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코스 제부도 → 융건릉 → 용주사
제부도 르포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로 불리워지는 제부도는 여의도보다 작은섬으로서 하루에 두 번씩(하루종일 열려있을때도 있음) 바다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섬을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곳으로 서울에서 가까운 환상의 섬이다. 요즘 보기드믄 모래가 풍성한 해안선은 해수욕객들의 각광을 받고 있고, 모래벌 끝에는 크고 작은 암석이 어울린 3개의 바위가 솟은 매봉 (일명 삼형제 촛대바위)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며 바닷물이 나가면 가족단위로 조개캐기와 굴따기로 재미를 더해주는 곳이다.
▲ 밤 10시 출발 11시에 도착하여 제부도의 상징인 매바위를 멀리서 차량 라이트로 비추고
한컷. (조리개 2.8 .노출 15초) ▲ 해변가 상가의 열기... ▲ 모래 백사장의 밤 2시 ▲ 동호인들과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4시에 잠들고 아침 6시30분경에 일어났기에 일출을
놓쳤다. 해변의 여인? 나는 바닷가에 오면 떠오르는 詩가 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 편린처럼 빛나는 바다를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옆에서 마신다 ▲ 제부도는 옛부터 육지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섬이라는 뜻에서 '저비섬' 또는 '접비섬'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조 중엽 이후 송교리와 제부도를 연결한 갯벌 고랑을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건넌다는 의미에서
'제약부경(濟弱扶傾)'이라는 말이 있었다. 제부도는 이 제약부경의 '제'자와 '부'자를 따와 '제부리(濟扶里)'로 개칭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행복의 척도는 무엇으로 잴수있나. 행복이란 바로 이 모습이
아닐까? ▲ 길이가 2.5km정도의 조개껍질이 섞인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해수욕장. ▲ 이른아침 물은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많은 인파와 차량이
메울것이다. ▲ 남양성지 입구 남양성지 한컷을 찍는순간 ... 예비밧데리까지 다
소진되었다. 다음 코스로 이동하면서 차에서 충전을 해야겠다. 다음코스
융건릉 ▲ 제부도 매바위 앞에서... ♣ 화성 팔경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도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섬 물을 배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 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 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 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그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죽는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여인과 나타난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주었다.
삼백 육십 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나는 내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 詩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中 -
제 1경 융건 백설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산1-1번지에 위치한 융건능은 사적
제206호로 지정된 효의 상징 으로서, 정문 오른편에 있는 융능은 정조대왕의 생부인 장헌세자(일명 : 사도세자, 후에 장조로 추존)와 경의왕후로
추존된 혜경궁 홍씨의 합장능이며, 왼편의 건능은 정조와 효의 왕후의 합장능이다.
정조대왕은 그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죽음을(뒤주속에 갇혀
죽음) 애석해하며 양주 배봉산에 있는 영우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옮겼는데 어느날 아버지의 능주변 소나무에 송충이가 대단히 번식하여 소나무를 갉아
먹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행차를 서둘러 산에 와보니 송충이의 기승이 목불인견이라, 정조가 진노하여 송충이를 잡이 깨물면서 "아무리 미물일 마정
네 어찌 내가 부친을 그리워하며 정성껏 가꾼 소나무를 갉아 먹느냐"고 꾸짖고 돌아서자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져 송충이가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으며, 융건능은 용주사와 함께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효(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자랑거리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수려한 경관을 자랑할만하다. 특히, 능 전역에 빽빽히 들어선 노송의 백설이 덮힌 풍경은
세인들의 마음을 무아의 경지로 빠지게하는 장관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위 치 :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산 1-1
관리사무소 : 031) 222-0142
도로안내 : 서울과 오산을 잇는 1번 국도의 태안읍 병점에서 서쪽으로 약 3km정도가면 융건릉에
도착
제 2경 용주범종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성황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용주사경내의 범종은 국보 제120호로 보존되고 있는데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A.D 854)에 갈양사로 창건되어 고려 광종때 에는 혜거국사(惠居國師)가 불도를 닦던 곳으로 조선 정조대왕이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영우원(永祐園)을 지금의 화산(花山)으로 이장한 이후 사찰을 중건하여 융능 (사도세자의 묘)의 원찰로 이용
하였고 사찰내의 범종은 고려시대 범종으로서는 한국종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갖추고 있는 종으로써, 정조의 애절한 효심이 깃든 용주사의
"불설부모은중경"과 함께 우리고장의 자랑거리이며 금동 청동향로와 전적수사본, 후불탱화, 병풍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한 용주사는 일년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위 치 :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188 용주사 사무소 : 031) 234-0040,2818
도로안내 :
서울과 오산을 잇는 1번 국도의 태안읍 병점에서 서쪽으로 약3km정도가면 용주사에 도착
제 3경
제부모세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로 불리워지는 제부도는 0.98㎢미터의 작은섬으로서 하루에 두 번씩 바다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섬을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곳으로 모세의 기적을 볼수 있는 환상의 섬이다. 12km 해안선은 해수욕객들의 각광을 받고 있고, 모래벌 끝에는 크고 작은 암석이 어울린 3개의
바위가 솟은 매봉 (일명 삼형제 촛대바위)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음. 철 따라 어선을 이용한 낚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피서철등 성수기에는 인근지역의 송산포도와 함께 각광을 받고 있는 곳으로 관내중 관광인파를 가장 많이 유치하는 곳이며 또한 이지역에서 생산되는
굴, 바지락, 숭어, 우럭등 각종 횟감들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도로안내 군포 →반월행47번국도 → 반월 →39번국도(8.5km) → 비봉
→306번지방도(16km) →사강 →309번지방도로 →서신 →송교리행 5km →물길입구 →제부도
제 4경 궁평낙조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에 위치한 해안 유원지는 해송과 모래사장이 어울어진 천혜의 관광지로서 길이 2km, 폭 50m의 백사장과 수령이 100년된 해송
5천여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며 서해안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만조시에는 하루 2시간 이상
해수욕과 함께 20ha의 조개 채취장에서는 직접 조개잡이와 바다낚시를 겸할 수 있어 1석 2조의 관광을 즐길 수 있고 또한 인근 어민들이 잡아온
고기들은 싱싱한 횟감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특히 작열하던 태양이 서해바다로 질때는 바다와 해송이 함께 어울어진 장관은 보는이의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빼어난 경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위 치 :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도로안내 : 군포 →반월행47번국도 →
반월 →39번국도(8.5km) → 비봉 →306번지방도(16km) →사강 →309번지방도로 →서신 →궁평리
제 5경 남양
황라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우정면 이화리까지 14.8km에 이르는 남양간척지는 1973.12.20일 2,065m의 남양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1,211ha의 간천농지가 형성된곳으로 서해바다인 남양만을 막아 조성된 농지라 하여 남양 간척지로 불리워오고 있으며, 제방 축조와 함께 조성된
967ha의 남양호수는 새롭게 등장한 화성시의 관광명소이다. 남양호수는 농업용수는 물론 사시사철 강태공들이 즐겨 찾는곳으로서 특히 겨울철
얼음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며, 남양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쌀은 염실이 좋고 알칼리성분이 많아 경기미중 최고의 미질을 자랑하고 있다. 광활한 들녁은
계절 따라 각기 다른 풍요로움을 안겨주지만 특히 가을의 황금 벌판은 남양호와 어우러져 넉넉함과 충만함을 더하여
주는곳이다.
위 치 : 장안면 수촌리~우정면 이화리
제 6경 입하 홍암
화성시 우정면 국화리에
속해있는 입파도는 0.44㎢의 섬으로 직선거리는 서울로부터 70km, 인천에서는 해상 40km, 수원에서는 50km거리에 있으며 대부분의 표고가
50m이하의 구릉으로 연결된 아기자기한 선형의 섬으로써 중심부 동서로 완만한 능선과 해안의 모래 및 조약돌 밭을 제외한 섬전체가 30%이상의
급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남북측의 해안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광활한 서해 바다에 태고의 신비를 묻고 우뚝 솟아있는 붉은 기암괴석과 파도와
갈매기가 어루러진 풍경은 한폭의 산수화로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하고 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다 바람은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하여 주는
곳이며 아직도 뭇사람들에 때가 묻지않는 청정지역으로 인근에 있는 국화도와 함께 낚시객과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제 7경 제암 만세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는 수원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지점에 위치한
조용한 농촌 마을로서 일명 두렁바위라고도 불려지는 이곳은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시 국권회복을 위한 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곳으로
특히 4월5일 이곳 주민들이 발안장터에서 격렬한 만세운동을 벌이자 만세운동에 대한 주모인사명단을 입수한 일본 헌병 30여명이 4월 15일 오후
2시경 제암교회에 주민을 모이게 한 뒤 모든 문을 폐쇄하여 감금시키고 교회에 불을 지른후 교회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23명을 학살하고
30여채의 가옥을 불태워 버린 선조의 한과 넋이 서린곳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은지 63년이 지나서야 마을에서 4km떨어진 도이리 공동묘지에
평토장으로 안장되었던 유해를 발굴하여 제암교회 뒷동산 양지바른곳에 유택을 마련 하였으며 후세에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기념관, 교육관
조형물등을 설치하여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 8경 남양성지
화성시
남양동에 위치한 남양 성모 성지는 1866년 병인년 대박해때 무명의 교인 들이 순교한 거룩한 땅이며, 성모님의 품처럼 아늑한 자연경관을
지닌곳이다. 이곳은 1991년 10월 7일(로사리인 동정 마리아 축일, 수원교구 설정 기념일)에 성모님께 봉헌되었고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성지로 선포되었다.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 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로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품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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