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파란 하늘 벗 삼아 성곽길 나들이…
오래된 골목 따라 뚜벅뚜벅, 옛집·맛집들이 반겨주네요
조선일보 박근희 기자 입력 2018.09.07 03:00
정리 : http://blog.daum.net/koreasan
[성북동 가을 산책]
건축가 장윤규의 추천 코스
‘성북구 총괄건축가’를 맡고 있는 건축가 장윤규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소장이 한양도성 성곽 길을 오르고 있다.
장 소장은 “전망대에서 도심 방향을 내려다보면 600년의 시차가 한눈에 펼쳐지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골목이 남아 있는 곳은 정겹다.
그 골목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이고 진 옛집과 오래된 간판이 남아 있다면 더욱 그렇다.
성곽 아래로 이리저리 뻗은 골목, 발길 닿는 곳마다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수줍은 매력의 동네 서울 성북동.
서울이면서도 고즈넉한 풍경에 역사 문화 유적이 많은 동네 성북동을 건축가 장윤규(55·운생동건축사사무소 공동 대표) 소장과 걸었다.
장 소장은 3년 전 대학로에 있던 사무실을 성북동으로 옮기고 '성북구 총괄건축가'를 맡고 있다.
그와 함께한 타박타박 성북동 산책기.
폐가압장, 빈집 터 등을 활용한 아트로드
[성북동 가을 산책]
도시인에게 사색의 공간이 돼주는 길상사.
3년 전 성북동으로 이전한 운생동건축사사무소의 담벼락은 대형 벽화로 꾸몄다.
나란히 있는 한옥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옛 채동선 가옥에서 현재 전시 중인 ‘두 개의 집’ 참여 작가인 방예진 작가(왼쪽)와
전시 관람을 위해 찾은 건축가 장윤규 소장이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장 소장이 유명한 기업가의 저택이었던 성북동1가 2층 양옥집을 개조해 새로 둥지를 튼 건 3년 전이었다.
"여기저기 '핫플레이스'가 많이 생기니 성북동에 대한 관심이 조금 식었을 때였죠.
역사 문화 자원이 많으면서도 소박함을 간직한 동네 분위기가 좋아 이리로 왔는데
이후 서촌과 삼청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성북동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어요.
지금은 이들을 중심으로 '성북예술동' 프로젝트가 진행돼 동네 분위기가 많이 젊어지고 있어요."
성북동의 묵직한 보물 창고였던 간송미술관이 휴관하며 생긴 성북동의 감성 공백은 젊은 예술가들이 채우고 있다.
빈 공간, 빈집, 빈터 등을 활용해 부지런히 문화 행사를 하고 있다.
삼선교에서 성북동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있는 '성북예술가압장'과 복합 문화 공간 '성북도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장 소장이 성북동 걷기 코스의 시작점으로 안내한 성북예술가압장은 오랫동안 방치됐던 성북1가압장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도시 재생 문화 공간이다.
장 소장은 낡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감각적인 전시가 이색적이라 이따금 산책길에 들른다고 했다.
전시 주제는 주로 성북동, 성북동 주민, 도시 재생이다.
성북예술가압장을 둘러보고 보도를 따라 성북동 방향으로 걸으면 '옛날중국집' 골목, '성북로8길'이 나온다.
이곳 주변은 요즘 수리하거나 공사하는 집이 많아 조금 시끌시끌한 편. 선잠박물관 부근 선잠길과 함께 요즘 성북동의 뜨는 길로 꼽힌다.
채식을 지향하는 레스토랑 겸 카페인 '리틀마나님'과 같은 젊은 감성의 아기자기한 카페, 공방들이 하나 둘 들어서는 추세다.
옛날중국집 옆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서면 한옥 갤러리 '오뉴월 이주헌'을 지나 '옛 채동선 가옥'과 만난다.
낡은 일본식 목조 주택은 일제 강점기에 가곡 '망향' '그리워' 등을 작곡한 작곡가 채동선이 살았던 집으로 알려졌다.
현재 집주인이, 새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예술가들에게 전시 공간으로 내줬다.
당장에라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거나 꺼질 듯한 바닥과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녹이 슬어 꿈쩍도 않는 창문을 배경으로 '두 개의 집'(~16일) 전시가 열린다.
집 주인 아내의 이름이 숨겨진 문패 탁본, 마당의 나무를 형상화한 아크릴 작품,
창문으로 스민 빛을 이용한 설치 미술 작품 등 낡은 집의 기억과 흔적을 활용한 전시는 작가의 해설 없이 관람한다면 조금 난해할 수 있다.
상주한 작가에게 전시 해설을 듣는 게 현명하다.
고즈넉한 옛집, 가을 만나는 성곽길
서울 성북동 한양도성 성곽길에서 바라본 북정마을. 성북동은 부촌과 달동네가 공존하는 동네다.
소담스러운 마당을 품은 최순우옛집.
한양도성 성곽 길 야경.
성북동 북 큐레이션 카페 ‘부쿠’.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성북예술가압장. / 양수열 영상미디어기자
옛 채동선 가옥을 나와 대로를 건너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혜곡 최순우 선생의 집인 '최순우옛집'(현 최순우기념관)이 기다린다.
채동선 가옥부터 만해 한용운 유택'심우장', 조선 말기 거상이었던 '이종석 별장',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까지 성북동 옛집 순례는 역사·건축학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기 답사 코스가 됐다.
그중 시민모금을 통해 지켜낸 시민 유산 1호 최순우옛집은 개방(일·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오후 4시)돼 있고 대로변 주택가에 있어 만만하게 들러볼 만하다.
집의 원형은 물론이고 우물, 장독대 등이 잘 보존돼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전시와 행사도 이어진다. '혜곡 최순우가 찾은 우리 문화3 특별전'의 하나로 10월 31일까지 '자수, 오붓한 꿈'전을 연다.
15일 오후 3시엔 김영란 한상수자수박물관 관장의 강연이,
10월 20·27일 오후 3시엔 김영이 국가무형문화제 자수장 전수교육 조교의 자수 체험이 기다린다.
강연과 체험은 무료이나 사전 신청(02-3675-3401)해야 한다.
최순우옛집 툇마루에 앉아 잠시 머리를 식히고 숨을 고른 뒤 한양도성 순성길 코스를 오른다.
운생동건축사사무소에서 경신고등학교 뒷길과 이어지는 코스는 장 소장이 산책 삼아 자주 오르는 길이라고.
경사가 있는 주택가를 지나 경신고에 다다르면 비로소 성곽의 맨살이 조금씩 드러난다.
"경신고 담벼락을 자세히 보면 마치 화석처럼 성곽을 공유하는 층(層)이 나타나요.
자세히 보면 돌의 모양이 확연히 다르죠. 어떻게 이런 층이 형성되었을까 상상해보며 걷는 게 이 길의 재미입니다."
경신고 담벼락과 성북동 돈가스집들 샛길로 빠져나와 면 전문점 '성북면사무소' 맞은편으로 성곽길 진·출입로가 보인다.
본격적으로 한양도성 길로 진·출입하는 통로다. 한양도성을 곁에 두고 20분 정도 오르면 북정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코스는 짧으나 경사가 있어 단숨에 오르긴 무리다.
서울 시가지와 성벽의 시차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과 마주하면 20여 분의 고난이 감동으로 바뀐다.
전망대에 서 내려다보니 연두색 '성북 03'번 마을버스가 북정마을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걷긴 싫은데 전망은 꼭 감상하고 싶다면 성북 03번 마을버스를 타고 북정마을 팔각정이나 노인정에서 하차해 성곽길 진입로로 난 지름길을 이용하면 된다.
중년의 아지트에 젊은 층 '핫플' 가세
장 소장은 "차 한 잔 마시고 싶을 땐 주로 수연산방 툇마루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데
최근 한층 젊은 감각의 카페, 펍, 밥집, 공방이 가세해 좀 더 트렌디한 동네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성북동의 맛집에도 지각변동이 이는 중이다.
수연산방을 비롯해 '국시집' '하단' '성북동 메밀수제비' '금왕돈까스' 등
입맛 까다로운 중·장년층 부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음식점들 사이에 힙한 공간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가장 핫한 곳은 서점 겸 북 큐레이션 카페 '부쿠'다.
영국의 어느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공간에서 책 읽으며 영국식 스콘(3000원) 등 간단한 디저트와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책 좋아하는 바리스타와 파티시에가 커피를 내리고 빵도 구우며 주제별로 책도 엄선해놓는다.
책들은 성북동의 동네 정서와 꽤 잘 어울리는 '과하지 않은 주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마카롱이 '북카롱'이란 이름으로 쇼케이스에 책과 함께 진열돼 있다.
소박한 가정식을 내세운 집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성북예술창작터 부근에 있는 '중경당'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집밥 스타일의 건강 밥상을 선보인다.
집밥이 그리운 학생뿐 아니라 인근 직장인, 성북동 주민들 사이에서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곳이다.
성북동에서 오랫동안 쿠킹 클래스를 해온 주인이 소박하게 차려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작은 공기의 밥과 반찬들은 모두 무한 리필 가능하다.
같은 길에 있는 '식샤'는 일본식 가정식으로 '성북동 맛집' '한성대 맛집'으로 뜨는 곳. '혼밥'하기 좋은 곳으로도 꼽힌다.
성북동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몇 년 전부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 내몰림)이 시작됐다.
"서울의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성북동엔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담아낸 역사 유적,
옛집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곳만의 깊이 있는 풍경과 정서가 유지되는 것이죠.
몇십 년 넘게 성북동 맛집으로 식당을 운영해오시던 단골 음식점 사장님도 내몰리는 것 아니냐며 요즘 걱정하시더라고요.
얼마 전 뉴스엔 북정마을이 테라스하우스 단지로 재개발된다는 소식까지 들리더군요.
주민을 위한 편리한 공간들이 생기는 건 환영하지만,
난개발로 성북동이 가진 고유의 분위기는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장 소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북동 문화재 야행]
●일시
14~15일 오후 6~10시
●주요 행사
'심우장' '최순우옛집' '이종석 별장'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한양도성' 등 성북동 주요 문화재와 '성북 선잠박물관' '우리옛돌박물관' '한국가구박물관' 등 야간 개방.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은 외관 야경만 관람 가능. 한국가구박물관은 11일 오전 10시부터 예약 후 행사일 관람. 문의 070-7555-4216
●부대 행사
성북동 문화재를 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해설 야행' 프로그램. ' www.성아들.kr ' 에서 예약 우선.
무료. (02)6249-0101
정리 : http://blog.daum.net/korea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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