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문 (現 자하문)
[답사·촬영.2008. 2. 17일 일요일 날씨 맑음]
조선시대 세검동 일대는 산이 높고 물이 맑아 경치는 좋으나 논밭이 없고 다른 생산이 없어서 주민들이 생활고를 못이겨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한성시전(漢城市廛)에서 매매되는 포목의 마전(麻廛)과 각 관청에서 쓰는 메주와 종이 제조의 권리를 이 곳 사람들에게 주어서 생활을 유지하게 하였다. 그제야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면서 이 곳에 알맞는 여러 과목(果木)을 심어 능금·자두밭으로 개발하여 생활의 자립을 확립하였다 한다.
세검동 일대는 봄에는 온갖 꽃의 아름다운 빛, 여름에는 싱싱한 과실, 가을에는 불타는 듯한 단풍, 다듬은 듯한 반석(盤石), 옥같이 맑은 시냇물이 온 골짜기를 장식하였다. 특히 세검동 일대는 능금과 자두의 명산지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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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하문(부암동 창의문고개) ⓒ 2008 한국의산천
종로구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자하문고개 혹은 창의문고개라 하였다.
고개 마루턱에 자하문(紫霞門)이 있으므로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자하문의 정식 이름은 창의문(彰義門)으로서 도성의 북문인 숙청문(肅淸門)에서 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있다.
창의문을 속칭 자하문이라 한 것은 창의문이 자핫골(지금의 청운동)에 있으므로 해서 생긴 속칭이다. 청운동 일대는 골이 깊고 수석이 맑고 아름다워서 개성의 자하동과 같다고 하여 자핫골이라 하였다.
그리고 창의문을 장의문(莊義門 혹은 藏義門)이라고도 하였는데, 그로 해서 청운동·적선동 일대를 장의동(莊義洞), 줄여서 장동(莊洞)이라 칭하였다. 또 성밖 신영동에 있던 장의사(藏義寺)의 이름에 연유하여 일명 장의문(藏義門)이라고도 하였다.
▲ 자하문(부암동 창의문고개) ⓒ 2008 한국의산천
창의문은 도성 4소문의 하나로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의 서쪽 날개부분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다. 태조 5년(1396) 서울성곽과 4대문 4소문이 건설될 때 함께 건립되었다. 그런데 창의문은 건립된지 18년 만에 한때 폐쇄되기도 하였다. 즉 태종 13년(1413)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백악산 동령(東嶺)과 서령(西嶺)은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아니 된다 하여 동령에 있는 숙청문과 서령에 있는 창의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조정에서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두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원래 이 두 문은 높은 산중턱에 위치하여 길이 매우 험하고 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앞을 가로 막으므로 숙청문에서는 동쪽으로 성북동 골짜기로 내려와 동소문 밖 경원가도로 나가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없고, 창의문에서는 서쪽으로 세검정 골짜기로 빠져나와 홍제원의 경의가도로 나가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또한 경원가도와 경의가도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데에는 각기 동소문과 서소문을 이용하는 것이 더욱 빠르고 편하므로 두 문을 폐쇄하여도 별반 지장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 자하문(부암동 창의문) ⓒ 2008 한국의산천
그후 세종 28년(1446)에 창의문에 대한 출입통제가 완화되어 왕명을 받아 출입하는 외에는 항상 닫고 열지 않도록 하였으나, 중종반정이 일어난 1506년 9월 2일에 혜화문과 창의문을 닫으라는 명을 내린 것을 보면 항상 닫아 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도성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창의문은 남대문이나 동대문과 같은 양식의 축대를 조그만 규격으로 쌓고 그 위에 단층 문루를 세웠다. 정면 4간, 측면 2간,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구성된 이 목재 문루는 견실하고 정교하며 홍예(虹霓:석조로 된 무지개 모양의 문틀) 또한 아담하다. 지금도 성벽의 일부가 연속되어 있다.
다락에는 나무로 만든 큰 닭을 걸어 놓았는데, 그 까닭은 문 밖의 지세(地勢)가 지네와 흡사하기 때문에 그 기세를 제압하기 위하여 지네와 상극인 닭의 모양을 만들어 걸어놓았다 한다.
▲ 봉황 두마리가 천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 2008 한국의산천
▲ 창의문 안내문 ⓒ 2008 한국의산천
▲ 창의문 ⓒ 2008 한국의산천
창의문에 얽힌 역사적 사실 중에서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관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인조반정은 광해군 15년(1623) 이귀(李貴) 등 서인일파가 광해군 및 집권당인 이이첨(李爾瞻)등의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 종(綾陽君 倧: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정변이다. 1623년 3월 12일 이귀, 김유(金 ), 김자점(金自點), 이괄(李适) 등은 반정계획을 진행하던 중 계획이 일부 누설되었으나 예정대로 실행에 옮겨 장단의 이서군(李曙軍)과 이천의 이중로군(李重老軍)은 홍제원에서 김유군(金 軍)과 합류하였다. 반정군은 창의문을 향해 진군하여 문을 깨뜨리고 입성한 뒤 훈련대장 이흥립(李興立)의 내응으로 창덕궁을 무난히 점령하였다. 이에 당황한 광해군은 궁궐 뒷문으로 달아나 의관 안국신(安國臣)의 집에 숨었다가 체포되어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강화로 귀양 보내지고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인조이다. 후에 영조는 이 거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창의문의 성문과 문루를 개축하고 반정공신들의 이름을 현판에 새겨 걸어놓게 하였다. 지금도 그 현판이 문루에 걸려 있다.
▲ 최규식 경무관 동상 ⓒ 2008 한국의산천
자하문고개에는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 최후로 이를 검문하다 순직한 당시 종로경찰서장 고 최규식경무관의 공적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1년 9월 9일 출생, 1968년 1월 21일 순직. 그는 용감한 정의인으로 종로경찰서에 재직 중 청와대를 습격하여 오는 공산 유격대와 싸우다가 장렬하게도 전사하므로 정부는 경무관의 계급과 태극무공훈장을 내렸다. 비록 한 때의 비극 속에서 육신의 생명은 짧았으나 의를 위하는 그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 남으리라.
그리고 당시 최경무관과 함께 순직한 고 정종수경사의 순직비도 그 곁에 세워져 있다.
▲ 故 정종수경사의 순직비ⓒ 2008 한국의산천
자하문고개에 있는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 최후로 이를 검문하다 순직한 정종수 경사의 순직비
▲ 창의문 고개로 오르기 전에 세워져잇는 청계천 발원지 표석 ⓒ 2008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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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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