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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한잎의 여자

by 한국의산천 2007. 2. 12.

 

 

제자 손바닥에 손톱으로 마지막 詩를 쓰고 떠나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시인은 의식이 남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썼다.
지난 2월 2일 폐질환으로 타계한 오규원 시인(1941~2007)이 병상에서 제목이 없는 4행시 한 편을 남겼다.
오 시인이 가르쳤던 서울예대 문창과 출신 문인들은 4일 “지난 1월21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던 선생님이 손톱으로 마지막 시를 쓰셨다”고 전했다.

시인 오규원
이 름 : 오규원 (吳圭原, 본명 : 오규옥)

생년월일 : 1941년 12월 29일
시인, 교육자, 교수
동아대 법학과 졸업,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인 오규원은 1941년 경남 삼랑진에서 출생하였고,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 '순례'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사랑의 감옥'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오규원 시 전집' 1 ·2 등이 있으며 시선집 '한 잎의 여자' 시론집 '현실과 극기' '언어와 삶' 등과 '현대시작법'이 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한 잎의 女子  - 오규원 -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잎같이 쬐끄만 女子,
그 한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잎의 솜털,
그 한잎의 맑음,
그 한잎의 영혼,
그 한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나는 정말로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한잎의 女子 2

나는 사랑했네 한 女子를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원 주고 바지를 사입는
女子, 남대문시장에서 자주 스웨터를 사는
女子,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 원에 사는
女子,단이 터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女子,그 女子를 사랑했네,순대가 가끔 먹고 싶다는
女子,라면이 먹고 싶다는
女子,꿀빵이 먹고 싶다는
女子,한 달에 한두 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女子, 손발이 찬
女子,그 여자를 사랑했네,그리고 영혼에도 가끔 브래지어를 하는
女子.

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女子,추운 날엔 팬티스타킹을 신는
女子, 화가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女子,팬티만은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女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女子,실크스카프가 좋다는
女子,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女子,아이는 하나 꼭 낳고 싶다는
女子,더러 멍청해지는
女子, 그 女子를 사랑했네,그러나 가끔은 한잎 나뭇잎처럼 위험
한 가지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女子,

한잎의 女子 3  

언어는 신의 안방 문고리를 쥐고 흔드는 건방진 나의 폭력이다.

내 사랑하는 女子,지금 창 밖에서 태양에 반짝이고 있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보네.커피같은 女子,그레뉼같은 女子, 모카골드 같은 女子,창 밖의 모든 것은 반짝이며 뒤집히네, 뒤집히며 변하네,그녀도 뒤집히며 엉덩이가 짝짝이되네.오른쪽 엉덩이가 큰 女子,내일이면 왼쪽 엉덩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女子,봉투같은 女子.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자주 책 속 그녀가 꽂아놓은 한잎 클로버 같은 女子, 잎이 세 개이기도 하고 네개이기도 한 女子.

내 사랑하는 女子, 지금 창 밖에 있네. 햇빛에는 반짝이는 女子, 비에는 젖거나 우산을 펴는 女子, 바람에는 눕는 女子, 누우면 돌처럼 깜감한 女子,창 밖의 모두는 태양 밑에서서 있거나 앉아 있네.그녀도 앉아 있네.앉을 때는 두 다리를 하나처럼 붙이는 女子,가랑이 사이로는 다른 우주와 우주의 별을 잘보여 주지 않는 女子,앉으면 앉은,서면 선 女子, 밖에 있으면 밖인, 안에 있으면 안인 女子,그녀를 나는 사랑 했네.물푸레 나무 한잎처럼 쬐그만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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