 단양을 상징하는 풍경 중 하나다.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이면 온달산성과 두산, 양방산 활공장은 모두 자동차로 오르내리기가 힘드므로, 아이젠을 준비해 걸어서 오르는 게 좋다.
▲ 눈이 내려 새하얗게 채색된 구인사의 대조사전.
온달산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가 있다.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대가람으로 1만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법당 등 50여동의 건물을 거느리고 있다. 보통의 산사에서 느끼는 정갈함과 아늑함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 규모가 워낙 대단해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맨 위쪽에 자리한 대조사전이 가장 화려한 건물로 꼽힌다. 대조사전 뒤편 소나무숲이 눈으로 뒤덮여 겨울 정취를 물씬 풍긴다. 그 건너편 전망대에서 산 아래 수많은 절집 전각들을 내려다보는 전망도 꽤 괜찮다.
▲ S자를 반복하는 산길로 사진 명소가 된 보발재.
구인사로 드는 595번 도로에 자리한 사진 명소다. 고갯마루 정상에 서면 구절양장으로 꼬인 도로가 워낙 아름다워 사시사철 사진 동호인들이 많이 찾는다. 단풍길과 더불어 야경사진이 압권으로 꼽힌다. 밤이면 S자를 반복하며 달리는 차량의 궤적이 독특한 사진을 만들어낸다. 주변 산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후 자동차가 눈 위에 길을 낸 장면도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낸다.
석회암 지대가 많은 단양에는 한겨울 추위를 잊을 수 있는 동굴도 많은데, 천연기념물 제256호인 고수동굴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국내 최고의 동굴로 평가받는다. 온달산성 아래에도 천연기념물 제2645호인 온달동굴이 있다. 단양 버스터미널 옆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민물고기 아쿠아리움인 다누리아쿠아리움이 있다. 그 입구에 큼지막한 남한강 쏘가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세계일보 단양=글·사진 박창억 기자]
◆ 여행정보(지역번호:043)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중앙고속도로의 북단양 나들목으로 나와 5번 국도를 타면 된다. 숙소로 가족단위 여행객에게는 단양 읍내의 ‘대명리조트’(420-8311)를 가장 추천할 만하다. 실내 워터파크와 스파 시설도 갖추고 있다. 버스터미널 옆 ‘그리다 모텔’(421-4120)도 새로 지어진 깔끔한 숙소다. 단양은 국내 대표적인 마늘 산지로, 마늘을 이용한 음식이 발달했다. ‘다원’(423-8050)은 마늘솥밥과 떡갈비를 잘한다. ‘성원 마늘약선요리’(421-8777)는 약선한정식과 마늘수육을 내놓는다. ‘경주식당’(423-4367)의 올갱이해장국과 복요리도 현지인들이 추천한다. ‘수리수리봉봉’(422-2159)은 산채 전문식당으로 유명하다.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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