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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섬을 사랑한 시인 이생진 옹

by 한국의산천 2007. 1. 31.

섬을 사랑한 시인 이생진옹 

 

술에 취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섬이 되기 위해 바다로 간 노시인 

 

 

 

평생 섬을 사랑한 사람.
시인 이생진(72)옹이 걸어온다.
그 뒤를 성산포가 따라 걸어온다.

"시만 읽었을땐 막 잠바를 입고 소주를 좋아하는, 그런 털털한 분인줄 알았는데, 상상이 틀려 버렸어요."
"하하, 그건 제가 때가 묻어서 그래요. 원래는 혼자 배낭메고 가서 소주 한 잔, 해삼 한토막 먹고 섬 곁에서 뒹구는 날이 실제로 많았지."

 

 

스스로 바다가 된 노 시인. 

 

 

어느덧 고희를 넘겼다. 자신의 시어만큼이나 간결하고 깔끔하게 연륜이 물들었다.
몸가짐도, 말투도, 차림도 군살 하나 없다. 둘러메고 온 작은 가죽 가방엔 무엇이 들었을까?
굳이 묻지 않기로 한다. 지나친 호기심도 시인에겐 결례다. 

 

[ 성산포에서는 / 교장도 바다를 보고 /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 아내랑 나갔는데 /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 찻다가도 / 손이풍덩 바다에 빠진다 / 성산포에서는 /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 '바다를 본다' 中 ] 

 

살긴 서울에 살지만, 70년이 넘도록 그는 '바다를 끊지' 못하고 있다. 주소지가 어디든, 시인의 마음엔 지도마다 섬 뿐이다. 없는게 없는 도회지도 갑갑하다 하고 요즘도 수시로 섬으로 달려 간다

어민 한 분이 그물 보관 창고를 손질해 내 주었다. 어느 겨울엔 한기도 참고 글을 쓰다가 몸이 상한 적도 있다. 밤엔 촛불을 켜고 시를 쓴다.

 

" 섬은 계절마다, 볼때마다 달라요?"
"그렇게 쓰고도 또 쓸 것이 있나요?"
"그럼요. 계절마다 다르고, 볼때마다 달라요. 


섬도 섬마다 달라서, 예를 들면 거문도는 역사와 자연이 있는 섬,
우도는 거개에다 관광객들의 화사한 분위기로 있지만, 반면에 만재도는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쓸쓸하고도 신비로와요."

 

"선생님 시는 너무 외로와요. 보는 사람까지도 더 외롭게 만들어요."
"맞아, 내 시는 외로와요. 내가 외롭거든."
"왜 외로와야해요?"
"고독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예요. 사람은 외로운데서 에너지가 나와요. 하다못해도둑도 외로울때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예요." 

 

시인은 '그리운 바다 성산포', '하늘에 있는 섬'등 지금까지 스물다섯권의 시집을 펴냈다. '걸어다니는 물고기'등 몇권의 산문집도 있다. 지난 5월에 나온 시집 ' 혼자사는 어머니'가 가장 최근 작품이다. 여서도, 청산도등 섬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늘 섬 얘기만 쓰시나요?"
"아니에요. 사람들 이야기도 쓰고, 그 전엔 곤충 이야기를 쓴 것도 있어요. 무인도에 가면 살아 움직이는 거라곤 곤충과 나뿐이거든."
"그래봐야 다 섬에 있는 거들이잖아요."
"하긴 그렇네." 

 

[산꼭대기에서 산맥끼리 손잡은 것을 보는데 / 왕개미가 바지 속으로 들어와서 내 고추를 잡아당긴다 / 시비를 거려면 나와서 걸 일이지 바지 속으로 들어와서 / 물어뜯고 꼬집고 잡아 당겼다 늦추고 늦췄다 잡아 당기고 / 한참을 그러다가 바지 밖으로 나와서 내 얼굴을 쳐다본다 / 내 고추를 꽃으로 봤는지 아니면 벌레로 봤는지 / 떼어주면 가지고 갈 눈치다 / ... / 내 고추를 떼지는 못했지만 개미 목에 / 노란 훈장 하나 달아 주고 싶다 - '개미'중 ]

 

시인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다.
섬은 어려서부터 친숙한 놀이터였다. 집에서 몇킬로미터만 달려나가도 안면도, 간월도 등이 소년을 품에 안았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중3때 선친을 잃은 뒤 종이와 물감을 살돈조차 짐스러웠다.
화첩을 접고 책을 폈다.자신에게 속삭이듯 글을 썼다.

 

"그땐 정말 좌절했어요.
내가 왜 이런 운명에 처해야 되는가, 아버지 무덤앞에 주저않아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고, 나는 장남이었거든,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바느질 품도 팔고, 행상도 하면서 우리를 키우셨어요."

"얘야, 네 시는 왜 그렇게 슬프냐"

이름난 시인이 된 아들에게 생전의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얘야, 네 시는 왜 그렇게 슬프냐?' 깜짝 놀란 아들의 대답은 그랬다.
'세상이 슬퍼서 그래요.' 

 

고교땐 곧잘 무전여행으로 떠돌았다. 언제나 바다가 가까이 있었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메모로 끄적이다가 밤이면 간이역에 몸을 뉘였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거지들과 함께 누워있는 일도 많았다.

 

보성, 성남 중고교등에서 30여년간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유난히 아이들에게 시 암송시키기를 좋아하던 영어선생님이었다.
8년전인 1993년 퇴직했다.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섬에 가고 싶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남들보다 앞당겨 퇴직한 뒤 섬을 찾아 다녔다. 

 

무인도 500여개를 포함해 국내의 섬은 약 3,200개. 그중 1,000개쯤을 만났다. 만재도는 10년이나 별러서 만난 섬이었다. 어렵사리 찾아간 끝에도 풍랑에 발길이 막혀 목전에서 뱃머리를 돌려야 한 기억도 두어차례 된다.
뱃편도 간단치 않지만, 어떤 섬은 18일이나 끊임없이 걸어다니며 글을 쓴 곳도 있다.

섬은 시가 되었다. 시인은 등대가 되었다.

무명시절, 간첩으로 오인받아 수시로 검문을 당했다. 그나마 나으면 부동산투기꾼이란 의심이었다. 한번은 배를 타고 가다가 출석부를 부르듯 줄줄이 섬 이름을 외어 맞히는 그를 보고 선장까지 간첩 아니냐며 놀랐다.
검문을 받아 시 노트가 든 가방이 알몸처럼 뒤져질땐 너무나 기분이 상해 다신 오나봐라 하던 섬이지만 얼마뒤면 슬그머니 또 길을 나서던 시인. 

 

성산포 일출 앞에 서면 지금도 가슴이 뭉쿨 

 

국민적 애송시가 된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태어난 건 우연이었다. 다른 시를 정리할겸 성산포를 찾은 새벽, 일출앞에서 뭉클대는 가슴을 참을 수 없었다. 허겁지겁 바다곁으로 뛰어갔다.

성산포가 부르고, 시인은 받아적었다. 미처 노트도 챙기지 못한 터라 급한대로 손바닥에, 뒷주머니에서 끄려나온 껌종이에 글을 적어 넣었다. 성산포 시가 대부분 짧은 건 그 때문이다.

196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10번째 책이 나올때까지만 해도 직접 프린트를 해가면 시집을 만들었다. 


성산포 연작시 앞에 처음으로 출판사가 나섰을땐 그만한 감격이 없었다. 별다른 계약조건하나 없이 건네준 원고가 20여년간 시집으로, 시낭송 음반으로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아무런 계약사항이 없었기에 지금도 인세 한 푼 받지 않는 스테디 셀러지만, 여전히 시인의 마음엔 당시 출판사에 대한 고마움이 살아 있다. 

 

"얼마전엔 출판사에서 성산포 시집 2편을 내는게 어떻겠냐며 비행기 삯까지 줬는데. 성산포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2편을 내면 오히려 1편까지 망칠 것 같아 받았던 비행기 삯을 되돌려줬어요.

그래도 가끔은 그 시들을 읽다보면 비록 내가 썼지만 내가 나를 칭찬해주고 싶을 때가 있긴 있어요. 몇몇 구절은 지금봐도 썩 괜찮아보여요. 그때 내가 어떻게 그런 반짝이는 표현들을 생각해냈을까, 참 흐믓해요.

아마 책상 앞에 앉아 상상으로 쓴 시가 아니라 직접 내 몸으로 걷고 보며 느낀 그대로 써서 그럴거예요. 초고를 쓰고도 세번이나 같은 자리에 찾아가서 싯구와 똑같이 느껴지는가 확인했던 시들이거든요."

 

주간한국 : [인간탐구] 섬을 사랑한 시인 이생진옹 - 

정영주 자유기고가
김명원 사진부 기자

 

▲ 한산(서천) 조각공원  ⓒ 2007.  한국의산천         

 

바다를 본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성산포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한 마리의 들쥐가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바다를 본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설교하는 바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모두 버려라 시목록

성산포에서는
지갑을 풀밭에 던지고
바다가 시키는 대로
옷을 벗는다 

 

바다의 노예 

 

성산포에서는
그 육중한 암벽이
바다의 노예임을 시인하고
자기네들의 멸망을 굽어본다

 

만년필 

 

성산포에서는
관광으로 온 젊은
사원 하나가
만년필에
바닷물을 담고 있다 

 

절망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술에 취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바다의 성욕

성산포에서는
온종일 산삼을 먹어도
산만큼 성욕이 일지 않는다
성산포에서는
해삼을 아무리 먹어도
바다만큼 성욕이 일지 않는다


색맹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이외에는
손대지 않는다
성산포에서는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여유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짐승이
짐승보다 산이
산보다 바다가
더 높은 데서
더 깊은 데서
더 여유 있게 산다 

 

수많은 태양 

 

아침 여섯 시
어느 동쪽에서도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필 거야

아침 여섯시
태양은 수만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
해를 보라


바다를 담을 그릇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바다로 가는길 

 

돈을 모았다
바다를 보러간다
상인들이 보면
흉볼 것 같아서
숨어서 간다

 

화장하는 여인

바다 앞에서
거울을 보며
눈썹을 그리는 여인
바다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아서
빙그레 웃는다


귀신같은 인상

첫눈에 무섭다가
차츰 친해져 버리고
그 절벽
그 굴곡
그 무식
그 잔인
첫 눈엔 무섭다가
차츰 친해져 버리고 


 

감(感)

바다가 산허리에 몸을 부빈다
산이 푸른 치마를 걷어올리며
발을 뻗는다
육체에 따뜻한 햇살
사람들이 없어서
산은 산끼리
물을 물끼리
욕정에 젖어서
서로 몸을 부빈다


수평선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든 파도에
귀를 찢기고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죽을 기회

도회는
늘 죽음을 방해하지만
바다는 기회를 주어 좋다

성산포에서는
시원스럽게 죽을 수 있어 좋다 


 

하늘에게 

 

하늘이여
바다 앞에서
너를 쳐다보지 않는 것을
용서하라

하늘이여
바다는 살았다고 하고
너는 죽었다고 하는 것을 용서하라

너의 패배한 얼굴을
바다 속에서 더 아름답게
건져 내는 것을
용서하라

그 오만한 바다가
널 뜯어먹지 않고
그대로 살려준 것을 보면
너도 바다의 승리를
기뻐하리라

하늘이여
내가 너를
바다 속에서 보는 것을
용서하라


고독 

 

나는 떼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섬 운동장 시목록

국민학교 운동장이
바다 쪽으로 기울었다
선생도 학생도
바다 쪽으로 기울었다 

 

섬묘지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 두었다 


 

무명도(無名島)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낮잠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부자지간 

 

아버지 범선 팔아
발동선 사이요

얘 그것 싫다
부산해 싫다

아버지 배 팔아
자동차 사이요

얘 그것 싫다
육지 놈 보기 싫어
그것 싫다

아버지 배 팔아
어머니 사이요

그래
뭍에 가거든
어미 하나 사자


외로움

날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
퍽퍽 넘어지며 운다

큰 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 불어오듯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 내버린다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가듯
바다도 물 속으로 물 속으로
밤을 피해간다 

 

한 모금의 바다

어망에 끼었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수문에 갇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갈매기가 물어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하루살이 하루 산 몫의 바다도
빠져나와
한 자리에 모인 살결이 희다
이제 다시 돌아갈 곳도 없는 자리
그대로 천년 만년
길어서 싫다


추억

한여름 땀을 씻으며
일출봉에 올라가
풀 위에 누웠는데
햇빛이 쏟아지더군
여기서 누굴 만날까
장미같은 여인인가
가시 찔린 시인인가
그런 것 다 코웃음 치다가
내려오는데
신혼여행으로 온 한 쌍의 부부
셔터를 눌러달라고 하더군

그사람들 지금쯤
일남일녀 두었을 거다
그 사진은 사진첩에 묻어두고
이혼할 때쯤 되었을 거다
이혼하거든 여기서
돌이랑 살지
이혼하거든 여기서
추억이랑 살지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살아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워할 것도 없이
돌아선다

사슴이여 살아 있는 사슴이여
지금 사슴으로 살아 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냐
꽃이여 동백꽃이여
지금 꽃으로 살아 있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사슴이 산을 떠나면 무섭고
꽃이 나무를 떠나면 서글픈데
물이여 너 물을 떠나면
또 무엇 하느냐

저기 저 파도는 사슴 같은데
산을 떠나 매 맞는 것
저기 저 파도는 꽃 같은데
꽃밭을 떠나 시드는 것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살아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움도 없이 말 하나 않지만

낮에서 밤으로 시목록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 생각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게 나를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 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나니
밤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서
밤이 되어 버린다


보고 싶은 것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을 감으면
보일 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 거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 거다

 

그리운 바다 

 

내가 돈보다 좋아하는 것은
바다
꽃도 바다고 열매도 바다다

나비도 바다고 꿀벌도 바다다
가까운 고향도 바다고
먼 원수도 바다다

내가 그리워 못 견디는 그리움이
모두 바다 되었다
끝판에는 나도 바다 되려고
마지막까지 바다에 남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다가 삼킨 바다
나도 세월이 다 가면

바다가 삼킨 바다로
태어날 거다


고독한 무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무덤이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무덤이 차갑다 


 

바다에서 돌아오면

바다에서 돌아오면

가질 것이 무엇인가
바다에선 내가 부자였는데
바다에서 돌아오면

가질 것이 무엇인가
바다에선 내가 가질 것이
없었는데

날아가는 갈매기도
가진 것이 없었고
나도 바다에서

가진 것이 없었는데
바다에서 돌아가면
가질 것이 무엇인가

 

 

 

그리운 바다 성산포 1 

 

아침 여섯시 어느 동쪽에도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필거야

 

아침 여섯시 태양은 수 만 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성산포에서는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사투리로 말한다
그러다가도 해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말만 하고 바다는 제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든 파도에 귀를 찢기고
그래도 할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을 감으면 보일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있는 것처럼 보일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거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거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2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생각 없이 해를 본다
해도그렇게 나를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나니 밤이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어서 밤이 되어 버린다 

 

날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 퍽퍽 넘어지며 운다
큰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 불러오듯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내버린다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가듯
넓은 바다도 물속으로 물속으로 밤을 피해간다 

 

성산포에서는 그 풍요 속에서도 갈증이 인다
바다 한가운데에 풍덩 생명을 빠뜨릴 순 있어도
한 모금 물을 건질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도 좋은 곳
성산포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치 않아 서로 떨어질수 없다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살아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워할 것도 없이 돌아선다
사슴이여 살아있는 사슴이여
지금 사슴으로 살아 있는 사슴이여
저기 저 파도는 사슴 같은데 산을 떠나 매 맞는 것
저기 저 파도는 꽃 같은데 꽃밭을 떠나 시드는 것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에 넋
파도는 살아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움도 없이 말하지 않지만

 
그리운 바다 성산포 3 

 

어망에 끼었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
수문에 갇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갈매기가 물었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하루살이 하루 산 몫의 바다도 빠져나와
한 자리에 모인 살결이 희다
이제 다시 돌아갈 곳도 없는 자리
그대로 천년만년 길어서 싫다 

 

꽃이 사람 된다면 바다는 서슴지 않고 물을 버리겠지
물고기가 숲에 살고 산토끼도 물에 살고 싶다면
가죽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들겠지
그런데 태어난대로 태어난 자리에서
산신에 빌다가 세월에 가고
수신께 빌다가 세월에 간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는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그리운 바다 성산포 4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무덤이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 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를 보고있는 고립
성산포에서는 주인을 모르겠다  바다 이외의 주인을 모르겠다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아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게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 두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그리운 바다 성산포 5 

 

일어설 듯 일어설 듯 쓰러지는 너의 패배 발목이 시긴 하지만
평면을 깨뜨리지 않는 승리 그래서 네 속은 하늘이 들어앉아도 차지 않는다
투항하라  그러면 승리하리라  아니면 일제히 패배하라
그러면 잔잔하리라  그 넓은 아우성으로 눈물을 닦는 기쁨 투항하라  그러면 승리하리라
성산포에는 살림을 바다가 맡아서 한다  교육도 종교도 판단도 이해도
성산포에서는 바다의 횡포를 막는 일 그것으로 독이 닳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오늘 아침 하늘은 기지갤 펴고 바다는 거울을 닦는다
오늘 낮 하늘은 낮잠을 자고 바다는 손뼉을 친다
오늘 저녁 하늘은 불을 켜고 바다는 이불을 편다
바다가 산허리에 몸을 굽힌다  산은 푸른 치마를 걷어올리며 발을 뻗는다
일체에 따듯한 햇살 사람들이 없어서 산은 산끼리 물은 물끼리
욕정에 젖어서 서로 몸을 부빈다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칼이다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양이다
그릇 밖에서 출렁이는 서글픈 아우성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갈증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짐승이 짐승보다 산이 산보다 바다가
더 높은 데서 더 깊은 데서 더 여유 있게 산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하늘이여  바다 앞에서 너를 쳐다보지 않는 것을 용서하라
하늘이여  바다는 살았다고 하고 너는 죽었다고 하는 것을 용서하라
너의 패배한 얼굴은 바다 속에서 더 아름답게 건져내는 것을 용서하라
그 오만한 바다가 널 뜯어먹지 않고 그대로 살려준 것을 보면
너도 바다의 승리를 기뻐하리라..
하늘이여  내가 너를 바다 속에서 너를 보는 것을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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