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대미산 악어봉 청풍호에 악어가 살고있다

by 한국의산천 2014. 4. 30.

청풍호에서 악어를 만나다 [2014 · 4 · 30 · 구름약간 하늘 푸른 수요일]

 

급경사 산자락을 엉금엉금 오르니 물만난 악어떼가 우글거린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매우 좋은 느낌. 그간 미뤄왔던 악어봉(대미산) 답사를 나섰다.  

팔목이 많이 호전되었다. 오월부터는 간이 깁스를 하기에 이제는 업무에 충실해야겠다.

 

▲ 일명 악어봉(대미산)에서 내려다 본 청풍호 ⓒ 2014 한국의산천

발아래로 산에서 내려온 능선의 긴 자락들이 마치 악어떼가 물을 마시러 나온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청풍호를 굽어보는 악어산. 호수의 정취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곳 산 정상에 올라 첩첩이 겹쳐진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호수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맛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이곳의 악어산 포토존에 오르면 풍경은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악어산에서는 왼쪽부터 끝에서 시작해 고개를 끝까지 다 돌려야 그 장쾌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풍경의 시야각이 270도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 풍경을 보면 지금 이곳까지 올라오기 위해 애썼던 수고스러움이 한방에 날아갑니다.

 

▲ 월악도토리묵밥집 주차장 도착(주차장이 넓어서 오늘 현재 주차하기 부담이 없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내비게이션 검색어 " 월악도토리묵밥"으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주소 :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 533번지)

식당주차장은 매우 넓으며 식당옆에 작은 마트도 있습니다.

 

 

▲ 마트앞에 세워진 안내판에서 본 풍경을 산위에서 촬영하였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산위에서 촬영한 여성의 누워있는 풍경의 월악 영봉 ⓒ 2014 한국의산천

  충주호를 내려다보던 방향에서 뒤로 돌아서면 여성이 머리를 풀고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을 한 월악산 영봉도 한눈에 들어온다.

원래 월악산은 여자가 누워 있어 음기가 서린 산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산을 달래기 위해 송계리 덕주사에 남근석을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일제시대에 윗부분은 잘리고 뿌리만 남아 있다.

 

▲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트에서 초코릿과 영양갱 비스켓... 간식을 구입한 후 카메라를 챙겨들고 출발합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식당 주차장에서 도로 건너편을 보면 노란색 플라스틱 펜스가 보입니다. 그곳을 지나서 오른쪽 급경사 산길로 올라갑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마치 악어처럼 보이는 풍경은 바다로 치면 리아스식 해안과 비슷한 셈인데 가는 능선 자락이 호수를 들고 나는 모습이 이채롭다 ⓒ 2014 한국의산천

 

충주호. 제천 쪽에선 청풍호라고 부르는 호수에는 악어가 있습니다 대미산 정상에 오르면 눈 아래 펼쳐진 호수에 잠긴 산자락이 마치 악어가 무리 지어 물을 마시는 모습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 온몸으로 淸風明月을 느끼다 ⓒ 2014 한국의산천

 

 제천 월악산의 능선이 낮아지다가 청풍호 월악나루 쪽에서 살짝 일으켜 세운 봉우리쯤에 악어산이 있다. 식당 맞은편 도로를 건너서 플라스틱 펜스를 지나서 가파른 산길을 지나서 부드러운 소나무 숲 능선길로 접어들어 약 40분 가량 오르면 청풍호에 잠긴 산자락이 마치 악어가 물 마시는 형상으로 호수 중앙으로 모여들고있는 풍경을 볼수있다.

 

▲ 한반도 내륙 중원에 위치해 청풍호반으로 불리며 천혜의 비경과 절경을 자랑하는 충주호. 그곳에 서면 언제 어느 때고 가슴이 확 틔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정상에 닿기 전에는 빽빽한 소나무 숲이 시선을 가려 좀처럼 호수가 내려다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정상에 서면 비로소 청풍호를 바라보는 시야가 탁 트인다. 발아래로 호반옆으로 도로가 지나고, 그 위쪽으로 산자락의 낮고 긴 능선들이 앞다퉈 청풍호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악어가 물을 마시러 나온 형국이다.

 

 

  악어산이란 이름이 산의 형세가 아니라, 그 산에 들어 내려다보는 풍경을 따서 붙여진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이름 그대로 청풍호의 호반은 우글우글 악어로 가득하다. 바다로 치자면 리아스식 해안과 비슷한 셈인데, 가는 능선의 자락이 호수를 들고 나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장쾌하게 27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경을 대하면 처음에는 무엇부터 봐야 할지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다가 호반의 마을이며, 초록으로 반짝이는 밭, 호수에 떠 있는 작은 배들에 하나하나 시선이 가닿게 된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잘라낸 부분의 풍경들은 저마다 다른 감흥으로 다가옵니다.

 

 

대미산(악어산)에서 내려다 본 제천 청풍호 비경

 

▲ 악어때의 모습에 너무 놀라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 2014 한국의산천

 

 

▲ 호수옆으로 우리가 지나온 도로가 굽이 굽이 보입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주차를 하고 출발했던 식당 건물이 손에 잡힐듯 산 아래로 보입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미끄러운 급경사길을 약 20분정도 내려와서 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매점앞에서 정리를하고 서울로 출발합니다 ⓒ 2014 한국의산천

 29353

 

▲ 국보 제6호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일명 중앙탑) ⓒ 2014 한국의산천

  우리 국토의 한가운데라고 말하는 중원(中原) , 중원문화권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탑평리 칠층석탑 (일명 중앙탑) 

문화사적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그 한가운데 우똑 솟아있는 칠층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7개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절제된듯한 심플한 느낌을 주며 미끈하게 솟아있다.

 

중원 탑평리 7층 석탑 (국보 제6호)

소재지: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번지 (중앙공원內)
수 량 1기
규 모 높이 14,5m / 석조(화강암)
시 대 통일신라
지 정 국보 제6호(1934년 8월 27일 지정)

 

  신라가 삼국통일 후 옛 고구려의 세력을 진압한다는 목적으로 세웠다는 탑평리7층탑으로 중앙탑으로도 불린다. 이 탑은 통일 신라 때 이곳이 나라의 중앙임을 나타내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유래담이 전해오는 이곳은 충주일대 중원문화권의 한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존 신라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탑평리 칠층석탑'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국보 제6호로서 신라 원성왕 1년에 건립된 석탑으로 높이 14.5m로, 현재 남아 있는 신라의 석탑으로 최고의 석탑이며 통일신라 때의 중앙에 건립하였다 하여 중앙탑이라고 부른다 한다.

 

▲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 ⓒ 2014 한국의산천  

 

  삼국시대의 중원(中原) 남한강 유역의 중원(中原) 지방은 본래 마한에 속한 지역이었다. 근초고왕 때 백제가 마한을 평정하고 이 지역은 백제에 복속되어 '낭자곡성(娘子谷城)'으로 불리웠다. 그런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혹은 장수왕) 때에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장수왕 63년(A.D 475)에 고구려에 전속되어 '국원성(國原城)'이라고 불렸다. 이에 대하여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원경(中原京)은 본시 고구려의 영토로 이름을 국원성이라 하였다. 이를 신라가 평정하여 진흥왕 때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문무왕 때 성을 쌓았는데 주위가 2천5백92보이다. 경덕왕 때 이를 고치어 중원경이라 하였으니 곧 지금의 충주이다.” 즉, 그 후 신라의 북진 정책으로 진흥왕 14년(A.D 553) 신라에 편입되어 경주의 귀척 자제와 6부 호민을 옮겨 살게 하였고, 진흥왕 34년(A.D 573)에는 소경부(小京府) 또는 사천성(四川省)이라 칭하여 큰 번영을 이루었고, 신라 경덕왕 원년(A.D 742)에 '중원경(中原京)' 또는 '태원(太原)'이라 칭하여 신라의 중앙임을 표방하였다.

  중원(충주)은 남북의 요충지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인 곳이며 예로부터 양질의 철이 생산된 우리나라 3대 철산지 중의 한 곳이었다.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고장이라는 이유로 삼국의 각축장이 되었던 충주는 아직도 그 주변에 많은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탑의 층수는 어떻게 세나? 

탑의 아랫부분은 받침돌, 기단이다. 이 위에서 부터 처마 모양의 지붕돌만 세어보면 된다. 지붕돌이 3개면 3층탑, 5개면 5층탑이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넣기 위한 것이었으나 후에 佛法의 상징물로 변했다. 탑 안에는 사리함 같은 보물을 넣었다. 고(古)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보물이다.

 

  석탑의 구조는 이층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형성하고 그 정상에 상륜부를 구성한 방형 중층의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는 10여 매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 위에 놓였는데 상하층의 면석과 갑석은 모두 여러장의 판석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석탑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상·하 기단부 면석에는 탱주와 우주가 여럿 새겨져 있고, 각 기단 갑석 위에는 호형과 각형의 받침이 2단 있다. 옥신석 모서리에는 각층 모두 우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어 있고 옥개받침은 각층이 모두 5단이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앙화가 있는데 특히 노반이 2개 겹쳐 있는 것이 특이하다. 1917년 해체 복원 때에 6층과 기단 밑에서 신라와 고려시대의 사리구가 발견되어 과거 여러 번의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오늘 왕복 378.9km ⓒ 2014 한국의산천

왕복시간 4시간 / 산행오름길 40분 / 하산길 20분 / 기타 점심식사와 주변 유적지 둘러보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