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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정상 등정 98명보다 부상자 0명이 더 뜻 깊습니다

by 한국의산천 2019. 12. 20.

[해외 등반ㅣ키르기스스탄 알 아르차산군]

“정상 등정 98명보다 부상자 0명이 더 뜻 깊습니다”

글 장헌무 대한산악구조협회 총무이사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제공 입력 2019.12.19 16:00


대한산악구조협회 창립10주년 기념 등반…기존 목표 7개봉 중 5개봉 등정

 

 

복스봉 정상을 향해 오르는 대원들.


올해는 전국 산악인들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산악구조 활동과 안전한 산악문화 조성을 위해 사단법인 대한산악구조협회를 창립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산악구조협회는 키르기스스탄 알 아르차산군의 7개 봉우리를 동시 등정하는 원정 계획을 세우고, 1년간의 훈련을 통해 전체 700명 대원 중 최종 115명의 대원을 선발했다. 대한민국 산악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원정대였다. 목표였던 7개 봉우리 중 5개봉을 등정했으며, 정상에 선 대원은 총 98명이다. 등정기간은 열흘 동안이었다.


원정대는 대한산악구조협회 회장 노익상 단장을 중심으로 등반지원팀, 행정지원팀, 의료팀, 등반팀으로 조직됐다. 등반팀은 총 7개로 각각 세메노프텐샨(4,875m), 코로나봉(4,740m), 데케토르봉(4,441m), 복스봉(4,420m), 우치텔봉(4,040m), 악투봉(4,620m), 프리코리아봉(4,740m)의 등정을 노리고 구성됐다.


원정 첫째 날,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공항에 도착해서 키르기스스탄 수도인 비슈케크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부터 순탄치 않았다. 많은 현지인들이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밤에 국경을 넘었고, 이로 인해 입국 심사가 지연됐기 때문이다. 115명의 대원들은 밤을 새워 가며 심사를 받은 끝에 아침이 돼서야 겨우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복스봉 정상을 향해 오르는 대원들.


2일차엔 비슈케크에 먼저 도착해 있던 선발대와 합류했다. 그동안의 준비상황을 확인하고 식량과 장비를 현지 대형마트에서 구입, 포장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3일차 아침이 밝자마자 비슈케크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이동해 알 아르차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산이다. 등산이 시작되는 초입은 스위스 알프스를 연상케 하는 침엽수와 야생화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꽃길이었다. 해발고도 약 2,500m 지점에는 낙차가 70~80m에 달하는 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다. 길을 따라 계속 오르자 초원이 끝나고 너덜지대를 만나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30~35kg의 배낭을 메고 오르는 너덜지대 길은 숨이 멎을 정도로 힘이 든다. 이번 원정은 별도로 포터를 고용하지 않아 개인 짐은 물론 공동 짐까지 전부 대원들이 옮겨야 했기 때문에 짐의 무게가 상당했다.

 


대원들은 베이스캠프 도착 이튿날부터 전진캠프로 이동을 시작했다.


길이 험해지자 벌써 고소 증상을 호소하는 대원도 나타났다. 30년 만에 등산을 다시 시작한 60대의 산악 의료진도 힘겨워한다. 그런가 하면 산악마라톤을 뛰듯 시속 3km 이상의 속도를 유지하는 힘찬 대원들도 있다. 그렇게 3시간을 더 오르자 천산산맥의 만년 빙하가 바라보이는 베이스캠프(3,200m)다.


각 팀의 역할에 맞춰 텐트와 통신장비 설치, 의약품 배분, 장비 점검을 하면서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캠프 공간이 부족해 몇 팀은 200m 위에 있는 헬기장에 텐트를 설치했다. 국립공원 측에는 만약 헬기가 들어오면 철수한다는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받았다.

 


비교적 등정난이도가 낮은 우치텔봉 너덜지대를 오르는 대원들.


낙석·낙빙으로 프리코리아, 악투 등정 실패

베이스캠프 구축 후 7개 등반팀 100여 명이 본격적인 등반 작업에 착수했다. 이틀에 걸쳐 전진 캠프(3,800~4,000m)를 설치하고 장비와 식량을 올렸다. 세메노프텐샨대는 베이스캠프 좌측 계곡으로 올라 무인산장에 전진 캠프를 설치했으며, 코로나대는 베이스캠프 정면 빙하 건너편에 설치된 대피소에 캠프1을 설치했다. 프리코리아, 악투, 데케토르대는 바위와 얼음벽이 시작되는 빙하 끝에 캠프1을 설치했다.


모든 대가 캠프1 설치를 마쳤다. 이제 대원들은 각자 800m 높이의 까마득한 암벽과 빙벽, 끝이 안 보이는 빙하와 마주서게 됐다.

먼저 알 아르차산군 최고봉 세메노프텐샨 등반대가 하켄을 박았다. 설벽 등반으로 시작해 60~70도의 빙벽 등반과 리지 구간까지 돌파해야 정상에 이르는 코스다. 서울시, 대구시, 광주시, 충남, 경북 산악구조대로 구성된 31명의 등반대는 장장 13시간을 등반해 이 중 7명이 정상에 서는 쾌거를 거뒀으며, 5시간에 걸쳐 하산해 대원 모두 무사히 밤 12시경 전진 캠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알 아르차산군 전경.


코로나봉 등반대는 캠프1(무인 대피소)에서 출발해 빙하지대 통과 후 설벽 등반과 리지 등반을 병행해 정상에 올랐다. 등반이 원활했는지 이틀에 걸쳐 베이스캠프의 무전기에 정상 등정 소식이 연이어 들렸다. 전북, 대전, 경북, 부산, 세종, 제주 산악구조대 총 30명의 대원이 시간차를 두고 코로나봉 정상에 올랐다.


데케토르봉은 빙하 위에 캠프1을 설치하고 너덜지대를 올라 설벽으로 형성된 능선과 뾰족한 봉우리들을 연속으로 지난 후 정상에 닿는 코스로 등정했다. 약 40m 깊이인 두 개의 대형 크레바스가 벽을 갈라놓고 있어서 고정 로프를 설치해 안전하게 등정했다. 14명의 경기, 강원 산악구조대원이 등정에 나서 전원 정상에 올랐다. 데케토르 정상을 오르고 난 후  3명의 대원은 바위 능선 맞은편에 있는 복스봉까지 당일에 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복스봉은 급경사인 너덜지대를 오르는 코스와 리지 등반으로 정상에 오르는 두 개의 코스로 나누어 시도했다. 대구, 경북, 경남 산악구조대원 25명이 정상에 올랐다. 하산 중에 큰 낙석이 발생해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했으나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알 아르차산군 최고봉 세메노프텐샨봉 정상에 선 대원들.


우치텔봉은 베이스캠프 좌측에 있는 봉우리며, 긴 너덜지대를 오르는 비교적 안전한 코스로 등정했다. 원래 노년 대원 6명만 등정하고자 했으나, 다른 봉우리를 등정하고 체력이 남은 대원들이 가세해 모두 53명이 정상에 섰다.


프리코리아봉은 이번 원정 중 가장 어려운 코스로 시도했다. 이 코스는 2박3일 동안 비박하면서 빙벽등반을 해야 하는데 얼음과 돌이 무수하게 떨어져 얼음이 녹아떨어지는 낮 시간에는 등반하지 못하고 밤과 새벽에 조금씩 올라야 할 만큼 험준하다.


그러나 원정대가 등반을 시작하자마자 굉음과 함께 1톤이 넘는 얼음과 바위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결국 전진 캠프에서 지휘를 맡은 구은수 대장이 하산을 명령했다. 한국에서 1년 동안 구슬땀을 흘리며 이번 원정 중 가장 어려운 등반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3명의 대원은 등정을 포기해야만 했다.

 



전진캠프 구축을 위해 알 아르차산군 빙하를 건너고 있다.


악투봉도 정상 등정에 실패했다. 빙하지대를 가로질러 설벽 및 리지 혼합구간을 돌파해야 했으나 깊은 눈과 잦은 낙석, 등반시간 부족으로 등반 중 철수했다.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 등정에 실패한 대원들에게 “산은 늘 그곳에 있다. 내년, 혹은 내후년에 다시 가면 된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총 원정 기간은 10일, 그중 실제 등반일은 단 사흘뿐이었지만 115명의 원정 대원 중 베이스캠프 요원 15명과 의료진 2명을 제외한 98명의 대원이 정상에 올랐다. 크건 작건 적어도 5~6명은 다칠 것으로 예상했으나 어깨가 부러진 사람도, 갈비뼈가 나간 대원도 없었다. 이번 원정에서 가장 큰 쾌거다.


물론 목표였던 7개 봉우리를 모두 등정하지 못한 점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등정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또한 정상에 서는 것보다 각 산악구조대원들의 개인 등반력이 향상됐고, 구조대 전체의 결속력이 강화됐다는 점이 더 의미 있다. 이번 원정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산악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대원들에게 값진 경험이 됐기를 기대한다.  


등반을 마친 후 등반을 전개한 알 아르차산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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