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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신록의 향연 부천 둘레길 향토유적 숲길

by 한국의산천 2014. 5. 3.

계절의 여왕 오월

신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부천 둘레길 향토유적 숲길 [2014 · 5 · 3 · 하늘색 파란 토요일]

 

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하늘이 푸르고 햇살 좋은 토요일 소사역에서 고강동 선사유적지까지 신록이 가득한 숲길을 또 걷기로 했다.   

 

코스 : 소사역 ~ 시가 있는 숲길 ~ 네거리 쉼터에서 오른쪽길 ~ 청소년수련관/ 베르네천 발원지 ~ 도로지하통로 지나서 오른쪽 ~ 봉배산 ~ 부천수목원 뒤산길 ~ 작동터널 위로 통과 ~ 절골 약수터 (음료수 막걸리 파전 판매) ~ 능고개 ~ 경숙옹주묘역 ~ 경인고속도로 위로 통과 ~ 선사유적지 도착 [약 9km :휴식포함 3시간20분] 

※ 선사유적지 공원에서 소사역까지 5번 버스 이동 (약 15분 소요)

 

 

▲ 소사역에서 나와서 사거리에서 석왕사 방향으로 약 300m 정도 가면 둘레길 입구가 나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인절미에 묻힌 떡 고물처럼 풍요한 맛스럼움을 느끼게하는 눈이 즐거운 이팝나무꽃 ⓒ 2014 한국의산천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 오월을 느끼게하는 대표적인 나무에 피는 꽃이다.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배고파서 잡곡밥도 어렵게 먹던 시절에는 이팝나무 꽃도 흰 쌀밥(이밥)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이팝나무에 관한 전설

  옛날에 가난한 선비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서 일어나질 못했답니다. 어느날 어머니께서는 흰 쌀밥이 먹고 싶다고 하시기에 선비는 쌀 독에 조금 남은 쌀을 가지고 밥을 지어서 어머니를 드리고 자신은 마당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 하얀 꽃을 듬뿍 따서 밥그릇에 담았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밥그릇을 보면서 하얀 쌀밥이 먹음직하구나하시면서 흐믓해하시고 오랜만에 흰 쌀밥을 맛있게 드셨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임금님께서는 크게 감동하시어 큰 상을 내렸답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그 나무를 이밥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밥나무는 이팝나무로 불리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 원미산으로 오르는 부천 둘레길 입구입니다 ⓒ  2014 한국의산천

 

 

 걷기는 존재에 비추어 보면 별것 아니어서 대개는 기억 속에 덧없는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본질적인 소박함 속에서 삶의 의욕을 키우는 힘이 있다.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이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페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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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낭을 메고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 ⓒ 2014 한국의산천

 

   길을 떠남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짐을 지니고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래동안 여행자의 근심거리로 대두된다. 필요한 물건들을 측정하는 데는 저마다 다른 정통한 연금술이 요구된다. 짐을 너무 무겁게 꾸미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지나치게 인색한 짐을 꾸렸다가는 조만간 어느 순간에 가서 꼭 필요한 것이 수중에 없어 곤경에 빠질 위험이 있다. 여행의 안락은 짐을 잘 꾸리느냐 못 꾸리느냐에 달려있다.

 

▲ 네거리 쉼터 ⓒ 2014 한국의산천

이곳에서 정면(북쪽)으로 난 길은 원미정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키높은 나무와 숲이 우거진 둘레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산 전체가 요원같은 화원이요, 벽공에 외연히 솟은 봉봉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 오른 한떨기의 꽃송이다.

 

 

 

▲ 봄소풍 나온 어린이들 ⓒ 2014 한국의산천

땅은 언제나 살아있고 관능적이다.산, 바위, 사막, 별들, 어둠, 인간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여행자와 함께 움직이며 공명한다.

 

▲ 현재의 위치는 청소년 수련관이다 ⓒ 2014 한국의산천

 

 

 

▲ 청소년수련관에서 베르네천을 따라 내려오다가 도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통로길 (왼쪽)으로 접어들어서 도로를 통과한 후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간다

 

▲ 지하통로길을 나와서 오른쪽(역곡안동네)으로 길을 따라 간다

 

▲ 약 300m 정도 이동하면 이정표가 있으며 봉배산을 향해 오른다  

 

 

▲ 부천수목원 뒤쪽으로 이어져가는 능선입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작동터널위를 지나서 까치울 정수장 방향으로 갑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큰 나무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산객들 ⓒ 2014 한국의산천

 

▲ 국기봉쪽은 구로올레길입니다. 부천향토유적 답사길은 능고개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절골 약수터 부근에 있는 간이주점 ⓒ 2014 한국의산천

절골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에서 절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절골 설화'는 오정구 작동(鵲洞)의 절골이란 명칭에 대한 지명유래담이다. 절골은 작동 까치울에서 서울 양천구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서 올라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조선지지(朝鮮地誌)'에는 사곡(寺谷)이라 표기되어 있다.

 

  부천시 오정구 까치울 골짜기에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 빈대가 많이 나오자 중이 절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유학자들이 불교를 폄시하였다. 빈대로 비유되는 유학자들이 증가하면서 중이 도망하자 사찰이 멸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빈대 때문에 절이 망했다고 하여 빈대터라고도 한다. 지금도 곳곳에 있는 빈대터는 절이 번성하다가 없어진 곳이며, 전국에 산재해 있는 절골은 모두 절에 얽혀 있는 이야기가 반영되어 생겨난 지명이다. 경상북도 청송군의 주왕산에 있는 '절골 계곡'과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의 '절골 계곡'이 대표적인 '절골'이다.

 

▲ 절골 간이휴게소에서 지양마을 이정표 방향으로 갑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부천과 신월동을 이어주는 능고개의 터널이 완공되었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부천과 신월동을 이어주는 능고개 위로 도보통행이 다시 가능해졌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한동안 공사로 인하여 돌아다니느라 불편하였는데 이제는 생태통로겸 등산로로 연결됭 편리해 졌습니다

 

▲ 능고개 터널 위에서 본 신월동 방향 ⓒ 2014 한국의산천

 

▲ 능고개 터널 위에서 본 부천 작동 방향 ⓒ 2014 한국의산천

 

▲ 능고개에서 계속해서 경숙옹주묘역으로 이동합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경숙옹주묘역 안내문 ⓒ 2014 한국의산천

 능고개의 터널공사가 완공되고 터널위로 생태통로가 연결되고 나서는 경숙옹주의 묘역을 보려면 일부러 산 아래로 약 300m 정도 내려가야한다.

 

 

 

조선의 9대왕 성종의 5번째 딸 경숙옹주(敬淑翁主)

본관은 전주(全州). 성종(成宗)과 성종의 열 번째 후궁인 숙의김씨(淑儀金氏) 사이에서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여천위(驪川尉) 민자방(閔子芳)과 혼인하여 아들 민희열(閔希說)을 두었다.

 

  경숙옹주 묘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67-2에 민자방 묘와 나란히 있으며, 호석이 둘러져 있다. 묘역은 1단으로 조성되어 있고, 비석·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망주석(望柱石)·장명등(長明燈)·문인석(文人石)의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비문은 이들이 타계한 지 150여 년이 지난 1643년(인조 21)에 외손이 썼다고 전한다.

 

 

 ▲ 경숙옹주의 묘석 ⓒ 2014 한국의산천

정비석님의 수필 산정무한의 한귀절이 떠오른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던가.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 길이 여러갈레로 나눠지지만 선사유적지 팻말을 따르면 된다 ⓒ 2014 한국의산천

 

 

▲ 국가시설물 담장을 끼고 나란히 길이 이어집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느려도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걷는다 ⓒ 2014 한국의산천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질수록 마음 속에는 끝없는 공허함만 생길 뿐이다.

걷는것 또한 이와 비슷하다. 걸으면 걸을 수록 한없이 걷고 싶어진다. 참 괜찮은 중독이다.    

 

▲ 습관은 무서운것! 팔을 다쳐서 스틱을 사용하기 어렵다. 스틱없이 그냥 걷자니 전보다 무언가 허전하다 ⓒ 2014 한국의산천 

 

  목적지를 향해서 갈때는 걷는것보다 멈추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초라한 침상이 푹신푹신하게 느껴질 정도로 피곤을 맛보고 시장기가 별 볼일없는 자연의 음식에 달콤한 양념이 되어 줄 정도로 배를 곯아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왔다 ⓒ 2014 한국의산천

 

  이곳에서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곳이다. 선사시대(先史時代)란 원시인들이 사용한 연모로 나누는 시대 구분으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역사를 말한다. 인간이 처음 출현한 때로부터 글자가 만들어져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바로 전까지를 말하는데, 이 기간은 수백만 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95% 이상을 차지하는 긴 시간이다.

  이 기나긴 선사시대를 몇 개의 시대로 다시 구분하는데 구석기와 중석기·신석기, 그리고 청동기와 철기시대가 그것이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1836년 덴마크의 학자 톰센이 처음으로 제안하였는데, 그때는 석기와 청동기·철기의 세 시대로만 구별하였다. 그러나 석기도 먼저 사용한 사람들의 것은 거칠고 투박하였으며, 후세 사람들이 사용한 것은 매우 세련되었으므로 신구(新舊)로 나누게 되니, 1865년 영국의 학자 러복에 의하여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뉘게 되었다.

 

 

▲ 이곳 경인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지나면 오늘 일정은 마감하게 된다 ⓒ 2014 한국의산천 

 

▲ 김포공항을 향해 손에 잡힐 듯 고도를 낮춰서 낮게 날아가는 항공기 ⓒ 2014 한국의산천

 

 

 

 

▲ 고가옹 선사유적지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철쭉이 핀 선사시대유적지공원 ⓒ 2014 한국의산천

 

 

▲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지 ⓒ 2014 한국의산천


  이미 도시화가 진행된 부천에 대규모 청동기 시대 취락유적지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1995년 여름, 고강동 장갯마을 뒷산(청용산)에서 반달돌칼, 돌창 등이 주민들에 의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작업을 통해 12기에 달하는 청동기 시대 장방형 주거지(움집터)와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6기의 석곽묘도 발굴조사 됐다.

 

  고강동 선사유적지에서는 무문토기, 호형토기, 발형토기 등 토기류와 마제석검, 마제석창, 마제석촉, 반월형석도, 방추차, 자귀, 석봉 등 석기류, 기타 옥제 장신구, 토제 어망추 등 1백1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005년까지 제7차 발굴 조사 작업이 진행된 고강동 선사유적은 한강변의 선사문화와 고대사회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고,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 복원이라는 고고학계의 커다란 숙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유적이다.

 

 

 

 

 

 

 

 

▲ 모든 목적지는 다시 길을 떠나기에 적합하다. 부천 소사역에서 출발하여 선사유적지 도착 ⓒ 2014 한국의산천

 

 

▲ 선사시대 유적 공원에도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모든 길은 우선 자신의 내면에 묻혀 있다가 발길 아래로 기울고 특정한 목적지로 이끌기 전에 자신에게로 이끈다. 그리고 때로는 마침내 자아의 행복한 변화에 도달하는 좁은 문을 열어준다.  지구를 태연한 마음으로 한바퀴 돌고나면 우리는 어느 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 올것이다. 그리하여 또 다른 여행의 준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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