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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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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공방 사라지고..관광객·상점만 남은 마을

by 한국의산천 2018. 9. 7.

세계일보 

주민·공방 사라지고..관광객·상점만 남은 마을 [젠트리피케이션 넘어 상생으로]

입력 2018.09.07. 18:57 
 

한옥 마을인지 먹자 골목인지.. 전통도 추억도 퇴색

옛정취 대신 음식냄새 진동

전주 태조로 상가 월세 1000만원 훌쩍

예술가들 "공방해서 임대료 어찌 내나"

관광객 몰리는 먹거리가게만 우후죽순


치켜올라 간 처마 끝이 파란 하늘에 맞닿아 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한옥 지붕이 너울거리듯 이어져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아파트와 빌딩에만 둘러싸여 있다가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한옥 지붕의 곡선미를 보며 잠시 감상에 젖어든다.

하지만 이 감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처마 끝에 가 있던 시야는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에 점점 처마 밑으로 내려와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에 고정된다.

코끝을 간질이는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낸다.

불판 위에 올려져 나무 작대기에 꽂힌 꼬치들이 그들이다.

불 위에 놓인 꼬치는 점점 색이 변하더니 소스를 바르자 궁극의 향을 내뿜는다.

꼬치도 닭을 비롯해 문어, 완자 등 재료가 다양하다.

그 옆에 있는 수제만두, 화덕호떡, 치즈구이, 비빔밥와플 등 먹거리 가게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을 대표하는 닭꼬치 등 먹거리 가게 앞에서 관광객이 음식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7∼8년 전만 해도 다양한 전통 공예 공방이 있었는데….

이젠 한국 전통음식 중 하나가 닭꼬치인 줄 알겠죠?”


4년 전 전북 전주 한옥마을을 떠나

인근에 전통매듭 공방을 연 이모(42·여)씨는 음식점들이 즐비한 모습에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씨가 한옥마을에 처음 온 때는 2007년이다.

공예품 전시관 앞마당에서 소소한 전통공예품을 파는 ‘플리마켓’에 참가한 뒤 터를 잡았다.

한옥마을에 작은 공방을 내고 싶었지만, 당시 집주인들은 마을 분위기를 해친다며 세를 내주지 않았다.

1, 2년 지나 관광객들이 늘자, 가게들이 입점하기 시작했다.

한옥마을 중심가는 2011년 월세가 100만원을 훌쩍 넘어섰고,

이씨는 인근 골목에 40만원의 월세를 내고 전통 매듭 공방을 운영했다.

이씨의 공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2014년 집주인은 월세를 160만원으로 올렸다.

3년 만에 임대료가 4배로 껑충 뛰자 이씨는 감당하지 못하고 한옥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씨가 있던 자리엔 먹거리 가게가 들어섰다.



 
공방뿐 아니다. 오래된 한옥만 있던 마을의 집값이 오르자 주민들도 마을을 떠났다.

스스로 집을 팔았고, 그렇게 하라는 자식들 등쌀에 떠밀리기도 했다.

수입은 없는데 집값이 뛰니 세금 부담이 커지기도 하는 등 토박이들이 집을 팔고 마을을 등지는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6일 전주시에 따르면 풍남동 일대 한옥마을 주민은

한옥마을이 붐비기 전인 2008년 1060세대 2339명에서 지난 7월 말 기준 619세대 1164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2011년 2000명이 무너진 후 급속히 감소해 1000명대 유지도 불안한 상황이 됐다.

주민들은 떠났지만, 관광객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09년 284만8000명이던 한옥마을 방문객은 2017년 1109만7000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비는 한옥마을이지만

중심가 태조로에서는 의외로 ‘임대’ 표시가 붙여진 빈 상가가 눈에 띈다.

태조로 중심가의 경우 상가 월세가 1000만원을 훌쩍 넘는데, 주인들은 임대가 나가지 않더라도 월세를 낮추지 않는다.

수십억원을 들여 매입한 한옥 건물의 월세를 낮춰 임대를 주면

다시 금액을 올리는 데 몇 년이 걸리니 원하는 금액에 임대인이 들어올 때까지 빈 상태로 놔두는 것이다.


이 정도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먹거리 가게가 아니면 부담하기 힘들다.

전통적인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한 한지, 염색, 매듭 등의 공방은 밀려나고 먹거리 가게들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관광객이 몰려 주민 대신 한옥의 주인이 상인이 되자, 거주지였던 한옥 마을이 거대한 한옥 먹거리촌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한옥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 공방이 80∼100곳 정도 돼 가족들이 체험하기 좋은 곳이었지만,

저처럼 공방하는 사람이나 원주민들이 마을을 빠져나가고 대신 먹거리 가게들이 들어섰다”며

“예전 한옥마을의 모습, 주민들과 어울렸던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한옥마을이 망해야 옛 분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까지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파스텔톤 집과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의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생활이 불편해져 삶의 질이 떨어진 주민들은 점차 마을을 떠나고 있다.


관광객이 몰리는 다른 지역의 마을 역시 주민들이 점점 떠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 감천문화마을이다.

사하구 감천2동의 문화마을은 6·25 때부터 몰려든 피란민 등이 산비탈을 따라 판잣집을 지어 거주한 것이 시작이다.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는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와 미로 같은 골목길이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과거 판잣집은 아름다운 파스텔톤 집으로 바뀌었고,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까지 어우러져 2009년부터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관광객이 늘자 주민들은 젊은이들이 늘어 마을이 활기차질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곳도 외부 자본이 들어오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커졌다.

생필품 가게가 기념품 가게로 바뀌었다.

주민들은 기본적인 생필품을 사려면 차를 몰고 마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주말에는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차를 가지고 다닐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나마 주말에 주민들을 위한 버스를 운행하지만,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민이 줄고 관광객이 늘자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를 주차장으로 변경하겠단 얘기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감천2동 주민 수는 2011년 1만110명에서 지난 7월 7439명으로 26.4%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사하구 인구가 35만5443명에서 33만473명으로 7.0%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감소폭이 크다.

감천마을이 고향인 40대의 한 주민은 “갈수록 이곳에 사는 주민들 불편이 커져, 언제까지 참아야 할지 고민”이라며

“지자체 정책 대부분이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것으로 이제는 마을에 남아 있어야 할지 고민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부산·전주=글·사진 이귀전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