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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곡동 강서구청앞 도로에서 서쪽으로 계산동까지 경인 고속도로와 나란히 뻗은 왕복 8차선 도로가 있다. 그
도로의 부천과 서울의 경계지점인 곳에서 하는 고강 지하차도 공사로 인하여 공사차량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지하차도 개통식
2005. 11월 24일). 바로 그곳 삼거리 교차로에는 우리에게 <논개>를 비롯한 뛰어난 기교적 시와 신랄한 해학, 풍자의 수필로 유명한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樹州 卞榮魯)의 기념비(동상)와 시비가 아름답게 세워져있다. 이번 도로확장과 포장, 지하차도 공사와 더불어 세운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고강동이며 서울에서 태어난 변영로 시인께서 어린 시절 문학의 둥지를 틀었던 곳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은 안내판만이 있었던 곳이다. 변영로 선생이 태어난 곳은 회현동이지만 선생은 500여 년을 대대로 고강동에서 살아온 공장공 변종인의 후손이다.
인천의 명칭 변천사 백제: 미추홀(彌鄒忽) 고구려: 매소홀(買召忽) 통일신라: 소성현(邵城縣) 고려: 수주(樹州), 경원군(慶源郡), 인주(仁州), 경원부(慶源府) 조선: 인주(仁州), 인천군(仁川郡),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 인천현(仁川府),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 근대: 인천부(仁川府) 현대: 인천시(仁川市). 인천직할시(仁川直轄市),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
봄비 -변영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중동 신시가지 중앙공원에는 1996년 12월 문인협회 부천지부에서 세운 그의 시비가 있으며 <논개>가 새겨져 있다. 그 곁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비도 같이 있다.
논개(論介) -변영로- 거룩한 분노(憤怒)는 종교(宗敎)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情熱)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신생활 3호, 1923.4) 저항적 색채로 말미암아 이 작품이 수록된 시집 <조선의 마음(1924)>은 발간 직후 일제로부터 판매 금지 및 압수령이 내려졌다.
고향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니러뇨. 산 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 시인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지만 2차대전 중에는 이곳 부천에서 잠시 머무른 적이 있다.
1922년 이후 <개벽>을 통해 해학이 넘치는 수필과 발자크의 작품 등을 번역해서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24년 발간된 첫 시집 <조선의 마음>에는 '생시에 못 뵈올 님을', '논개'등의 시를 실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그의 시에서는 민족의 해방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과 뜨거운 민족혼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수필은 민족적 저항이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1949년 서울시 문화상 (문학부문)을 수상했으며 1961년 64세로 타계하여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렀다. 변영로 선생의 묘는 고강 지하차도에서 약 3km정도 떨어진 고강 아파트 단지 뒤의 작은 산자락에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의 묘역 앞에는 작은 시비가 서있다. 1998년 7월 2일 수주 변영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수주 변영로 기념사업회에서 고강동 선산에 있는 묘소에 한국일보 후원으로 세운 것이다. <생시에 못 뵈올 임을> 전반부 생사에 못 뵈올 임을 꿈에나 뵐까 하여 꿈가는 푸른고개 넘기는 넘었으나 꿈조차 흔들리우고 흔들리어 그립던 그대 가까울 듯 멀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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