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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전윤호 시인의 세상 읽기

by 한국의산천 2014. 8. 26.

전윤호 시인의 세상 읽기 [ 게재 일자 : 2008년 03월 13일(木). 기사정리: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사직서를 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때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자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산 채 잡혀먹기 싫은 심정에/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 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같은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전윤호‘사직서 쓰는 아침’)

 

 

 

  1991년에 등단해서 17년간 시를 쓰고 세 권의 시집을 냈지만 이 시가 가장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이 시에 대한 글이 잔뜩 올라와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사직서란 말에 목이 매여 산다는 말이 된다. 직장인치고 어느 날 문득 사직서를 내고 싶은 충동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로망이 있다면 어느 날 이 비루한 생계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는 게 아닐까 싶다. 사직서는 항상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때로는 지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어디 회사에만 사직서를 쓰겠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도 사직서를 쓰고 싶다. 언제나 앉아서 몽상이나 하면서 정작 삶의 현장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한 내가 나도 싫은 것이다. 아무 대책도 없이 감정적으로 사직서를 쓰는 사람은 이 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적어도 상사에게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갑니다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언제나 사람을 위축시킨다. 나 역시 행복한 직장생활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고갱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타히티로 가거나 랭보처럼 사막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이른바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다. 그런데 그들만 예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 또한 몸으로, 생활로 예술을 한다. 그들의 삶 자체가 예술인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출근을 하고 빡빡한 일정 속에서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저녁, 지친 몸으로 술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야 하는 것. 그것은 위대한 퍼포먼스다. 우리들은 모두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간직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위로하자면 일탈을 꿈꾸는 사람은 그만큼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이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일탈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시간만 때우며 사는 사람은 몸에 경보기가 꺼져 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사직서를 쓰든, 한번 실종이 되든, 지금처럼 사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휴가가 필요하다. 도시가 아닌 곳으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요즘 나는 새로운 곳으로 가기 보다는 고향으로 가길 즐긴다. 고향에 가면 내 원래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잘못된 내 자세를 교정할 수가 있다. 고향이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은 이 땅의 어딘가에 자신만의 고향을 하나 정해 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집을 떠메고 다니는 유목민에겐 말을 멈추는 곳이 집이고 고향이다.

요즘 사직서를 쓰려고 고민하는 사람이 몇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써본다.

 

 

2013년 10월호

 

사랑을 잃고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전윤호 〈섬 주막〉      
 글 : 장석주  / 사진 : 김선아 

 

 


 
종일 비 오는 오후
불도 안 켜고
텅 빈 술집 골방에 퍼질러 앉아
볼이 꽉 차도록 입에 넣고도
손은 자꾸 꼬막을 깐다
꽉 닫힌 껍질도
기어코 손톱으로 벌린다
눅눅한 식욕
소주는 손도 안 대고
중얼거린다
 

어휴 죽일 년
어휴 죽일 년


여름은 끝났다. 바닷가 해수욕장들은 모두 폐장을 하고, 모래밭에 세워진 파라솔들도 거둬지고, 그 많던 피서객들은 다 돌아갔다. 사람들로 붐비던 바다는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볼 길이 없이 텅 비고 적막하다. 흥청이던 축제가 끝난 것이다. 몇 해 전 여름 끝자락에 다녀온 섬의 조촐한 해변을 떠올린다. 아는 사람도 없고, 딱히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충동적으로 집을 떠나 어떤 항구에 닿았고, 그때 막 선착장에서 떠나는 여객선을 탔다. 이 섬이 그 여객선의 마지막 경유지였다. 나는 낯선 섬에 내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해변과 점포들, 해변과 접한 거리에 늘어서 있는 술집들, 빈 거리를 어슬렁거리거나 그늘에서 잠든 개들. 벗은 몸으로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다 사라진 뒤 해안은 고적하고 쓸쓸했다. 가는 여름과 오는 가을의 갈림길에서 바람을 맞으며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무심하게 밀려왔다가 포말을 남긴 채 다시 밀려가기를 반복하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해질 무렵 해안가의 한 술집에 들러 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소주 몇 잔을 입에 털어 넣고, 회 몇 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전윤호의 〈섬 주막〉을 읽는 순간, 어떤 기시감(旣視感)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날 섬에 종일 비가 내렸던가. 그 빗소리를 들으며 꼬막을 까고 그것을 입속에 넣은 채 우물거렸던가. 보시다시피 〈섬 주막〉은 후루룩 읽히는 시다. 어려운 말도 없고, 애써 심오한 전언을 담지도 않았다. 아주 담백하고 정직한 시다.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섬이고, 섬의 외진 곳에 있는 주막이다. 텅 빈 술집 골방에 퍼질러 앉아 꼬막을 까는 사내가 있다. 방은 어두운데, 사내는 불 켜는 것도 잊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시인은 독자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꼬막을 까서 제 입에 넣는 사내의 모습을 그려낼 뿐이다. 입안에 넣은 꼬막으로 볼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이 사내는 꼬막 까는 손을 멈추지 않는다. 연신 꼬막을 까서 볼이 미어지도록 제 입속으로 밀어 넣는 이 행위도 일종의 몰입이다.

 

사내는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가.

 

소주를 마시고 취하려고 주막에 들러 소주와 함께 꼬막을 시킨 것인데, 정작 꼬막을 까서 입에 넣느라 “소주는 손도 안 대고” 있을 정도로 몰입한다. 이 몰입은 뭔가 골똘한 생각에서 놓여나려는 무의식의 소망이 부추긴 행동일 테다.

 

연신 꼬막을 까서 제 입속으로 밀어 넣는 이 사내를 사로잡은 식욕을, 시인은 “눅눅한 식욕”이라고 한다. 이 사내가 꼬막을 탐식하는 것은 그게 정말 맛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꼬막을 까고 입속으로 가져가는 그 반복의 행위를 빌려 제 안에서 부글거리는 분노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여자는 떠나면서 애욕(愛慾)의 날들, 악마와 같은 쾌락의 짜릿했던 순간들, 늘 설레게 하던 살 냄새의 추억들도 함께 갖고 떠나버렸다. 사내의 영혼은 거덜나버리고, 사내는 빈털터리다. 남은 것은 한숨과 쓰디쓴 회한뿐이다. 지금 사내가 씹는 것은 꼬막이 아니라 바로 그 회한이다. 이 사내, 마시려고 시켜놓은 소주를 따르는 것도 잊은 채 꼬막을 까던 이 사내! 무슨 사연을 안고 있는 게 분명한 이 사내가 마침내 입을 열어 중얼거린다. “어휴 죽일 년”. 사내는 이 중얼거림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두 번 반복한다. 이 중얼거림은 헤어진 여자, 혹은 저를 버리고 떠난 여자를 향한 욕이다.

 

이 짧은 중얼거림은 많은 말을 함축한다. 사내는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여자가 밉지만 아주 미워하지는 못한다. 함께 살 붙이고 정을 쌓으며 살았던 세월의 애틋함이 아직은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애틋함을 더러운 그리움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아주 미워하지는 못한다 해도 못내 서운함과 분노를 억누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내는 섬 주막 골방에 웅크리고 앉아 애꿎은 꼬막만을 연신 까는 것이다. 연신 꼬막을 까면서 제 안에서 울렁이는 서운함과 울분을 삭이고 있는 것이다.

 

빈털터리가 되기 전에 주막으로 가려네
전산옥 노랫가락에
후회나 남은 한평생
제대로 구멍 한 번 뚫려
치마폭 속으로
깊이깊이 침몰하고 싶다네
〈전산옥〉

 

사는 일은 그렇게 숭고하지도 않고, 아주 속된 것만도 아니다. 한편으로 장엄한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쓸쓸한 게 사는 일이다.

내가 충동적으로 낯선 섬을 찾은 것은 마음 어딘가 깊은 곳에 “후회나 남은 한평생/제대로 구멍 한 번 뚫려” 한없이 침몰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 때문일까. 내게도 술집 주모의 기둥서방이나 되어 날마다 술에 취해 퀭한 눈으로 늘 출렁이는 바다나 보며 한생을 보내며 자기를 파괴하고, 막무가내로 타락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던가. 그 처마가 나지막했던 철지난 바닷가 술집 저 안쪽에 숨은 골방이 있었던가. 그 골방에서 웬 사내 혼자 등을 보이고 돌아앉아 꼬막을 까고 있었던가.


전윤호(1964~ )는 정선 사람이다. 1991년 <현대문학>에서 추천 받아 시인으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시집 네 권을 세상에 내놨다. 그의 시에 정선, 영월, 도원, 탄광, 감자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은 그가 몸과 마음이 온전하게 강원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시인의 영혼을 키워준 곳, 고향, 원체험이다. 그가 강원도에 대해서 시를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 산처럼 덩치가 큰 시인은 “몇 번의 실연과/몇 번의 사직서/그리고 몇 번의 구급차와/몇 개의 빚더미들”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사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소시민, 그의 시를 빌려 말하자면, 터무니없이 사소한 시를 쓰는 “사소한 시인”이다(<사소한 시인>). 시인 축구단에서 골키퍼를 맡고 있다. 골키퍼의 자리는 “운동장에서 제일 외로운 자리”다. 그는 외로운 자리를 지키며 “달려오는 공격수 앞에서 기꺼이 몸을 던”진다. 그는 이 야만의 시대를 건너가는 무수한 “평범한 사내” 중의 하나지만, 그의 자의식 속에서는 “두 손을 쓸 특권이 허용된/고독한 영웅”이다(<골키퍼>). 아내가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로 간 뒤 텅 빈 집에서 소일하며 “초록색 눈을 가진 고독이/내려다보는 한낮”에 성공한 부자가 쓴 자서전을 읽다가 “몸으로 물음표를 만들고/긴 잠에 빠”지거나(〈낮달〉), 저녁의 술집에서 “검게 탄 자국이 있는 감자”를 안주 삼아 혼자 술 마신다(〈작은 감자〉). “바보들이 감투를 쓰고/도깨비놀음을 하는 나라”(〈삼월의 망명〉)에서 요지경으로 치닫는 세상을 처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가 시 쓰는 사내인 까닭이다. 나는 그의 범박한 언어로 이루어진 시들이 마음에 든다. 그의 시들이 번쩍이지는 않지만, 제 안에 진심을 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단의 3대 주마(酒魔)에 대하여


  아직 회고록을 쓰기에는 어린 나이인 필자에게 문단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은 돌아가신 문인이나 지나간 이야기에 대한 글이 아니라 지금 살아 활동하고 있는 내 또래의 문인들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글 잘못 쓰면 어른들에게는 버르장머리 없는 놈으로 찍히고 이해관계가 얽히는 후배에게는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매도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고사하려 하였으나 만일의 경우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주간의 말에 용기를 얻어 부족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기왕에 글을 쓰기로 했으면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법이니 일단 시작은 시인들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술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필자의 주변에도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은 많다. 술을 잘 마신다는 뜻은 즐겁고 유쾌하게 마신다는 내용이지 많이 마신다는 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단 술을 잘 마신다 하면 주량이 세고 술잔과 밤을 새도 끄떡없는 사람을 지칭하기 쉽다. 솔직하게 말해서 내 주변의 시인들은 거의 이 계통에 속한다. 물론 내가 함께 마셔본 적이 없는 선배들은 (전대의 마두들로 치고) 다룰 수 없고 적어도 함께 술을 마셔본 적이 있는 시인들 중에서 주마를 꼽는다면 대략 3,4명의 이름이 거론된다.

 
  말 그대로 주마란 술의 마귀이니 앞에서 말한 주호와는 반대의 개념으로 술버릇이 유별나고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보는 위인들이니 그 이름은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개 함민복, 이윤학, 백인덕, 정병근 등이 거론된다. 원래 시단의 3대 주마란 용어 자체는 시인축구단 글발의 회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작성자는 밝힐 수 없으나 술자리에 이들 중 한 사람이 끼어 있으면 일단 조심을 하고 두 사람이 끼어 있으면 무조건 도망을 쳐야하며 세 사람이 다 있으면 그들보다 먼저 취하는 것만이 봉변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대피 요령이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 함민복은 사실 마(魔)라는 글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순박한 시인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밤을 새고 또 새어 일단 며칠간 연락 두절이 된다. 한번은 인터뷰가 있어 신문기자가 급히 그를 찾아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는데 대략 그와 함께 있을 만한 사람을 수소문하였더니 며칠간 연락이 어렵다 했다. 왜 그러냐 했더니 어제부터 술을 마시다 여관에서 방을 잡고 자다 깨면 마시고를 반복하는데 인터뷰할 정신이 들어오려면 그 정도 시간을 흘러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술이 취하면 잘 웃고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다가 잠이 드는데 이때가 조심해야 할 순간이다. 잘못 깨우면 지킬과 하이드처럼 변하거나 큰 소리가 나오는데 특히 온 세상이 다 그의 침실이거나 화장실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문단에 들어간 뒤 첫 대면에서 취한 함 시인의 학교 후배로 오인되어 고초를 겪은 일이 있는데 아무튼 한 번 취하고 나면 소지품을 몽땅 잊어버리는 문제점도 지니고 있다. 다행히도 얼마 전에는 술을 끊었다고 본인이 직접 말하는 것을 보았으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함민복의 경우는 그나마 다른 사람에게 악의적인 피해를 많이 끼치지 않기 때문에 3대 주마에서 빼야한다는 여론도 많다. 아무튼 이 순수한 시인은 주사도 순수의 측면에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지인들의 변이다.

 
  농부나 어부의 모습인 함민복에 비해 시인 이윤학은 충남 시골 출신답지 않게 하얀 얼굴에 작고 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어서 시인의 풍모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말 수가 적으며 진지하다. 하지만 그의 저수지에 술이 들어가면 풍랑이 일기 시작한다. 그의 바닥에는 수많은 돌팔매의 아픔을 간직한 술잔들이 숨어 있다가 떠오르는 것이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일단 고개를 숙이고 조용해진다. 자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저 술잔들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최근에는 함께 술을 마신 일이 없음으로 알 수 없으나 과거에는 이랬다. 특별하게 대화 상대가 필요하지는 않다. 말이 시작된다. 시도 (상스러운 형용사 생략) 못쓰는 것들이 어디서 떠들어. 시인이면 다 시인인줄 알아? 여기 시집 못 낸 놈들은 다 저쪽으로 찌그러져! 그리고 시집 재판 못 찍은 놈들도 가!  이쯤 되면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시인들에 해당됨으로 분위기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차마 보태기 뭐하지만 그 뒤로 나오는 메뉴로 ㅁ자나 ㅊ자 출판사까지 인용이 되면 바닥이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위기까지 갈 수 있다. 그러니 말썽을 피하려면 그가 더 취해 발음이 알아들을 수 없을 때까지 가는 게 외려 낫다. 어쩌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혹 그런 말을 듣더라도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를 당부 드린다.

 
  실제로 술자리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진 다음날 순전히 덩치 크고 이윤학 시인의 동문이라는 이유로 필자도 가해자와 피해자인 이윤학 시인이 만나는 자리에 응원군으로 동원된 경험이 있다. 가해자는 당시 사회비평 잡지를 내는 출판사의 대표였는데 그 역시 응원군으로 문인단체의 사무국장까지 대동하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가 폭력을 행사한 이유가 기가 막혔다. 술자리에서 가만히 들으니 그가 자기 직원과 대화를 하는데 일본말로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비분강개하여 왜 쪽발이 말을 쓰냐며 때렸다는 것이다. 장담하지만 이윤학은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혼잣말이 그렇게 들렸던 것이다. 도대체 그날 누가 취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이윤학의 특징 중 하나는 술을 마시면 집에 잘 들어가지 않고 외박을 잘 하는 것인데 함민복과 다른 점은 항상 어께에 매는 가방을 잊어버리지 않게 잘 간수한다. 최근은 집필과 강의가 바빠 술이 많이 줄었다는 제보가 있으니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본다.

 
  백인덕 시인은 필자와 같은 해인 91년에 등단한 인연으로 초창기에 함께 술을 많이 마셨다. 천호동 출신으로 얼굴은 흰 편인데 이마가 훤하게 벗겨지고 안경을 쓴 모습이 꼬장꼬장한 면서기쯤 되어 보인다. 평소에도 자기주장이 강해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데 술을 마시면 논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장광설이 된다. 전등불에 이마가 빛나고 흰자가 많은 눈동자에 침을 튀기며 떠드는 모습을 한때는 백두광마라는 칭호로도 불렸다. 그가 취해서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대략 두 가지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 시절 실연당한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40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의 시의 대부분의 재료가 되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 미혼이다. 다른 하나는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것으로 덕분에 후배들이 다 전임으로 나간 지금도 시간강사라는 게 아픔이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그는 취한다. 취하면 선배들이 듣는 데에서도 함부로 선배들의 시를 평하고(주로 시를 못 쓴다는 악평) 술집이 강의실이고 동석한 술꾼이 학생이 되어 동서고금의 문학, 철학, 역사에 대해 자신의 학설을 강의하기 시작한다. 이이를 제기하거나 토를 달면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단어가 들어간 욕을 먹는다.

 
  대부분은 그런 그의 성향을 알아서 장광설이 시작되면 피하지만 문단 사정을 잘 모르는 후배들은 잡혀서 그 지루한 강의를 쉬는 시간도 없이 몇 시간 들어야 한다. 필자도 한번 시가 가볍다는 비난을 들었는데 그 이유가  책꽂이에 꽂아둔 시집들이 떨어진 적이 있는데 필자의 시집이 제일 잘 날았기 때문이라 했다. 아무튼 시집은 편 수를 많이 채워서 두껍게 내야 할 모양이다. 그의 버릇 중 하나는 말 그대로 한 밤에 전화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곤히 잠든 밤 휴대폰도 아닌 집전화로 전화를 걸어서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느냐. 우리 오래 보자’ 등의 애정이 가득한 말을 듣다보면 절로 부아가 오른다. 그래서 그의 별호 중에는 심야전화도 있다.

 
  주마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가 정병근 시인이다. 항상 양복을 걸치고 가방을 낀 모습은 고지식한 학교 교사를 연상케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양복은 구겨져 있고 와이셔츠는 때가 꾀죄죄하며 바지는 여기 저기 흙이 묻어 있다. 적어도 며칠은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주마와 마찬가지로 그는 술자리에 마지막까지 남는 술꾼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로 호언장담을 잘 하는 편인데 실제 술이 취하지 않았을 때에는 소극적이고 조용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투박한 뿔테 안경이 주는 인상에 속으면 안 된다. 충고하자면 술자리에서 그를 만나면 먼저 취하는 게 상책이다. 백인덕이 심야전화라면 정병근은 무시통화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전화해서 술 마시자고 한다. 특히 장기는 지금 너희 집으로 가고 있으니 기다리라 거나 집 문 앞에 서 있으니 문 열어 달라는 것이다. 대부분은 전작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거기에 속아 문을 열어주면 적어도 24시간 정도의 술판은 보장 받는다. 집안 식구들의 눈총이나 불편은 아랑곳 않고 계속 술을 마신다. 술이 없다하면 사오거나 사오라 하고 금연이라 해도 담배를 핀다. 그의 최악의 주정중 하나는 시인협회 야유회에서 원로시인들이 보는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본 것인데 그 이후로 회원 가입이 금지되어 있다. 최근에는 길을 가다가 담뱃불이 없어 파출소로 가서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하다가 난동을 부렸다는데 그게 처음이 아니라 몇 년 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고 하니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한다. 신기한 것은 회사원으로서 밤새 술을 먹다가도 회의시간이 되면 제 때 참석한다는 것인데 그의 상관은 그의 음주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엔 술을 자제하고 직장에 열심이라고 하니 역시 다행이다. 아무튼 그 덕에 함민복 시인이 3대 주마에서 가끔 제외되기도 한다.

 
  3대 주마를 들어보았지만 그들만큼 술을 마시는 다른 시인들도 많다. 그들보다 더 마시는 이도 있지만 취해도 주정을 하지 않으니 주마가 아닌 것이다. 주사도 버릇이라 했다. 이제 다들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도 되었으니 바라건대 주마들도 그만 은퇴하여 은거하는 게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