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홍… 천의 얼굴, 천의 이름 가진 꽃
[김민철의 꽃이야기] 영산홍… 천의 얼굴, 천의 이름 가진 꽃
조선일보 김민철 선임기자 입력 2019.03.12 03:13
산철쭉 개량한 원예종 총칭, 조경수 15% 차지해 가장 많아
수많은 이름·품종 혼재해 전문가들도 구별 절레절레
김민철 선임기자
오정희의 단편 '옛 우물'은 마흔다섯 살 중년 여성이 어느 날 신문 부고란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그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지만 결혼 초기, 어쩌면 외도일 수도 있는 그와 겪은 일화가 등장한다.
'그 여름, 나를 찾아온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중략)
나는 절박한 불안에 우는 아이를 이웃집에 맡기고 그에게 달려나갔다.
그와 함께 강을 건너 깊은 계곡을 타고 오래된 절을 찾아갔다.
여름 한낮, 천년의 세월로 퇴락한 절 마당에는 영산홍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영산홍 붉은빛은 지옥까지 가 닿는다고, 꽃빛에 눈부셔하며 그가 말했다.
지옥까지 가겠노라고, 빛과 소리와 어둠의 끝까지 가보겠노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그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지옥까지도 가겠다는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더구나 두 사람은 절에서 내려오는 계곡 강가에서 술을 마시며 '어디로든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뒤엉키고 싶다는 갈망'을 숨기지 못하는 관계였다.
영산홍은 절에선 물론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흔하디흔한 영산홍에 이처럼 금지된 사랑과 관능을 한껏 담은 것이다.
소설은 이후 중년 여성의 복잡한 심리와 행동, 회상을 섬세하게 담고 있다.
남쪽에서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진달래꽃이 피었다 질 무렵, 영산홍이 화단에서 붉은색·분홍색·홍자색 등 다양하고 정열적인 색으로 화려함을 뽐낼 것이다.
요즘 영산홍을 보면 자잘한 묵은 잎 사이에 있는 꽃눈에 물이 오른 듯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내한성이 강해 겨울에도 작고 좁은 잎이 남아 있는 것(반상록성)이 영산홍의 특징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영산홍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심는 조경수다.
유봉식 원예특작과학원 실장은 "조경수 15% 이상을 차지해 가장 많이 심는 나무"라고 말했다.
15%라면 일곱 그루 중 하나다.
정원의 축대 사이나 돌 틈에 많이 심고, 가지가 많이 뻗는 성질을 이용해 생울타리로도 많이 쓰고 있다.
어정쩡한 크기의 공터를 메우는 용도로도 영산홍이 제격이다.
영산홍은 '옛 우물'에 나오는 중년 여성 심리처럼 매우 복잡한 식물이다.
일본에서 철쭉·산철쭉을 개량한 원예종을 총칭하는 이름이라 '왜철쭉'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양철쭉·일본철쭉이라는 이름도 있고, 색에 따라 자산홍·연산홍·영산자·백철쭉 등 푯말을 달고 있기도 하다.
그냥 사즈키·기리시마 등 일본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영산홍이 무엇인지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교배종이 나오고
업자들이 부르는 유통명까지 섞이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꽃 색깔도 붉은색 계통이 많지만 셀 수 없이 다양하고,
형태도 홑꽃·겹꽃 등 여러 가지다. 한마디로 천의 얼굴, 천의 이름을 가졌다.
영산홍은 철쭉과 진달래, 산철쭉 등과 함께 진달랫과에 속한다.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기 때문에 나머지 철쭉류와 구별하기가 쉽다.
따라서 산에서 잎과 꽃이 함께 있으면 철쭉이나 산철쭉이다.
철쭉은 꽃이 연분홍색이고 잎이 둥글고, 산철쭉은 꽃이 진분홍색이고 잎이 긴 타원형이다.
산철쭉, 영산홍
여기까지는 구별에 별문제가 없는데,
공원이나 화단에서 화려한 색깔을 뽐내는 영산홍에 이르면 혼란 시작이다.
다른 울긋불긋한 색은 그나마 바로 영산홍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산철쭉과 똑같이 '진한' 분홍색으로 피는 영산홍은 전문가들도 손을 드는 경우가 많다.
산철쭉과 영산홍 형질이 뒤섞여 구별을 시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추어 꽃 애호가들은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정리해주는 대로 꽃 이름과 분류를 쓰는데, 영산홍 계통은 이 목록도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목록에 영산홍 학명의 이명(異名)이 25가지나 나와 있을 만큼 학계도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영산홍도 장미처럼 하도 많은 품종이 내려와 계통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철쭉류를 정리해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다시 올리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흔하게 접하고 이름을 궁금해하는 꽃인 만큼 어렵지 않게 구별해 부를 수 있도록 정리를 서둘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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