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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음악

떡볶이 먹을 때도 와인 한 잔…1조원 시장 바라보는 ‘와인민국’

by 한국의산천 2021. 12. 29.

떡볶이 먹을 때도 와인 한 잔…1조원 시장 바라보는 ‘와인민국’
커피 한잔값으로 한병… 너도나도 와인에 취한다
분식집에서도 와인 먹는 ‘와인의 민족’
커피값보다 싼 와인과 코로나 확산에 시장 커져

송혜진 기자
입력 2021.12.26 17:42

 

서울 성수동 분식바 OFTT에서 손님들이 즉석떡볶이에 와인을 곁들이는 모습. 최근 와인 시장이 크게 확대되면서 김밥집이나 치킨집에서도 와인 마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OFTT

“족발 한 접시에 레드 와인 두 잔 주세요.” 지난 17일 서울 수유동의 한 족발집에서 20대 커플은 소주 대신 와인을 주문했다. 이곳은 족발 한 접시에 2만~3만원씩 받고 파는 식당이다. 레드 와인 한 잔엔 3900원을 받는다. 이곳 사장은 “생각보다 와인을 찾는 손님이 많아서 주말엔 보통 30잔~40잔씩 팔린다”고 말했다.

이튿날 서울 성수동의 한 즉석 떡볶이집.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즉석 떡볶이와 감자튀김, 순대를 앞에 두고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이곳에서 파는 하우스 와인은 한 잔에 4000원 정도다. 손님 박모(28)씨는 “친구들과 종종 떡와(떡볶이에 와인)를 하고 싶을 때 찾아온다”고 말했다.

급성장하는 국내 와인 소매 시장

대한민국이 와인에 취했다. 분식집에서도 족발집에서도 와인을 마신다. 롯데쇼핑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와인 소매 시장은 작년에 이미 매출 7347억원을 넘겼다. 5년 전부터 매년 평균 17.4%씩 시장이 확장되면서, 내년엔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 확산 이후 홈술 문화와 저(低)도수 술을 찾는 문화가 확산하자 국민 대표 주류인 소주 판매는 줄고 반대로 와인 판매가 무섭게 늘어난 것이다.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전통시장·편의점까지 와인 판매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일각에선 ‘와인민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분식집에서도 와인 먹는 ‘와인민국’

 

지난 23일 새로 리뉴얼해서 문을 연 롯데마트 잠실점 ‘제타플렉스’의 1층에 와인 전문점 ‘보틀벙커’. 1층 전체 면적의 70%인 1320㎡(400여 평)를 와인 4000여 종으로 채웠다./고운호 기자

 

지난 23일 새로 리뉴얼해서 문을 연 롯데마트 잠실점 ‘제타플렉스’는 1층에 와인 전문점 ‘보틀벙커’를 입점시켰다. 1층 전체 면적의 70%인 1320㎡(400여 평)를 와인 4000여 종으로 채웠다. 1만원대 와인부터 1억원 안팎의 로마네콩티 와인까지 갖췄고, 일정 금액을 내면 80여 종의 와인을 시음해볼 수도 있다. 롯데마트 강혜원 상무는 “최근 우리나라 소비자가 가장 관심을 갖는 술이 와인이라고 보고, 국내 최대 와인 전문점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잠실점 ‘제타플렉스’는 일정 금액을 내면 80여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테이스팅 탭'을 운영한다. 손님들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와인 수입량은 작년에 처음으로 맥주를 제치고 3억3002만달러(약 3937억원)로 역대 최대를 찍었다. 수입 물량이 5만t을 넘긴 것도 작년이 처음이다. 올해 8월까지 와인 수입액은 3억7045만달러(약 4419억원)로 집계됐다. 상반기에 이미 작년 전체 수입액을 넘긴 것이다. 여기에 세금과 물류비·유통 마진을 더하면 국내 와인 소매 시장은 올해 매출 기준으로 8500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가벼운 술을 즐기는 ‘홈술’ 문화가 20~40대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와인 소비도 폭발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1만원 미만의 저가 와인이 대거 유통된 것도 와인 시장 저변이 넓어진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이마트가 내놓은 4900원짜리 와인 ‘도스코파스’는 출시 이후 올해 11월까지 420만병, 롯데마트가 내놓은 3900원짜리 ‘레알 푸엔테’는 126만병이 팔렸다.

 

국내 와인시장을 주도한 초저가 상품. 롯데마트의 ‘레알 푸엔테’(3900원). 이마트의 ‘도스코파스’(4900원),

전국 곳곳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와인을 둘러싼 ‘오픈런’도 벌어진다. 지난 23일 롯데마트 잠실점 ‘보틀벙커’ 첫 오픈날엔 오전부터 손님 수십 명이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빚어졌다. 지난 10월 이마트가 고가 와인을 특가에 내놓았을 때도, 전국 이마트 주요 매장 곳곳에선 새벽 4시부터 손님 수십 명이 줄을 서기도 했다. 올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와인 매출은 전년 동기 40~60%가량 뛰었다. 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같은 편의점 와인 매출도 작년보다 올해 2배 넘게 성장했다.

◇기술과 집단 지성이 키운 ‘와인의 민족’

소셜 미디어는 와인 시장을 키운 또다른 공신으로 꼽힌다. 20~30대 소비자가 와인을 거창한 음식이 아닌 떡볶이, 치킨, 짜파게티, 김치와 곁들여 즐기는 모습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시키면서 와인 시장이 같이 커졌다는 것이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손님들이 샴페인을 구경하고 있다. 최근 편의점 3사는 샴페인과 와인 물량을 크게 늘리는 한편 와인 큐레이션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세븐일레븐

와인 정보를 손쉽게 전달하는 각종 모바일 앱이 수백 개씩 쏟아지면서 와인 소비가 또한 덩달아 늘어났다. QR코드만 찍으면 해당 와인의 특징과 맛, 가격까지 알려주니, 와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편하게 와인을 마실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편의점 주요 3사가 QR코드만 찍으면 와인 정보와 어울리는 안주를 알려주는 큐레이션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GS25 관계자는 “와인 소비가 늘면서 5만원 이상의 고가 상품 판매 비율도 같이 높아지는 추세”라면서 “대한민국 와인 시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혜진 기자

 

드라마 주인공들, ‘와인 병나발’ 부는 이유 있었네
[아무튼, 주말] ‘국민 술’ 넘보는 와인
맥주 제치고 수입 1위

허윤희 기자
입력 2021.09.11 03:00

 

지난 7일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여성이 와인을 고르고 있다. 롯데마트는 최근 서울역점의 와인 매장을 2배가량 넓혔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직장인 정모(37·서울 광진구)씨는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와인 한 병씩 구입하는 취미가 생겼다. “예전엔 회식도 술자리도 많아서 집에서는 술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는데, 코로나 이후 저녁 약속이 거의 없어 남편과 와인잔 기울이며 하루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집에서 독한 소주를 마시긴 싫고, 맥주는 칼로리가 높아 부담돼요. 대화하면서 즐겁게 마시기엔 와인이 딱 좋더라고요.”

코로나가 술 문화까지 바꿨다. 와인이 ‘혼술(혼자 마시는 술)’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트렌드의 최고 수혜주(酒)로 등극하면서 이제 ‘국민 술’ 자리까지 넘본다. 관세청은 지난해 와인 수입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전통적 수입 주류 1위였던 맥주를 제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전년보다 27.3% 증가한 3억3000만 달러(약 3843억원). 수입량으로 보면 5400만L, 와인병(750mL) 기준으로 7300만 병에 달하는 규모다. 반면 맥주는 2억2700만달러로 전년보다 19.2% 줄었다. 관세청은 “코로나 시대에 회식보다 혼술, 홈술 문화가 자리 잡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주류가 인기를 끌면서 와인 수요를 증가시켰다”며 “맥주는 일본산 수입이 줄고 국산 수제 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수입액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올해 들어 와인 수입 속도는 더 빨라졌다. 7월까지 와인 수입액은 3억2500만달러(약 3784억원)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입액에 육박했다. 유통업계에선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 와인 판로가 늘면서 와인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는 영향이 크다고 본다.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1만원 이하 저가 와인을 선보이며 가격 파괴에 나선 데다가 편의점을 통해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것. 1년 전부터 혼술로 와인을 즐긴다는 대학원생 김모(27·경기 분당)씨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저렴하고 산뜻한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며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넷플릭스 보며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고 했다.

그동안 국내 주류시장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주류 유형별 시장 점유율은 맥주 45.6%, 소주 37%, 탁주 13.4%, 기타 4%. 와인은 ‘기타 4%’ 안에 위스키, 사케 등과 함께 포함됐을 정도로 ‘특별한 날 마시는 고급 술’이란 인식이 컸다.

 

정하봉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은 “요즘엔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들도 소주보다 와인 마시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올 정도로 와인이 대중화됐다”며 “다른 주종과 달리 와인은 하늘에 떠있는 별만큼 많다고 할 정도로 종류, 가격대가 다양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요즘 소비 경향에도 맞는다. MZ세대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기가 마신 와인 사진을 올리고, 남들이 마시지 않은 종류를 점점 더 찾게 되면서 흥미를 갖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실제 올해(8월 누적 기준) 와인 매출은 고공 행진 중이다. 편의점 CU와 GS25의 와인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113.4%, 146.5% 뛰었다. 이마트24는 올해 8월까지 와인 176만병을 판매, 지난해 연간 판매량(173만병)을 이미 넘어섰다. 대형마트인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46.9% 증가했다.


지난 7일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여성이 와인을 고르고 있다. 롯데마트는 최근 서울역점의 와인 매장을 2배가량 넓혔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주세법 개정으로 온라인을 통해 와인을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찾아가는 ‘스마트 오더’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도 인기 비결이다. GS25 관계자는 “편의점 매장은 공간 문제로 다양한 와인을 비치하기 어렵지만 와인 예약 서비스인 ‘와인25 플러스’를 통해 온라인에서 와인, 양주, 지역 전통주 등 3500여 주류를 비교하며 고를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혼술이 전문화되고 있다는 것도 와인 열풍의 이유”라고 꼽았다. 변용진 와인21닷컴 이사는 “저가 와인을 맛본 사람이 조금씩 다른 와인을 구매하며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게 된다”며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취향을 위해 마시는 술 문화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허윤희 기자

 

경제
[모닝] 칠레 와인 “생큐 코로나”… 혼술로 포도주 수입 31% 급증
최종석 기자
입력 2021.03.05 03:00
코로나 시대 ‘혼술(혼자 마시는 술)’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트렌드의 최고 수혜주(酒)는 와인이었다.

4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량(2L 이하 기준)은 4만4076톤으로 1년 전(3만3420톤)보다 31.9% 늘었다. 수입액은 2억6983만달러로 34.6% 증가했다. 수입량과 수입액 모두 역대 최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영향으로 회식이 줄고 ‘혼술’ ‘홈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집에서 반주 삼아 마시기 좋은 와인의 인기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에 맥주, 위스키 수입량은 20% 넘게 줄었다. 맥주 수입량은 같은 기간 36만132톤에서 27만7927톤으로 22.8% 줄었다. 위스키도 1만9936톤에서 1만5923톤으로 20.1% 줄었다. 

맥주는 일본산 맥주의 수입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위스키는 회식이 줄고 유흥주점 등이 문을 닫으면서 타격을 입었다.

와인 중에서 가장 많이 수입된 와인은 칠레산(1만4434톤)이었다. 전체 수입량의 32.7%를 차지했다. 이어 스페인산(6569톤), 이탈리아산(5781톤), 프랑스산(5588톤), 미국산(4742톤) 등의 순이었다.
/ 최종석 기자

 

[자작나무 숲] 보드카가 그립다
한국의 국민주 소주, 러시아 국민주 보드카 공통점은 무색·무취·무미
‘러시아 모든 정직한 사람들은 절망해서 마셨다’… 아픔과 자책의 술
술 소비량 절반으로 준 오늘의 러시아, 고뇌하는 지식인 사라진 걸까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1.12.28 03:00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라는 술이 이토록 순결하고 서정적이어도 되는가.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에서 술은 자족적 상상력의 촉매제다. 남자는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그는 사랑하는 나타샤와 깊은 산골로 가 살 것이고,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일 뿐이다. 나타샤와 흰 눈에는 보드카가 제격이련만, 시인은 소주를 선택했다. 하긴 웍카(보드카)·와인·맥주·청주·막걸리, 그 어떤 술보다도 그 자리엔 소주가 어울린다.

한국의 국민주인 소주와 러시아 국민주 보드카는 둘 다 무색, 무취, 무미의 주종이다. 보드카(vodka)는 곡물을 발효해 얻은 주정(에탄올)에 물(voda)을 섞어 만드는데 제조 과정, 맛, 성질이 비슷한 소주가 경쟁주로 비교되곤 한다. 

 

러시아에서도 소주는 ‘한국의 보드카’로 소개되어왔다. 그러나 소주와 보드카가 다른 점이 있다. 백석의 러시아 정경에 보드카가 끼어들 수 없는 이유다. 요컨대 보드카는 ‘혼술’ 하지 않는다. 홀짝거리지 않는다. 여럿이 기분 좋게 ‘원샷’ 하는 술이어서, 혼자 따라 마시는 법 없이 다 함께, 건배사를 곁들여 털어 넣듯 들이켠다. 

 

보드카는 속도와 결단력이 필요한 술이다. 만약 누군가 혼자서 오래 잔을 쥐고 있다면, 알코올중독자일 가능성이 크다.

 

/일러스트=이철원

보드카에는 의식(儀式)이 따른다. 얼음같이 차야 하고(서리 낀 술병으로부터 투명 액체가 진득진득 흘러나올 때의 그 맛), 반드시 건배 후에 마시고(단, 마신 다음 빈 잔을 뒤로 던져 깨뜨리지는 말 것), ‘자쿠스카’(한 입 깨물 안주)가 필요하다. 

 

40도 이상짜리 독주를 원샷 한 직후에는 일단 숨을 내뱉고 뭔가 입에 넣어야 하는데, 러시아 안주의 정수가 소금에 절인 오이다. 한국식 오이지 비슷한, 술 좀 하는 사람에게는 금방 이해될 시큼한 맛이다. 그래서 김치 역시 훌륭한 보드카 안주가 된다. 

 

90년대 중반경 페테르부르크에서 1년 지낼 때 연구소 원로 학자 몇 분을 숙소로 초대해 대접한 적이 있다. 

술과 재담과 시가 넘쳐 흐르던 모임 끝 무렵, ‘후식’으로 김칫국을 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국 냄새를 맡는 순간 손님들이 다시 보드카를 찾으며 열광하는 것이었다. 오래전, 소련 지식인과 보드카의 낭만이 좁디좁은 부엌 벽에 스며 있던 시절 얘기다.

그런데 보드카는 원래 슬픈 술이다. 대략 500년으로 어림잡는 러시아 보드카의 역사는 민중과 지식인과 지배자의 역학 관계 안에서 형성되었다. 

 

혁명 이전부터 소련 붕괴 시점까지 보드카는 내내 국가 독점 산업이었고, 푸틴이 집권한 현재에도 최대 보드카 사업체는 국영기업(Rosspritprom)이다. 

주권(酒權)을 거머쥔 권력자가 민중의 일상을 장악해 자신의 곳간을 채우는 교묘한 통치 수단 중 하나가 보드카였다. 

 

가난하고 몽매한 민중은 통치자와 지배계급의 당근-채찍에 길들어갔다. 

고기를 먹을 수 없기에 술을 마시고, 책을 읽을 수 없기에 술을 마시는 현실에 대해 19세기 급진 지식인 피사례프는 개탄했다. 

민중은 고통을 잊기 위해 마시고, 다른 기쁨이 없어 마시고, 그다음엔 습관으로 마셨다. 아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지식인은? 술에 중독된 민중의 무질서를 꿰뚫어 본 지식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비관했다. 보드카는 아픔의 술이자 자책의 술이었다. 

‘러시아의 모든 정직한 사람들은 절망해서, 절망적으로 마셨다’고 브레즈네프 시대의 술꾼 소설가 예로페예프는 쓰고 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악령’의 허무주의자 지식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러시아의 모든 재능 있고 선구적인 사람들은 유형수 아니면 실컷 퍼마시는 술주정뱅이입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2010년대까지도 러시아는 1인당 한 해 소비량 18L의 ‘술 취한 국가’였는데, 2021년 와서는 10.5L로 낮아졌다. 젊은 층은 맥주와 와인을 선호하고, 엘리트 ‘신러시아인’은 아예 술을 멀리하는 추세라 한다. 

러시아가 변해간다. 푸틴의 금주 캠페인 덕분일까? 스탈린의 저 유명한 표현대로 ‘살기가 나아지고 즐거워졌다’는 의미일까? 고뇌하는 지식인이 사라진 걸까?

보드카를 좇아 마시며 러시아의 혼돈을 이해하려 애쓰던 옛날이 한편으로 그립다. 그때를 위하여 오랜만에 한잔 했다. 소련 시절 주조된 ‘황금 고리’라는 보드카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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