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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바람의노래]숨어우는 바람소리

by 한국의산천 2010. 8. 25.

다시 그 길을 찾아 떠나리 !   

 

 

숨어우는 바람소리  

 

28211

 

이제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 들었네.

 

▲ 수원에 있는 화성 ⓒ 2010 한국의산천

정조의 꿈이 서린 화성. 이번 9월중순에 서울 ~ 해남 땅끝을 향해 달릴 때 이 옆을 지나 갈것이다.

 

조가 83세로 승하한 후 뒤를 이은 22대 정조는 1776년 3월10일 영조가 세상을 떠난 지 엿세만에 경희궁 숭정문에서 즉위 당일 빈전 문밖에서 대신들을 소견했다. 그리고 임오년(사도세자가 죽은 해) 이후 하루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한마디를 꺼냈다.    

 

" 아! 과인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아들이다. 선왕께서 종통(宗統)의 중요함을 위하여 나에게 효장세자를 이어받도록 명하셨거니와 아! 전일에 선대왕께서 올린 글에서 '근본을 둘로하지 않는것(不貳本)'에 관한 나의 뜻을 크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즉위 일성(一聲)에 대신들은 경악했다. 특히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물어넣었던 노론은 공포에 휩싸였다. 14년전 뒤주속에서 비참하게 죽은 사도세자가 다시 살아난 듯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월은 가도 아픔은 남아...

영조는 사도세자가 죽은 후 훗날 문득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릴 때 (사도)세자는 실로 성인의 자질이 있었다" 

 

영조는 죽기 한달 전 세손과 대신들에게 사도세자에 대하여 유언을 했다.

 

"차마 들을 수 없고, 차마 제기하지 못하고, 차마 말 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영조는 앞으로 사도세자 사건의 잘잘못을 언급하는자는 역률로 처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영조는 '나의 통석(慟惜)한 마음' 이란 표현으로 그 때의 일을 아픔으로 후회했다.

 

▲ 화성 ⓒ 2010 한국의산천

세종에 버금갈 만큼 수신(修身)과 제가(濟家)에 완벽했던 정조. 

나는 이길을 지나며 역사를 다시 돌아 볼것이다

 

조는 날큼한 칼끝을 두드리며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하라고 명하였다.  

"네가 자결하면 조선 세자의 이름을 잃지 않을것이니 자결하라" 

 

영조는 전에서 내려와 섬돌 위에 앉아 말했다.

"내가 죽으면 3백년 종사가 망하고 네가 죽으면 3백년 종사는 보존 될것이니 네가 죽는 것이 옳다."

이말에 (사도)세자는 통곡했다.

 

세자는 말했다.

"전하께서 칼로 찌르신다해도 신은 칼끝에 놀라지 않을것입니다. 지금 죽기를 청합니다." 이어 세자는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맸고 곧이어 땅에 쓰러졌다. 

 

모두가 (사도)세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세손(정조)이 들어왔다. 당시 세손의 나이는 만 10살이었다. 세손은 아버지 사도세자처럼 관과 도포를 벗고 세자뒤에 엎드렸다. 

 

"할바마마 아비를 살려주옵소서"

 

영조는 말했다.

누가 세손을 데려왔는가? 빨리 데리고 나가라."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날 사관(한림) 임덕제(林德蹄)는 최후의 수단으로 황급히 내전에 연락하여 당시 열한 살의 왕세손(훗날의 정조)을 업어 오게 한 뒤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아버지(사도세자)를 용서해 달라고 빌게 하였다. 세손의 눈물에도 영조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한림 임덕제가 세자 뒤에 엎드려 일어나지 않자 영조가 끌어내라고 명했고, 위사(衛士)들이 달려들자, "내 손은 사필(史筆)을 잡는 손이다. 이 손을 끊을지언정 나를 끌어낼 수는 없다"고 항의했지만...

 

이후 홍봉한이 준비한 뒤주에 (사도)세자를 들어가게 한다음 영조는 직접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잠근 후 큰못을 밖고 동아줄로 뒤주를 봉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전교를 내렸다

"세자를 폐해 서인으로 삼는다." (廢世子爲庶人 自內嚴囚, 遂命世子幽囚 )

 

이 후 삼복더위에 물한모음 먹지 못하던 세자는 8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사도세자의 고백... >>> http://blog.daum.net/koreasan/13737026

과인은 정조의 아들이다 => http://blog.daum.net/koreasan/13691642
지지대비와 정조의 효심 => http://blog.daum.net/koreasan/13675557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지어진 소금창고 ⓒ 2010 한국의산천

금창고는 가까이도, 멀지도 않은 일정하게 적당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우리 인간 사이에도 필요한, 가까이도 아니고 멀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을 가르쳐 주고 있다.

 

서로의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는것을

 

참나무 싸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속에서는 자랄수 없는것을 .....

 

                - 예언자 - 중에서

 

 

 

 

 

▲ 바람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염전 ⓒ 2010 한국의산천

고대의 연금술사처럼, 바닷물을 가두어 햇볕에 말리고 바람에 날리며 하얀 보석을 만들던 못이 이제는 들판의 하릴없는 바람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과 흔들리는 억새 그리고 갈대는 가을 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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