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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B등산여행

'인생 샷' 명소팩트 체크

by 한국의산천 2020. 8. 22.

속초 '천국의 계단' 가봤더니, "애걔…" 앵글 밖은 좀 달라요!

조선일보 가평·속초·부여·태안=박근희 기자 입력 2020.08.22 03:00 | 수정 2020.08.22 09:56

 

[아무튼, 주말] '인생 샷' 명소팩트 체크

인생 샷 열풍…
SNS에 인생 샷 폭발, 전국 곳곳 '사진 맛집' 포토존 찾아 삼만리

동심 파괴 아니 동경 파괴쯤 되시겠다. 바캉스 극성수기도 지났겠다, 올여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강타한 인생 샷(인생에 길이 남을 만한 사진) 명소에 대한 팩트 체크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20일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인생샷' 해시태그만 206만개. '#인생샷명소'는 5만4000개. 지난 여름휴가 기간을 거치며 인생 샷 게시물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개중엔 '우리나라 맞아?'라는 반응이 절로 나올 정도의 아름다운 해안 배경의 사진부터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인가?' 싶은 동화적인 분위기의 나무 배경 사진, 파란 하늘로 끊임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계단 위를 오르는 사진까지 이국적인 인생 샷들이 수두룩하다.

 

호기심이 발동해 이 명소들을 직접 찾아가봤다. 기대하시라! 인생 샷 명소 팩트 체크 리포트.

 

'천국의 계단'의 반전 풍경

 

팩트가 중요해진 시대, 인생 샷도 팩트 체크해봤다.

강원도 속초해수욕장에 설치된 천국의 계단 포토존인 ‘바다향기로 계단’은 SNS에서 유행하는 앵글 안(큰 사진)과 밖 실물(작은 사진)이 같은 곳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달라 보였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천국의 계단을 아시는지.

지난해부터 SNS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해 올여름 인생 샷 성지로 등극한 포토존 이름이다.

하얀 계단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연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일종의 계단 구조물.

 

전남 곡성을 비롯해 최근 1~2년 사이 생겨난 천국의 계단 포토존은 원조 논란이 생길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계단의 형태나 배경이 조금씩 다를 뿐 SNS상에는 천국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거나 계단 끝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뒷모습 사진이 하루에도 수십장씩 올라오는 중. '천국 체험하려다 지옥을 맛봄' '앵글 밖은 위험해' 등등 사진에 대한 코멘트가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개방된 장소에 있어 비교적 만만하게 체험해볼 수 있는 강원도 속초해수욕장 내 포토존 천국의 계단으로 갔다.

공식 명칭은 바다향기로 계단. 위치는 속초해수욕장과 외옹치해수욕장 사이 주차장 부근에 있다.

 

가까이 가보니 '사진 속 그 천국의 계단 맞나?' 싶을 정도로 생뚱맞은 구조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그리 높지도 않아 교장 선생님이 훈화 말씀 하시던 조회 단상 같기도 했다.

 

관광객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진발에 속았다'며 허무해하는 눈치였다. 별것 아니란 생각에 성큼성큼 올라가 봤다. 계단 끝은 낭떠러지. 발을 잘못 디디면 모랫바닥이었다. 그나마 최대 높이가 2m 정도로 다른 천국의 계단에 비해 높지는 않았다.

 

계단 옆 수상 스포츠 대여소의 상주 직원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이 사진을 찍고 가지만 단 한 번도 낙상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촬영 소요 시간은 평균 30초도 안 됐다. 기다리는 이가 많아 포즈를 제대로 취하지도 못하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수준이었다.

 

인생 샷 앵글 속 신비로운 사진의 비밀은 계단도, 풍경도 아닌 촬영 기법이었다. 앞선 사람들이 하던 대로 계단 측면 아래에서 몸을 한껏 낮춰 하늘을 향해 찍으니 그나마 하늘 배경의 신비로운 인생 샷을 담을 수 있었다.

 

'30분 대기는 애교 수준'이라고 소문난 강릉 카페 곳 천국의 계단은 속초의 바다향기로 계단보다 더 길고 높은데도 어린아이들도 올라간다.

계단 양옆과 끄트머리에 투명 난간이 설치돼 있다. 낮시간뿐 아니라 해가 진 후에도 푸르스름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인생 샷 찍으려는 이들이 놀이공원 인기 놀이기구 입장 줄만큼 길게 줄 서 있었다. 스릴은 강릉이 한 수 위.

 

은하수 터널, 자전거 터널… '터널샷' 유행

영화 같은 배경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소문난 경기도 가평 ‘색현터널’에서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청평역과 가평역 사이 가평 색현터널은 은하수 촬영 명소인 양평 '벗고개 터널'과 함께 '터널샷' 인기 코스로 꼽힌다. 타원형 프레임 안에 초록빛을 배경으로 한 '자전거 터널샷'을 얻을 수 있다.

 

사진 속 풍경은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낡은 터널이 녹음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가면 애먼 곳에서 차가 멈춘다. 자전거나 도보로만 통행할 수 있는 북한강자전거길에 있기 때문이다.

 

색현터널 탐방객들은 으레 인근 카페 '플로레'를 이용한다. 주차, 자전거 대여를 해결할 목적이다. 카페 플로레에서 색현터널 진입로까지는 700여 m다. 느리게 걸으면 5~10분 정도 소요된다. 살짝 경사가 있는 코스라 가는 길에선 자전거가 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땡볕에 10분 걸어가 터널로 들어서니 시원한 바람이 맞이했다.

 

문제는 이후 밀려오는 공포감이었다. 인생 샷 명소라고? 의문이 들 정도로 423m 길이 색현터널 안은 곳곳에 물이 새고 있었다. 천장 벽의 일부가 떨어져 내린 곳도 보였다. 터널 내부엔 토사가 흘러들어 바닥이 미끌거렸다. 때마침 도로 점검을 나온 가평군청 도로관리과 직원은 "지난 장마로 생각보다 누수 상태가 심각해서 빨리 조치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변을 당할까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색현터널에선 어떻게 찍든 인생 샷이었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DSLR로 촬영하는 것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 게 훨씬 더 낫다"고 했다.

토사가 흐르는 것도, 누수가 되는 것도 인생 샷 찍는 이들에겐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였다.

색현터널은 빈티지한 감성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가볼 만한 공간이다. 단, 누수와 토사만 없다면.

 

'동굴샷' '사막샷' 따라잡기

 

원시 동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충남 태안 ‘파도리 해안경관’내 해식동(큰 사진)은 외진 곳에 있는 데다 드넓은 파식대를 지나가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박근희 기자

태국인가 싶었는데 태안이었다. 경남 고성 상족암 동굴 사진 외 SNS에 또 다른 동굴샷 명소로 뜨기 시작한 곳이 있다.

충남 태안군 파도리해변 안쪽 파도리 해안경관 지역이다. 태안반도에서 바다로 돌출된 지형으로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해식애, 해식동, 시 아치, 파식대 등을 만날 수 있다.

 

찾아가는 길이 다소 험난했다. 마을 주민은 "파도리해변 너머 안쪽에 있어 찾다가 포기하고 돌아가는 이들도 있더라"라고 했다. 파도리해변 끝쪽 파식대를 힘겹게 넘어가야 한다. 그것도 안쪽에 비밀기지처럼 숨어 있다. 이마저도 물이 들어오면 사라진다.

 

인생 샷 촬영 포인트인 해식동 안쪽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넓지 않았다. 사진기자는 동굴 벽에 바짝 붙어 촬영해 동굴 벽에서 흘러내린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쯤이면 '고행' 수준이었다. 물이 들어오는 것을 감지하고 재빨리 파식대를 '헤쳐' 나왔다.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해안 경관을 관할하는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 관계자는 "파도리 해안 경관 지역은 간조를 확인하고 가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며 "해식동 안쪽은 간혹 낙석이 일어나기도 하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이국적인 사막 사진으로 인생 샷 명소 된 충남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의 ‘모래언덕’(위). 실상은 관람 데크에서 촬영 각도를 조절해 찍은 사진이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촬영을 마치고 카메라를 내려놓으니 파도리해변의 풍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파도가 있는 맑은 해변에선 몇몇 가족이 휴양지의 '프라이빗 비치'처럼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모래밭에 사뿐사뿐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는 하얀 갈매기, 볕이 스며드는 해식동은 카메라 프레임 너머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었다.

 

파도리해변은 남해 몽돌해변처럼 자갈과 돌로 이뤄져 있다. 파도리 해안 경관 지역에서 인생 샷을 놓쳤다면 일몰을 노릴 것. 해변 가까이에 전망 좋은 사설 캠핑장이 있고, 차박도 가능하다.

 

파도리 해안 경관에서 차로 20~30분 태안 북쪽에 있는 신두리해수욕장 인근 신두리 해안사구는 '사막 인생 샷'으로 떴다. 해류와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3.4㎞ 거대한 모래언덕이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돼 현재 생태공원으로 운영 중이다. 데크를 따라 '모래언덕'으로 가면 촬영 포인트가 나온다. '선을 넘지 말라'고 쳐 놓은 관람선은 잦은 발길에 늘어져 있었다. 선을 매단 기둥도 관람객들이 앉거나 기댄 탓에 허술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구 보호를 위해 관람선 안쪽에서만 촬영이 가능하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한쪽은 바다, 한쪽은 사구를 감상할 수 있다. 사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지만 광활한 사막 같은 풍경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제주 오름 같은 드넓은 초지를 감상하다 보면 인생 샷은 까맣게 잊을지도 모른다.

 

인생 샷 대신 사구와 하늘을 배경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영상인 '타임랩스'를 찍어볼 것.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을 얻을 수도 있으니.

 

나무 하나로 인생 샷 명소 등극

 

 

충남 부여 ‘사랑나무’는 사진 편집기를 이용해 하트 모양을 완성할 수 있어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위). 사랑나무까지 오르는 길은 ‘고행’수준이다./박근희 기자

나무 하나가 이렇게 예쁠 일인가?

하트 모양의 나무 사이로 연인이 나란히 선 SNS 사진 한 장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충남 부여군 성흥산성 사랑나무는 부여 여행을 하는 연인들의 필수 코스처럼 된 곳이다.

 

보호수인 커다란 느티나무의 굵은 가지가 반쪽 하트 모양을 그려 '사랑나무'라는 별칭을 얻었다. SNS 속 하트나무 사진은 사랑나무에서 사진을 찍은 뒤 편집기로 간단히 편집해 하트 모양을 완성한 것이다.

 

인생에 남을 만한 사진이라는데 얻기가 어디 쉬운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성흥산 주차장'에 주차하고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나무 계단으로 시작해 그늘 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가파르기도 해 노약자는 오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일부 구간은 계단 없이 비탈진 산길이나 바위 위를 걸어야 한다. 코스는 짧으나 경사가 하드코어다.

 

사진 한 장 믿고 온 한 여성은 신고 있던 힐을 벗고 가방에 있던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몹시 비장해 보였다. 사랑나무 앞에서 만난 한 임신부 역시 "SNS 후기만 믿고 왔다가 남편한테 업혀 내려올 뻔했다"고 했다. 땡볕에 기다리기 어려운 이들은 촬영 포인트 반대편에서 대충 찍고 하산하는 분위기였다. '나무 하나가 뭐길래!' 하며 사진을 찍어봤더니 대충 찍어도 인생 샷이었다. 다만 나무가 주인공이다 보니 인물은 작아져 누구의 인생 샷인지는 알아보기 어려웠다.

 

하산하는 길,

이제야 올라가기 시작한 이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곤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일출 시간대나 일몰 시간대엔 주차도 쉽지 않다.

 

부여군청 측에 문의하니 "보호수인 사랑나무는 산림보호법에 따라 훼손했을 때 벌금형 등을 받을 수 있다"며 "나무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만 촬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사랑나무가 있는 곳은 매년 '성흥산 해맞이 축제'가 열리는 곳. 나무를 바라보고 왼쪽, 해가 뜨는 정방향인 동남쪽을 보면 가깝게는 부여군 세도면과 멀리 논산시 강경읍이, 남쪽으로는 호남평야가 보인다.

 

이 밖에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속 배경이 된 경북 안동 만휴정 외나무다리, 경기도 양평 물의정원 나무도 인생 샷을 시도하려는 이들이 찾는다. 미끄러지면 바로 계곡에 입수하거나 강 아래 '머드팩 찬스'가 기다린다는 사실. 인생 샷은 건진다 해도 결론은 하나, 그야말로 '앵글 밖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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