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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음악

쓸쓸한 청록집 출간 60주년

by 한국의산천 2006. 4. 29.

쓸쓸한 '청록집' 출간 60주년

 

 

ⓒ2006 한국의산천. 안산의 280년생 느티나무 (둘레 4.3m  높이 21m)

 

권 상실기의 막바지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강제 폐간(1940.8)에 이어 문예지 ‘문장’이 폐간(1941.2)됐다. ‘조선어 말살’의 식민지 정책이 본격화되는 시기였다. ‘문장’지가 창간되던 해(1939)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이다. 

모국어를 빼앗긴 불우한 시대의 시인들은 꺼져가는 모국어의 불씨를 일구면서 시를 썼다. 갈무리해 두었던 시들을 광복 후 1946년 6월 6일 박두진이 근무하던 을유문화사에서 시집으로 펴냈다. 3인 시집 ‘청록집’은 이렇게 태어났다. 대표 저자는 박두진이었다. 박목월이 15편, 조지훈 박두진이 각각 12편, 모두 39편을 수록했다. 시집의 장정은 김용준이 맡았고 시인의 얼굴 소묘는 김의환이 그렸다. 시집 제목인 ‘청록’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왔다. ‘노루’는 사슴. 그 한자인 ‘鹿’을 취해 ‘청록’이라 한 것이다.

 

수록된 시들은 공통적으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박목월은 민요조의 리듬을 자기화하여 애틋하고 소박한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했다. 조지훈은 정적(靜的)인 전통적 미학을 전아한 가락으로 표상화한다. 박두진은 건강한 생명력의 표상으로 자연을 노래하면서 자연 너머의 광명을 희구한다. ‘청록집’은 모국어를 빼앗겼던 암흑기에 그것을 지키고 밝혀주는 일을 감당했다. 광복 앞과 뒤의 단절됐던 한국 시문학을 이어주면서 ‘청록파’라는 유파로 불릴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청록집’이 올해 탄생 60주년, 환갑을 맞는다. 환갑이 의미 있는 잔치로 치러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앞날의 삶을 새롭게 건설하려는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이 환갑 60주년의 진정한 뜻이기 때문이다.

 

‘청록집’ 출간 60주년은 한국 시문학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면서 앞날의 시문학이 갈 길을 설계해야 하는 계기다. 청록파가 남긴 문학적 업적을 본격적으로 재조명해야 하는 숙제가 우리에겐 놓여 있다. 문학이 주변부로 밀려났다고 할 일에 무관심한 것은 문학인의 직무유기이고 문학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주변부로 밀려난 문학을 문화의 중심부로 끌어오고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진지한 담론은 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해져야 한다. ‘청록집’ 60주년에 대한 논의도 심화, 활성화되면서 그 한 가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청록집’60주년을 주제로 그 흔한 세미나 하나 열린다는 소식조차 없는 것은 문학하는 사람들의 태무심이 정도를 넘어서서 한국 문학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외국어의 홍수 속에 한국어는 짓밟히고 있다. 모국어를 비틀고 짓이기면서 말장난이나 하려 하는 한국 서정시의 오늘날 모습을 보면서 ‘청록집’을 다시 펼친다. ‘청록파’의 역사적 의미를 거듭 생각하게 된다.

휴대전화와 전자메일에서 자행되는 모국어 학대의 횡포를 막아야 하는 책무가 시인·문학인들에게는 있다. 그들이 모국어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지키고 문학의 황사현상을 막기 위한 문단의 노력이 절실히 요망되는 ‘청록집’ 출간 60주년, 봄 같지 않은 봄이다. 문득 ‘청록집’에 수록된 시구를 되뇌어 본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조지훈 ‘낙화’에서).  [조선일보]

  글:김선학 · 문학평론가 · 동국대 교수

 

ⓒ2006 한국의산천.  출근길의 싸리나무꽃과 철쭉꽃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2006 한국의산천. 퇴근길에 도시에 물든 석양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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