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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큰 물을 어우르는 여강

by 한국의산천 2006. 7. 19.

참 희안한 일이 다 있다.

작년의(2005년 7월 19일) 오늘에,  이곳 은모래 유원지를 지나 신륵사를 답사하고 고달사지, 파사성을 답사하였다.

공교롭게도 하루도 틀리지 않는 꼭 1년만에 다시 이곳에 오게 되다니...   

(업무차 원주, 문막쪽에 들렀다가 잠시 들렀습니다)

 

2005년 7월 19일 (화요일) 답사지 클릭 ■☞ 명성황후 생가,신륵사,파사성,고달사지 사진보기

 

여강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 [ 촬영 2006. 7.  19.   한국의산천 ]

 

우리나라의 큰강으로 일컫는 한강, 그 한강을 이루는 두 물줄기가 있으니 북한강과 남한강을 말한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충주댐을 지나 온 남한강의 물은 북한강과 합쳐지는곳 두물머리를 향하여 흘러간다.  그 긴강 줄기 중간에 옥토를 이루고 있는것이 있으니 여주와 이천, 여주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는 남한강을 ‘여주의 강’이라는 뜻으로 '여강'으로 부르고 있다.   

 

 

▲ 은모래 강변 유원지에서 바라 본 여주대교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며칠 동안 전국의 집중호우로 인하여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났다. 지금은 조금 비가 잦아들었지만 강물은 아직도 무서운 기세로 도도히 흐르고 있다.

며칠 전 뉴스에 한참이나 나왔던 여주대교. 지금도 강안(江岸)을 꽉 채우며 흐르고 있다. 업무중에 잠시 둘러보았다.

 

 

 

▲ 무서운 황톳물이 흐르는 여강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여주대교 위 북쪽으로 멀리 양평의 용문산과 능선이 길게 하늘금을 이룬다.

 

 

▲ 은모래 유원지에서 건너 본 신륵사.(LC1, 90mm) ⓒ2006 한국의산천

 

여주대교를 지나서 바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신륵사가 있다. 신륵사는 강을 바라보며 아늑하게 앉아있는 고찰이다. 장맛비로 인하여 물이 많이 차올라있다.

바다를 보고 앉은 사찰은 많지만 절 앞에 강이 흐르는 사찰은 아마도 이곳이 유일할것이다. 지금은 집중호우로 인하여 황톳물에 아주 넓은 강을 이루고 있지만 평소에는 맑은 은모래가 강가를 수놓는 아름다운 여강이다. 

 

 

▲ 신륵사 바로 앞에 위치한 조포나루 ⓒ2006 한국의산천 

 

이 곳 조포나루는 여주 아래 이천쪽의 이포나루와 더불어 여주의 대표적인 나루터로, 한강과 남한강을 오가던 황토 돛배로 장관을 이뤘던 곳이다.

조선 시대 때 황토 돛배들은 마포나루와 광나루, 이포나루를 바쁘게 오가며 소금,새우젓,땔감 등을 싣고 다니며 물물교환을 활발히 해 왔다. 그러다가 1970년대 팔당댐 건설로 뱃길이 끊긴 이후 그런 모습은 자취를 감췄고 나루터 기능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 장마로 인하여 운행이 정지된 황포돛배 ⓒ2006 한국의산천

 

지금은 모터로 움직이는 황포 돛배를 관광선으로 복원해, 신륵사에서부터 여주읍 상리 영월루와 여주대교를 거쳐 여주 군청까지 왕복 3 km를 운항하고 있다. 

 

 

▲ 신륵사 일주문 (한국의산천 참고 사진) ⓒ2006 한국의산천

얼마전 새로 세운 일주문이다 과거에는 이보다 좀더 육중한 스타일의 일주문이 서있었다. 

 

신륵사는 강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아름다운 경관과 많은 유물·유적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 진평왕 때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며, 고려 우왕 2년 (1376년)에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한 절이 되었다. 

다층 전탑이 묵묵히 여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나옹선사의 당호를 딴 정자 강월헌(江月軒)은 강가의 멋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 신륵사 다층전탑  (한국의산천 참고 사진) ⓒ2006 한국의산천

고려시대의 벽돌 탑. 보물 제226호. 높이 약 9.4m. 아래로 한강이 굽어보이고 강 건너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경치좋은 바위 위에 이 전탑이 세워져 있다.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와 경상북도 안동지역에서 몇 기가 남아 있다. 

  

 

 

▲ 여주 강천리의 넓은 여강과 흐린 하늘. ⓒ2006 한국의산천  

문막쪽에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바라 본 여강의 모습은 다시 금 비라도 뿌릴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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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팔경


1. 神勒暮鍾 (신륵모종) 신륵사에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
2. 馬巖漁燈 (마암어등) 마암앞 강가에 고기잡이배의 등불 밝히는 풍경
3. 鶴洞暮煙 (학동모연) 강건너 학동에 저녁밥 짓는 연기
4. 燕灘歸帆 (연탄귀범) 강 여울에 돛단배 귀가하는 모습
5. 洋島落雁 (양도낙안) 양섬에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
6. 八藪長林 (팔수장림) 오학리 강변의 무성한 숲이 강에 비치는 전경
7. 二陵杜鵑 (이릉두견) 영릉과 녕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
8. 婆娑過雨 (파사과우)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 

 

주변 둘러볼 곳

 

 

▲ 세종대왕 동상(영릉)  ⓒ2006 한국의산천

위치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83-1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 해시계등 과학기구를 발명하였으며 아악을 정리하고 북방의 야인을 정벌하여 국토를 확장하였으며 대마도를 정벌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또한 활자를 개량하여 용비어천가, 농사직설등 수많은 책을 발간하였다. 

왕릉은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능의 하나로서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두 개의 혼유석이 있고 봉분 둘레에 돌난간을 둘렀으며 12개의 석주에는 12간지를 문자로 새겨놓았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해시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혼천의 등 각종 과학기구를 복원해 놓았으며 세종전에는 대왕의 입적과 관련되어 여러 가지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학술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명성황후 생가 (기념관)  ⓒ2006 한국의산천

조선 제26대 고종 황제의 비로 개화기에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시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인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던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1687년(숙종 13년) 왕의 장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서 남아있는 것은 안채 뿐이었으나, 1995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으며,명성 황후가 어렸을 때 공부했다는 방이 있었던 자리에 탄생을 기념해 세운 "명성황후 탄강구리(明成皇后 誕降舊里)"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 새겨진 비가 세워져 있다.

생가 앞에 기념관이 건립되어 각종자료· 유품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161석 규모의 공연장(문예관)이 있어 명성황후에 대한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가는길: 영동 고속도로 여주 IC에서 나가서 여주 방면으로 500m 쯤 가면 오른쪽으로 안내판이 서 있으며 약 1km정도 들어간다.

 

 

▲ 고달사지  ⓒ2006 한국의산천

 

고달원(高達院)이라고도 하였다. 764년(신라 경덕왕 23)에 창건되었다. 고려 제4대 광종 이후 역대 임금의 비호를 받으며 도봉원(道峰院)·희양원(曦陽院)의 하나로 빠르게 발전했던 유명한 절이었으나, 어느 때 폐사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고려초기에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3대 선원의 하나로 왕실의 각별한 비호를 받았다고 전한다.)

 

절터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석불대좌(보물 제 8호), 강렬한 힘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 제7호인 원종대사혜진탑(元宗大師慧眞塔)과 보물 제6호인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龜趺) 및 이수(螭首), 국보 제4호인 고달사지 부도(浮屠), 그리고 보물 제8호인 석불좌(石佛座) 등이 있다.

원감국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고달사지 부도는 빼어난 균형미와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국보 제 4호로 지정되었는데, 이들 석조유물의 규모로 보아 찬란했던 역사의 현장을 그려 보게 된다.
현재 이곳에는 고려시대의 부도를 대표하는 국보 제 4호 고달사지 부도와 보물 제 6, 7  , 8호의 유물들이 있으며, 이들 석조 유물들은 하나같이 넘치는 힘과 호방한 기상이 분출하는 가운데 화려하고 장엄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창건 당시의 사찰은 실로  광대하여 지금의  상교리 일대가 전부 사역으로 추정되며 절부근에 큰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금 광활한 사역에는 유물만 남아 있다.
현재 절터는 복원을 위한 발굴 조사가 조직적으로 진행중이다.

 

고달사 석조물은 모두 고달이란 석공이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쳤다고 한다. 불사를 끝내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었으니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 파사성  ⓒ2006 한국의산천

 

경기 여주군 대신면 천서리 야산에 있는 석성으로 지정번호  사적 제251호 삼국시대의 것으 추정하며 높이 5~6m, 길이 약 1,800m이다.

이포대교를 건너서 직진하여 천서리 막국수 식당들을 지나서 약 500m 정도 가다보면 좌측에 파사산성이 있고 우측도로가에 작은 안내표지가 있으며 소로길로 들어간다.

마을 입구에서 약 10m정도 들어서면 우측에 파란지붕이있는 집 앞을 통과하야 약 700m정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82년(신라 파사왕 3) 모여장군(某女將軍)이 축성하였다는 전설도 있고 삼국통일시 나 ·당연합군의 대접전지이며 최후의 싸움터였던 매초성이라는 설도 있는데, 1592년(선조 25) 승장(僧將) 의엄(義嚴)이 둘레 1,100보의 고성을 수축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타나 있다. 또한 성내 북쪽에 폭 3m의 암벽에 여장군의 초상이라는 것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아래 6.6m2 정도의 암석을 뚫어서 음료수로 사용하던 흔적이 있는데 암벽에 새겨진 여인이 샘을 팠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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