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금덩이를 두르고 헤엄칠 수 있을까
산속 홀로 사는 이들 다룬 TV 프로 보니… 다양한 나무 수액 ‘눈길’
無欲·순수의 물 마시는 모습에 경쟁·쾌락의 물 마셔온 길 돌아보니
욕망에 먹힌 삶은 금띠 두르고 물에 빠진 듯 그 무게로 가라앉을 뿐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 입력 2021.12.16 03:00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TV 프로그램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과도한 연출이 거슬릴 때도 있고 인터뷰가 밋밋할 때도 있지만, 수도도 전기도 없는 오지에서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들 중 상당수는 암을 비롯한 몹쓸 병을 얻은 뒤 산에 들어가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이었다.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죽으러 산에 들어왔다가 완치됐다는 사람, 직장암에 걸려 직장 7할을 잘라내고 산에 들어왔는데 깨끗이 나았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 데다 또 산을 타고 집과 밭을 가꾸는 모습을 보면 정말 건강해 보이기도 했다.
암 환자만큼이나 많은 또 다른 부류는 도시에서 사람들한테 상처받은 경우였다. 이들에겐 한때 잘나갔었고 큰돈을 벌기도 했다는 공통점과, 배신이나 사기를 당했다는 공통점이 함께 있었다. 어떤 이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 살기 싫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같은 하늘을 이기도 싫은 것이다. “한 달 생활비로 1만원만 있으면 된다”고 한 사람은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고 했다. 이들이 돈 주고 사는 물건은 쌀이 거의 유일한 것 같았다.
/일러스트=김성규
그들은 대개 텃밭에서 키운 작물로 끼니를 해결하고 산에서 캔 약초와 버섯으로 물을 달여 마셨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수액(樹液)이었다. 고로쇠나무에서만 수액을 뽑는 줄 알았더니 느릅나무, 자작나무, 헛개나무 같은 나무들에서도 수액이 나왔다. 그 수액을 그냥 마시기도 하고 된장을 비롯한 온갖 음식에 썼다. 나는 이 수액이야말로 병을 낫게 한 생명수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는 오로지 생명을 유지하려고 물을 빨아들인다.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만 채운다. 그 물엔 그것 외의 다른 욕심이 없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마신 나무의 물은 순수하고 검박하다. 내가 마셔온 물은 어떠한가. 남보다 앞서기 위해 마시고 체면을 차리려고 마시고 잘난 척하려고 마셨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마시고 세속적 쾌락을 위해 마셨다. 마시지 않아도 되는데 눈치 보여서 마셨다. 그것이 나의 삶을 나무의 삶과 정반대로 살게 했다.
산에 들어간 사람들도 도시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수년간 나무의 물을 마셔 몸속 물을 완전히 바꾸니 건강을 되찾고 머리도 맑아졌을 것 같다. 그들은 “왜 하루라도 더 빨리 산에 오지 않았을까” “인생에서 지금처럼 행복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빈궁(貧窮)한 것이 아니라 물욕을 버림으로써 청빈(淸貧)해졌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오래전 읽은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떠올렸다. 미국의 급진적 사회주의자였던 니어링은 인생 후반기에 아내 헬렌과 함께 산에 들어가 돌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단풍나무 시럽을 만들어 내다 판 돈으로 1년 생활비를 마련하면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았다. 모든 잉여가치가 불행한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니어링은 식사에 초대받은 자리에서도 무례하리 만큼 자신의 섭생 원칙을 지켰다. 술과 커피, 빵과 고기와 초콜릿을 모두 사양하고 물만 마셨다. 그는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고체, 액체, 공기, 햇빛 같은 생존 환경의 요소들을 섭취함으로써 유지된다. 이런 섭취물들이 질 좋은 데다가 양까지 적당하다면, 그래서 인간 유기체가 고통 없이 정상적으로 제 기능을 한다면 그 결과는 건강이다”라고 말했다.
“의사는 병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건강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다”고 말해 온 니어링은 채식과 육체노동으로 건강하게 살다가 100세 되던 해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쳤다. 니어링 자서전을 다시 읽고 나서야 산에서 건강을 되찾은 암 환자들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욕망은 인간의 능력을 증폭시켜 극한의 장애를 뛰어넘게 한다. 우리가 인간 승리라고 부르는 그 모든 일들은 욕망이 선순환한 결과다. 그러나 욕망을 장악하지 못하고 지배당하면 삶은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19세기 영국 사상가 존 러스킨은 말했다. “어떤 사람이 금을 캐서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을 만난다. 그는 금으로 띠를 만들어 허리에 두르고 배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는 곧 금의 무게에 눌려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이때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인가,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인가?”
삶이란 배에서 뛰어내려 뭍까지 헤엄쳐 가는 과정이다. 몸이 가라앉는 것 같다면 허리춤을 더듬어봐야 한다. 산속에 자신을 유폐한 사람들에겐 금덩이가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뭍에 닿기도 전에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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