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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홍천강 응아지 나루

by 한국의산천 2012. 6. 13.

홍천강 ( 洪 : 큰물홍 / 川 : 내천 - 큰물이 흐르는 고을 ) 

 

산넘고 강을 건너 응아지 나루 가는길 (모곡에서 응아지나루까지 왕복 70km / 응아지 임도 업힐 은근히 빡세다 )

굽이지며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 흰모래 하얀 조약돌이 지천인 자연 그대로의 江스러운 江.

 

 

 

 

 

▲ 이글님, 맑은샘님과 홍천강 답사 라이딩 ⓒ 2012 한국의산천

 

유장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江과 산길...특히 강변길이 기억에 남는 라이딩이었다.

  

'차를 마시는 법은 客이 많으면 수선스럽고 수선스러우면  아늑한 정취가 없어진다.

홀로 마시면 신묘하고, 둘이서 마시면  좋고, 서넛이 마시면 유쾌하고, 대여섯이 마시면 덤덤하고,  칠팔인이 마시면 나눠먹이와 같다'

 - 초의선사(艸衣禪師.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에서 -

 

등산이나 자전거여행 또한 그렇게 느끼기에 자연을 즐기기에는 많은 인원이 이동하는것보다 단촐한 인원이 좋다. 

 

 

▲ 굽이치며 사행천을 이루는 홍천강. 다음 라이딩 코스는 장항리 굴지리방향으로 라이딩 합니다 ⓒ 2012 한국의산천

 

홍천강 라이딩 답사는 계속 진행합니다 (다음 라이딩은 도사곡리 ~ 장항리 ~ 홍천강의 백미 굴지리~ 북방 강재구소령 기념관 ~ 홍천으로 이동합니다 ※ 아래지도 참조)

 

육지속의 섬 노일리 

오래전 이곳은 강물이 산굽이를 돌며 외지에서 이곳으로 접근하기란 여간 어려운곳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오지중의 오지 노일리. 지금은 강과 강사이를 잇는 다리가 놓아지고 강옆으로는 길이 뚫였다.    

 

금계천이 홍천강과 만나는 ‘어룡와지(魚龍臥池)’ 응아지 나루는 오래된 미래처럼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 뿐이며, 다만 먼 길을 가는 물소리만이 노일강에 물들고 있다.

 

 

▲ 지난번 며느리고개임도 라이딩시에 출발했던 월드아파트에서 임도를 따라 시작합니다 ⓒ 2012 한국의산천

 

 

▲ 여행이란 눈에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과의 대화. 짧은 여행 긴 여운이 좋아서 길을 나선다.ⓒ 2012 한국의산천

 

여름에는 밀려드는 피서객으로 홍천강일대는 늘 붐비는 곳이다

홍천은 서울에서 가까운 강원도 땅이면서도 ‘근대화’ 바람은 가장 더디게 불었다.

그동안 홍천은 동해안으로 가는 통과 지점이었다. 주민들이 “동서 300리”라고 말하는 홍천은 지리상으로도 영동과 영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같은 고장인데도 기후가 다르고 말이 다르다. 백두대간 험산준령에 기대고 사는 동쪽 사람들은 거센 영동지방 사투리를 쓰고, 서쪽 사람들은 부드러운 경기도 말씨에 더 가깝다. 동쪽과 서쪽의 표고차 때문에 기후도 5℃ 이상은 차이가 난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 (龍水里)

 

용수리
북쪽과 동쪽으로 용수천이 흐른다. 서쪽으로는 매봉산 자락이 펼쳐져는 중산간지역으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응아지, 장독벼루, 대촌 등이 있다.

 

응아지는  어룡와지(魚龍臥池)라고도 부르는데, 이 마을에 응아지라는 못에서 유래되었다. 이 연못에는 용이 있었다고 전해져내려온다.

 

장독벼루는 홍천강 건너 벼랑아래에 있는 마을로 벼랑의 모양이 장독과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샛골 또는 간곡(間谷)이라고도 부른다. 용수리(龍水里)는 이전에는  앞 산이 둘로 나누어져 그 사이로 홍천강물이 흘러 용수 마을을 돌아서 흘러갔는데, 용소에서 용이 나와서 산을 한데 합하여 강물이 장독벼루 쪽으로 곧게 흐르게 됐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 홍천강물은 평탄하게 서서히 아래로 흐르지만 강옆 도로는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다. ⓒ 2012 한국의산천   

 

 

▲ 홍천강변은 이름을 아는 들꽃과 이름모를 들꽃으로 가득하다 ⓒ 2012 한국의산천


홍천강 탐사기행

 

홍천강에서 재즈를 듣다 [출처 : 홍천 뉴스]
 

물은 흘러간다.
흘러가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바다가 되어 둥그런 수평선이 된다.
미약골 모두부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벌력의 강이었고 남천이었고 화양강이었다.
이 강에서 아버지가 살았고 어머니가 살았고 그 아들딸이 살았고 또 그 아들과 딸들이 살아 산이 되고 물이 되어 또 살았다.  


물이 알고 있는 낮은 곳이란 곳
물은 낮은 곳을 애써 찾지 않으며 높은 곳을 탐하지 않으며 부끄럽지 않게 품고 돌아 흐르는 것이리니 그 구비가 땅이 되고 하늘이 되고 태극이 되고 삼라만상이 되고 내가 되고 네가 되고 우리가 되는 것 아니더냐

 

 

▲ 양덕원천이 합류하는곳에 응아지나루가 있다

  ⓒ 2012 한국의산천

 

강을 따라 걸으면서 강에 귀의한다. 
무색무취의 빛으로 탄주하는 물의 맑은소리에 귀의한다. 강물소리에 귀를 열고 심연의 푸르른 물빛에 마음을 연다. 마른 논에 물이 들듯 눈을 감고 몸 안으로 스미는 소리를 듣는다.
끝을 보고 흐르지 않는 묵언의 몸짓은 그냥 흐른다.  흐르다 깊어지면 소를 이루고 여울을 만나면 음악이 된다. 
재즈가 된다.


강이 내준  돌다리를 건너다가 강물이 씻어 놓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물속의 하늘과 그 하늘의 고요를 마음에 들여 놓는다.
홍천강 기행을 쓰면서 가끔 전화를 받았다. 홍천강에 놀러가려고 하는데 추천해달라는 것이다. 물놀이도 즐기고 고기도 잡아먹을 수 있는 깨끗한 곳을 좀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그런 곳이라면 홍천강 어디든 자리를 펴도 좋다.
그러나 정말 강을 즐기려면 물과 함께 여행을 떠나라 권한다.

 

 

▲ 홍천강 응아지나루를 배경으로 ⓒ 2012 한국의산천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땅, 무궁화의 고장 그리고 내가 3년간 국방의 의무를 다하였던 곳 洪川

 강원 영서내륙의 중심. 홍천에서 발원해 홍천에서 끝나는 맑고 깨끗한 홍천강과 백두대간의 원시림이 잘 보존된 청정지대다.

나라꽃 무궁화를 널리 보급한 충절의 고장. 청정성과 환경성이 뛰어난 홍천.

 

조선 초기의 문신인 서거정은 <학명루기>에 ‘홍천은 산과 물이 둘러있고, 깊고 궁벽한 곳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졌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 홍천은 더 이상 깊고 궁벽한 곳이 아니다.

4차선으로 넓어진 44번 국도와 남북을 잇는 중앙고속도로가 홍천을 통과하고, 수도권과 동해안을 잇는 동서고속도로도 올해 개통 예정이다. 홍천에 들어서면 곳곳에 '새로운 변화, 생동하는 홍천'이라는 광고판이 서 있다.

 

 

▲ 더운날이지만 강바람과 계곡풍이 불어와 시원하게 달렸습니다 ⓒ 2012 한국의산천

 

‘재즈 같은 홍천강의 리버로드’
자전거를 타고가도 좋고 걸어가도 좋다. 의미를 두지 말고 천천히 흐르는 강물처럼 저녁노을과 함께 떠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연봉다리를 건넌다.  그리고 강둑을 따라 간다. ‘송학정’을 지나고 ‘배무기’를 지나 ‘둔지모테’를 지나 다리를 건너 ‘하화계리 사둔지’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제부터 홍천강의 리버로드가 이어진다. 
강이 들려주는 재즈 같은 리듬이 싱그럽다.

 

 


북방면 하화계리는 그 일대가 구석기시대의 박물관이다. 중앙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 한국의 중석기시대의 유물인 흑요석제 석기들이 출토 된 곳이며, ‘작은 솔밭’일대의 국도 5호선의 확포장공사에서도 10만년 전 이상의 것으로 추정되는 전기구석기를 비롯하여, 중기 구석기, 후기 구석기, 중석기 시대 등 4개시기의 유물이  500여점이 출토된 곳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화계리에는 어떤 안내문도 전시공간도 없다. 그 일부가 무궁화공원의 홍천사료관에 몇 점 전시된 것이 고작이다. 


왜 구석기인들은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당시의 구석기인들은 수렵생활이 편리하고 농사를 짓기에 수월한 이곳에 모여 살았다. 홍천강이 쌓아올린 퇴적층과 강에는 물고기가 풍부했다. 또 큰 산이 이어져 있어 사냥감이 많았다. 이곳에서 나온 유물들 중 상당수가 어업 수렵활동의 도구들이란 점에서 홍천강변에서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일대에 ‘송학정’을 중심으로 한 삼림욕장이 개설될 예정이라고 하지만 이왕이면 구석기 시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석기시대 체험장도 함께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작은 솔밭’과 ‘새둔지’를 돌아 강 길을 따라 내려오면 ‘사단 사령부 휴양소’다. ‘도둔보’가 가둔 물빛이 푸르다. 너무 진하지도 않고 탁하지 않은 맑은 빛의 물. 그 물에 봄빛이 어린다.

 

 


강 건너 ‘하이트맥주’가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 이곳에는 겨울이면 섶다리가 놓였고 여름에는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 ‘도둔’과 ‘소단이’를 건너다니던 이 나루는 ‘소매곡’을 지나 ‘더운김내리’ 앞을 돌아 올라온 배들이 돛을 내리고 한숨 쉬었다 가기도 했다.


그 쉴 참에 ‘도둔’뿐만 아니라 ‘소단이’, ‘돌터거리’ 사람들이 나루로 모여들어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 후 이 자리에 1958년 ‘공굴다리’가 놓였는데 잠수교였고 하이트맥주가 들어오면서 철거 되었다.


하이트맥주가 들어서면서 견학 오는 탐방객들과  도둔을 중심으로 한 홍천강변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아졌다. 여름이면 물에 들어서서 견지낚시를 하는 등 여유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성동천 어귀를 지나 ‘이괄이훈련장’(상화계 앞 내 건너 산-이곳에 소학정(巢鶴亭)터가 있다)을 감고 도는 강가에는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여름밤에는 기타소리가 별밤을 밝히기도 하는 곳이다.

 

 


강 건너는 ‘소매곡리 더운김내기’다. 이곳에 ‘홍천온천’이 자리한다. 옛날부터 추운 겨울에도 16℃이상의 더운 물이 나와 피부병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개발한 끝에 1987년에는 ‘홍천온천 원탕’이 문을 열었고, 그후 ‘홍천온천 썬스파 리조트’가 문을 열었다. 하루 내방객이 천명에 이르게 되자 홍천군은 온천입구에 농산물 판매장을 열기도 했다.

 

‘홍천온천’은 병풍처럼 둘러친 산과 거울같이 맑은 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겨울에는 눈썰매장이 여름에는 홍천강 레프팅을 즐기고 또한 알칼리성의 중탄산나트륨이 다량 포함된 온천수로 피부건강을 지킬 수 있어 여행의 참 멋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북방을 실핏줄처럼 이어주는 개울은 크게 ‘성동천’과 ‘능평천’이다.   


‘대룡산’과 ‘연엽산’, ‘구절산’에서 흘러오는 ‘성동천’은 동양최대의 아미타 불상을 모신 ‘연화사’와 대한민국 최대규모의 ‘강원도 자연환경연구공원’, 살신성인의 표상인 ‘강재구 공원’이 있어 자연과 명상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성동리 성골’은 ‘장수촌’이라 이름이 나기도 했다.
실제로 ‘성골’(자연환경연구공원)어귀의 안정도(작고)씨는 장수촌의 살아있는 전설로 쟁기질을 하다가 소가 지치면 자신이 쟁기를 둘러메고 밭을 갈았을 만큼 장사였다고 한다. 


‘부사원 진골’과 ‘막은내밋골’, ‘방울고개’에서 시원을 이룬 ‘능평개울’은 ‘능평뜰’을 가로질러 흐른다. 특히 능뜰에는 ‘연산군묘’(이조 제 7대 세종 때 정랑공신 연산군 김효성의 묘)가 있고 신도비가 있다. 하이트맥주에서 홍천온천으로 건너는 길은 없다. 그러나 산밑을 돌아 ‘소매곡리’로 들어갈 수 있다.

다시 ‘도둔나루’(지금은 하이트교가 놓였다)를 돌아 ‘굴결’을 넘어 ‘소매곡’으로 들어섰다. 다리위에서 바라보는 강은 그 자체가 비단결처럼 곱다… 중앙고속도로가 왼편으로 지나고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여울에선 재즈가 흘러나온다.

 

 

 


‘산구내미’를 돌아드는 여울을 바라보며 ‘도사곡리’로 들어서는 길은 벼랑을 끼고 서낭고개를 넘게 된다. 서낭당 고개를 오르면 ‘문들’을 감고 도는 강물줄기가 ‘굴지리’로 이어지고 고개 아래에는 ‘천냥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머슴이 동네에 사는 친구한테 천 냥의 돈을 빌려 쓰고 갚지 못했다. 자신의 형편으로는 어떤 방법으로도 갚을 수 없게 되자 하루는 친구를 이 바위로 불러내어 술잔을 나누며 ‘내 이제 자네에게 진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어 이 바위에서 떨어져 죽고 말겠네’ 라고하자 바위에서 떨어지려는 친구를 만류하며, ‘이 사람아 아무리 빚을 갚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자네의 목숨을 원하겠나? 나중에 돈을 벌면 갚도록 하고 제발 목숨은 버리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그 후로 두 친구 사이가 더욱 두터워졌음은 두말할 것도 없고 열심히 돈을 벌어 빚을 갚았다고 한다.


‘천냥바위’와 ‘산구내미’를 감도는 물빛은 봄이면 철쭉이 얼비추고 가을이면 단풍과 조화를 이루어 타는 듯 붉다. ‘문들’에서 ‘굴지리’로 건너는 줄 배가 있었지만 큰 물에 떠내려가고, 지금은 ‘서낭당고개’에서 굴지리로 건너는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도사곡리’와 ‘굴지리’로 이어지는 비경은  홍천강의 백미

 

서면의 강을 백사장이 아름다운 강이라한다면 도사곡리나 굴지리 장항리는 산과 바위와 강이 어우러진 강이다. 그중에서도 ‘도사곡리’와 ‘굴지리’로 이어지는 비경은  홍천강의 백미다.


굴지리에서는 강을 배경으로 한 비경 여덟 곳을 정하여 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굴지천의 철쭉이 강안의 바위를 붉게 물들이며 활짝 피어날 때쯤 ‘괴바우’와 괴바우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백사장과 어우러져 흠뻑 빠져들게 한다.


푸른빛의 강물은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으며 또한 무서움을 주지 않는다. 그 강을 따라 이어지는 강안에는 왜가리와 중대백로가 물고기를 기다리기도 하며, 족대를 들고 돌을 뒤집으며 고기를 잡거나 낚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굴지리’를 돌아들어 ‘장항리’로 이어지는 길은 비포장 도로다.


‘장항리(獐項里)’는 ‘노루목’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도사곡’에서 ‘굴지리’를 거쳐 굽이굽이 흘러온 강물이 장항리에 와서 노루목처럼 길고 넓고 깊게 흐르다가 다시 남노일강에 이르러 굽이치며 흐른다.


홍천강을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금학산’은 ‘팔봉산’과 함께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이다. 금학산은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제3회 지역자원 경연대회에서 당당히 금상에 선정되었을 만큼 조망이 아름다운 산이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지만 ‘여호내고개’에서 산행들머리를 잡으면 좌우로 이어지는 홍천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 태극문양의 상단 왼쪽길이 장항리~ 굴지리 가는 길이며 상단 정면쪽(남동방향)은 양덕원 용수리로 가는 길입니다 ⓒ 2012 한국의산천    

 

또한 정상에 오르면 남노일리의 ‘고주암’과 ‘위안터’를 감고 도는 거대한 수태극 문양의 홍천강을 볼 수 있다. 
금학산에는 ‘용수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었다. 홍천용씨의 시조가 된 ‘용득의’가 지은 ‘용수사’는 금학산자락 절골에 자리를 잡았는데 지금도 그 터에는 절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학서루(鶴棲樓)’를 지어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남아있는 자료는 찾을 수 없다.  


‘남노일’은 원래 북방면 지역이었으나 ‘용수 모래나드리’에서 징검다리를 건너가야만 했으므로 남면으로 편입된 곳이다.
마을 앞으로는 홍천강이 감싸고 뒤로는 금학산이 에두른 곳이라 섬처럼 아늑하고 외딴 곳이다. 

마을의 중심이 되는 고두암(고드래미)에는 큰 바위가 있다하며 건너편 ‘위안터’는 마을 앞에 ‘금학산’이 솟아있고 냇물이 흘러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홍천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홍천강 리버로드가 이어지면서 ‘위안터’는 새로운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남면은 원래 ‘금물산면’이다. 금물산은 홍천, 양평, 횡성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넓게 어깨를 펼친 형상이다. ‘시동’을 가로지르는 ‘금계천’은 ‘오음산’과 ‘금물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개울이다.


옛날에는 ‘시동’이 남면의 중심이었을 만큼 너른 뜰을 가졌다. 지금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곳곳에 사격장이 자리하고 있어 가끔씩 총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매화산’을 중심으로 시를 짓는 선비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 하여 ‘시동(詩洞)’이라 했다.
금계천의 아름다움을 두고 시동의 시객들은 곳곳에 시문을 남겼다고 하는데 찾을 수는 없고 다만 곳곳을 찾아다니며 산천경계를 즐긴 시동팔경이 남아있다.
팔경의 으뜸은 삼성서당의 시 읊는 소리이고 풍악들의 논매는 소리, 소리개뜰의 풍년경지, 금계천의 고기잡이 횃불, 미봉산의 월출, 인적산의 저녁놀, 금물산의 가을단풍 그리고 매화산의 설경을 꼽는다. ‘신대리’는 홍천배의 본 고장이다. 그러나 신대리의 역사는 고려말에 닿아있다.

 

신대리에는 ‘숨어지내기 좋다’는 의미로 ‘동은’(동거른 다리:東隱), ‘서은’(서거른다리:西隱),‘하은’ 등 작은 부락이 있고, ‘밭귀너미고개’(발귀현, 새터고개, 발기고개)를 넘어 양평군 ‘신대리’로 넘나들던 고개가 있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면 ‘망덕산’이 보이는데 고려말 왕(王)씨들이 피난와 살면서 고려의 옛 서울 송도가 그리워 ‘발기고개’까지 왔다가 저녁이면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손들의 묘가 아직도 ‘망덕산’ 곳곳에 있다.

 

 

▲ 이곳의 얕은곳을 골라 자전거를 메고 건너야지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큰 교량이 놓여있다. 다리가 없었으면 자연 그대로 더 좋았을텐데... ⓒ 2012 한국의산천


신대리의 주산은 금물산의 능선이 이어지는 시루봉이다. 봉우리는 작지만 골짜기안으로 들어가면 섬바위를 비롯해 놀기좋은 곳이 있고, 두릅이며 나물, 송이 등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것을 베푸는 산이다.

신대리의 ‘창말’은 홍천의 ‘남창’이 있던 마을로 매화산 등산의 들머리가 되고 있고, 유목정 뒤편의 인적산은 임진왜란 때 마을사람들이 이 산속에 피난을 왔다가 왜놈들에게 발각이 되어 무참히 학살당하여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적산의 천년바위와 거북바위는 인적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좋은 볼거리가 되고 있다.
홍천과 양평의 경계를 이루는 ‘신당고개마루’에는 휴게소가 자리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성황신을 모신 당집이 있었으며 ‘두루봉’에는 봉화터가 남아있다.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큰 갈기골과 작은 갈기골은 유목정 뜰의 젖줄이다. 

 

 


‘화전리’는 신선들이 꽃을 가꾸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마을인 만큼 골짜기도 많고 봄에는 골짜기마다 꽃이 지천이다. 화전리의 봄나들이는 ‘봄놀이’를 찾는 일부터 시작된다. ‘봄놀이의 약수’는 만병통치로 알려져 있으며 화전리의 웃과우에는 황금전나무가 전해오고있지만 만나지는 못하고 마을 한가운데 오래된 전나무가 서있다.


금물산 자락의 마을을 돌아 흐르는 개울물이 양덕원에서 모여 오리청정농법의 뜰 ‘명동’을 거쳐 제곡 - 용수를 지나는 산협의 물줄기는 수정처럼 아름답다.

 

강물이 자연의 몸짓을 거스르지 않듯이 제곡리는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최승희
는 제곡리 옻나무재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이고 뱅글뱅글 도는 춤을 추기도 했다고 한다.   
‘금계천’이 홍천강과 만나는 ‘어룡와지(魚龍臥池)’ 응아지 나루는 오래된 미래처럼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 뿐이며, 다만 먼 길을 가는 물소리만이 노일강에 물들고 있다.   

 
남노일은 육지속의 섬이다. 지금은 소매곡리부터 이어지는 리버로드가 있어 강과 함께 흘러들듯 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산을 넘고 넘어 가야만 했다. 겨울이 오고 강에 얼음이 꽝꽝 얼어야 읍내 장이라도 보러 나왔을 정도다.

 

 

▲ 홍천강과 나란히 남노일리로 향한다 ⓒ 2012 한국의산천  

MTB의 가장 큰 장점은 강이든 산이든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점이다.


홍천군에서 유일하게 길이 이어지지 않은 곳이 ‘위안터’였는데, 위안터 사람들은 쪽배를 타고 건너다니거나 섶다리를 건너다녀야 했다. 최근에 고드래미 위안터 북노일을 잇는 리버로드가 열리면서 홍천강 400리 물길 여행은 여유와 낭만 그리고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테마로드가 되고 있다.


‘노을강에서 재즈를 듣다’는 시를 다시 읽는다.

‘그대는 이 강을 따라 떠났고 물결처럼 남은 사랑만이/ 내 가슴에 와 뒤척인다 은밀하게 상처속에 남아 있는/ 고독은 미루나무 숲 그늘 아래 서성이게 하리라/ 밤새의 울음이 적막하게 둥글어지고/ 나는 나무의 저쪽에서 또는/ 물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메아리를 듣는다/ 내 사랑은 아직도 강가를 서성인다’
‘노을강에서 재즈를 듣다’ 중에서

나는 이별을 예감하고 이 강가에 와 소리 내어 운적이 있다. [출처 : 홍천뉴스]

 

 

 

홍천은 동쪽 서쪽의 말과 기후가 다르다

강원도 영서 내륙의 중앙에 자리한 홍천군은 전국 기조자치단체 중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다. 서울특별시의 3배 넓이이며 강원도의 10.7%에 달한다. 홍천은 동쪽은 높고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산지가 군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홍천은 고구려시대 벌력천현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녹효현이라 했으며, 고려시대에 홍천현이 됐다. 동쪽은 양양군과 강릉시, 서쪽은 가평·양평군, 남쪽은 횡성·평창군, 북쪽은 춘천시와 인제군에 각각 접한다.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에서 발원해 홍천 중앙부를 지나 북한강 청평호로 흘러드는 홍천강은 예부터 홍천의 가장 큰 젖줄이자 영동과 영서를 잇는 수운(水運)의 요충지였다.

주민들은 “홍천강은 다른 지역의 물이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청정1급수”라고 자랑한다. 홍천읍을 중심으로 상류지역은 화양강, 하류지역은 홍천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승희는 누구인가

 

 

 

 

◀ 최승희와 손기정


출생 : 1911년 11월 24일 강원도 홍천 또는 경성부
사망 : 1969년 8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분야 : 무용
사조 : 신무용

 

◀ 1936년 하계 올림픽 마라톤 우승 직후 한 음식점에서 최승희와 손기정

 

 

최승희(崔承喜, 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는 한국의 무용가이다. 남편은 좌파 문학평론가 안막이다.

 

생애

강원도 홍천, 또는 경성부 태생이라는 설이 있으며, 서울에서 자라고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6년 일본에 유학하여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에게서 사사 받았다.

무용활동 두차례 일본 유학 이후에 국내에서 독자적인 근대 무용 공연을 가지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게 되었고, 《반도의 무희》(1936)라는 영화에 출연하고, 자서전 《나의 자서전》(1936)을 출간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1930년대 후반에는 수년 동안 칠레 등에서의 해외 순회 공연을 벌이면서 세계적인 명성도 얻었다.

 

북한에서의 예술활동광복 후 남편인 안막을 따라 월북해서 최승희무용연구소(평양특별시)를 세워 소장에 취임하고 공훈배우,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1958년 안막이 숙청되면서 연금 당했다는 설이 나돈 이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나돌았다. 그러나 한설야와 함께 사후 복권된 상태라는 것이 2003년에 확인되었고, 묘지는 애국렬사릉으로 이장되어 있다.

 
무용계의 영향

최승희는 신무용의 창시자로서 한국 무용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작품으로는 〈영산춤〉, 〈에헤라 노아라〉, 〈달밤의 곡〉, 〈반야월성곡〉, 〈우조춤〉, 〈칼춤〉, 〈보살춤〉, 〈초립동〉, 〈고구려 무희〉, 〈광상곡〉, 〈가면의 춤〉, 〈승무〉, 〈인도인의 비애〉, 〈해방을 구하는 사람들〉, 〈방랑인의 설움〉, 〈봉산탈춤〉, 〈유격대의 아들〉 등이 있고, 북조선에서 쓴 저서로 《조선민족무용기본》, 《조선아동무용기본》이 있다.

 

딸 안성희

안막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안성희도 소련에서 발레 유학을 하고 돌아와 북조선에서 무용가 및 안무가로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본군 위문 공연에 참여하고 여러 차례 거액의 국방헌금을 내는 등 일제에 협조한 행적이 있어 친일 논란이 계속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심의가 진행 중이다. 최승희의 국방헌금 헌납은 강요된 것이었으리라는 추측이나, 설혹 친일행위가 사실이더라도 이로 인해 그의 춤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등 일제 강점기의 행적에 문제가 없었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홍천군에서 최승희의 춤 선양사업 등을 한 예정이었으나, 광복회 등 단체와 여론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수상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참고자료정수웅 (2004년 6월 7일). 《최승희 -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어느 무용가의 생애와 예술》. 서울: 눈빛. ISBN 9788974098414
최승희를 연기한 배우들채시라 - 《최승희》(1995년) MBC 드라마
같이 보기무용가최승희기념사업회
“무용가 최승희, 가수 '최승이'와 동일인”, 《뉴시스》, 2007년 8월 23일 작성. 2007년 10월 27일 확인. 
분류: 1911년 태어남1969년 죽음일제 강점기의 무용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용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애국렬사친일인명사전 수록자

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

 

 

 

 

 

 

 

 

▲ 흘러가는 것이 강물인가 내마음인가. 응아지 나루에서 ⓒ 2012 한국의산천

 

응아지나루는 옛적에 강원 내륙과 한양을 잇는 뱃길로서, 세계적인 춤꾼 최승희가 유학을 가기 위해 고향마을(제곡리)에서 10리 길을 걸어 이곳 응아지나루에서 뗏목을 타고 서울로 갔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는 나루터이다.

 

지금은 청평댐이 생기면서 수운은 쇠락하고 나루와 뱃길은 사라졌지만 홍천강 물줄기는 유구한 세월의 변화를 잊은 채 흐르고 있다. 또한 이곳은 홍천군의 9경 중 4경에 속하는 ‘수태극’(홍천강 물줄기가 휘몰아 만든 태극 모양의 지형) 경관으로 어느 작가는 “태극으로 굽이 도는 저 물줄기는 최승희의 춤사위인가”라고 극찬하고 있다.

 

 

 

 

 

 

▲ 맑은 강물이 흐르는 양덕원천과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 응아지나루 ⓒ 2012 한국의산천

 

마지막 나무가 베어 넘어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렵혀진 후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당신들은 알게 될 것이다.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 인디언 크리족의 예언에서- 

 

 

 

 

 

홍천강은 북한강 수계에서 자연 하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강이다.

수산, 반곡, 모곡, 마곡, 개야, 남노일 굴지리 등 강촌마을 ‘유원지’들은 깨끗한 물에 풍성한 모래밭, 자갈밭이 있어 여름철 ‘강수욕장’으로 인기가 높다.

도시를 벗어나 잠깐 사이에 이런 강마을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우리 시대에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행운일지도 모른다.

 

 

▲ 갈길은 멀기만 한데 서산으로 해가 저무네 ⓒ 2012 한국의산천  

쾌락은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지만, 여행은 스스로에게 자신을 끌고가는 하나의 고행이다  -카뮈

 

 

▲ 육지속의 섬 노일리 ⓒ 2012 한국의산천

오래전 이곳은 강물이 산굽이를 돌며 외지에서 이곳으로 접근하기란 여간 어려운곳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오지중의 오지 노일리. 지금은 강과 강사이를 잇는 다리가 놓아지고 강옆으로는 길이 뚫였다.    

 

금계천이 홍천강과 만나는 ‘어룡와지(魚龍臥池)’ 응아지 나루는 오래된 미래처럼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 뿐이며, 다만 먼 길을 가는 물소리만이 노일강에 물들고 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춘향이 마음>(1962) -

 

 

▲ 아직도 갈길은 멀기만 한데... ⓒ 2012 한국의산천

 

떨어지는 나뭇잎은 가을 바람을 원망하지 않으며

산은 자신을 가리는 구름을 탓하지 아니하고

흐르는 저 강물은 굽이를 원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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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하다.  - 노자 도덕경에서

 

대한민국 구석구석 즐겁고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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