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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茶香은 고향 강물처럼 변함없이 흐른다

by 한국의산천 2014. 11. 19.

[박해현의 문학산책] 茶香은 고향 강물처럼 변함없이 흐른다 [기사정리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글 : 박해현 / 문학전문기자

 

사투리 詩語조차 흔히 안 쓰며 鄕愁 드러내지 않던 문정희가
가을을 茶로 덥힌 김현승의 詩 음미한 고향 寶城 세미나에서 추억 속에 빠진 듯 목이 메었다
소녀적 풋사랑이 떠오른 걸까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시인 김현승(1913~1975)의 시 '가을' 도입부다. 시인은 봄을 노래하고 가을을 읊조리기 마련이다. 시인은 봄의 종달새처럼 솟아오르길 좋아하지만 가을 낙엽 밟는 소리 속으로 가라앉기도 사랑한다.

 

  김현승은 특히 가을에 관한 시를 많이 남겼다. 김현승의 시학(詩學)에서 봄이 땅의 숨결을 달구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멀리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작은 자아(自我)를 되돌아보는 차가운 성찰의 시절이다. 그래서 시인은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 같다고 했다. 차가움이 있으면 반드시 뜨거움이 반대편에 자리 잡기 마련이다. 시인은 차가움을 달래고 데우기 위해 차(茶)를 끓인다.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갈까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가고//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지나가는/ 남쪽 십일월의 긴 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시 '무등차(無等茶)')

 

  김현승의 호는 다형(茶兄)이다. 차를 음미하는 다심(茶心)으로 시를 여러 편 썼다. 지난 주말 녹차의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시인들이 김현승의 시를 재음미했다. 한국시인협회가 '시·차·철학'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시인 110여명이 참석했다. 김현승의 시가 오랜만에 되살아났다. '빈들의 맑은 머리와/ 단식(斷食)의 깨끗한 속으로// 가을이 외롭지 않게/ 차를 마신다// 마른 잎과 같은 형(兄)에게서 우러나는// 아무도 모를/ 높은 향기를/ 두고 두고/ 나만이 호올로 마신다.'(시 '다형(茶兄)')

 

  보성은 차향(茶香)이 짙은 곳이다. 시와 차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한국시인협회가 세미나를 열기에 적당한 곳이다. 보성군이 앞으로 시인협회와 함께 시를 기리는 행사를 추진키로 했다. 차의 고향이 예향(藝鄕)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이다.

 

  이날 문정희 한국시인협회장은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보성은 그녀의 고향이다. 그녀는 세미나 개회사에서 "열한 살 때 떠난 고향"이라더니 한동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차향처럼 모락모락 떠오른 추억이 눈물샘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문정희는 40년 넘게 시를 써오면서 향수를 그리 많이 노래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설움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 당찬 생명의식으로 반항의 언어를 쏘아 올렸다. 고향은 그녀의 시에서 그리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덧 해외에서 한국 여성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 공영 라디오가 그녀의 시집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어느 프랑스 시인은 "문정희는 국경을 초월한다. 그녀는 세계적인 반항자인 것이다"라고 했다. 그녀 스스로 "나는 디아스포라 혹은 노마드처럼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녔다"고 했다.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던 서정주 시인이 바로 문정희의 스승이다.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그래도 문정희는 모처럼 고향에서 밤을 맞아 시 '내 고향에 감사해'를 읊었다. '내 고향에 감사해/ 저 많은 강물을 보내/ 흐르는 시간을 보여주었고/ 저 많은 나비들을 보내/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게 했으니까/ 저 많은 길들을 보내/ 내가 시를 쓰게 했으니까.'

 

  문정희는 고향을 잊은 듯 시를 써왔지만, 고향이 때때로 그녀의 시 속으로 틈입했다. 고향은 느닷없이 사투리를 통해 되살아난다. 문정희는 어느 날 고향 출신 운전기사가 모는 택시를 탔다. 그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담은 시 '그 소년'을 썼다.

 

  '터미널에서 겨우 잡아탄 택시는 더러웠다/ 삼성동 가자는 말을 듣고도 기사는/ 쉽게 방향을 잡지 않더니/ 불붙은 담배를 창밖으로 휙 던지며/ 덤빌 듯이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 … / 적의뿐인 그에게 삼성동까지 목숨을 내맡긴 나는/ 우선 그의 사투리에 묻은 고향에다 안간힘처럼/ 요즘 말로 코드를 맞춰보았다/ … / 그에게서 믿을 수 없는 한 소년이 튀어나왔다/ 한 해 여름 가난한 시골 소년이 쳐다볼 수 없는/ 서울 여학생을 땡볕처럼 눈부시게 쳐다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가을날 불현듯 그 여학생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마치 기적을 손에 쥔 듯/ 떨려서 봉투를 쉽게 뜯지 못하고 있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친구 녀석이 휙 낚아채서/ 편지를 시퍼런 강물에 던져버렸다고 했다/ … /어느새 당도한 삼성동에 나는 무사히 내렸다/ 소년의 택시는 그 자리에서 좀체 움직일 줄을 몰랐다.'

 

  택시 기사는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 유학 간 소녀를 사랑했다. 어느 여름 방학에 그녀가 고향에 내려왔을 때 시골 소년이 그녀를 사귀었다. 서울로 돌아간 그녀가 부친 편지까지 받았지만 얄궂게도 편지를 빼앗겨 답장도 보내지 못했다. 강물을 따라 속절없이 흘러간 사랑이었다.

 

  문정희는 고향을 일찍 떠나 성장했지만 고향의 강물은 변함없이 흘렀다. 그 강물이 수십 년 동안 흘러 어느 날 그녀의 일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소년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소녀가 혹시…"란 생각이 들지만 시는 설명하지 않는다. 시인은 택시를 내려 집으로 종종걸음을 쳤고, 택시 속엔 앳된 소년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고향은 늘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 차향(茶香)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먼 그리움을 가까이 데리고 오듯이. (2014 · 11 · 18)


 필자 약력 - 박해현 [조선일보 문화부 전문기자]

 

  어릴 때부터 노는 걸 좋아했다. 수업 시간에 몰래 시와 소설을 읽는 것이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책 읽기 이외엔 축구공을 차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놀이였다. 문학과 공놀이는 닮은 꼴이라서 지금도 좋아한다. 사람은 자연에서 살면서 동시에 언어로 빚은 의미의 세계에서도 산다.

 

  문학은 그런 기호와 상징의 숲에서 나름대로 미로를 만들고 스스로 빠져 나오는 게임이다. 축구공은 둥근 상징이기도 하다. 시에 늘 등장하는 해와 달은 둥글고 강과 바다는 둥근 지구를 돌고 돈다. 축구는 둥근 상징인 공을 함부로 발로 차면서 뛰어다니는 유희다. 시인이 언어를 마음껏 주물러서 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986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가 공처럼 통통 튀어서 1990년 조선일보로 옮겼다. 문화부에서 문학과 출판 분야를 맡았고 파리 특파원도 4년 지냈다.

2010년부터 논설위원실에서 일하고 있다. 축구처럼 재미있고 문학처럼 의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꾸기만 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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