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일기
집으로 돌아가는 멀고도 가까운 길
[ 탕자의 귀향 ]
[나이 든다는 것]
휴일에는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평일에는 업무를 마치고 귀가 후
술을 곁들이며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빈한하여 가진것은 풍요롭지 못해도
지금 내몸과 내 마음이 편하면 천국이다
나는 자전거가 내 곁에 있으면 삶이 즐겁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지옥이라도 갈 수 있다.
The man - 김 신 우
뭘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루가 짧아 잠도 오질 않는가
회색빛에 물든 세상위에 기대선 고독한
사람아
아 사랑도 변해가더라
믿었던 만큼이나 멀어져 간다
해질녘에 붉어진 노을만 가려진 가슴을
태운다
두려워하지 마라 절망도 마라 살아 숨을 쉬는데
험한 이 세상에 고개 숙이어 잠들지마라
이른 새벽 태양은 말없이 어두운 세상을 밝힌다
두려워하지 마라 절망도 마라 살아 숨을 쉬는데
험한 이
세상에 고개 숙이어 잠들지마라
이른 새벽 태양은 말없이 어두운 세상을 밝힌다
이른 새벽 태양은
말없이 어두운 세상을 밝힌다
자전거 타기는 취미가 될 수있어도
책일기는 취미가 아니다
늘 삼시 세끼 밥을 먹듯이
그렇게 틈나는대로 읽어야하는 것이 책 아닌가?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돌아 온 탕자가 되고
동생 탕자를 시기하는 형이 되고
책장을 덮을 때 쯤에 아버지가 되는 느낌이다
▲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
1669년 캔버스에 유채, 262×206㎝,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헤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젊어서부터 화가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풍족하고 행복한 나날은 길지 못했다.
어린 아들, 큰딸, 작은딸, 아내가 차례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황하던 그를 보살피고 모델까지 서 주던 새 아내가 낳은 어린 아들도 죽었다.
머지않아 새 아내도 죽고 만다.
그리고 렘브란트가 그렇게 아끼던 첫 아내의 아들 티투스마저 죽고,
재산도 다 없어져 철저히 혼자가 됐다.
이 그림 '탕자의 귀환'은 그때 그린 것이다.
우연히 시몬의 사무실에 들렸다가 렘브란트의 '탕자'와 처음 맞닥뜨렸을 무렵, 내 형편이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부드럽게 끌어안고 토닥여주는 그 그림은
당시 고된 행군을 마치고 돌아온 내가 바라는 모든 걸 함축해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눈을 땔 수 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친밀감,
붉은 망또의 온화한 톤,
소년의 것옷에서 반사되는 황금빛,
그리고 양쪽을 한꺼번에 휘감고 있는
신비로운 광채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 헨리 나우웬
책이 도착했으니 읽어야지요
나는 자전거 부품부속을 구입하는것과 마찬가지로
도서구입은 즐거운 일이다.
마음 편히 행복하게 세월에 젖어들자
늙어간다는 건 낙심의 사유가 아니라 소망의 토대이고,
조금씩 퇴락해가는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성숙해가는 과정이고,
이를 악물고 감수해야 할 운명이 아니라 두 팔 벌려 맞아들여야 할 기회다.
- 헨리 나우웬
두 아들이 있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상속분을 미리 달라고 해
그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가서 흥청망청 탕진하더니 거지가 됐다.
끼니를 잇기 어려워지자 아버지의 품꾼이라도 되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 돌아오나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 너무 기뻐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였다.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큰아들은 동생의 귀환을 기뻐하기는커녕,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 돌아온 아들의 등을 안아주는 손 모양이 약간 다르다 ⓒ 2018 한국의산천
집으로 돌아온 작은아들은 머리도 다 빠지고 옷도 신발도 헤졌다.
돌아온 아들의 등에 얹은 아버지의 두 손이 한손은 곱고 한손은 크고 거칠다.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렘브란트는 왼손은 억센 남자의 손으로,
오른손은 여린 여자의 손으로 그렸다.
왼손은 자신의 모든 시련을 해결해 주실 강한 능력의 손으로,
오른손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의 손으로 그렸다고 전한다.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누가복음15 :25~32)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년~1996년)
네덜란드 출신의 로마 가톨릭사제이자 사목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1932년 네덜란드 네이께르끄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에 예수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심리학을 공부한 그는 인간의 고난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196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메닝거클리닉에서 종교학과 정신의학을 통합하는 공부를 했다.
30대에 노트르담대학교 심리학부에서 객원교수를 시작했고,
신학을 공부한 후에는 예일대학교 신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존경받는 교수이자 학자로서의 이런 헨리 나우웬의 삶의 행보는
1981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 무렵 그는 ‘하나님 사랑’에 빚진 자로서 거룩한 부담감을 품고
페루의 빈민가로 떠나 한동안 그곳 민중들과 함께 지냈다.
이후 다시 대학 강단으로 돌아와 3년간 하버드대학교 신학부에서 강의를 맡았으나
그는 더 이상 이 같은 삶에서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했다.
1986년, 마침내 그는 새로운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1996년 9월에 심장마비로 소천하기까지 10년 동안 캐나다의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L’Arche Daybreak)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는 외로움과 불안, 상처 등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을 말씀으로 위로하고, ‘내적 자유’의 길을 제시했다.
책 속에 자기 마음속 고뇌와 성찰을 활짝 열어 보인 그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토머스 머튼, 렘브란트, 빈센트 반 고흐, 장 바니에 등의 영향 아래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을 바탕으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쳤으며
다양한 주제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또한 깊은 말씀 묵상과 기도 생활에서 나온 압축된 문장들은 수많은 이들을 깊은 영성의 세계로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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