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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영월 우구정 가옥 가는 길

by 한국의산천 2006. 4. 23.

영월 우구정 가옥 가는 길 [답사 2006. 4. 23.   한국의산천  ]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박달재 (해발 453m) 

충북 제천시 봉양면 원박리와 백운면 평동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천등산(天登山) 박달재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제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관행길이 나 있으나, 첩첩산중으로 크고 작은 연봉이 4면을 에워싸고 있어 험준한 계곡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 곳은 1217년(고려 고종 4) 7월 거란군이 10만 대군으로 침공해 왔을 때 김취려(金就礪) 장군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전공을 세운 전승지로 알려져 있다.

※ 실제 박달재가 있는 산은 시랑산(侍郞山, 691m)이고 천등산은 이보다 서남쪽으로 약 8km쯤 떨어진 다릿재와 연결된 산이다.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박달재 오름길에는 박달과 금봉이의 애뜻한 사랑처럼 오늘도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박달재의 전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朴達)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이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금봉은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다.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초초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았다.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졌다.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으며 밤마다 두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한 후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싸리문 앞을 떠나지 앉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詩)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 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과장(科場)에 나가서도 결국 박달은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내 보내고는 날마다 서낭에서 빌었다. 박달의 장원급제를 위해서.

그러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사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왔다.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박달은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 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 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 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 안았으나 박달은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의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휴게소에서.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우구정 가옥 

문화재자료 제70호 (강원)
수량 : 1동
소재지 : 강원 영월군 남면 북쌍리 782
소유자 : 우구정
관리자 : 우수명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가옥을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00년 이상 되었다고 전하며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로 구성된 ㅁ자형 구조이다. 안채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대청 기둥만은 굵은 원형의 기둥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며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을 두고 왼쪽으로 안방과 부엌을 직각으로 두었다.
사랑채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에 一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00년 이상 되었다고 전하며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로 구성된 ㅁ자형 구조이다.
안채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대청 기둥만은 굵은 원형의 기둥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며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을 두고 왼쪽으로 안방과 부엌을 직각으로 두었다.
사랑채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에 一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마루방·사랑방·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방의 앞쪽에는 넓은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대문 왼쪽에는 2칸 사랑방을 배치하였고 방 앞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헛간채는 나중에 늘려지은 건물로 양식은 영서지방 전형의 전통 민가 형식을 따르고 있다.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이 가옥은 민박으로도 대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진작가 여행자가 많이 찾아와서 묵고 가시더군요. 주인이 참 소막하시고 좋으십니다.

민박: 방 한 칸에 3만원~5만원선 (장작불을 넣어드립니다)
문의: 033-372-5704 우수명
민속박물관: 무료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현재 우구정 가옥의 소유주인 우수명님 (이곳에서 18대를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저와 같은 성씨이며 포즈를 취해주셧습니다.

이 가옥 앞에 있는 살림집에 가서 차한잔 하고 종친회 이야기도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2006 한국의산천 우관동

 

우구정 가옥 바로 앞에 옛스러움이 가득한 집 들꽃민속촌이 자리하고 있다. 

 

영월 우구정 가옥, 들꽃민속촌 가는 길

1) 영동고속도로 - 여주휴게소 지나서 중앙고속도로 - 충주 못미쳐 첫번째 톨게이트인 감곡 IC에서 나가서 영월 제천방향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가면 영월 바로 못미쳐 들골이라는 이정표가 있음. 이정표에서 나가서 서강다리를 건너 왼쪽길로 1km 지점 (자동차 전용도로로서 정체가 없으며 도로비 없음.시속 80km도로) 

2) 서울·중부고속도로 - 호법분기점 - 영동고속도로 - 원주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 서제천 IC - 38국도 진입 - 38국도 들골 나들목 - 들골마을까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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