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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바람 관련 詩 모음

by 한국의산천 2010. 12. 16.

바람 詩 

 

한편의 詩를 쓴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닐것이다

그렇게 태어났기에 그 詩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울고 웃고 공감을 하지 않겠는가.

 

글이나 또는 시를 씀에 있어서 문예의 길로 가는 어려움을 작가 심훈은 '필경사 잡기'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문예에 뜻을 두었었다. 시를 쓰는 체, 각본을 꾸미는 체하고 영화박이는 흉내도 내고 여러해 보람없는 저널리스트 노릇도 하다가 최근에는...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바늘구멍으로 낙타를 끄집어 내려는 대담함에 식은 땀이 등어리를 적심을 스스로 깨달을 때가 많다.

동시에 더욱이 문예의 길이란 가시밭을 맨발로 밟고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이 가난한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한 십년하고 살을 저미고 뼈를 깎아내는 듯한 노력과 수련을 쌓는 시기가 있어야 비로소 제일보를 내어 디딜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랑성을 다분히 타고난 나는...오늘날까지 정신생활에 있어서도 비현실적인 몽환경을 더듬으며 헤매어 왔다. ...어줍지 않은 사회봉사, 입에 발린 자기희생,그리고 그어떤 주의(이념)에 노예가 되기전에 맨 먼저 너 자신을 응시하여라!  새로운 생활에 말뚝을 모래성 위에 꽂지 말고 질척질척한 진흙 속에다가 박아라. 떡메질을 해서 깊이 깊이 박아라.」(「필경사 잡기」중)

 

 

 

멈추지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삶에 지쳐 세상 끝에 닿았다 생각되더라도 멈추지 말라고 멈추지는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친구 바람에게
     

               - 이해인

나무잎을 스치며 
이상한 피리 소리를 내는
친구 바람이여

잔잔한 바다를 일으켜
파도 속에 숨어 버리는
바람이여
나의 땀을 식혀 주고
나의 졸음 깨우려고
때로는 바쁘게 달려오는
친구 바람이여

얼굴이 없어도
항상 살아 있고
내가 잊고 있어도
내 곁에 먼저 와 있는 너를
나는 오늘 다시 알았단다

잊을 수 없는 친구처럼
나를 흔드는 그리움이
바로 너였음을
다시 알았단다.

 

 

갈 대 

                   - 신경림

언젠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멈추지 말라고
                        -  정공량

멈추지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삶에 지쳐 세상 끝에 닿았다 생각되더라도
멈추지 말라고 멈추지는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길은 어디까지 펼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길은 그 어디까지 우리를 부르는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내일이 있기에 여기 서서
다시 오는 내일을 기다려 봅니다

누가 밀어내는 바람일까
흐느끼듯 이 순간을 돌아가지만
다시 텅 빈 오늘의 시간이 우리 앞에 남겨 집니다
내일은 오늘이 남긴 슬픔이 아닙니다
내일은 다시 꽃 피우라는 말씀입니다
내일은 모든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먼 길입니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바람의 사생활

                                 - 이병률

가을은 차고 물도 차다
둥글고 가혹한 방 여기저기를 떠돌던 내 그림자가
어기적어기적 나뭇잎을 뜯어먹고 한숨을 내쉬었던 순간

그 순간 사내라는 말도 생겼을까
저 먼 옛날 오래 전 오늘
사내라는 말이 솟구친 자리에 서럽고 끝이 무딘
고드름은 매달렸을까

슬픔으로 빚은 품이며 바람 같다 활 같다
그러지 않고는 이리 숨이 찰 수 있나
먼 기차소리라고 하기도 그렇고
비의 냄새라고 하기엔 더 그렇고
계집이란 말은 안팎이 잡히는데
그 무엇이 대신해줄 것 같지 않은
사내라는 말은 서럽고도 차가워
도망가려 버둥거리는 정처를 붙드는 순간
내 손에 뜨거운 피가 밸 것 같다

처음엔 햇빛이 생겼으나 눈빛이 생겼을 것이고
가슴이 생겼으나 심정이 생겨났을 것이다
한 사내가 두 사내가 되고
열 사내를 스물, 백, 천의 사내로 번지게 하고 불살랐던
바람의 습관들

되돌아보면 그 바람을 받아먹고
내 나무에 가지에 피를 돌게 하여
무심히 당신 앞을 수천 년을 흘렀던 것이다
그 바람이 아직 아직 찬란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겨울 - 성낙희

 

황홀하여라.
아우성하던 초록
뿌리로
다 돌아들 오고
빈 가지마다
銀絲처럼 걸리는
빛과 바람.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비로소
이 흰 바람 속에
먼 구름 먼 하늘
언 땅에서 올라오는
청보리 새순
푸른 숨소리까지
아지랑이 여릿여릿
연보라 흔들림까지

 

자연이여,
가장 깊은 어둠에서
가장 밝은 눈부심
층층이 길어올리는
깊은 잠에 안겨서라도
잠들지 않는
고요한 悟性이
황홀하여라.

 

 

 

겨울 - 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 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풍경 소리

         (최새연·아동문학가)

추녀 끝에
물고기 한 마리

죽었을까?
살았을까?

바람이 살짝 건드려 봅니다

땡그랑 땡그랑

물고기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맑고 고운 소리를 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죽은 물고기를
바람이 살려 놓고 갔습니다. 

 


바람은 
          -조동화

바람은
아침 솔숲에
가지런히 머리를 빚고

종일
들판으로 가서
보리밭을 누빈 다음

해질녘
언덕에 올라
억새꽃을 쓰다듬는다.

바람은
저녁 대숲
댓잎들과 수런대다

외딴집
뒤꼍을 넘어가
문풍지도 울려보다가

한밤중
고른 숨소리로
잠이 든다, 고요가 된다.

 

 


바람
                           - 신경림 

                
슭을 돌아서 언 강을 건너서 기름집을 들러
떡볶이집을 들러 처녀애들 맨살의 종아리에 감겼다가
만화방도 기웃대고 비디오방도 들여다보고

큰길을 지나서 장골목에 들어서니
봄나물 두어 무더기 좌판 차린 할머니
스웨터를 들추고 젖가슴을 간질이고
흙먼지를 날리고 종잇조각을 날리고

가로수에 매달려 광고판에 달라붙어
쓸쓸한 소리로 촉촉한 소리로
울면서 얼어붙은 거리를 녹이고
팍팍하게 메마른 말들을 적시고.
  

 

 

바람의 내력

                  -박재삼

천 년 전 불던 바람과
지금의 바람은
다른 것 같지만
늘 같은 가락으로 불어
변한 데라곤 없네
언뜻 느끼기에는
가난한 우리집에
서글피 불던 바람과
저 큰 부잣집에
너그럽게 머물던 바람이
다른 듯 하지만
결국은 똑같네
잘 살펴보게나
안 그렇던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어차피 이 테두리와 같다네

 

 

 

바람이 하는 말  

             - 정연복

 

바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았니

오월의 푸른 잎새들의
갈피마다 살랑대는 바람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말없는 말

흘러라
막힌 데 없이 흘러라

그러면 잎새들은 잠 깨어
깃털처럼 흔들리나니

모양도 빛도 없는
나의 생명의 유일한 힘은

그저 흐름의 힘일 뿐
그것 말고 나는 무(無)일 뿐

 

 

 

사막의 노래

 

강이 있었다

그 강은 머나먼 산에서 시작해 마을과 들판을 지나

마침내 사막에 이르렀다

 

강은 곧 알게 되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그때 사막 한가운데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도 사막을 건널 수 있듯이 강물도 건널 수 있다'.

 

강은 고개를 저었다.

사막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강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바람은 공중을 날 수 있기에

문제없이 사막을 건널 수 있는 것이라고   

 

사막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 바람에게 너 자신을 맡겨라.

너를 증발시켜 바람에 실어라'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강은

차마 자신의 존재를 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바람의 팔에 안겨 실려가던  일이.

 

그리하여  강은 자신을 증발시켜

바람의 다정한 팔에 안겼다. 

바람은 가볍게 수증기를 안고 날아올라

수백 리 떨어진 건너편 산꼭대기에 이르러

살며시 대지에 비를 떨구었다.

 

그래서 강이 여행하는 법은

사막위에 적혀있다는 말이 전해지게 되었다.  - 수피 우화詩 -

 

 

▲ 바람을 마주 보고 서 있으면 역풍이 되지만 바람을 등지고 서면 순풍이 된다.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인생의 방향도 바뀐다 ⓒ 2010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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