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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관광공사 6월 추천여행지

by 한국의산천 2007. 5. 25.

한국 관광공사 추천 6월 여행지 

 

한국관광공사는 6월의 가볼 만한 곳으로 경기 파주, 경남 거제, 전남 진도, 충남 홍성 등 4곳을 25일 선정했다.  [자료 추가 보충 설명 : 한국의산천 ]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임진각, 평화의 종각, 자유의 다리, 평화누리 공원 등 통일 염원을 담은 조형물들이 많다. 특히 자유의 다리는 남북의 포로교환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다리 그 끝 벽면에는 천조각과 종이 등에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적어 걸어두고 있다. 또한 임진강 철교를 달리는 경의선 열차도 관심거리다.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 2007 한국의산천

 

 

▲ 남북을 가르며 흐르는 임진강. ⓒ 2007 한국의산천
 
안보 답사지 

판문점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판문점은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진 곳으로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으로 50km떨어진 지점에 있다. 남북대화 및 군사정전회담이 열리는 곳으로 세계적인 명소가 된 이곳은 국토분단의 비극과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는 산교육장이다. 
 
임진각 관광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1325
 
임진각관광지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민족대립으로 인한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며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안보관광지로 매년 250만명의 내·외국인이 방문하고 있다.

제3땅굴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점원리
1978년 아군에게 발견된 제3땅굴은 문산까지의 거리가 12km, 서울까지의 거리는 52km지점에 있다. 폭 2m, 높이 2m, 총길이는 1,635m로 1시간당 무장군인 3만명의 병력이동이 가능하다. 북한의 무력남침 기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산 증거이다.

도라전망대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점원리
송악산 OP폐쇄에 따라 대체 신설되었으며 북한의 생활을 바라볼 수 있는 남측의 최북단 전망대로서 개성의 송학산,김일성 동상,기정동,개성시 변두리,기차화통(장단역),금암골(협동농장)등을 망원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일반에게는 1987년1월부터 공개되었다.
 
도라산역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노상리 555
민간인 통제구역인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서 700여미터 떨어진 남쪽 최북단역이다. 2002년 2월 20일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방문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오두산통일전망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659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오두산에 세워진 통일전망대는 지상 5층, 지하1층의 석조건물로 지어졌으며 1992년 9월 8일 개관되었다. 이곳은 이북지역과 직선거리 460m로 휴전선155마일중 비무장지대 폭이 가장 짧은곳이다.

경기평화센터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481-1
평화메시지를 전달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교육의 장으로 갈등과 혼돈의 길 ,평화와 통일 등 5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획전시실에서 '하늘에서 본 DMZ' 특별전을 전시하고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영국군 전적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110-1
1951년 4월 22일-25일 사이 영국군이 설마리계곡에서 공산군의 포위 속에서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 전사한 크로스타샤 연대의 제1대대와 제170경 박격포대의 소대장병의 넋을 찬양하고 길이 전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기타지역 전적기념물 경기도 파주시 일대
한미해병 참전비, 김포국제공항 폭발사고 희생자 추모비, 케니상사 전공비, 해병 제1상륙 사단 전공선양비, 해병대 수도방위 기공비, 육군첩보부대 서부제1지대 전공비, 6.25 반공피학살 영령추모비, 고 육군대위 서상윤 순직비 등이 있다.

주요 유적지 상세히 보기

반구정(황희) 앙지대  http://blog.daum.net/koreasan/11502735

파산서원, 경현단(景賢壇)  http://blog.daum.net/koreasan/11502716

율곡이이 자운서원 http://blog.daum.net/koreasan/11491337 

율곡 이이 화석정 http://blog.daum.net/koreasan/11493983

윤관장군 묘역 (사적 323) http://blog.daum.net/koreasan/11491326 

파평 윤씨 용연 http://blog.daum.net/koreasan/11502728

용미리 석불(보물93호) http://blog.daum.net/koreasan/11491316 

금표비와 최영장군 묘역 http://blog.daum.net/koreasan/11491294  

고양 향교와 중남미 문화원 http://blog.daum.net/koreasan/11491287  

행주산성 권율장군 http://blog.daum.net/koreasan/11491148   

 

 

경남 거제시 옥포 
400여 년 전 일본의 침략으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처지에 놓였던 조선을 되살리는 첫 승리의 장소가 거제도의 옥포대첩 기념공원이다.

옥포대첩의 현장에 기념관과 이순신장군 사당, 기념탑 등을 세워 임진왜란의 발발과 전개,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 등을 배우며 쉬어갈 수 있다. 거제에는 한국전쟁과 그로 인한 전쟁포로의 역사가 응축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어 호국유적지를 찾는 많은 탐방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 2007 한국의산천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에 의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1951년 2월부터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1951년 6월말까지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명등 최대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으며 그 중에는 300여명의 여자포로도 있었다.그러나 반공포로와 친공포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은 잔존건물 일부만 곳곳에 남아 있는 이곳은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하게 되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1983년 12월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옥포대첩기념공원 거제자연휴양림 구조라관광어촌마을  거제박물관 거제어촌민속전시관 거제민속자료관 거제자연예술랜드 해금강테마박물관

거제의 명산
가라산 노자산 선자산 대금산 앵산 북병산 옥녀봉 국사봉 산방산 망산 계룡산
 

 

 

 ▲ 바람의 언덕 ⓒ 2007 한국의산천

 

남부면 해금강마을 가기 전 도장포 마을이 있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도장포 유람선선착장이 있어 외도.해금강 관광을 할 수 있으며, 매표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언덕이 바람의 언덕이다. 이곳은 잔디로 이루어진 민둥산이며 바다가 시원스레 바라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TV드라마 이브의화원(2003년 SBS 아침드라마), 회전목마(2004년 MBC 수목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게 되었고 “바람의언덕”이란 지명도 최근에 이 지역을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바다해안
한려해상 해금강 외도보타니아 대소병대도 양지암 오색바위 신선대 바람의언덕
 
해수욕장
구조라 학동몽돌 명사 여차몽돌 흥남 와현 황포 구영 농소몽돌 한목 죽림 덕포 물안(옆개)해수욕장 
 
댐과 계곡
이목댐 구천댐 노자산용담폭포 문동폭포
  

  

전남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녹진 전망대로 오르면 진도의 관문인 진도대교와 울돌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울돌목은 그 명성에 걸맞게 거친 숨소리를 내며 험한 물살을 쏟아내고 있다. 독립국가로서의 고려를 꿈꿨던 용장산성과 삼별초 항쟁의 주역인 배중손 장군이 최후를 맞은 남도석성을 둘러볼 수 있다.  

 

 

  ▲ 진도대교 ⓒ 2007 한국의산천

 
진도대교는 진도군 군내면 녹진과 해남군 문내면 학동 사이에 놓여진 길이 484m, 폭 11.7m의 사장교로 1984년 10월 18일 준공되어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2005년 12월 15일 제 2진도대교가 개통되고 특히 낙조와 야경이 아름답고 다리 아래의 울돌목 물살은 장관을 이룬다.

울돌목은 이충무공의 3대 해전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으로 해남과 진도간의 좁은 해협을 이루며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 정도의 294m 내외이다. 물길은 동양 최대의 시속을 지닌 11놋트의 조수가 흐르며 젊은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물소리가 크며, 거품이 일고 물이 용솟음쳐 배가 거스르기 힘든 곳이다.

바다라기 보다는 홍수진 강물로 보이며 물길이 소용돌이 쳤다가 솟아오르면서 세차게 흘러 내려 그 소리가 해협을 뒤흔든다. 이는 해협의 폭이 좁은데다가 해구가 깊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흐르는 물살이 이에 부딪쳤다가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돌아볼 곳 녹진권

진도대교
진도군 군내면 녹진과 해남군 문내면 학동 사이에 놓여진 길이 484m, 폭 11.7m의 사장교로 1984년 10월 18일 준공되어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특히 낙조와 야경이 아름답고 다리 아래의 울돌목 물살은 장관을 이룬다.

금골산
금골산은 예로부터 [진도의 금강]이라 불리어지는 명산이다. 일명 상골산이라고도 부르는 해발 193m의 금골기암은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쳐다보면 작지만 올라가 보면 그렇게 클 수 가 없다.

금골산 5층 석탑
이 석탑은 군내면 금성초등학교 교정 안에 위치하고 있다. 석탑의 초층 탑신부의 구성 형태는 갑석이 두껍고 밋밋하며 경사를 주지 않아 수평인 점은 정읍 은선리(隱仙里) 삼층석탑과 일맥상통하여 백제 양식의 남하를 입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백조도래지
길조로 알려진 고니(白鳥)는 진도군 군내면 해안 일대와 다도해 해안에서 12월과 2월 사이에 월동한다. 고니가 날아드는 곳은 진도읍 수유리 해안일대와 군내 간척지 담수로, 둔전저수지이다.

용장산성
고려 원종 때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반대한 삼별초군은 원종의 6촌인 승화후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로 내려와 항거하는데 고려의 장군 배중손(裵仲孫)이 이끈 삼별초군이 대몽항쟁(1270~1271)의 근거지로 삼은 성이다.

용장사 석불좌상
용장산성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조그마한 암자에 안치되어 있는 이 석불은 광배(光背)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동체(胴體)도 원형이 아닌 시멘트로 발라버려 원래의 모습을 찾을 길 없다. 다만 대좌석(臺座石)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서 시대 추정을 가늠할 수 있다.

이충무공 전첩비
진도읍에서 동편으로 12km 떨어진 고군면 벽파리 682-4번지에 위치한 이 비석은 1956년 11월 29일 제막식을 가졌으며, 노산 이은상이 글을 짓고 진도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걸작의 글씨를 남겼다.

회동권
신비의 바닷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신비의 바닷길은 고군면 회동리(古郡面 回洞里)와 의신면 모도리(義新面 茅島里) 사이 약 2.8km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수심이 낮아질 때 바닷같이 드러나는 현상이지만 40여m의 폭으로 똑같은 너비의 길이 바닷속에 만들어진다는데 신비로움이 있다.

가계 해수욕장
신비의 바닷길과 인접해 있는 가계해수욕장은 3km의 넓은 모래사장과 3만평이 넘는 주차장이 있어 여름에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들고 있으며, 넓은 주차장을 이용해 학생, 회사, 종교단체 등에서 수련회를 갖는다.

오산선돌과 고성리 고인돌
진도에는 361기의 지석묘가 있는데 대개 해변에 가까운 평지 또는 구릉의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어 당시의 생활 근거를 엿볼 수 있으며 이들이 집중적으로 산재한 지역이 나중에 현(縣), 향(鄕)등의 생활 중심지가 되었다.

해양생태관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신비의 바닷길 현장이자 세계축제로 거듭나고 있는 신비의 바닷길 축제 현장인 고군면 회동관광지에 설립된 진도해양생태관은 건축면적 891.27㎡에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모세의기적 모도
모도에는 1600년경에 김(김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마을에 유래는 건너 초평마을에 말이 물을 먹는 형상으로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한다.

사천권

운림산방
운림산방은 첨찰산을 깃봉으로 수 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루었을 것이고, '연화부'를 지었던 소치의 사상으로도 운림(雲林)이라는 당호가 걸 맞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제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유서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전통남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운림산방은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維)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로 일명 '운림각'이라고 한다. 소치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호를 붙여준 것이며 젊었을때는 련(鍊)이라 했고 자는 마힐(痲詰)이다.
운림산방, 쌍계사, 상록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운림산방에서 약 150m를 오르면 1995년 8월 15일에 세워진 진도아리랑비가 아담하게 서있다.

소치는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치는 어려서 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草衣大師 : 張意恂) 밑에서 공제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하게된다.
비록 낙도에서 태어났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 서(書), 화(畵)에 능하여 40세 되던 1847년 7월 낙선제에서 헌종을 뵐 수가 있었고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정학연 등을 비롯하여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아래 쌍계사 남쪽에 자리를 잡아 집을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냈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소치가 서화에 뛰어나 민영익은 '묵신(墨神)'이라 했으며 정문조는 여기에 시를 더하여 삼절(三絶)이라 하였고, 김정희는 중국 원나라 4대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했는데 그와 견줄만 하다고 소치(小痴)라 했다고 한다.



역사유물 전시관
진도지역 고유의 역사유물을 영구히 보존함으로써 후세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된 진도역사관은 삼별초실, 유배문화실,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도서문화와 유배문화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소치기념관
남종화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유서 깊은 운림산방 내에 세워진 소치기념관은 서화류와 수석전시실, 영상실 등이 배치되어있다.

소전미술관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진도군청사 옆에 위치한 소전 미술관은 5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2003년 4월부터 내부개조공사를 실시해 방습시설등을 갖춘 4개의 전시실과 영상관, 사무실을 갖추고 있다.

진도개 시험연구소
진도개시험연구소는 2개(보호육성, 연구)의 담당이 있으며 하는일은 진도개홍보, 진도개연구(질병, 체형, 유전자, 인공수정), 진도개관리(시범종견장, 종모견지정, 진도개심사, 진도개방역), 진도개 시험연구소로서의 역활을 하고 있다.

쌍계사
쌍계사는 진도읍에서 동남방으로 왕무덤재를 넘어 7km 쯤 가노라면 반경 2km 정도의 들판을 가운데로 하고 사방으로 산맥이 에워싸고 있는 사천리 76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진도향교
진도향교는 1437년 이후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당시 읍치소는 고군면 고성이었으므로 그 이듬해나 임시 향교를 운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왕온의 묘
몽고군은 일본을 정벌하고자 새로 개발한 화포를 삼별초군과 싸울 때 사용했는데 진도에서 10일 동안 벌어진 전투로 삼별초군은 위기에 몰리게 되며, 그들이 궁궐로 사용하던 용장사 큰 가람은 완전히 불타버렸다.

사천리 상록수림
유서 깊은 쌍계사를 옆으로 하고 흐르는 계곡을 타고 올라가면 사방으로 10여 정보 넓이의 두 골짜기에 동백나무, 후박나무, 참가시나무, 감탕나무, 종가시나무, 생달나무, 모새나무, 참식나무, 차나무, 자금우, 광나무, 붉가시나무, 모밀잣밤나무, 상록활엽수 등이 울창하다.

향토문화회관
수려한 자연환경과 비옥한 농토, 드넓은 청정해역이 펼쳐져 있고, 인심 또한 후하여 한때 옥주(沃州)라 불리웠고 군민들이 민속에 대한 소질이 뛰어남은 일찍이 문인들의 유배 문화와 고유한 토속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탓인 것 같다.

서망권

남도석성
남도 석성은 고려 원종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석성이라고 전한다.

남진미술관
진도읍에서 서남쪽 방면으로 8km 지점에 위치한 남진 미술관은 서예가 장전(長田) 하남호선생이 사비를 들여 1989년 11월 29일 800여평의 대지 위에 100평의 본가, 연원관, 양서제, 그리고 150평의 지상 3층 미술관이 건립되어 서예, 동양화, 조각, 분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상만비자나무
백년 이상의 수령을 지니고 있는 이 나무의 크기는 높이 9.2m, 둘레 5.6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쪽 5.1m, 서쪽 6.4m, 남쪽 6.5m, 북쪽 5.8m, 가량으로 뻗어있다.

상만사지 5층석탑
이 석탑은 상만리 마을위 산자락에 상만사라 전해진 사지(寺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구암사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다.

다도해권
조도 6군도
쉬미항을 출발하여 7 ~ 8놋트 속도로 10분정도 해상에 이르노라면 가사군도가 북에서 남으로 펼쳐져 있고, 동에서 서로 잔소나무로 위장한 듯 방카를 연상케하는 대소동도, 석벽으로 구축한 주지도(손가락섬)...

관매해수욕장
진도 본도 서남쪽 끝 팽목에서 배를 타고 다시 서남해상 동북쪽으로(진도읍에서 85km 거리) 가노라면 두둥실 떠있는 해중에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 고시된 조도6군도 중의 대표적인 절경의 집산지인 관매도(면적 38.940km2 북위 34°13' 동경 126°04')가 있다.

시닉드라이브 여행
진도는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230여개의 크고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다.
  

 

 

 접도권
접도
접도는 접섬, 금갑도, 갑도, 접배도라고 불리어 왔다. 조선시대 유배자들이 많이 이곳으로 유배된 곳으로 풍경이 아름답다. 곳곳에 기암 절경과 상록 활엽수림, 낙엽수림이 혼재하는 아름다운 숲이 있고,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맑은 바다에 둘러 쌓여 있어서 청정한 자연을 접할 수 있다.
웰빙투어(등산로)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 위치한 작은섬 접도는 과거 금갑도 유배지로 섬중의 섬이었지만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교통이 원활하고 접도의 3개 부락중 수품마을은 국가지정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구자도매섬
옛날 황범도에 살고 있는 호랑이가 구자도에 살고 있는 개를 잡아 먹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구자도 바로 앞에 있는 매섬의 매가 호랑이가 오면 눈을 쪼아버리며 지키는 바람에 아직껏 구자도를 침범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금갑해수욕장
규모가 그리 크지않고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청정해역으로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주변 어느 곳 에서나 바다 낚시가 가능하며, 경사가 완만한데다 모래가 고우며 피서객이 붐비지 않으므로 가족단위 피서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진도 계절별 관광안내


회동 모세의 기적현장(신비의 바닷길 축제, 해양생태관), 진도대교(전망대, 명량대첩지, 노적봉, 강강술래터), 운림산방(역사유물 전시관, 소치기념관), 쌍계사, 바다낚시터등

여름
관매, 금갑, 가계해수욕장(해양생태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진도대교, 운림산방 (역사유물 전시관, 소치기념관), 상록수림, 호국유적지순례(용장산성, 남도석성, 충무공전첩비등)
가을
금골산, 첨찰산 봉수대, 진도향교, 문화예술관(소전미술관), 운림산방(역사유물 전시관, 소치기념관), 해양생태관, 남진미술관, 진도대교, 바다낚시터, 용장산성, 이충무공 전첩비
겨울
백조도래지, 상록수림, 운림산방(역사유물 전시관, 소치기념관), 해양생태관, 첨찰산 봉수대, 진도대교, 노적봉, 바다낚시터

일정별 관광안내

당일
1. 호국유적순례 : 진도대교(전망대, 명량대첩지, 노적봉, 강강술래터) → 남도석성 → 용장산성 → 이충무공전첩비

2. 문화예술기행 : 진도대교(전망대, 명량대첩지, 노적봉, 강강술래터) → 문화예술회관(소전미술관) → 운림산방(역사유물 전시관, 소치기념관) → 남진미술관

3. 신비의 바닷길 체험 : 진도대교(전망대, 명량대첩지, 노적봉, 강강술래터) → 운림산방(역사유물 전시관, 소치기념관) → 신비의 바닷길(신비의 바닷길 축제, 해양생태관)

1박2일
1. 진도대교(전망대, 명량대첩지, 노적봉, 강강술래터) → 강강술래터 → 남도석성 → 남진미술관 → 진도읍(1박) → 문화예술회관 → 운림산방(역사유물 전시관, 소치기념관) → 용장산성 → 이충무공전첩비 → 금골산

2. 진도대교(전망대, 명량대첩지, 노적봉, 강강술래터) → 용장산성 → 이충무공전첩비 → 진도문화예술관(소전미술관) → 운림산방(1박) → 첨찰산 봉수대 → 상록수림 → 남도석성 → 남진미술관

2박3일
1. 진도대교 → 강강술래터 → 용장산성 → 이충무공전첩비 → 진도읍(1박) → 문화예술관(소전미술관) → 관매8경(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관광 → 남도석성 →운림산방(1박)(역사유물 전시관, 소치기념관) → 쌍계사 → 첨찰산 봉수대등산 → 신비의 바닷길 현장(신비의 바닷길 축제, 해양생태관)

 

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충남 홍성은 의기 높은 사람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백야 김좌진장군과 만해 한용운선생을 들 수 있다.

백야기념관에서는 독립자금을 모금하다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으로 생을 마감한 김좌진 장군의 일생을 만날 수 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기념관도 그의 일생을 조명하고 있다.  

 

 

▲ 홍성 8경의 제 1경 용봉산 ⓒ 2007 한국의산천 

 

홍성의 인물 


최영(崔瑩:1316-1388)

고려 말기의 명장이며 청빈한 충절의 표상이다. 무민공 최영장군은 1316년 최청의 현손인 사현두정 최원직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어린 영에게 "너는 앞으로 관리가 되어도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고, 황금 보기를 돌같이하라" 고 가르쳤다. 1352년 조일신난을 평정하여 호군에 이르며, 원나라의 요청으로 장사성의 난을 토벌하고 압록강에서 홍건적을 격퇴하는 등 왜구의 침략을 막아내고 요동정벌을 시도하였던 고려말의 명장이다.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에게 잡히어 고봉현(지금의 고양군)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73세를 일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 내가 살아오면서 한 번이라도 사리사욕을 챙겼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요, 오직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만 일해 왔다면 내 무덤에 풀이 단 한포기도 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과연 장군의 무덤에는 풀이 한 포기도 나지 않아 붉은 무덤이라고 불렀다.
홍북면은 노은리에 조선왕조 세종의 사육신 중 한 분인 매죽헌 성삼문학사와 더불어, 대인리에 최영 장군 출생한 영지로서 사당이 건립되어 있다.

성삼문(成三問:조선 세종)
창녕인 성삼문의 자는 근보이고, 호는 매죽헌이다. 1418년(태종 18년) 아버지 도총관 성승과 어머니 박씨의 장자로 홍북면 노은리 적동 외가에서 출생하였다. 해산할 때에 공중으로부터 "낳았느냐"라고 묻는 소리가 세번 있었다고 하여 이름을 "삼문"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어려서부터 천자가 단정하고 총명하며 성품이 강직하더니 세종 무오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정묘년에는 중시에 장원하여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세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집현전 학사가 되어 신숙주등과 함께 어학과 음운을 연구하였고 사성을 연구함으로써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용운(韓龍雲:1879-1944)
고종16년(1879) 8월 29일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 잠방굴이라는 곳에서 청주한씨 서원군 한명보의 후손인 부친 한응준과 모친 온양방씨의 차남으로 출생한 선생은 어릴때 이름은 유천(裕天), 본명은 정옥(貞玉), 불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 (卍海, 혹은 萬海)라 한다. 6세부터 성곡리의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이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26세에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여 경악의 대가로 명승강사 가 되었다.
1910년에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불교동맹등을 반대 철폐하고 33세에 만주로 망명 하여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등의 지사들을 만나서 독립운동을 협의하였다.
1월에 최린과 상의하여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 할 것을 결의 하였으니 이것이 3.1 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으며,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보완하였다.
3.1운동 전후에 걸쳐 만년기 까지는 불교대전,불교 유신론,채근담강의, 님의침묵 등을 저작하고 유심지, 불교지를 발간하였다. 선생은 민족독립,불교유신,자유문학 의 3대 사상가로서 절의의 행적을 남기고 1944년 6월29일(음 5월 9일)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별세하였다. 결성면 성곡리 한용운 생가지에는 생가복원에 이어 사당을 건립하고 안내판을 설치하였으며, 주변 정비사업을 계속 추진중에 있다.

김좌진(金佐鎭:1889~1930)
호는 백야요,고종 26년(1889) 음 11월 24일 갈산면 행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8세때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노예해방의 첫 기록을 남겼다. 15세가 되던 해는 대대로 살아오던 80칸이 넘는 집을 내놓고 작은 집으로 옮긴 다음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신학문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었는데, 이것은 우리 지방에서 신학문을 배울 수 있는 첫 기록이다. 그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기호흥학회라는 장학단체를 설립하여 지방의 유망한 청년들을 선발, 서울 유학을 시키기도 하였다. 20세 때에는 이봉창과 같이 서울에 고아원을 설립하여 무의무탁 고아들을 양육하는 한편, 한성신보의 이사로 취임하였고, 관철동 대관원자리에 이창 양행과 신의주에 염직회사를 설립하였다.
31세가 되던 해에 서백리아에 출전중이던 일본의 가납연대 3,000명을 화 룡현 청산리로 유인하여 연대장 가납 이하 1,200명을 함몰시키고 천수백명 을 전상자로 만든 싸움이 저 유명한 1920년 10월 21에 있었던 청산리 작전 이다. 38세에는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하고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40세가 되던 해 군무서독변겸 북만군정서총사령, 한족총연합회 주석에 취 임하여 재만동포의 교육문제와 민생문제에 주력하는 한편,중국의 항일세력 과 연합전선을 결성하고 대일항전을 위하여 준비를 하던 중,1930년1월24일 하오 2시 중동 산시역부근 정미소에서 고려공산청년당원의 흉탄으로 일세의 풍운아 백야 김좌진 장군은 생의 장막을 내렸다.
홍성군에서는 1991년부터 김좌진장군생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생가와 문간채, 사랑채를 복원하고 관리사 및 전시관을 건립했다.

한성준(韓成俊:1875-1941)
문화관광부가 명고수이자 한국무용의 대가로 근대 한국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한성준(韓成俊) 선생을 98년 9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1875년 아버지 한천오(韓天五)와 어머니 김씨(金氏)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민속 기예능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왔던 선생은 평생을 춤.장단과 함께 하며 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림으로써 명고수로, 소리꾼으로, 한국무용의 대가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출중한 예술적 재능을 보인 선생은 6, 7세때부터 외조부 백운채(白雲彩)로부터 춤과 장단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14세때에 서학조(徐學祖)에게서 줄타기와 민속예능을 배우고 홍성을 비롯한 서산, 태안 일대의 각종 연회, 굿판에 참가하였다. 그후 생활이 어려워지자 선생은 전국 유랑길에 올라 독학수련으로 춤과 장단 등 민속 기예능을 연마한 후 31세때에 서울에 정착하여 원각사와 송만갑협률사 등에 명고수로 출연·활동하였고, 50세 후반이 되자 전문 전수교육기관인 조선성악연구회에서 그동안 배우고 추던 춤들을 무대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한편, 1938년에는 전통춤 교육의 산실인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민속무용가를 배출하는 후진양성에 힘썼다.
선생은 또한 1935년부터 부민관(현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창작전통 춤 무대발표회를 가졌을 뿐아니라 승무, 태평무, 살풀이 등을 창안하였다. 또한 궁중에서 전습되던 정재와 민간에서 추던 민속춤을 바탕으로 왕의춤, 영의정춤, 좌의정춤, 급제춤 등 40여종의 다양한 춤을 창안.집대성함으로써 우리 전통춤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선생이 창안했거나 재구성한 춤들은 우리춤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정통성 있는 춤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중 승무(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와 태평무(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는 제자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홍성 팔경
제1경 용봉산  

 

 

용봉산은 높이는 낮지만 주변 전경이 수려하고 기암 괴석이 수석 같으며, 제2의 금강산이라 칭할 정도로 여느 명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산 전체가 바위산이며, 산의 중턱에 백제시대의 고찰 용봉사와 고려시대 불상인 마애석불등 문화재가 많은 곳이다.

 

제2경 홍주성과 여하정

 

 

홍주성은 최장 1,772m에 달하였으나 810m만 현존하며 성내 관아 건물이 35동에 이르렀으나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만이 남아있다. 여하정은 고종 33년 홍주목사 이승우가 신축한 이래 역대 홍주목사들이 정사를 구상하며 휴식을 취하였던 곳으로 목조기와의 6각형으로 된 수상정이다. 외래관광객들이 홍성을 방문하였을때 빼놓지 않고 보는 곳이기도 하다.

 

제3경 만해생가

 

 

일제 식민강점기에 독립운동가이며 승려이고 시인인 한용운선생께서 고종 16년에 태어난 곳이다. 생가는 앞면3칸, 옆면 2칸 규모의 초가인데 양옆으로 1칸을 달아내어 광과 헛간으로 사용하고 울타리는 싸리나무로 둘렀으며 바깥에 흙벽돌로 화장실을 만들었다. 이후 생가 좌측 뒤편에 사당과 삼문을 신축하였으며, 사당 전면에 기존에 있던 건물을 개축하여 관리사로 사용하고 있다.

 

제4경 그림이 있는 정원(매현농원)

 


광천읍 매현리 산85-4에 위치하고 있는 매현농원을 76,364㎡의 개인 수목원으로 각종 수목 및 화훼류등 50종 6만여점이 조성되어 평일 500명, 주말 2,500여명이 찾고 있으며, 연중 수목 관광을 위해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시시설, 편의시설, 녹지 및 기타시설등으로 구성되어 관광객의 편익을 도모하고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제5경 오서산

 


오서산은 충남 서북부 최고봉으로 정상을 중심으로 약2km의 주능선이 온통 억새밭으로 이루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산 아래로는 질펀한 해안평야와 푸른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한적하고 부용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또한 고려 대운대사가 창건한 정암사가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제6경 남당항

 

 


광활하게 펼쳐진 천수만과 어우러진 제1종항으로 대하, 우럭, 새조개, 까나리, 새우, 기타 장어등이 풍성하여 남당항으로 횟집이 산재하고 있어 연중 미식가들이 즐겨 찾고 있는 홍성 유일의 바닷가 관광명소이다. 또한 매년 9,10월에 대하축제가 열려 미식가들이 이곳을 찾아 싱싱하고 담백한 대하를 시식하며, 관광객이 연중 찾고 있는 곳이다.

 

제7경 백야 김좌진장군 생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였던 백야 김좌진장군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으로 1991년부터 성역화사업을 추진하여 본채와 문간채, 사랑채를 복원하고 관리사 및 전시관, 사당등이 건립하여 1일 방문객 300여명이 찾아와 김좌진장군의 삶을 배우는 역사의 현장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곳이다.

 

제8경 궁리포구

 

 

광활하게 편쳐진 천수만을 앞에 두고 있으며 갯벌 체험등을 할 수 있는 체험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천수만을 끼고도는 임해관광도로의 경치가 일품으로 드라이브 코스가 환상적이다. 이곳에서 잡히는 어종으로는 대하, 새조개, 붕장어(아나고)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