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규의 國運風水] 올레길 걷기와 풍수
[아무튼, 주말]
순례길·올레길도 좋지만 고향길 만한 게 있을까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 필자가 고향에서 자주 가는 전북 임실군 섬진강 변의 둘레길. 강 너머로 산과 마을이 보인다. / 김두규
제주 올레길이 인기를 얻자 지자체들은 풍경 좋은 산과 물가에 길을 뚫었다.
'둘레길' '자락길' '마실길' 등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심지어 이웃 나라로 올레길 원정을 간다.
일본 규슈 올레길 45만 방문객 중 한국인이 30만이라고 한다.
걸으며 얻는 기쁨을 영어로 '원더러스트(wanderlust)'라고 한다.
독일어 wandern(멀리 걷다)이란 동사와 lust(기쁨)의 합성어다.
wandern의 명사형은 wanderung. 일정한 노선이 있는 장거리 도보 여행을 뜻한다.
이런 까닭에 철새를 wandervo gel이라고 한다.
wanderung은 무작정 걷는 게 아니다. 수시간 걸으며 교육 또는 수행적 행위를 함께한다.
1932년 32세에 '양자역학 창시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는
학생 때부터 친구, 선배, 선생들과 꾸준히 wanderung을 했다. 걸어 다니며 가설을 세우고 토론하고 사유하면서 학문 세계를 완성했다.
당시 독일에서 유행한 '철새 운동(wandervogel bewegung)'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산하를 방랑하며 부모, 선생, 제도권 등의 권위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키우는 낭만주의 운동이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역사, 민속, 문화를 배우고 애국심을 함양했다. 숙식 역시 주민들의 농사일을 거들어 주면서 해결했다.
하이젠베르크의 학문 세계에서 wanderung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였는가는 다음 일화에서 드러난다.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많은 학자가 미국으로 망명하고, 또 주위에서 그에게도 망명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며 조국에 남는다.
"누구나 특정 환경과 언어 및 사유 공간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주 어릴 때 그 땅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는 그 땅에서 가장 잘 자라며, 또한 그 땅에서 최고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부분과 전체')
조국의 산하만이 자신의 학문을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중국 사상가 양계초(梁啓超·1873~1929) 역시 비슷하게 생각한다.
"그 땅에 태어난 사람, 그 땅의 바람 소리를 듣고,
그 땅의 흘러가는 물을 적시면서, 무엇인가 실마리를 하나 얻게 되면,
우뚝 자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生斯邦者,聞其風,汲其流,得其一緖, 則足以卓然自樹立)."
즉, 그 땅 위의 바람[風]과 물[水]이 그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다.
풍수 공부도 wanderung을 중요하게 여긴다.
풍수서는 이를 '東跋西涉南行北往(동서남북으로 걷고 건너고 가고 오다)' '拔山涉水(산을 넘고 물을 건너다)' '登涉之勞(오르고 건너는 노고)' 등으로 표현한다.
무턱대고 아무 데나 방랑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산하를 반복적으로 걷고 보고 듣는 것을 전제한다.
풍수가 나라마다 지방마다 고유한 특색을 띠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좋고 일본 올레길도 좋다.
그렇지만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 마을 길처럼 좋은 'wanderlust'를 줄 수 있는 곳은 없다.
독일 시인 카를 부세(Carl Busse ·1872~1918)가 타 지로 가는 'wan dern'의 허망함을 꼬집는다.
"산 너머 저 멀리 'wandern'해야 도달할 수 있는 곳에/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나도 그들 무리에 끼어 그곳으로 떠났네/
아, 그러나 눈물만 흘리고 돌아왔네/ 산 너머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필자가 아직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사진은 필자가 좋아하는 고향 둘레길 중 하나다.
출처 : chosun.com
일요일 아침 열심히 달려서
백석 마전동 천주교 묘지에 계시는 부모님 묘소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앞두고 운동나온 봄님을 만나서
아라뱃길을 땀나도록 달리고 식사하고 헤질녁에 헤어졌다.
▲ 인천 검암역 아라뱃길 건너편에 위치한 노거수길 ⓒ 2019 한국의산천
산수유 꽃 필 무렵
- 곽 재 구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 요
구름 밖에
길은 삼 십리
그리워서
눈감으면
산수유 꽃 섧게 피는 꽃길 칠 십리
산수유 꽃나락
- 박 남 준
봄이 와도 아직은 다 봄이 아닌 날
지난 겨우내 안으로 안으로만 모아둔 햇살
폭죽처럼 터뜨리며 피어난
노란 산수유 꽃 널 보며 마음 처연하다
가을날의 들판에 툭툭 불거진 가재눈 같은
시름 많은 이 나라 햇 나락
봄이 와도 다 봄이 아닌 날
산자락에 들녘에 어느 어느 이웃집 마당 한켠
추수 무렵 넋 놓은 논배미의 살풍경 같은
햇 나락 같은 노란 네 꽃 열매
그리 붉어도 시큼한 까닭
알겠어 산수유 꽃
▲ 노란 물감이 번진 수채화처럼 아련하게 보이는 산수유 꽃 ⓒ 2019 한국의산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 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 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김훈 돌산도 향일암편에서
▲ 검암역 역사에서 잠시 휴식중
그곳에 설치된 측정기로 혈압 측정.
와사등
- 김 광 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날개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구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정서진까지 열심히 왕복 후 계양역에서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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