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온주아문 당간지주

by 한국의산천 2007. 4. 1.

지독한 황사로 인하여 예정된 곳으로 등산과 답사를 다음으로 미루고 가까운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봄꽃을 기대하기란 아직이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일화와 만공스님의 발자취가 깃들어 있는 봉곡사로 발길을 돌렸다.

온주아문을 둘러 본 후 외암리 민속 마을을 간단히 둘러보고 봉곡사 답사 후 봉곡사가 자리한 봉수산에 올랐다. 

 

답사 코스

아산 온주아문,동헌 - 외암마을 - 봉곡사 - 봉수산 

[2007. 4. 1일. 일요일 날씨 지독한 황사와 흐림    한국의산천 ]

 

온주아문 및 동헌 (溫州衙門 및 東軒) 

 

 

온주아문 ⓒ 2007 한국의산천

 

온주아문 및 동헌 (溫州衙門 및 東軒)

시도유형문화재 16호
분류 : 관아건축
수량 : 1동
소재지 : 충남 아산시 읍내동 817, 아문159-6, 동헌 159-2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건물로, 아문과 동헌 이 있다. 아문은 조선 고종 8년(1871)에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온주아문(溫州衙門)’이라는 현판 은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온양군의 이름이 온주였던 것을 따서 붙인 듯하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아문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층의 문루 건물이다.

아래층은 통로로 사용하고 윗층은 누 마루 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1.5m 높이의 사각뿔 모양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으며, 4면에 난간을 둘렀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팔(八)자모양인 팔작지붕 이다.

 

동헌은 아문에서 북으로 50m 떨어진 곳에 있다. 아문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으며, 조선시대에 온양군의 동헌으로 쓰이다가 1928년부터 주재소로 쓰였다. 해방 후에는 파출소로 쓰이다가 1986년 시승격에 따라 1988년까지 2년 동안 동사무소로 쓰였다. 그 후 1993년에 수리·복원되었다. 규모는 앞면 6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아문과 같은 팔작지붕이다. 『여지도서』「온양군 공해조」에는 동헌 10칸·아사 23칸·객사 37칸·무학당 3칸·향청 12칸 등 건물 이름과 칸수가 기록되어 있으나, 여러 차례 변형된 결과 지금은 2동의 건물만 남아있다. 

 

 

▲  온주아문 옆에 서있는 비석  ⓒ2007 한국의산천

 

 

▲  온주아문과 동헌 안내문  ⓒ2007 한국의산천

 

 

아산 읍내리 온주아문 ⓒ2007 한국의산천

 

 

ⓒ2007 한국의산천

 

 

▲ 표석 ⓒ2007 한국의산천

 

 

▲ 온주아문 옆에 서있는 비석 ⓒ2007 한국의산천

 

 

아산 읍내리 동헌 ⓒ2007 한국의산천

 

동헌  

조선시대에 온양군의 동헌으로 쓰이다가 1928년부터 주재소로 쓰였다. 해방 후에는 파출소로 쓰이다가 1986년 시승격에 따라 1988년까지 2년 동안 동사무소로 쓰였다.

 

 

ⓒ2007 한국의산천

 

 

ⓒ2007 한국의산천

 

 

▲ 동헌 뒤뜰에 활짝 핀 매화 ⓒ2007 한국의산천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 ⓒ2007 한국의산천

 

보물 제536호지정일 : 1971.07.07

(문화재 관리청에는 보물 537호로 기재되어있고 현지에는 보물 536호로 기재되어있다)
소재지 : 충남 아산시 읍내동 255-2
시대 : 시대미상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 ⓒ2007 한국의산천


온양시내에서 송악면 쪽으로 3㎞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당간지주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받침부분인 기단(基壇)이 땅 속에 묻혀 있어 마주 세워진 두 기둥만 드러나 있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안쪽에는 깃대를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이 파여져 있다.

표면이 심하게 닳아 다른 조각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으며, 기둥 바깥쪽 두 모서리를 깎아내어 마치 세로줄무늬를 새긴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위·아래 기둥의 굵기가 별 차이없이 다듬어져 전체적으로 세련미를 보이고 있다.

지주가 자리하고 있는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로 여겨지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양식들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당간지주 안내문 ⓒ2007 한국의산천

  문화재 관리청에는 보물 537호로 기재되어있고 현지에는 보물 536호로 기재되어있다.
 

당간지주 아래 참고 (촬영 2005년 11월 15일  한국의산천 )

 

칠현산 칠장사 당간지주

 

 

▲  안성 칠장산 칠장사 당간 지주ⓒ2005 한국의산천

 

칠장사 일주만 앞에 자리하고 있다.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높이 11.5m의 철재당간으로 사찰에 큰 행사가 있을 때와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는 당(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를 말한다. 본래는 30개의 원통이 연결되어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14마디의 원통이 남아있다.

 

 

▲  안성 칠장산 칠장사 당간 지주ⓒ2005 한국의산천

 

 

▲  안성 칠장산 칠장사 당간 지주ⓒ2005 한국의산천

'문화문학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란 하늘 푸른호수  (0) 2007.04.03
봉곡사와 정약용의 인연  (0) 2007.04.02
삼존마애불 보원사지  (0) 2007.03.11
한잎의 여자  (0) 2007.02.12
섬을 사랑한 시인 이생진 옹  (0) 2007.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