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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공세리 성당 성지

by 한국의산천 2005. 7. 31.

오늘 답사코스

아산 인취사 → 세심사 →  공세리 성당 (왕복 약 240 km) 

 

 

국내에서 아름다운 성당 중의 하나 공세리 성당 

 


 

 

♣ 아산 공세리 성지 답사 [2005.7월31일(일) 한국의산천 ]

 

서울에서 출발하여 수원, 발안, 아산만을 지나 삽교호 쪽으로 가다보면 좌측에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소문이나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공세리 성당은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순교성지 성당답게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14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있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아산만과 삽교천은 교회 박해시대에는 내포지방의 입구로 해상과 육로로 연결되는 중요한 포구였으며, 현재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9,500평의 부지는 예로부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가 있던 공세곶창고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조선조 성종9년(1478)부터 이곳에 세곡해운창을 설치, 운영해오면서 매년 15척의 조운선으로 서해 물결을 따라 삼도의 세곡을 한양으로 운반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1895년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드비즈 신부는 이곳에 부임해서 400년이 지난 세곡 창고터를 헐고 그야말로 복음 창고인 성당을 1922년 10월 8일 봉헌함으로써 내포지방의 신앙의 못자리를 틀게 되었다. 그는 지역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이 직접 조제한 한방 의술을 활용, 한약을 조제하였으며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요한)씨에게 이 고약의 비법을 전수하였다. 하지만 이 고약은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의 한국명인 '성일론고약'으로 불렸었다.

 

 

▲ 그리 넓은 면적은 아니다 그러나 숲이 우거지고 특히 노령의 느티나무가 곳곳에 서있어 종교관을 떠나 누구나 산책하기도 좋은 곳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한 다음 잠시 둘러보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미사가 시작될 시간이기에 많은 분들이 모이고 계셨다. 타지에서 오신분이 미사 시간을 물어보기에 저도 방랑자라고 대답했다 쑥스러웠다. - 난 잠자는 "베드로"(본명) -

 


 

▲ 노거수(老巨樹) 느티나무와 두 할머니 모습 

일요일 아침 미사가 시작되기 전이라 조금 한가하다. 성당 건물 주위에는 십자가의 길과 별채로 꾸며진 조용하고 아늑한 성체 조배실과 장구한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삼백년 이상의 보호수가 일곱 그루나 있으며, 무엇보다도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수 마음 피정의 집'이 있어 순례객들이 순례의 향기를 가득 담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성당 안내 팸플릿에서,,)

 


 

▲ 공세리 성당은 110년 전인 1895년 세워졌다. 지금의 고딕 양식 성당은 프랑스 출신의 드비즈 신부가 1922년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지었다.


 

▲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은 고색창연한 본당.

 

 

▲ 오래된 벽돌 건물로 박물관으로 봉헌 한다는 표찰이 붙어있다.

과거 사제관이었던 이 건물 옆 성당 앞뜰에는 치명일기(致命日記) 수원 387 박의서와 388 박원서와 389 박익서, 세 분 순교자의 묘가 있다. 

이 분들은 모두 걸매리에서 살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난 이듬해인 1867년에 체포되어 수원에서 순교한 분들이다. 이 분들의 묘는 본디는 인주면 해암리 맹령(속칭 맹고개)에 있었는데, 1988년 9월 20일 공세리 성당 변갑철 신부의 주관하에 성당 앞뜰로 이장해 왔다.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 세 분 순교자는 옛날 걸매리에 살던 밀양 박씨 의암공파의 후손이다. 이 집안에는 이미 치명일기에 기록된 이 세분 순교자 말고도 이마리아, 박인서, 박제환, 박홍갑, 조 모니카, 박화진, 이씨 부인 등 일곱분의 순교자가 더 있다. 그리고 그 주변 마을에서 살던 순교자들이 12명이나 더 있다. 이들의 순교는 천주교 박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의 죽음이다.

 

 


 

▲ 고딕건물의 본당.

공세리

공세리는 조선시대에 충청도 일대에서 관곡을 수합하여 서울로 운송해 가던 창고집이 있던 곳이다. 마을 이름도 세금을 바치던 공세 창고가 있는 곳이라는 데에서 온 것이다.
공세리는 충청도 일대의 공세 관곡을 수합하여 서울로 운송하던 나루였기 때문에 일찍이 마을이 형성되고 또 번창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걸매리는 물이 앝아져 공세나루가 폐쇄되고 아산만에서 삽교천에 이르는 방조제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질곡의 세월을 이겨낸 공세리 성당은 아름답다. 봄에는 영산홍이 피고, 여름에는 상사화가 화려하다. 성당 주변에는 수령 300년 이상의 고목만 7그루나 된다. 단풍도 곱고 눈 덮인 겨울 풍광도 곱다. 그래서 영화 감독과 PD들은 공세리 성당을 배경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다.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불새’ ‘고스트맘마’ 등에서도 성당이 배경이 됐고 가수 god도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안치환도 성당의 은행나무 아래서 노랫말을 썼다고.....

 


 

▲ 오래된 고목 (市 보호수) 와 성당의 옆 창문은 빛바랜 스테인드 그라스로 장식되어있으며 화려하지 않은 고색창연한 빛이 더욱 세월의 깊이와 역사를 되돌리게 해주었다. 

 


 

▲ 보호수 안내문

 


 

 


 

 


 

▲ 인조 9년경 세곡 상,하역 작업를 위해 노역자들의 그늘막으로 심은 나무들이 지금은 아주 큰 고목으로 몇그루 남아있다 

 


 

 

공세리 성당 가는 길 

공세리성당은 서해안고속도로 송악IC에서 빠진다. 38번국도를 타고 달리다 삽교천 방조제를 넘는다. 방조제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공세리’ 이정표를 보고 마을로 들어서면 공세리성당(041-533-8181)을 만날 수 있다.

 


 

▲ 집으로 돌아오는 중 졸음이 오는 것 같아 저수지에 잠시들려 휴식을 취했다.

 


 

 


 

▲ 저수지 옆의 밤나무에서는 밤이 토실 토실 밤토실 여물어가고있다.

 

 

 

참고 

 

미리내 성지  클릭 ■☞ 안성 미리내 성지  

화성남양성지 클릭 ■☞ 화성 남양성지


 

휴가철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 만들어 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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