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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B등산여행

파산서원 (坡山書院)

by 한국의산천 2007. 5. 14.

파산서원 (坡山書院)    

성수침 선생의 자호 <파산청은(坡山淸隱)>를 딴 파산서원 (경기도 파주 파평면) 

답사 2007년 5월 13일(일요일). 한국의산천

행주산성 - 중남미 문화원 - 최영장군묘 - 연산군시대 금표비 - 용미리 석불 - 윤관장군묘 - 자운서원 - 파산서원 - 파평윤씨 용연 - 화석정 - 반구정

 

 ▲ 하마비에서 말에서 내려서 바라 본 파산서원 전경 ⓒ 2007 한국의산천 

 

 고종 2년(1685)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전국 650개중 47개서원만을 유치할 때에도 파산서원이 보전하게 될정도로 중요시되던 곳이다

 

  
 
▲ 파산서원 이정표석 ⓒ 2007 한국의산천 


조선시대 학자 성수침(成守琛)과 그의 아들 우계 성혼(成渾), 아우 성수종(成守琮) 및 백인걸(白仁傑)의 위패를 봉안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조선시대 학자로서 조광조의 문인인 청송 성수침 (成守琛 )선생은 중종 9년(1514) 22세 당시 부친상으로 당하여 파주 향양리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아우 절효(成字琮)와 같이 하였으며 아우 성수영이 적성현감으로 부임하게 되자 중종 39년(1544) 9월에 처가가 있는 우계연변에 집을 짓고 죽우당(竹雨堂)이라하고 지금 파산 서원터에서 훈학을 하면서 파산청은(坡山淸隱) 도는 우계한민(牛溪閒民)이라는 자호를 가졌으며 여러 벼슬을 하명하여도 모두 사은하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 명성이 높아 사방의 명사들이 그의 집을 찾았으나 겸손하였다 한다.

 

사후 문정의 시호와 우의정에 증직된 후 율곡선생의 주선으로 청송서원(廳松書院)을 건립 후 파산서원(坡山書院)으로 개칭 사액(賜額)을 받았다.

 

인조6년(1628)에 우계 성혼(成渾)선생은 좌참찬에 비국당상을 겸하여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운 유명한 학자로서 파산서당에서 64세로 돌아가시니 문간공의 시호와 좌의정에 증직 숙종 8년(1682)에 율곡선생과 함께 문묘에 배향된 대학자이다. 

 

파산서원은 소수서원과 도산서원에 이어 전국적으로 세번째 건립된 유일한 서원으로 조선조 말엽 고종때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여운영 조소항 등 고명한 정치가를 조현규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지도 배출하였던 유일한 서원이다. 

 

  

▲ 파산서원 이정표석 ⓒ 2007 한국의산천 

 파산서원(坡山書院)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호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파산서원은 조선중기 학자인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과 그의 아들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 아우 절효공(節孝公) 성수종(成守琮 1495∼1579) 및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 1497∼1579) 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선조(宣祖) 원년(1568) 율곡 이이(栗谷 李珥), 휴암 백인걸 등 파주지역 유생들의 주창으로 창건되었고, 효종(孝宗) 원년(1650) 사액(賜額)을 받았다. 파산서원은 조선말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시에도 존속되었던 47개 서원중의 하나로 중요시되던 곳이다. 

 

 ▲ 홍살문과 파산서원 ⓒ 2007 한국의산천 

 

서원건물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그 뒤 다시 복구하였으나 한국전쟁때 다시 불타 1966년 서원 본전 (本殿)인 사당만 복원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전면칸은 퇴칸(退間)으로 개방되어 있고 각 칸에는 2분합의 띠살문을 달아 놓았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이루고 있다.  

 

 

▲ 하마비(下馬碑) ⓒ 2007 한국의산천  

 

입구에 하마비가 있기에 말(車)에서 내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가의 버드나무에 말을 잘 묶어두고 카메라와 삼각대, 메모수첩을 챙겨들고 걸어서 들어갔다.  

하마비(下馬碑)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 곳에 도달하면 그 앞을 지날 때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石碑)  ※ 참고 하마비

 

  여주 명성황후 생가에 있는 하마비 ⓒ2007 한국의산천. 

 

하마비는 왕궁,향교 또는 명사 고관의 출생지나 분묘,서원 앞에 세워져있는데 이 비석앞을 지날때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던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

1413(태종13년)에 최초로 종묘와 궐문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목을 세워놓았는데 이것이 후일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또는 하마비(下馬碑)라고 새긴 비석을 새우게 된것이다.

 

혼과 함께 성수침, 백인걸을 배향한 파산서원 동국 18현(아래 참고)으로 문묘에 배향된 우계 성혼도 파주군 파평면 눌노리 출신이다. 성수침은 성혼의 아버지이다.

성수침은 파주 적성면의 적성 현감을 지냈고, 조광조의 문인으로 기묘사화 때 많은 선비들이 화를 당하자 관직을 사임하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 밑으로 많은 석학이 배출되어 '기호'사림이 융성하게 되었다.

 

기호학파 란?파주와 고양은 서인(西人)들의 땅이다. 서인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살다가 죽어서도 그곳에서 묻혔다. 그들을 기호학파라고도 하는데, 기호(畿湖)란 황해도 아랫부분에서부터 서울 경기 충청남도 북쪽까지를 말한다.   

 

기호학파, 동인 서인 설명보기>>> https://koreasan.tistory.com/11491337

 

 

▲ ⓒ 2007 한국의산천 

 

문묘에 배향된 동국18賢 

 

문묘(文廟)란? 유교(儒敎)의 성인(聖人) 공자(孔子)을 모신 사당(祠堂)을 말한다. 학덕(學德)이 높은 유현(儒賢)의 위패를 공자과 함께 문묘에 모시고 제향(祭享)하는 우리나라 역사속의 인물들 중 18인이다.  문묘(文廟)는 현재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內에 성균관에 모셔져 있다.


 
신라 2현 홍유휴 설 총, 문창후 최치원 고려 2현 문성공 안 유, 문충공 정몽주 조선조 14현 문경공 김굉필, 문헌공 정여창, 문정공 조광조, 문원공 이언적, 문순공 이 황, 문정공 김인후, 문성공 이 이, 문간공 성 혼, 문원공 김장생, 문열공 조 헌, 문경공 김 집, 문정공 송시열, 문정공 송준길, 문순공 박세채

 

 ▲ 파산서원 ⓒ 2007 한국의산천  

 

▲ 경현단이 보인다 ⓒ 2007 한국의산천 

 

▲ 굴뚝을 통해 굴뚝을 보니 굴뚝이 보였다. ⓒ 2007 한국의산천 

 

경현단(景賢壇) 표석 ⓒ 2007 한국의산천

 

 

▲ 경현단(景賢壇) ⓒ 2007 한국의산천 

서원을 바라보며 서원 왼쪽에는 경현단이 있다. 경현단 안에는 3개의 비석이 나란히 있다.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선생의 사위 옥천(趙堪)과 옥천의 사위이며 우계선생의 아들 창랑(成文瑢), 창랑의 사위 화당을 모셨다 매년 음력 2월 중정일에 파산서원과 병행 향사를 지내고 있다. 

 

백인걸(白仁傑)은 조선 명종 때 학자다. 정암 조광조의 제자인 그는 기묘사화때 스승과 동지를 모두 잃고 실의에 빠져 한 때 금강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다가 중종 37년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갔다. 명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다.  
백인걸이 을사년에 내직으로 들어와 ‘헌납’이 됐는데 밀지(密旨)의 그릇됨을 논하려하자 허자가 “그랬다가는 틀림없이 화를 당할 것”이라며 말렸다. 그러나 백인걸은 듣지 않더니 결국 이 일로 귀양을 가게 됐다. 

 

귀양지에서 가장 좋은 소일거리는 바둑이었다. 어느 날 그가 손님과 바둑을 두고 있을 때 조정에서 돌아오라는 기별이 왔다. 그러나 백인걸은 별로 좋아하는 기색도 없이 바둑을 끝내고 나서 함께 바둑두던 손님이 “어서 조보(朝報)를 읽어보라”고 청하자 그제서야 자신이 석방된 것을 알고 빙그레 웃더란다. 

 

그후 백인걸은 선조 때 ‘다사헌’이 돼 권신들의 비리를 논핵하다가 사임했다. 남평의 ‘봉산서원’ , 파주의 ‘파산서원’에 배향됐다.

 

▲ 파산서원 ⓒ 2007 한국의산천 

 

▲ 파산서원 ⓒ 2007 한국의산천 

 

▲ 파평산 ⓒ 2007 한국의산천 

 

▲ 파산서원 전경 ⓒ 2007 한국의산천 

 

반구정(황희) 앙지대>>> https://koreasan.tistory.com/1150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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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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