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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2011년 신춘문예 당선작 詩

by 한국의산천 2011. 1. 4.

2011년 신춘문예 詩 당선작 모음 [정리: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  

 

한 줄 詩도 쓰지 못하는 내가 왜 이리 기분이 좋을까?
신춘 문예는 항상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기성 문인들의 문단에서 느끼는것과 다르게 갓따온 햇과일처럼 참신한 개성으로 가득한 신선한 맛을 느끼며 읽어보는 감동이 좋고,

당선된 그들이 너무 너무 부럽기만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보낸 후 쓴 당선 소감에 더 눈길이 간다.

피나는 노력없이 오늘 이러한 영광이 없었으리라.

 

쉬지 않고 공부하는 시인

시인으로서의 멋진 출발을 眞心으로 祝賀드립니다

 

 

※ 2010년도 신춘문예 당선 詩를 보실분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요 >>> http://blog.daum.net/koreasan/15604412

 

▲ 풍성했던 것들이 져버리고만 텅빈 들판이라도 삭막하지는 않다. 詩가 있고 음악이 있으며 그리고 봄이 올것을 알기에... ⓒ 2011한국의산천

 

 

겨 울 나 무   

 

      - 이수인

 

나무도 생각을 한다

벗어버린 허전함에 눈물이 난다

빈가지 세워  올려다 본 회색빛 바다

구름 몇 점 잔잔한   파도를 타고

 

 

아직 남겨진 몇 개의 사연들은  

미련 없이 저 자유의 바다로 보내리라


나무는 제 몸에서 뻗어나간

많은 가지와  그 가지에서 피어나는

꽃과 이파리 열매를  위하여

그 깊고 차가운 어둠 속을 향해 치열하게 

뿌리를 내려가며  고독의 길을 끝없이 간다


인생 그 누구라도 겨울나무처럼   

홀로된 외로움 벗어버린 부끄러움에 

울어보지 않았으리

수없이 많은 사연의 가지를 지니고

여러 갈래의 뿌리를 두르고도 

단 하나의 심장으로만 살아가지 않는가 

      

빈 가지마다  눈꽃  피어났던 자리에

봉긋 봉긋 솟아나는 봄의 푸르름도     

겨울가면 반드시  온다는 진리이기 보다

시련 뒤에  찾아오는  선물이라는 것을

겨울나무는  벌써 알고 있다

 

인생 그 누구라도 겨울나무처럼 / 홀로된 외로움 벗어버린 부끄러움에 / 울어보지 않았으리

빈 가지마다  눈꽃  피어났던 자리에 / 봉긋 봉긋 솟아나는 봄의 푸르름도 / 겨울가면 반드시  온다는 진리이기 보다 / 시련 뒤에  찾아오는  선물이라는 것을 / 겨울나무는  벌써 알고 있다. -겨울나무 中에서-

 

글이나 또는 시를 씀에 있어서 문예의 길로 가는 어려움을 작가 심훈은 '필경사 잡기'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문예에 뜻을 두었었다. 시를 쓰는 체, 각본을 꾸미는 체하고 영화박이는 흉내도 내고 여러해 보람없는 저널리스트 노릇도 하다가 최근에는...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바늘구멍으로 낙타를 끄집어 내려는 대담함에 식은 땀이 등어리를 적심을 스스로 깨달을 때가 많다. 동시에 더욱이 문예의 길이란 가시밭을 맨발로 밟고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이 가난한 것을 깨달았다...적어도 한 십년하고 살을 저미고 뼈를 깎아내는 듯한 노력과 수련을 쌓는 시기가 있어야 비로소 제일보를 내어 디딜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랑성을 다분히 타고난 나는...오늘날까지 정신생활에 있어서도 비현실적인 몽환경을 더듬으며 헤매어 왔다. ...어줍지 않은 사회봉사, 입에 발린 자기희생,그리고 그어떤 주의(이념)에 노예가 되기전에 맨 먼저 너 자신을 응시하여라!  새로운 생활에 말뚝을 모래성 위에 꽂지 말고 질척질척한 진흙 속에다가 박아라. 떡메질을 해서 깊이 깊이 박아라.」(「필경사 잡기」중)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그 영광을 함께 느끼고 좋은 시를 읽게 해주신 그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한국의산천-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미루나무 ⓒ 2011 한국의산천

오래 전 무더웠던 한여름 개울가에서 고기잡이하며 더위를 식혀주던 매미 소리 요란했던 미루나무.먼지나는 신작로 옆에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싸리 빗자루 모양으로 키높이 서있던 미루나무. 그 위에 걸려있던 조각구름은 모두 어디로 갔나.

 

미루나무
                                 - 홍해리
1
반짝이는 푸른 모자
팍팍한 둑길
홀로
휘적휘적 걸어가던 아버지.

 

2
새로 난 신작로
차 지날 때마다
뽀얀 먼지 뒤집어쓴 채
멍하니 서 있던 아버지.

  

▲ 산본 수리산 당숲에서 ⓒ 2011 한국의산천

 

나는 어설픈 시인이 되기보다는 진정한 독자가 되고싶다. 

새해가 밝아오면 목마름으로 애타게 기다려지는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춘문예

나에게 너무 이해하기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詩이지만 그래도 읽는 맛이 좋고 또한 당선자들의 산고의 고통을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덤으로 詩란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심사평을 읽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당선자들의 그 영광을 함께 느끼고 좋은 시를 읽게 해주신 그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국의산천 -

 

2011년 신춘문예 당선詩 출처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국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 ■ 매일신문 ■강원일보

 

▲ 산본 수리산 당숲의 가을 ⓒ 2011 한국의산천

▲ 산본 수리산 당숲의 겨울 ⓒ 2011 한국의산천

 

■조선일보 [신춘문예 / 시 당선작]

 

유빙(流氷)/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당선 소감] "제자리에 머물고 있던 저를 독려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

 

나의 상처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처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증오해야 할 대상은 상처받은 사람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도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타인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들이다.

타인은 언제나 나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나를 타인의 자리에 놓지 않을 때, 타인의 눈빛과 목소리에 집중하지 않을 때, ‘소통’은 거짓과 위선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결핍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조금씩 버리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한다. 나의 구원만큼 타인의 구원도 중요함을 깨닫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현실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위대한 거절’을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아이에서 진정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더디게 쓰더라도 그만두지는 않겠다. 시 한 편과 한 편 사이에 열 길 낭떠러지가 있음을 잊지 않겠다.

한 줌의 시를 건져 올려 주신 문정희, 정호승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리에 머물고 있던 저를 독려해주신 최동호 선생님과 선후배님, 동학들께 감사드립니다. 화요팀 선생님과 문우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 덕분에 살고 있습니다. 멀리 계신 스승들과 가까이 있는 지인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 시의 시작이자 끝인 할머니, 오래 사세요. 은영아, 사랑해.

 

[심사평] 인간의 비극적 관계를 미세하게 통찰하는 눈 돋보여

 

시를 심사 중인 정호승(왼쪽), 문정희 시인

 

신춘문예 투고 시는 한국 현대시의 미래를 밝히는 작품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을 찾긴 힘들었다. 최종심에 남은 작품은 임여기의 ‘면접관’, 정승기의 ‘실종’, 이재흔의 ‘스파이더맨의 후예’, 이도은의 ‘아주 식물적인 꿈’, 신철규의 ‘유빙’ 등 5편이었다. ‘면접관’은 면접관과 면접인 간의 관계 대립을 긴장되고 설득력 있게 고조시켜나갔으나 결구 부분이 너무 안이했다. ‘스파이더맨의 후예’는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는 삶의 현장을 선명하게 나타냈으나 ‘제각기 다른 일상의 벼랑 끝에서 한 번씩은 실족했던 사연들이’ 같은 표현이 산문적이고 진부했다. ‘실종’ 또한 현대인의 실종의식을 진지하게 추구한 작품이었으나 전체적으로 산문의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 ‘아주 식물적인 꿈’은 식물적인 꿈과 연결된 우리 삶의 구체적 양상이 불명확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돼 결국 당선작은 ‘유빙’으로 결정되었다. ‘유빙’에는 인간의 비극적 관계를 미세하게 통찰하는 개성적인 눈이 있다. 현대사회의 개체적 삶을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에 은유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시 본래의 내재적 리듬감을 살려 유연한 속도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신인다운 내면적 사고의 흐름도 알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도 과장된 이미지나 허장성세가 없고 기성의 어떤 억지스러운 틀에 갇혀 있지 않아 자유분방하다. 한국시단의 대들보가 되길 바란다. / 문정희· 정호승 시인


■ 2011 조선일보 소설 부분 

이외수 며느리 설은영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한 설은영(34)씨가 인기 소설가 이외수씨의 며느리로 알려졌다.

설은영씨는 지난 1월 1일 발표된 2011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서 '집시, 달을 굽다'로 당선돼 등단하게 됐다.

신춘문예를 심사한 소설가 최수철씨와 은희경씨는 작품에 대해 "자연스럽고 거침없는 문장을 바탕으로 세태적인 일상에 대해 얘기하는 한편 그 밑에 가라앉아있는 것들을 헤집어놓는 힘을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한편 설은영씨는 "학교에 가기도 전부터 막연히 나는 작가가 될 줄 알았다"며 "당분간 계속 죄인처럼 조심스럽게 이 길을 걸을 듯하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설은영씨는 이어 남편 이한얼 감독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삐딱한 내 심장을 언제라도 뛰게 만드는, 내가 목격한 예술가 중 가장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시아버지"라며 이외수씨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2011 경향 신춘문예 시 부문 / 정창준 - 아버지의 발화점 

 

당선소감

 

ㆍ“철거민 들여다보면서 詩 표현 떠올려” 시를 다시 쓰면서 딱 3년만 신춘문예에 응모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가 바로 3년째가 되는 해네요.”

 

 

시 부문 당선자 정창준씨(36·사진)는 울산 대현고 국어교사다.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시를 썼지만 졸업과 동시에 교사로 취직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와 멀어졌다. 내년이면 교사 경력 10년째인 정씨가 그 꿈을 다시 꺼내들게 된 것은 3년 전 “대학시절 썼던 시들이 좋던데”라는 말을 대학원 교수로부터 전해들으면서다. 대학시절 썼던 시들은 컴퓨터 메모리가 삭제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우연치 않게 남아있던 유일한 프린트본을 후배로부터 돌려받으면서 정씨는 다시 시를 쓰게 됐다. 그리고 3년째, 마침내 ‘오래된 꿈’이 이뤄졌다.

당선작 ‘아버지의 발화점’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정씨는 <난쏘공>의 화법을 인용했다고 직접적으로 밝혔다.

“용산참사는 결코 있어선 안 되는 너무 끔찍한 일인데도, 사람들에게 쉽게 회자되기만 할 뿐, 절실한 이야기들은 외려 나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난쏘공>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고 학생들에게도 꼭 가르치는 작품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1970년대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마음아파서 그것을 모티프로 시를 쓰게 됐습니다.”

정씨는 자칫 상투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체화된 언어로 피부에 와닿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심사위원들에게 받았다. 정씨는 “울산은 급격한 팽창 과정을 거치면서 용산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가진 도시”라며 “재개발이 예정된 학교 옆 철거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의 표현들이 나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선작 이외의 다른 시에서도 사회문제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정씨의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정씨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대형마트, 베스트셀러나 실용서로 채워지는 서점의 풍경을 시로 써내려갔다. 그는 “사람에서 비롯되고 사람다움을 지키는 게 문학의 가장 큰 소임인 것 같다”며 “사회적 약자들이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신춘문예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며 “아직 시 세계나 세계관이 명확하게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충실하게 재현해내고 싶다”고 새내기 시인의 포부를 밝혔다.

 

[2011 경향 신춘문예]시 부문 심사평심사위원 이시영·황인숙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를 맡은 이시영 시인(왼쪽)과 황인숙 시인이 본심에 오른 작품을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실종된 현실인식의 발견… 뭉클하다”

스무 분이 겨룬 이번 본심에서는 현실사회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시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보수 정부가 들어선 뒤 일상화한 사회경제적 위기의식이 예비시인들의 마음 밑바닥에 고이면서, 불안을 나누고 싶은, 나아가 희망을 찾고 싶은 연대의식, 소통 욕구가 발현된 것일 수도 있겠다.
 
최종심에 정창준(‘아버지의 발화점’ 외 4편), 김유미(‘삼거리식당 지나 명랑슈퍼’ 외 4편), 김영진(‘도끼발’ 외 4편), 류성훈(‘밤의 도플러’ 외 4편), 한주연(‘슬리퍼를 밟는 순간’ 외 4편) 이 다섯 분의 시가 올랐다.


김유미의 시편들은 글 다루는 솜씨, 이야기를 꾸미는 솜씨가 돋보인다.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그런데 특별히 새롭지가 않고 고만고만하다. ‘고백’은 김유미의 장점이 생기있게 모인 시다. 다른 시들과 ‘고백’은 백지 한 장 차이지만, 그 백지는 얼마나 두꺼운가? 한주연의 ‘슬리퍼를 밟는 순간’은 슬픈 얘기를 담담하게 그려 독자로 하여금 고즈넉이 귀기울이게 한다. 잔잔한 매력이 있는 자기만의 화법이다. 류성훈은 시적인 순간을 발견하는 능력이 빼어나다. 그런데 그 시적인 순간을 자기화하지 못한다. 늘 최종심에 오르지만 결국엔 내려놓게 되는 시들이 있다. 언뜻 아주 시적이나 공허하고 생명감이 없는 시들. 경험이 내재화돼 있지 않은, 육체가 없는 시들.

김영진의 시들은 ‘새만금’이나 대학생들의 취직 문제, 세습되는 가난 등 오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소재도 주제의식도 상상력도, 다 좋다. 그런데 목적의식이랄지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작위적이고 과장된 표현이 끼어 있어 시가 덜그럭거린다.

정창준을 당선자로 내세우게 돼 뿌듯하다. 응모한 다섯 편의 시 가운데 어느 작품 하나 모자람이 없지만, 제일 앞장에 놓은 ‘아버지의 발화점’을 당선시로 올린다. 정창준의 시들은 우선 신선하다. 우리 시단에서 꽤 오래 실종됐던 현실인식이나 생활감각을 가진 시를 보게 된 것도 반갑지만, 그 사회적 상상력을 드러내는 발성이 새롭고 독창적이어서 더 반갑다. 정창준의 시들은 감동적이다. 뭉클하다. 심금을 울린다. 

 

■2011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오늘의 운세/권민경

  

나는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을 넘어
마지막 날이 예고된 마야 달력처럼
뚝 끊어진 길을 건너
돌아오지 않을 숲 속엔
정수리에서 솟아난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수많은 손바닥이 흔들린다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하나하나 떼어내며 잎사귀 점치면
잎맥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예언, 폭포 너머로 이어지는 운명선
너의 처음이 몇 번째인지 까먹었다


톡톡 터지는 투명한 가재 알들에서
갓난 내가 기어나오고
각자의 태몽을 안고서 흘러간다
물방울 되어 튀어오르는 몽에 대한 예지
한날한시에 태어난 다른 운명의 손가락
눈물 흘리는 솜털들
나이테에서 태어난 다리에 주름 많은 새들이
내일이 말린 두루마리를 물고 올 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점괘엔
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는 사람

 

권민경 / 1982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재학.

 

 

[심사평]

 

   예심을 통해 올라온 작품들 중에서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작품은 네 사람의 것이었다. 임춘자 씨의 ‘주유소의 형식’ 등 6편은 안정된 표현력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연우 씨의 ‘그늘의 위대한 고집’ 등 6편은 언어에 대한 수사적 능력에서 장점을 보여주었다. 류성훈 씨의 ‘저녁의 진화’ 등 5편은 어법의 상대적인 참신함이 인정되었다. 권민경 씨의 ‘대출된 책들의 세계’ 등 5편은 시적 언어의 능력과 상투성을 비껴가는 감각이 돋보였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것은, 작품들 사이의 편차가 적었던 임춘자 씨와 권민경 씨의 시들이었다. 임춘자 씨의 작품들이 가진 안정감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은 평가할 만한 것이었으나, 설명적인 부분들이 감상적인 의미 안으로 시를 가두었다. 권민경 씨의 시는 묘사와 표현의 감각이 청신했다. 당선작이 된 ‘오늘의 운세’라는 작품의 경우, 개인적 운명과 삶의 시작을 둘러싼 시적 해석이 세밀하고 다채로운 이미지들을 통해 펼쳐지고 있었으며, 생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심사위원들은 시간의 아이러니에 살아있는 이미지를 부여하는 능력을 중요한 가능성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이시영(시인), 이광호(문학평론가)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_ 

 

새는 없다 / 박송이 

 

 

우리의 책장에는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이 빽빽이 꽂혀 있다 

 

15층 베란다 창을 뚫고 온 겨울 햇살

이 창 안과 저 창 밖을 통과하는 새들의 발자국

우리는 모든 얼굴에게 부끄러웠다

 

난간에 기대지 말 것

애당초 낭떠러지에 오르지 말 것

 

바람이 불었고

낙엽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우리는 우리의 가면을 갖지 못한 채

알몸으로 동동 떨었다

 

지구가 돌고

 

어쩐지 우리는 우리의

눈을 마주보지 않으면서

체위를 어지럽게 바꿀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멀미를 조금씩 앓을 뿐

 

지구본에 당장 한 점으로

우리는 우리를 콕 찍는다

이 점은 유일한 우리의 점

 

우리가 읽은 구절에 누군가 똑같은 색깔로 밑줄을 그었다

 

새들은

위로 위로

날아

우리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새들의 발자국에게 미안했다

 

미끄럼틀을 타는 동안

우리의 컬러링을 끝까지 듣는 동안

알몸이

둥글게 둥글게

아침을 입는 동안

 

우리의 놀이터에

정작 우리만 있다

 

박송이/ 30세. 전북 순창군 동계면. 한남대 국문과와 대학원 과정 수료.

 

[신춘문예/시] '새는 없다' 박송이 당선소감
"숲에서 종종 길 잃어… 내 사랑에 대답할 차례"  
 

 

종종 숲에서 길을 잃었고 숲길을 한참 걷다보면 어느새 어둠이었다. 숲 어딘가에 퍼질러 한나절 먹먹하게 울고 싶다가도 간혹 숨이 턱턱 막혀왔기에 느리고 길게 호흡해야만 했다. 내가 한 때 메마른 심장으로 숲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음을 고백한다.

노트에 나를 적는 밤이 짧아지기를 바란다. 나 아닌 다른 여행자의 숲길에서 나 아닌 무수한 여행자들에게 말 걸 수 있는 밤이 오래 찾아 들기를 바란다. 이것은 내가 여태 사랑해 왔던 모든 사랑을 되찾는 작업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마주할 모든 사랑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안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먼 거리에서 서로의 여행과 마주하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숲길을 따라 걷는 중이다. 내가 무심결에 지나쳤을 숲길 사이로 한 무더기의 빛이 쏟아져 내린다. 나는 내 사랑에 대답해야 할 의무를 갖고 싶다. 나는 빛의 표정으로 또 다시 살고 싶어진다.


한남대 국어국문학과 신익호 지도교수님과 여러 교수님들께, 문예창작학과 김완하 교수님을 비롯한 교수님들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멀찌감치 어떤 절실한 힘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애인에게 감사드린다.

 

[신춘문예/시] '새는 없다' 박송이 인터뷰
"혼자만의 시가 아닌 나눌 수 있는 시 쓸 생각" 이훈성기자

박송이(30)씨가 본격적으로 시를 쓴 것은 2003년 무렵부터다. 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좇아 한남대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남들과 별다를 바 없는 인생이 되겠구나' 하는 위기감에 1년 동안 휴학을 했다 복학한 해였다. 박씨는 문예창작과에 복수 전공을 신청했고 시인 김완하 이재무, 소설가 김탁환씨 등의 수업을 들으며 창작의 묘미를 깨달아갔다. "주간에는 국문학과, 야간에는 문예창작과 수업을 들었는데 피곤하기는커녕 무척 즐거웠어요. 내가 시를 알아가고 있구나, 갈 길이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자신감은 교내 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면서 부쩍 커졌다.

그러나 등단은 쉽지 않았다. 2005년부터 꾸준히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번번이 낙선했다. 국문학과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아 2008년 수료했지만 모교의 시간강사 외에는 강의 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이 서른에 번듯한 직장도 없고 그렇다고 강의 자리가 많은 유능한 강사도 아니고, 방랑자 같은 마음으로 갈팡질팡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시인이 되려는 소망 하나 붙들고 살아가던 그에게 올해 신춘문예 시즌을 앞두고 시가 불현듯 '찾아왔다'.

지난 가을학기 모교에서 강의하며 잠자리를 신세 졌던 후배의 아파트에서 박씨는 베란다 창에 찍힌 새 발자국을 발견했다. '어느 순간에 발자국을 남기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새. 과연 비행한 것일까 추락한 것일까.' 스스로도 낭떠러지에서 비행과 추락의 기로를 걷고 있다는 박씨의 자의식은 새 발자국이 준 단상을 시상으로 확장시켰고, 그렇게 탄생한 시가 당선작이다.

 

당선작 외에도 '성락원' 등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 4편을 박씨는 예전과 달리 즐겁게 썼다고 한다. "그동안 시를 쓸 때는 내 상처를 남에게 감춘 채로 화려하게 꾸며 쓰려고 했다. 쓸 때도 고통스럽고, 혼자밖에 읽을 수 없는 시를 썼달까. 이번 투고작들을 쓰면서는 시를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도 읽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드디어 시의 뮤즈가 찾아온 것을 한국일보 신춘문예가 제대로 간파한 모양이다.

[심사평] 새의 존재에 대한 통찰 돋보여 앞으로의 가능성에 낙점

 

심사위원 신경림(시인) 정호승(시인) 정일근(시인 경남대교수)

 

   예심 없이 모든 투고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숙독과 합평으로 심사가 진행됐다. 시국 탓인지 꽤 많은 작품에서 유행처럼 죽음을 서슴없이 다루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또한 빈번한 외래어의 사용과 심지어 영어를 그대로 시에 사용하는 것은 21세기 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죽음보다는 희망을 가진 작품에 기대를 걸며 '가족의 탄생'(팽샛별), '감독의자'(지석현), '새는 없다'(박송이)를 최종심에 올렸다. '가족의 탄생'은 영화를 보듯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눈에 시를 들어오게 하는 힘이 좋았다. 하지만 당선작이 되기에는 시가 가지고 있는 강한 산문성이 문제였다. 그런 산문성이 시가 가지는 독특한 맛을 잃게 해 아쉬웠다. 앞으로 가벼워지는 것에 대해 노력해주길 부탁한다.

 

   '감독의자'는 신선한 소재의 참신한 작품이었다. 산문시였으나 시의 흐름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투고한 다른 작품이 그와 같은 무게를 보여주지 못했다. 앞에서 밝혔듯이 모국어로 쓰는 시에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한다.

 

   '새는 없다'는 새의 존재와 상징성에 대한 통찰이 돋보였다. 다른 시들에 비해 긴 길이의 시인데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감에 좋은 점수를 얻었다. 투고자들이 흔히 가진 애매모호함을 극복하는 선명성도 좋았다. 하지만 감동으로 가기에는 힘의 결락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새는 없다'는 좋은 작품이라는 것보다는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로 대성을 바란다. 최종심까지 올라온 투고자들에게는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 

 

■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판화=남궁 산 

 

파밭 / 홍문숙

 

비가 내리는 파밭은 침침하다

제 한 몸 가려줄 잎들이 없으니 오후 내내 어둡다

다만

제 줄기 어딘가에 접혀있던 손톱자국 같은 권태가

힘껏 부풀어 오르며 꼿꼿하게 서는 기척만이 있을 뿐,

비가 내리는 파밭은 어리석다

세상의 어떤 호들갑이 파밭에 들러

오후의 비를 밝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파밭이 좋다

봄이 갈 때까지 못 다 미행한 나비의 길을 묻는 일은

파밭에서 용서받기에 편한 때문이다

어머니도 젊어 한 시절

그곳에서 당신의 시집살이를 용서해주곤 했단다

그러므로 발톱 속부터 생긴 서러움들도 이곳으로 와야 한다

방구석의 우울일랑은 양말처럼 벗어놓고서

하얗고 미지근한 체온만 옮기며 나비처럼 걸어와도 좋을,

나는 텃밭에서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한줌의 파를 오래도록 다듬고는

천천히 밭고랑을 빠져나온다

 

 
당선소감

은유의 텃밭에서 세월과 만나다

 

홍문숙

1958년 경기 용인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성장

2009년 계간 ‘차령문학’ 등단, 동 문예지 편집위원

‘석수서예’, 평택도서관 등에서 한문학 강사로 활동

 

  아버지는 인문학자시다. 그분이 읽던 흑백의 서책들은 이제 나비 한 마리 꿈꿀 수 없지만 아버님은 가끔씩 내 삶의 철자법이 맞지 않을 때에도 설핏 숨어들기에 좋은 내 인문학의 서책이셨으며 따뜻한 은신처였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내 문학의 시원은 아버지로부터의 어쩔 수 없는 유산일 것이며 유산이란 때로 세월의 미시성을 강의 깊이로 흐르다가 문득 마주치는 어머니와도 같은 것. 그리고 나에겐 내 필생의 힘으로도 낳을 수 없는 어머니라는 의미와 인연의 텃밭, 그 대신 신생의 어머니를 만나는 세월의 대가가 곧 나비였으리라.

 
  권태가 욱신거릴 때마다 텃밭을 찾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한 사나이는 내 권태의 목록과는 관계없는 도시 저쪽의 서류철을 뒤적이거나 어느 소인국의 작은 병정처럼 돌아오곤 했다.

  
  

[심사평] 경직돼 있지 않고 자연스럽고 신선

 

   예년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에 확 띄는 작품은 없었다. 오늘의 한국시가 갇혀 있는 프레임을 과감하게 깨트리는 작품을 찾을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소리를 중언부언하는 시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아주 뛰어난 작품은 많지 않으면서도 당선작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은 적지 않아 선자들은 마음을 놓았다.

 

   특히 다음 네 분의 시가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다. 홍문숙의 ‘파밭’ 등은 시를 쓴다는 경직된 포즈가 안 보이면서, 자연스럽고 신선하게 읽혔다. 속도감도 있는 데다 요즘의 유행과도 한 발 떨어져 있는 것도 미덕이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들의 편차가 심해 쉽게 신뢰감이 가지 않았다.

 

   종정순의 ‘개나리는 왜’ 등은 기지도 있어 보이고, 밝고 환한 분위기의 시여서 심사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우리 시가 가진 청승과 궁상이 없는 것도 호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화문석’ ‘현대방앗간’ 같은 산문투의 시들은 시의 맛을 반감시킨다.

 

유명순의 시 중에서는 ‘내통’이 가장 뛰어났다. 부부 간의 관계, 나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자못 설득력이 있다. 한데 시들이 전체적으로 숨통을 조일 듯 답답한 것이 흠이다. 게다가 ‘뫼비우스의 띠’ 같은 흔해빠진 이미지가 일부 그의 시를 상투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최인숙의 시들은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표현도 큰 무리가 없고 자연스러웠다. 한데 어쩐지 시창작교실의 냄새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시는 쓰는 것이지 쓰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위한 시가 가지는 감동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상 네 사람의 시를 놓고 많이 얘기한 끝에 결국 홍문숙의 ‘파밭’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심사위원은 합의했다.

 

신경림(시인), 유종호(문학평론가)

 

 

■문화일보 <2011 신춘문예-시 당선작> 

 

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 - 강은진

 

 

문득, 썩지 않는 것이 있다

74세 이만호 할머니의 짓무른 등이

늦여름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중에도

푸르스름한 눈썹은 가지런히 웃는다

그녀가 맹렬했을 때 유행했던 딥블루씨 컬러

변색 없이 이상적으로 꺾인 저 각도는 견고하다



스스로 돌아눕지 못하는 날

더 모호해질 내 눈썹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까

목에 박힌 관으로 바람의 리듬연습할까

아니면 당장 도마뱀 꼬리같은 문신을 새길까



누구에게나 꽃의 시절은 오고, 왔다가 가고

저렇게 맨얼굴로 누워 눈만 움직이는 동안

내 등은 무화과 속처럼 익어가겠지만

그 때도 살짝 웃는 눈썹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이 검어질수록 더 발랄해지는 눈썹이었으면 좋겠다



나 지금 당신의 바다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의 눈썹을 가져야 하리

눈물나도록 푸른 염료에 상큼하게 물들어야 하리

 

심사평

 

◀ ‘2011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본심을 맡은 황동규(오른쪽) 시인과 정호승 시인.

 

예년에 비해 투고된 작품량은 늘었으나 수준은 비슷했다. 윤지문의 ‘새와 흙’, 강은진의 ‘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 석상준의 ‘뚜껑’, 김후인의 ‘결치(缺齒)’ 등 네 편의 작품이 최종심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먼저 ‘뚜껑’은 ‘그냥 썩게 놔두는 것보단 나중에 상하더라도 누군가 퍼먹을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게 인생이란 걸 알기 때문에’에서 알 수 있듯이 산문성이 지나치다는 점 때문에 제외되었다. ‘결치(缺齒)’ 또한 빈 집이 늘어나는 시골 풍경을 결치의 이미지와 결부시킨 점은 높이 살 만 하지만 조금 낡은 감이 있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나머지 남은 두 편 중에서 ‘새와 흙’은 기성시인의 시를 인용한 점이(인용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신인으로서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과, 또 다른 투고작 ‘새와 구름’에서 구체성이 부족하고 한껏 멋을 부린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결국 당선작은 ‘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으로 결정되었다. 이 시는 ‘눈썹 문신’을 하는 우리 삶의 독특한 한 현상을 발견한 시적 눈의 신선함에 일단 호감이 갔다. 특히 눈썹 문신을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에 빗된 점이 해학적이고 애절하다. 그러나 이 시에 존재하고 있는 ‘이만호 할머니’가 시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지 않음으로써 대표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이만호 할머니가 누구인지 암시가 있었으면 오히려 더 감동적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자폐적 상상력이 판치는 한국시단에서 삶의 건강한 구체에서 꽃핀 이만한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이 시를 당선작으로 밀 수 있는 이유였다. 당선자가 앞으로 한국시단의 큰 재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2011 매일신문 신춘문예 詩 당선작

 

1770호 소녀/우광훈

 

  꿈꾸듯, 한 편의 오래된 우화(寓話)가 소녀의 동공 깊숙이 스며든다. 소녀는 과묵하고 비밀스런 눈빛으로 책장만을 넘겨댄다. 별이 뜨고, 소녀는 마을 어귀 파피루스 숲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이 있는, 때론 우아하고 권위적인 무덤이 있는 이곳 오시리스 동물원으로 흘러든다. 바다표범도, 펭귄도, 사막여우도, 치타도, 판다도 없는 이곳에는 햇볕에 잘 그을린 허허로운 얼굴에 키 큰 금발의 코끼리가 있다.

  소녀는 향수어린 얼굴로 코끼리를 바라보다 석관 속에 놓인 접시저울을 조심스레 끄집어낸다. 타조깃털만큼이나 가벼운 그녀의 심장. 사육사의 경쾌한 신호음에 맞춰 코끼리가 저울 위로 올라선다. 똬리를 튼 비단뱀처럼 매끄럽게 내려앉는 그녀의 영혼. 순간 불꽃이 흩날리고, 파도가 울부짖고, 사자(死者)가 춤을 춘다. 기괴하고, 음울하며, 극도로 염세적인 그들만의 연극. 불멸을 향한 오래된 문명의 허망한 몸짓.

  나일강에 물그림자 드리우고, 피안(彼岸)에 다다른 소녀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목욕을 한다. 늙은 고양이처럼, 별과 달이 질 때까지

 

  그녀의 푸른 목덜미 아래로

  모래 이빨 자국만이 선명하다.

 

☆ 1770호 소녀= 1976년 맨체스터대에서 로잘리 데이비드 박사가 집도한 이집트 미라. 학자들은 방사능 분석을 통해 서기 105~405년 사이에 미라로 제작된 갈색 눈의 소녀로 추정하고 있다.

 

 ◀ 당선자 우광훈 

 저는 분명히 미쳤어요. 미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요. 앨리스는 왜 거울 속으로 들어갔던 것일까요? 사건의 전말은 이러합니다. 3년 전, 한 무명 소설가는 소설이란 것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쉽게 말해 코커스 경주에서 그 흔한 골무조차 받지 못했던 거죠. 이후, 그는 하루 종일 깜깜한 토끼굴 속을 헤매며 책만 읽었습니다. 재미있고 기이한 이야기만이 시간을 세워둘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가는 문득 시(詩)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시가 나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오래된 동경과 해묵은 오해 때문이었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오로지 시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1월의 어느 날, 그는 아내의 조언과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곧장 하트여왕이 있는 성으로 3편의 원고를 보냈습니다. 이후, 그는 우체국에 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 시의 목을 베어라! 저 시의 목을 베어라!” 3주일 뒤, 멋진 제복을 차려입은 물고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거울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처구니없음에 한동안 고개만 갸웃거렸습니다. 그날 밤, 그는 밀려드는 두려움에 좀처럼 잠들지 못했습니다. 툭 튀어나온 자신의 이가 한없이 부끄러웠으니까요. 존경하는 장토끼 형의 충고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 나는 드디어 파멸해버린 것일까요? 그렇게 뒤척이다, 스르르 잠들어버렸습니다. 입가엔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소설가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다시 눈을 뜨면, 세상은 온통 지루한 일상과 무관심으로 바뀌어있으리라는 것을. 그런데, 험프티 덤프티를 만나려면 도대체 어느 길로 가야 하는 거죠? 시냇물인가요? 아니면 양의 가게인가요?

                                           

◆ 약력

우광훈

△ 1969년 대구출생 △ 대구교대 졸업 △ 19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등단 △ 제2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소설)

◇ 심사평

    언어의 구체성과 상상력의 탁월함

  마지막까지 남은 손상호의 ‘시미즈 터널’ 외 3편, 박윤근의 ‘말티즈와 아내’ 외 2편, 박승일의 ‘비 내리는 법’ 외 2편, 우광훈의 ‘1770호 소녀’ 외 2편 등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이었다. 네 사람 모두 언어의 체계적인 훈련을 거친 만만치 않은 수준과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손상호의 ‘시미즈 터널’은 긴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안 다양한 감각으로 그려낸 상상력이 돋보였다. 이 한 작품만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다른 작품이 너무 처져 있었다. 박윤근의 ‘말티즈와 아내’는 시를 형성할 줄 아는 능력과 선명한 환기력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구체성이 시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말티즈가 죽어도 그 딸랑거림을 그리워할 것이다.”라든가, “아내는 土耳犬으로 남고 싶어 하는/저 바다 빛 그늘 진 눈동자를 보았을 것이다.”와 같은 이미지들을 높게 보았다. ‘당선작’으로도 무난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역시 ‘외 2편’이 ‘말티즈…’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다른 작품들의 경우 무리한 설정과 그에 따른 언어의 ‘과부하’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박승일의 ‘비 내리는 법’은 재기발랄한 말솜씨와 상상력, 거침없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억지가 없는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붕에 걸린 구름의 뼈를 다 발라”내고, “샛강의 입이 건너편 뚝방까지 죽 찢어져”가는 이 작품 또한 충분히 당선의 영예를 안겨줄 만 했으나, 어쩌랴, 이 응모자에게도 작품 간의 심한 편차가 걸림돌이 되었다. 작품 공모에 여러 편을 응모할 경우 그 수준이 고르지 못하면 뽑는 이에게 불안감을 주게 마련이다.

  네 사람의 시 가운데, 우광훈의 ‘1770호 소녀’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함께 보내온 나머지 두 작품도 똑같이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선작에서 보듯이 이 작품은 스케일이 참 크다. 시인의 상상력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깊은 사유를 거느린 채, 그것도 아주 느리게, 우주와 역사, 문명세계를 거닐며 현실과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시인은 문장부호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닦아 쓰는 말의 절차탁마가 보였고, 행간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오랜 내공이 느껴졌다. 신뢰가 가는 시인이다. 묵묵히 ‘장인’의 길을 걷기 바란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도광의(시인)· 문인수(시인)  

 

■ 2011 부산일보 당선작

 

나무의 문 / 김후인

 

나무의 문

                                          김후인

 

몇 층의 구름이 바람을 몰고 간다

그 몇 층 사이 긴 장마와

연기가 접혀 있을 것 같다

바람이 층 사이에 머무르는 種들이 많다

發芽라는 말 옆에 온갖 씨앗을 묻어 둔다

여름, 후드득 소리 나는 것들을 씨앗이라고 말해본다

 

나는 조용히 입 열고

씨앗을 뱉어낸 최초의 울음이었다

 

오래된 떡갈나무 창고 옆에

나뭇가지 같은 방 하나 들였다

나무에 걸린 바람을 들여놓고 싶었다

지붕이 비었을 때엔 빗소리가 크다

빈 아궁이에 솔가지 불을 밀어 넣으면

물이 날아올랐다

물기를 머금고 사는 것들이

방안을 채울 줄 알았다

아궁이 옆에서 뜨거운 울음의 족보를 본다

 

실어 온 씨앗으로 바람은 키 작은 뽕나무를 키웠다

초여름, 초록이 타고 푸른 연기가 날아오르고

까만 오디가 달렸다

 

문을 세웠더니 바깥이 들어와

빈 방이 되었다

바람의 어느 층이 키운 나무들은 흰 연기를 품고 있다

어제는 나무의 안쪽이 자라고 오늘

나무의 바깥이 자랐다

 

나무는 어디가 문일까

 

문을 열어 놓은 나무들 마다

초록의 연기가

다 빠져나가고 있다

 

[시 당선소감] 어머니 밥 짓던 밥 불 생각나    

 

나무의 문이 만들어준 빈 방에 첫 불을 넣으면서 그 옛날 어머니 밥 짓던 밥 불이 생각납니다.

젖은 불 연기에 짓던 눈물. 그 연기는 그리움이겠지요. 제게는 일찍 떠난 것들이 많습니다. 그 상실들이 시로 와서, 오래 같이 살다보면 아랫목 같은 문장 하나 남을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빈자리가 깨워준 서툰 글밭이 자칫 묵정밭이 될 뻔 했지만 이런 지경까지 넓히게 해주신 박해람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경운서당 학우들, 그리고 하엽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제 시 한 편을 쓸 때마다 빈방 새로 들이는 각오로 첫 불을 넣고 두려운 불길도 손에 익혀야겠지요. 찬바람이 불지만 제게는 씨앗을 생각하게 하는 봄날입니다. 미숙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부산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제게 글 쓰는 마음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늘 격려해주신 재림문협 회원님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등기 심부름을 자주 시켜도 참고 기다려준 남편, 아들, 딸, 그리고 방해꾼이면서 따로 글감도 주는 정후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발아(發芽)라는 말 옆에 시의 씨앗을 틔우고 묻습니다.

 

◀김후인 / 1952년 경남 통영 출생. 삼육대학교 졸업. 재림문인협회 회원.

[시 심사평] 치밀한 문맥·팽팽한 거리 믿음직  
정진규 시인  강은교 시인
최영철 시인
 
세상은 갈수록 미궁이지만 시를 읽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우리 앞에 놓인 한 아름의 희망들이 온 세상을 새롭게 밝힐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응모 편수는 예년과 비슷했으나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향상된 수준이었다. 고만고만하게 다듬어진 시들이 주류를 이루던 예년과는 달리 수작과 태작의 경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강습 등을 통해 만들어진 시가 아닌 자생적인 시 쓰기가 회복되고 있는 조짐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박길숙의 '적도에서 온 남자' 외 2편과 김후인의 '나무의 문' 외 4편이었다. 박길숙의 시들은 발랄한 감각과 자유분방한 보폭이 흥미로웠다. 시의 큰 덕목인 새로움의 추구에는 부합하지만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반면 김후인의 시들은 단단하고 치밀한 문맥, 팽팽한 거리두기가 믿음직스러웠다. 그동안 연마한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보내온 다섯 편 중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도 좋을 만큼 수준도 골랐다.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견고한 윤곽이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시의 힘은 숨 쉴 여백을 만들며 출렁거릴 때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오랜 숙의 끝에 우리는 박길숙의 시들이 좀 더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기를 바라며 김후인의 '나무의 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가장 작고 낮게 발언하면서도 가장 높고 멀리 퍼져가는 시의 위대한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리라 믿는다.

 

■강원 일보 [신년특집 신춘문예 당선작]

 

덩굴장미/김영삼

 

 

저 불은 끌 수 없다

차가운 불


소나기 지나가자 주춤하던 불길 거세게 되살아나 담장을 또 활활 태운다 잔주름늘어나는 벽돌담만 녹이면 단세상을 삼킬 수 있다는 건가 막무가내로 담장을 오르는 불살, 한 번도 불붙어 본 적 없는, 마를 대로 마른 장 같은 몸뚱이 확! 불 질러 놓고 재 한줌 남기지 않고 스러져도 좋을 무덤, 큼직한 불꽃서로 팔들을 엮고 저들의 등을 밟고 올라선 불꽃들이 또 하나의 일가를 이룬 곳으로 나는 걸어 들어간다 나에게 불을 다오, 저들의 영토에 손을 내미는 순간,


나는 차가운 화상을 입는다

불똥은 땅에 떨어져 꽃으로 자꾸 피어나는데


나는 졸지에 불을 잃다

 

 

당선 소감

나의 詩는 제로… 100을 향해 달려간다
 

△ 김영삼 (52)

△ 강원대 체육교육과 졸업

△ 강릉원주대 시창작반 수료 △ 율곡중 교사

 

 퇴근 준비를 하다가 당선 소식을 들었다. 내가 쓰던 작은 방을 망연히 걸레로 닦고 또 닦았다. 그러면서 대책도 없이 큰 일 저지르고 말았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詩 농사를 지으면서, 나는 농사법이 서툰데다 게으름까지 겸비하고 있어 나의 수확은 늘 초라하여 뼈가 으스러지도록 열심히 시 농사를 다시 지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던 터다.


  시는 제로(0)와 백(100)의 싸움이라고 한다. 백이 아니면 나머지는 다 제로여서 중간이 없는 장르가 시라고 나의 스승은 항상 말한다. 나는 백을 향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늘 2%가 부족하다. 하여, 아직은 나의 시는 제로다. 당선 소식이 백의 목표까지 꼭 달려가서 소음이 아닌 귀에 즐거운 경적을 울려보라고 교부해준 임시면허증을 받은 느낌이다. 한적한 곳에서 부단히 주행연습을 하여 당당하게 대로에 나서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안다.


  많이 부족한 글을 뽑아준 심사위원들에게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詩作에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아내와 어머니, 착한 아들 다빈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강릉원주대학교 시창작반 문우들, 악당들, 냉정한 평가를 아끼지 않던 무명 비평가, 큰 힘이 되어주었던 홍종화 시인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심사평

심사위원 이승훈·이영춘씨

 예년에 비해 작품 수는 많았으나 특출한 작품이 없어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상투적인 언어의 시들과 신춘문예라는 옷을 입고 등장한 작품이 많았다. 그런 작품들은 자칫 진실성이 결여되어 가식적이고 허영적인 글이 되기 쉽다.이번 심사에서는 오늘 이 시대의 삶을 반영하는 시, 새로운 언어감각의 시, 그리고 신인다운 특성과 참신성을 높이 평가했다.본심에 올라온 열다섯 분의 작품 중 오영애씨의 `흰 꽃이 지다'는 언어감각은 뛰어났지만 주제의식의 깊이가 약한 것이 흠이었다. 정솔씨의 `공룡능선'은 비유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설득력이 약했다.
당선작인 김영삼씨의 `덩굴장미' 외 `初冬'은 뛰어난 언어감각과 신선한 비유가 좋았다.
예를 들면 `덩굴장미'를 `차가운 불'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또한 “자신이 차가운 화상을 입는다”라는 비유는 매우 신선하고 감각적이었다. 주제의식 역시 보편성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특히 “나는 졸지에 불을 잃다”라는 표현은 생명의 상징성을 아이러니한 표현 기법으로 승화시킨 뛰어난 작품이었다. 당선을 축하한다. 
 

 

▲ 요즘은 산에 눈이 많이 쌓여서 MTB는 타지 못하고 등산 또는 사진촬영 다니기 ⓒ 2011 한국의산천

나는 오늘도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어떤 일생>처럼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낸다.

방문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올해도 원하시는 모든일 만사형통 하시기 바랍니다

 

Tip 1

 

어떤 일생

                               - 천양희


부판(蝜蝂)이라는 벌레가 있다는데 이 벌레는 짐을 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무엇이든 등에 지려고 한다는데 무거운
짐 때문에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 짐을 내려주면 다시 일어나
또 다른 짐을 진다는데 짐지고 높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평생 짐만 지고 올라간다는데 올라가다 떨어져 죽는다는데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어떤 일생

                       

시집 '너무 많은 입'(창작과 비평, 2005)中에서

 

<시작 노트>

 

사람의 일생에는 누구에게나 동터 오르는 여명기가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생도 있다
부판처럼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높이 올라가려고 애쓰다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
인생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하지만

삶이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어떤 일생」을 쓰게 했다

 

 

 

 

 

천양희[千良姬, 1942.1.21~] 

 

1942년 1월 21일 부산 출생. 경남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화음」, 「아침」이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등단한 이후 『기독교시단』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고독과 허무를 잔잔한 음성으로 노래한 시편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초기작 「여자」에서는 그리워하나 그리워할 대상조차 생각나지 않는 절대적인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여성적인 따뜻한 문체가 돋보인다.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1983), 『사람 그리운 도시』(1988), 『마음의 수수밭』(1994),

『낙타여 낙타여』(1997), 『오래된 골목』(1998), 『너무 많은 입』(2005) 등을 발간하였다.

 

학력사항- 경남여자고등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 국어국문학 학사

경력사항- 기독교 시단 동인 활동 
 
* 출전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Tip 2

 

◀ 김희갑· 양인자 부부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들의 당선 소감은 그간 고뇌의 시간을 보여주기에 아름답고 멋져 보였다.

원고지를 신문사로 보내며 당선소감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김희갑 양인자님의 작품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대중가요 중 가장 가사가 길다. 바다처럼 광활하게 펼쳐지는 멜로디에 맞게 기승전결이 있는 가사를 써보자는 게 양씨의 의도였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에는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녹아있어요"

 

가사는 20년간 숱한 좌절을 겪었던 양씨 본인의 아픔을 담았다.

신춘문예에 수도 없이 떨어지면서 느꼈던 좌절과 그것을 딛고 일어나려는 의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가사를 쓰며 제 스스로 위로를 받았어요.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가사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저 너머에 있는 희망을 보자는 뜻이었죠.” -양인자-

 

Tip 3

신춘문예 당선 '비법'

 

문인으로 등단하는 방법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동인지를 통하여 등단하는 방법과 각 문예지를 통하여 추천, 단행본 시집을 통해서 기성 문단에서 인정받는 경우와 일간지를 통해 문인이 되는 방법이 있다.

  문인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문인이 되더라도 계속적인 호응을 받으며 작가 생활을 하기란 더더욱 쉬운 일은 아닌것이다.
그러나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한 작가들은 그 실력을 인정받아 탄탄한 작가 생활을 할 수 있고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오랜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것도 사실이다. 
요즘 들어서는 작품성은 개의치않고  너도 나도 시인이요 문인이라는 홍수속에 뒤범벅이 되어 살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 난 무명단체의 동호회를 통하여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상업적으로 접근하여 조그만 성의 표시 또는 금전기부 행위, 출판이라는 허울 아래 등단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하는것이 부인 할 수 없는 오늘날의 현실이다.
 
여기에 신춘문예에 당선 할수 있는 비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당선이 안되더라도 그것은 바로 당신의 실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한국의산천  
 
신춘문예 당선 '비법' [조선닷컴 박해현 ·문화부 차장대우] 
 
그들이 오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입말을 아끼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사라지는 그들. 바람에 흔들리면서 서로 잡으려 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는 두 나무의 가지들, 그 밑으로 뒹구는 낙엽들, 아슴푸레한 먼 불빛 하나에도 응시하면서 긴 숨을 고르는 그들. 숨이 턱밑까지 차도록 뛰어서 책상 앞으로 달려가는 그들. 펜을 들거나 컴퓨터 화면을 켜는 그들. 머릿속에서 단어들을 불러낸다. 마치 모래밭을 사박사박 걷듯이 단어 하나하나 결을 조심스레 매만지고 다듬는 그들. 이름하여 ‘신춘문예 지망생들’. 80년 가까이 되어 가는 신춘문예의 역사는 우리에게만 있는 독특한 문학 등용문이며, 숱한 작가를 생산해온 역사적인 문학 행사다.

 

해마다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오면 독한 사랑과 같은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다. 11월 초 첫 공고가 나가고 한 달 후 마감. 신춘문예 담당 기자의 전화기는 종일 울어댄다. “소설을 200자 원고지에 직접 쓰는 것과 A4 용지에 인쇄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심사위원님들 마음에 들까요?” “시 3편 이상이라고 했는데, 제가 깜빡하고 1편만 부쳤는데, 돌려줄 수 있나요?”

 

사실, 문인이 되는 길은 신춘문예만이 아니다. 문학잡지도 있고, 공모도 있다. 그래도 1월 1일 새해 아침에 신문 지면에 인쇄되어 나오는 당선자 발표의 감동은 어느 것과도 바꾸기 어려운 모양이다.

15년 동안 신춘문예에 40여 회나 응모했지만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신 끝에 문예지로 등단한 한 작가가 있다.

그는 신춘문예 지망생들, 특히 예비 낙선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신춘문예가 그렇게도 매력적인 이유는 천재인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삼류 문인들이 심사에 가담하고 있다는 희극성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곁에서 천재가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당연히 당신의 낙선은 당신의 천재성만이 아니라 당신의 천재성을 시기하여 그것을 훼손하려는 비열한 삼류 문인들의 작당과 농간의 결과다.”

 

그래도 정말 비결은 없을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혁웅은 ‘미래파-새로운 시와 시인을 위하여’란 책에서 ‘신춘문예용 시(詩) 작법’을 논한다.

새해에 맞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을 것

하나의 대상을 선택하되, 두세 개의 비유를 중심으로 서술해 나갈 것

특정한 종교적 색채를 띠지 말 것

A4 용지 한 장 이내에 담을 분량일 것

분련시(分聯詩)의 경우, 3~5연 이내로 적을 것

생활에서 파생되는 감정이나 여행지에서 만나는 소회를 적을 것.

그는 또 “약간의 은유(단순할수록 비유는 빛난다)와 문법적인 어사들을 생략한 시행(詩行·이게 축약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결구(結句·이걸 수미상관이라고 한다), 여기에 그리움이나 만시지탄을 버무리면, 감상하기에 적당한 시 한 편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눈 밝은 독자들은 이미 눈치챘을 것! 정형화된 신춘문예용 시들이 범람하는 현상을 권혁웅은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제안으로 조롱하고 있다.


‘문학의 위기’라지만,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는 신념으로 문학이라는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들을 어찌 막을 것인가. 당선 비법은 간단하다. 기성 문인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한 개성의 발현이다.


낙선하면 책임지겠느냐고? 이미 말했다. 당신의 낙선은 “천재를 시기하는 삼류 심사위원들의 작당과 농간의 결과”라고. [조선닷컴]

 

[신춘문예 당선 글 모음 정리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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