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관한 시 길에관한 명상
[정리:한국의산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길이 있으며
길과 사람 사이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자전거가 있다.
길에 관한 시 >>> https://koreasan.tistory.com/15606378
▲ 물감을 아끼다보면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자징거를 너무 아끼다보면 멋진 곳을 둘러보기 어렵다. ⓒ 2012 한국의산천
詩를 훔쳐가는 사람
- 이 생 진
´○○ 시인님
시 한 편 훔쳐갑니다
어디다 쓰냐구요?
제 집에 걸어두려고요´
얼마나 귀여운 말인가
시 쓰는 사람도
시 읽는 사람도
원래는 도둑놈이었다
세상에 이런 도둑놈들만 들끓어도
걱정을 않겠는데
시를 훔치는 도둑놈은 없고
엉뚱한 도둑놈들이 들끓어 탈이다
내 시도 많이 훔쳐가라
하지만 돈 받고 팔지는 마라
세상은 돈 때문에 망했지
시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다
도둑맞은 詩
- 이 생 진
나는
우연히 café.daum.net를 클릭하다가
내 ‘詩를 훔쳐가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 나를 보고 머리 숙이는데
나는 훔쳐가는 그 시를
다시 훔쳐 읽었다
시는 서로 훔치는 것
나는 그 시를 어디서 훔쳤더라
詩 목록
詩를 훔쳐가는 사람 - 이 생 진
도둑맞은 詩 - 이 생 진
오솔길 - 나태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 김 재 진
숲으로 가는 길 - 이 시 하
겨울 길을 간다 - 이 해 인
봄길 - 정 호 승
길 위에서 - 나 희 덕
마음의 길 하나 트면서 - 이 태 수
길 - 김 용 택
길 - 이 영 춘
길처럼 - 박 목 월
눈산에서 - 김 장 호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 도 종 환
길에 서서 - 서 정 윤
새로운 길 - 윤 동 주
가을억새 - 정일근
낯선 곳 - 고 은
길 - 윤 동 주
길에 관한 명상 수첩 - 이 외 수
누구든 떠나갈 때는 - 류 시 화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백 창 우
눈오는 저녁 숲 가에 서서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처음 가는 길 - 도 종 환
길 - 신 경 림
길 - 문 태 준
나그네 - 박 목 월
길 위에서의 생각 - 류 시 화
구부러진 길 - 이 준 관
길 - 김 명 인
길 - 이 하 석
길 위에서 - 박 해 성
길을 묻다 - 이 인 수
길 - 신 경 림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 - 이 철 환
길 위에 서다 - 정 연 복
바닷가에서 - 정 호 승
▲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배경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다.ⓒ 2012 한국의산천
소백산 마구령(馬駒嶺, 820m)을 오른 후 다시 내려와서 계속해서 부석면과 단산을 거쳐서 다시 백두대간 소백산 고치령으로 올라 갑니다
산행 그리고 라이딩
기다리며 준비하는 설레임
나는 알았다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 그 이상임을.
나의 기쁨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그래 아무 생각없이 달리는거야!
▲ 면면히 이어지는 길 ⓒ 2012 한국의산천
산의 기세가 숨을 죽이는 자리들만을 신통히도 골라내어 굽이굽이 산을 넘어간다.
그 길은 느리고도 질겼다…. 그리고 그 길은 산속에 점점이 박힌 산간마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챙겨서 가는 어진 길이었다. 어떤 마을도 건너뛰거나 질러가지 않았다.
무명도(無名島)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오솔길
- 나 태 주
멀리 있는 사람을 두고
말을 한다
보고 싶다고!
그리웠다고!
바람에게 말을 하고
나무에게 말을 한다
바람더러 전해달라고
그 사람 이 숲속 길
혼자 지날 때
살그머니 귓속말로
들려달라고
여기 없는 사람을 두고
말을 한다
우리 곧 만나자고!
웃으면서 만나자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 김 재 진
갑자기 모든 것 낮설어질 때
느닷없이 눈썹에 눈물 하나 매달릴 때
올 사람 없어도 문 밖에 나가
막차의 기적소리 들으며 심란해질 때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나서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걸어가도 젖지 않는 滿月(만월)같이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벗어나라.
벗어난다는 건 조그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것
남겨진 흔적 또한 상처가 되지 않는 것
예리한 추억이 흉기 같은 시간 속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들 가슴에 베어올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스쳐가는 滿月같이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떠나라.
떠나라 낯선 곳으로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1829년 탈고된 괴테의 기행집 <이탈리아 기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삼십대 중반에 이미 부와 명성과 권력까지 손에 쥔 괴테는 서른 일곱 살 생일날 새벽 모든 것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낡은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 간단히 꾸린 채 인생의 혁명을 위해 가진 것 모두를 뒤로 하고 신화의 땅 이탈리아를 향해 훌쩍 떠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 등 많은 문학작품으로 그의 명성은 이미 전 유럽에 자자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추밀고문관으로 10여년간 지내면서 정치가로서의 역량 또한 크게 떨치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그는 심한 상상력의 고갈을 느꼈고 작가로서의 앞날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바이마르에서의 궁정생활 10년간의 복잡한 정무(政務) 때문에 문인으로서의 활동이 위축된 것과 또 슈타인 부인에 대한 정신적인
사랑의 중압감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독일의 미학자 빙켈만에 의해 '온 세계를 위한 위대한 학교'라고까지 칭송되던 로마를 향해 휙 몸을 날렸다.
정치가로서의 책임감 보다는 문학가다운 멋진 반란을 택한 것이다. 괴테 스스로가 '제2의 탄생일'이자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까지 표현한 그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786년 9월 3일의 일이다.
그렇게 그는 1년 9개월 동안 마음껏 이탈리아 전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눈과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한다.
쾌락은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지만, 여행은 스스로에게 자신을 끌고가는 하나의 고행이다 -카뮈
숲으로 가는 길
- 이 시 하
숲이 내게로 오지 않아 내가 숲으로 갑니다
새 한 마리 길 열어 주니 두렵지는 않습니다
때로 바람이 음흉하게 휘돌아 몰아치고
마른 까마귀 카악카악 울며 죄를 물어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가야할 때 있습니다
어느 순간 바람도 잔잔하여지고
까마귀 울음소리도 잦아 들면
멀리 앞서가던 길잡이 새 나를 기다립니다
길은 밝아지고 푸른 것들이 환호하며 손뼉치는 소리
시냇물소리,
들꽃들 웃음소리,
나비의 날갯짓소리
푸른 숨소리, 소리들, 무지개로 떠 흐르는
저기 먼 숲이 나를 부릅니다
때로 두려웁지만
숲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겨울 길을 간다
- 이 해 인
겨울길을 간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길은 저무는 산맥의 어둠 속으로 풀려서 사라지고,
기진한 몸을 길 위에 누일 때, 몸은 억압 없고 적의 없는 순결한 몸이다.
그 몸이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길 앞에서 곤히 잠든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 모든 인간은 '역마'에 꿈을 어느 정도 안고 산다.
먼지와 소음에 뒤덮힌 일상을 훌훌 털어버라고 아무런 구애받음도 없이 산맥과 사막과 강물을 바람처럼 떠 돌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꿈꾸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중에서-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
<당부 - 김규동>
봄길
- 정 호 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길 물어보기
- 문 정 희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가는 길 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비어 있는 것이 알차다고 하지만
그런 말 하는 사람일수록 어쩐지 복잡했다
벗은 나무를 예찬하지 말라
풀잎 같은 이름 하나라도
더 달고 싶어 조바심하는
저 신록들을 보아라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심지어 산자락 죽은 돌에다
허공을 새겨놓은 시인도 있다
묻노니 처음이란 고향 집 같은 것일까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나의 집은 어느 풀잎 속에 있는지
아니면 어느 돌 속에 있는지
갈수록 알 수 없는 일 늘어만 간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역사라는 이름의 장강대하일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니, 기억 또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 그 기억을 적어두는 기록이다
-이현상 평전 발문(김성동)에서-
▲ 포항에서 속초까지 아름다운 7번국도를 달리며 ⓒ 2012 한국의산천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바그너
길 위에서
- 나 희 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 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 조심스레 달린다. 눈길과 얼음위에서는 타이어와 지면의 마찰력이 없기에 자전거와 몸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 즉 지면과 수직을 유지하며 달리는것 뿐이다 ⓒ 한국의산천
마음의 길 하나 트면서
- 이 태 수
마음을 씻고 닦아 비워내고
길 하나 만들며 가리.
이 세상 먼지 너머, 흙탕물을 빠져나와
유리알같이 맑고 투명한,
아득히 흔들리는 불빛 더듬어
마음의 길 하나 트면서 가리.
이 세상 안개 헤치며, 따스하고 높게
이마에는 푸른 불을 달고서,
땅끝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궁금해서 ... 그래 떠나는거야
길
- 김 용 택
사랑은
이 세상을 다 버리고
이 세상을 다 얻는
새벽같이 옵니다
이 봄
당신에게로 가는
길 하나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 길가에는 흰 제비꽃이 피고
작은 새들 날아갑니다
새 풀잎마다
이슬은 반짝이고
작은 길은 촉촉히 젖어
나는 맨발로
붉은 흙을 밟으며
어디로 가도
그대에게 이르는 길
이 세상으로 다 이어진
아침 그 길을 갑니다
▲ 푸른 하늘이 갑자기 천둥이 치고 이어서 비가 내리기에 배낭커버를 씌우고 달렸다. 인생도 그렇다 ⓒ 2012 한국의산천
길
- 이 영 춘
문득문득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왠가 꼭 잘못 들어선 것만 같은
이 길
가는 곳은 저기 저 계곡의 끝
그 계곡의 흙인데
나는 왜 매일매일
이 무거운 다리를 끌며
가고 있는 것일까
아, 돌아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이 길.
▲ 충청도와 강원도와 경상도 3道를 넘나들며 라이딩 하기 ⓒ 2012한국의산천
아직 도래하지 않은 더 좋은 날을 기다리며 길을 떠난다.
여행이란 무시로 빈집을 드나드는 바람처럼 그렇게 떠나는 것이다.
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린다.
산행 그리고 라이딩
기다리며 준비하는 설레임
나는 알았다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 그 이상임을.
나의 기쁨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그래 아무 생각없이 달리는거야!
▲ 길을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길처럼
- 박 목 월
머언 산 구비구비 돌아갔기로
山 구비마다 구비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 같다
눈산에서
- 김 장 호
눈이 내리고 있다
무주공산, 어둑한 하늘 아래.
시나브로 시나브로 내려 쌓이는 눈에
나무들도 무릎까지 빠져
움죽을 못한다.
이따금 가지 꺾어지는 소리뿐,
숲속은 적막,지난날 아쉬움도
다가올 두려움도 없다.
발소리가 나는데 하고
돌아봐도 나는 없고, 거기
저승 같은 풍경 한 장.
이대로 멈추어 서기만 하면
나도 거기 한 그루 나무로 잦아들어
차분한
그림 한 점 완성될 것 같은데,
부지런히 부지런히
발을 빼어 옮길 때마다 찰각찰각
돌아가는 환등기의 화면 속에
내가 있다가
없다가…….
꿈인가 생신가, 눈발에 가려
여기서는 이제
나무에서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눈산에서
▲ 우리에게 힘들고 불가능의 길은 없다. 친구와 함께라면 말이다 ⓒ 2012 한국의산천
삶의 기술은
옳은 길을 가는데 있다.
그 길에는 친구가 있고
그 길에서 너는 강해진다.
할 수 있다면 마음에 있는 쪽으로 가라.
자기 길에서 충실 할 때
힘이 되고 방향이 되며 목표가 된다.
아무것도 그 누구도 너를 막지 못한다.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詩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작가 : kmet, Nazim(1902.1.20~1963.6.3)
터키의 혁명적 서정시인. 극작가.
▲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도중 이승만 대통령의 필체로 쓰여진 '미시령'에서 ⓒ 2010 한국의산천
미시령이라고 하고. 또 옛날에는 미시파령이라고 했다(신중동국여지승람에는 미시파령이라고 표기됨) 미시파령은 말그대로 이고개를 오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가파른 계곡이라 전해오는 문헌입니다
6.25 이후 폐쇄되었던 도로를 1989년 다시 개통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미시령 정상에서 속초와 동해바다 그리고 울산바위를 한눈에 보는 장면이야 실로 장관입니다.
최근 2006년에 미시령터널이 개통되면서 통행 차량은 현저히 줄었지만 옛추억과 진정한 여행자는 이길을 찾기에 미시령 휴게소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글쎄요 미시령 휴게소가 여름과 가을 단풍철에만 문을 연다는 말이 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 도 종 환
가지 않을 수 없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 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 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강물이 생사가 명멸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우마차로·소로·임도·등산로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 나간다.
흘러 오고 흘러 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가야할 곳은 어딘가. ⓒ 2012 한국의산천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이길을 지났고 또 많은 이들이 거친호흡 내쉬며 이길을 달릴것이다
길에 서서
- 서 정 윤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을 달려
여기까지 왔다
남들 다 쉽게 지나간 길을
너만 더 어렵게 왔다
나보다 빨리 지나간 사람들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까지 가서 쉬나
쉼없이 달리다가
이 길의 끝에 닿으면 어떡하나
이만큼의 길도
나는 이미 지쳤는데
그들은 왜 그다지 빨리 가야하나
그들은, 쉬는 밤을
별과 함께 보낼 수 있을까
별빛이 달려온 거리를
생각하며 반가이 맞을까
이러다가 나는
이 길의 끝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마치지나 않을까
그저 남들 따라가는 나는
얼마나 불쌍한가
새로운 길
- 윤 동 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가을 억새
- 정 일 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이 켜진 추억의 플랫폼에서
마지막 상행선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에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 흘려주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
내 생에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정일근 시집 <나에게 사랑이란 > - 시선사
낯선 곳
- 고 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 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길
- 윤 동 주
잃어 버렸읍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길에 관한 명상 수첩
- 이 외 수
길을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길이다.
선사들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하는 자는 흔치 않다.
때론 인간은 자신이 실종 되어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길을 간다.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길을 가는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 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 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밖에 있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누구든 떠나갈 때는
- 류 시 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백 창 우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 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길이 없다고,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걸.
눈오는 저녁 숲 가에 서서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여기 이 숲이 누구의 것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
그의 집이 마을에 있음으로
여기 멈추어 눈이 가득한 그의 숲을 보고 있는 나를
그는 볼 수 없을 것이라.
나의 작은 말은
이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엔
농가가 없음에도 멈추어 선 것을
이상히 여길 것이다.
그는 말 방울을 흔들어
잘못된 것이라도 있는가 묻는다.
단 하나의 다른 소리는 쓸어가는 바람과
솜털같은 눈송이뿐
숲은 우아하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내가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길이 있다.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도 하구나.
물론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내가 여기에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숲을 보고 있음을 알지 못하리.
내 작은 말은 이상하게 생각하리라.
농가도 없는 한적한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서
한 해 중에도 가장 어두운 이 저녁에
홀로 서 있음을.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지를 묻는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다만 스쳐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소리와 솜털 같은 눈송이의 흩날리는 소리뿐.
아름답고 어둠이 짙게 깔린 아늑한 숲 속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노라.
내가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길이 있다.
내가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길이 있다.
▲ 무릉도원이라고 쓰여진 표석 옆에 서있는 나무의 가지는 남자의 그건과 너무 꼭 같아 ㅎㅎ ⓒ 2012 한국의산천
처음 가는 길
- 도 종 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 지구는 둥그니깐 자꾸 패달을 저어가면 이세상의 모든 엉아, 누나, 동생 모두 만나 보겠네 ⓒ 2012 한국의산천
길
- 신 경 림
길을 가다가
눈발치는 산길을 가다가
눈 속에 맺힌 새빨간 열매를 본다
잃어버린 옛 얘기를 듣는다
어릴 적 멀리 날아가버린
노래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갈대 서걱이는
빈 가지에 앉아 우는 하얀 새를 본다
헤어진 옛 친구를 본다
친구와 함께
잊혀진 꿈을 찾는다
길을 가다가
산길을 가다가
산길 강길 들길을 가다가
내 손에 가득 들린 빨간 열매를 본다
내 가슴 속에서 퍼덕이는 하얀 새
그 날개 소리를 듣는다
그것들과 어울어진 내
노래 소리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 나는 지도 한장, 작은 카메라만 가지고 자징구 타고 이세상 어디던지 떠날 수 있다 ⓒ 2012 한국의신천
길
- 문 태 준
배꽃이거나 석류꽃이 내려오는 길이 따로 있어
오디가 익듯 마을에 천천히 여럿빛깔 내려오는 길이 있어서
가난한 집의 밥 짓는 연기가 벌판까지 나가보기도 하는 그런 길이 분명코 있어서
그 길이 이 세상 어디에 어떻게 나 있나 쓸쓸함이 생기기도 하여서
그때 걸어가본 논두렁길이나 소소한 산길에서 봄 여름 다 가고
아, 서리가 올 때쯤이면 알게 될는지
독사에 물린 것처럼 굳어진 길의 몸을
▲ 서편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장려한 노을을 보며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들 ⓒ 2012 한국의산천
우리는 중학시절부터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왔고 지금까지 박목월의 <나그네>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나그네가 되어 살고있다.
나그네
- 박 목 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 위에서의 생각
- 류 시 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자는 빈 들녁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것도 없고 얻은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녁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울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나 이제는 정상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오를만큼 오르는거야. 지쳐 더이상 오르지 못하겠다면 돌아서며 그곳이 자기가 선택한 종착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 삶 또한 그렇게 살아야해. 자신의 영혼이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면서...
구부러진 길
- 이 준 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길
- 김 명 인
길이 제 길을 접고 한 곳에 들기까지는
수많은 네거리를 거쳐 가야 한다
상가와 고층 아파트
그린 공원과 주택 단지로 갈라선 봉송 사거리
길이 길로 가로막히는 것은 언제나
신발 대신 날개를 매다는 새 길 탓이지만
멀고 또 가까워 길은 길을 퍼다 버릴 뿐
어떤 바퀴로도 제 길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
검은 띠로 영정을 두르고 국화 꽃다발 포개 싣고
멀리 산 쪽을 당겨가고 있는 저 길조차
길을 꺾어 마침내 한 골짜기에 파묻히기까지는
트인 네거리마다 돋아나는 날개 잘라내느라
한참씩 멈칫거리거나 오래 끙끙대야 한다
김명인 시집"파문"[문학과지성사]에서
길
- 이 하 석
길은 상심도 없이
어지러운 구름 아래로 치닫는다.
푸르스름하고 회색인 강에 빠지지 않고
물 위를 걸어, 천국과 이어지지 않고
철구조물과 시멘트로 이어지는 게 확실하다.
강 이쪽에선 갈색과 푸른색이
격렬하게 싸운다.
찢어진 대지의 상처를
덮어놓고 뒤덮는 검은, 거친 풀들.
풀들을 타이르며 욕지거리하며
몇 번이나 포크레인에 뒤집히는 흙들.
강 저쪽은 어지러운 문질러진 구름 아래
검게 빛나는 선들이 얽힌
회색의 도시.
그렇다면 길은 강을 건너와
이쪽으로 쳐들어온 게 분명하다
길을 보내놓고 끊임없이 히며
길을 잡아당겨 보는
싸움은 저쪽에서 더 격렬한 게다.
길은 쇠의 힘으로 난폭하게
나를 뚫고 나의 뒤로 뻗어나간다.
뚫려버린 나와 함께
이쪽은 다만 거친 풀들 위로
얼음 기둥처럼
잎 없는 나무가 몇 그루,
물 없어 뿌리 썩지 않아
바람에 몸을 버팅길 수밖에 없다는 듯이 서 있다.
한때 울창한 숲이었음을 떠올려주는
기념비처럼
길 위에서
- 박 해 성
후렴쯤 걸린 잎새에 야윈 햇살 서성인다
어쩌다 신발 잃어 천축에 이르지 못한
달마를 찾아가는지
소슬바람 스산한 날
더러는 읽을 수 없는 젖은 생을 구겨 쥐고
자꾸만 뒷걸음치다 돌부리에 넘어진다
그토록 참았던 울음,
칸나처럼 우련 붉은데
하늘 끝 기울도록 직유로 긋는 빗길에는
평행으로 질주하던 술래의 가쁜 숨도
이쯤서 쉬었다 간다,
겨운 등짐 풀어 놓고
앞만 보고 달리느라 스쳐 지난 작은 풀꽃
만삭의 씨방 열고 비상을 꿈꾸는가
푸드득! 깃 터는 소리
산빛 꿈틀, 깨어난다
길을 묻다
- 이 인 수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세상의 길들을 만난다.
갈래 난 사람의 길
은밀한 짐승의 길
하늘로 향하는
나무들의 꼿꼿한 길,
문득 걸음 멈추고
뒤돌아 본 나의 길은
비뚤비뚤 비딱하다.
어디로 가야할까,
아직 봉우리는 아득한데
어디로 가야할까,
겨울 산 비탈에서
다시
길을 묻는다.
하늘을 보면 하늘이 마음에 펼쳐지고
꽃을 보면 꽃이 내 안에서 피어난다.
바람을 안는 이 새가 되어 허공을 날고
구름은 품은 이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신다.
길
- 신 경 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갓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말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
- 이 철 환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다.
바람이 우리들을 흔드는 이유다.
아픔도 길이 된다.
슬픔도 길이 된다. (이철환·소설가, 1962-)
길 위에 서다
- 정 연 복
세상의 모든 길은
어디론가 통하는 모양이다
사랑은 미움으로
기쁨은 슬픔으로
생명은 죽음으로
그 죽음은 다시 한 줌의 흙이 되어
새 생명의 분신(分身)으로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가만히 머무르지 말라고
길 위에 멈추어 서는 생은
이미 생이 아니라고
작은 몸뚱이로
혼신의 날갯짓을 하여
허공을 가르며 나는
저 가벼운 새들
바닷가에서
- 정 호 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게 좋다.
▲ 나그네는 그저 못다 이룬 사랑의 기억만 가지고 가라 ⓒ 2012 한국의산천
인연
- 김 규 동
사랑이 식기 전에
가야 하는 것을
낙엽지면
찬 서리 내리는 것을
성글어도 티끌 하나 빠뜨림 없는 저 하늘도
얼마나 많은 날개가 스쳐간 길일 것인가.
아득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바다도
얼마나 많은 지느러미가 건너간 길일 것인가.
우리가 딛고 있는 한 줌의 흙 또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지나간 길일 것인가.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갈 때에
나보다 앞서 간 발자국들은 얼마나 든든한 위안인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지만
내게는 분명 처음인 이 길은 얼마나 큰 설렘인가. -시인 반칠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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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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