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알람이 울렸다.
집사람이 오늘은 어디로 행차(?)하시나요? 묻기에
경강...
경강이면 전에 갔다왔잖아요...
어?
경강이면 춘천방향 강촌역 백양역 못미쳐서 경강역이다.
올봄에 한치령넘어 소남이섬 답사 갈때 갔던곳이 경강역...
경강
강경
아휴 헷갈려라~
아니다 경강이 아니고 강경이여 강경.. 논산 있는데 강경~!!!
밖의 날씨는 흐린듯하였으나 정해진 계획대로 이동 멤버들과 연락한후 서울 만남의 광장으로 나갔다.
오늘 답사 코스
서울 - 강경 미내다리 - 원목다리 - 보령 성주사지 - 서울 ( 원점회귀 약 450km )
미내다리 (조암교:潮岩橋) 답사 2005.9.4 [ 한국의산천 ]
(아래 모든 자료 이미지는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 새벽 4시에 일어나 논산 연무 IC를 향하여 출발, 주로 성묘객과 여행자로 인하여 서울 톨게이트가 매우 붐볐다.
▲ 천안 - 논산간 고속도로 중간 쯤 차령고개 터널을 진입하기전에 산에 걸린 하얀 구름
▲ 미내다리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가르는 강경천 제방에 세워져 있다. 이름은 강경천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데서 붙여졌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미내다리가 조수의 차에 의해 바위가 보인다하여 조암교(潮岩橋)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무IC에서 나와서 강경대교를 건너는 사거리를 그냥 직진해서 논산 경찰서방향 사거리에서 공주방향 23번 국도를 따라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면서 바로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철교 아래를 통과해서 약 1km정도 가면 주차장이 있는 미내다리가 나온다.(낚시하는 분들도 많다)
▲ 뚝길로 진입 주차장 넓음, 대형버스 진입 안됨. 주차료 입장료 없음.
강경은 넓은 농수로와 물이 많은 곳이더군요.강경천과 금강이 강경을 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농사를 짓는데 쓸 수 있게 수문이 많이 있습니다.
▲ 이곳 논산·강경 일대에는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면 "너는 이승에 살 때 개태사의 가마솥, 관촉사의 미륵불,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고 묻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승에서 이 세가지를 못보고 죽었다면 아까운 죽음이라는 뜻인가?
다리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주며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소금장수,방물장수들이 저 다리를 건넜을까?
▲ 미내다리 위 하늘높이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사진을 클릭하시면 기러기의 암,수를 구별하실 수 있습니다)
▲ 미내다리
충청남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1호(1973.12.24 지정)
위 치 :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541
소 유 : 논산시
수 량 : 홍예교1기
길 이 : 30m
폭 : 2.8m
높 이 : 4.5m
재 료 : 석재
시 대 : 조선시대
논산에서 국도로 강경에 들어가기전 강경천이 나오고, 강경천의 왼편 뚝을따라 1km 쯤가면 제방안쪽으로 다리가 나타난다. 이 하천을 미내라고 부른데서 연유하여 미내다리라고도 하고, 조암교라고도 하는데 길이 30m, 다리 넓이 2.8m에 3개의 홍예로된 다리이다.
비문에 의하면 조선조 영조7년(1731) 강경사람 송만운이 주동이 되어 황산사람 유부업, 중경원 설우 청원 3인과 여산의 강명달 강지평이 재물을 모아 1년만에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이 다리를 축조하였는데 당시는 3남 제일의 대교였다 한다.
▲ 홍예 머릿돌 양쪽에 용머리와 귀면을 튀어나오게 한 조각물이 있는데 이는 재앙을 막으려 설치한 조각물이다.
아치형의 다리 돌덩이들은 접착 세멘트를 사용하지않고도 서로가 쐐기가 되어 서로 물려있는 형상이다. 즉 윗부분은 길고 물이 지나가는 아래쪽은 길이가 조금 짧기에 아래방향으로 힘을 가하면 힘은 돌덩이들로 전달되는데, 맨윗돌은 그 아랫돌은 그 아랫돌은 또 그 아랫돌 누르는 식으로 힘이 전달이 된다.
돌은 누르는 힘( 압축력)을 견디는 데는 탁월합니다. 아치에서는 위 그림에서와 같이 모든 돌덩이들이 압축력만 받게 되어있기 때문에 튼튼한 다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놀라운 선조의 과학적인 지혜에 그저 놀라울 다름입니다.
▲ 강경 토호 세력들의 재력을 상징하는 미내다리
미내다리는 둑과 나란히 놓여 있다. 미내다리는 강경천을 건너가는 다리가 아니다. 강경천 옆구리에서 갈라져나온 지류를 위해 세워진 다리인 것이다.
장대석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 모양를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길이 30m, 폭 2.8m이니 원목다리 길이의 거의 두 배 가량이나 폭은 거의 비슷한 편이다.
다리의 중간 홍예 이맛돌에는 눈은 마치 장승의 눈같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옆으로 귀모양과 갈기가 있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물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다리 옆에 있었으나 지금은 부여박물관 뜰에 옮겨져 있는 은진미교비에는 이 다리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데 비에 따르면 미내다리는 조선 영조 7년(1731)에 강경촌에 사는 석설산과 송만운 등이 재물을 추렴하여 1년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당시 강경 지방 토호들의 재력을 능히 짐작할만한 대목이다. ( 오마이 뉴스 참고)
▲ 난간의 긴 돌을 받쳐주는 "ㄴ"字形의 쐐기 돌.
▲ 다리의 구조는 3개의 홍예로써 가운데 부분이 제일높고 크며 양쪽 홍예는 조금 작고 낮다.
받침은 긴 장대석으로 쌓아올리고, 그 위에 홍예석을 돌려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40cm× 50cm × 110cm 내외의 장대석이다.
가운데 홍예의 정상부 종석은 다리난간 밖으로 돌출시켜 호랑이 머리를 조각했고, 북쪽의 홍예정상부 종석 다리난간 돌에는 용머리를 새겼으며, 난간석에는 화문을 새긴 듯하나 지금은 마멸되어 식별하기 어렵다.
남쪽의 홍예 정상부에는 조각이 없다 홍예와 홍예사이의 간지에는 양쪽 보이는 면으로 35cm × 150cm 정도의 장대석으로 잘 조화시켜 쌓았으며 다리 윗면에는 턱진 장대석을 난간 밖으로 돌출시켜 턱에 보도와의 경계석을 끼우도록 하였다.
미내교옆의 자연석위에 은진미내교비가 있었으나 파손되었던 것을 찾아내어 지금은 국립 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 미내교 주차장 옆 밭에는 가을로 서서히 물들고 있다.
▲ 미내다리는 강경의 역사적인 대표유적으로 이 지역의 명물일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강경미내다리를 보고 왔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곳 미내다리의 돌을 빼내어 집으로 가지고 가면 천둥과 벼락이 친다고 한다. 그래서 함부로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자기 나이만큼 이 다리를 왕래하면 그 해의 액운을 막아주며 추석날 이다리를 7번 왕래하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 미내다리를 보기 위해 가다 보면 어릴 적 보았던 그런 철도 철교가 나온다.이 다리 아래로 통과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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