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79] 단절의 경험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18.12.29 03:07
백영옥 소설가
2018년 1월 1일 내가 처음 한 일은 '알람시계'를 산 것이었다.
쓰지 않고 둘까 봐 일부러 좋아 보이는 것을 골랐다.
시간을 확인한다는 구실로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올해 나는 밤 10시 이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우선 스마트폰에서 SNS와 관련된 앱을 모두 지웠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각종 앱을 들어내자 그동안 부족해 보이던 '시간들'이 생겨났다.
지난 1년간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 썼는지도 실감했다.
새로 채워진 밤의 시간은 대개 침대 위의 독서로 채워졌다.
올해 나는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
우리는 늘 시간 부족에 시달린다.
이것을 '오염된 시간'이라 표현하는데, 시간학자들이 주목하는 건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시간을 파편화시킨다.
일을 하다가, 영화를 보다가, 앞자리의 상대편과 대화를 하면서도
SNS의 '좋아요'나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조각나는 것이다.
브리짓 슐트의 '타임 푸어'에선 "항상 전자 장비를 켜놓고 살면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런 느낌의 정중앙에는 '항상 대기 중'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늘 산만함과 조바심을 느낀다.
지금 내가 어떤 기사를 보고 있어도,
어쩐지 바로 밑 기사의 헤드라인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여섯째 손가락이 되어 버린 스마트폰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24시간 연결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설적이게도 '단절의 경험'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녀들에게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사용을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발도르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부모의 70퍼센트는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IT 개발자들이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만든 디지털 생태계와 기기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빠른 검색이 아니라,
느리고 오랜 사색으로부터 기획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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