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 소설가 이광수 별장
[답사·촬영.2008. 2. 1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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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학교로 들어가는 상명교를 건너 중국 음식점 바로 왼쪽 좁은 골목길로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춘원 빌라 못미쳐서 춘원 이광수가 머물렀던 홍지동 별장이 있다.
바로 이곳이 춘원이 '이차돈의 사'와 '그 여자의 일생' 등을 썼던 홍지동 40번지, 이광수의 옛집이다.
현재의 집 주인이 춘원의 집을 사서 이층 양옥으로 개조하려 했는데, 춘원의 자취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지인 조병화, 박종화, 김광섭 등의 일부 문인들이 춘원의 자취를 남기길 위해 김재철씨를 설득했고, 그 부탁이 받아들여져 춘원헌 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그 모습 그대로 현재까지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1934년부터 이곳에 살았던 이광수선생은 동아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부사장을 역임하다가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이를 사임하고 휴양과 창작을 위해 이 집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처럼 춘원선생이 이 산장을 짓던 시기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고 회고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선생은 또한 이집에서 사는동안 마을이름을 딴 홍지 출판사를 경영했고, 조선문인협회의 회장활동 등을 하며 문단활동에도 힘쓰며 오뇌를 달랬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 살고있는 김재철씨가 이집을 매입한 것은 1972년 이었는데, 그당시에는 이 한옥이 워낙 낡고 퇴락하여, 헐어버리고 2층 벽돌집으로 개조하려 했었다. 춘원헌 근처에는 '춘원' 이라는 이름의 빌라도 있어 이곳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 기와지붕이 소설가 이광수 별장 ⓒ 2008 한국의산천
이광수(李光洙, 1892~1950.10.25 , 춘원 春園 평북 정주 생.)
호는 춘원(春園).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소작농 가정에 태어나 1902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후 동학(東學)에 들어가 서기(書記)가 되었으나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1904년 상경하였다. 이듬해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의 추천으로 도일, 메이지[明治]학원에 편입하여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0년 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오산학교(五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재차 도일,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하여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였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1년 4월 귀국하여 허영숙(許英肅)과 결혼,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 많은 작품을 썼다.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광복 후 친일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949년 반민특위(1948년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집행하기 위해 제헌 국회가 설치한 특별 기관)에 회부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간 생사불명이다가 1950년 만포(滿浦)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작품 : '재생'(1924), '마의태자(麻衣太子 1926), 단종애사 (1929), 흙(1932-1933), 이순신(1931), 유정(有情 1933), 사랑(1938)>
그 밖의 작품에 '윤광호(尹光浩)' 등의 단편과 '이차돈(異次頓)의 사(死)' . '사랑' . '원효대사' 등 장편, 그리고 수많은 논문과 시편들이 있다.
▲ 골목길 길 건너 축대 위에 올라서서 한장 ⓒ 2008 한국의산천
▲ 개인소유의 주택이기에 담밖에서 쳐다만 보고 왔습니다 ⓒ 2008 한국의산천
▲ 현재는 개인소유의 주택 ⓒ 2008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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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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