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스치는 바람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15. 호조벌 바라지 관곡지

by 한국의산천 2016. 1. 17.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열 다섯번째 이야기 [2016· 1·17· 일요일/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300년, 시흥 간척의 역사가 시작된 곳…호조벌

 

목감에서 월곶 방향으로 제3경인고속도로 물왕톨게이트를 통과하면 드넓은 들판이 나온다. 바로 호조벌이다.

호조벌은 조선 경종(1721)때 재정 충당과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만들어진 150만평 간척지로 시흥시 간척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이동경로 [장모님(99세:아직은 건강하심)댁에서 친지 모임 후 라이딩 하기]  

장모님댁. 상록수 감자골 ~ 본오동 아파트 ~ 상록오색길 ~ 갈대습지공원 ~ 호수공원 ~ 별망성지 ~ 화랑공원 ~ 물왕리 저수지 ~ 호조벌 ~ 관곡지 ~ 미생의 다리 ~ 인천대공원 ~ 부평 도착 (36km)

 

▲ 별망성지 답사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308 

 

계속해서 호조벌로 갑니다

 

 

▲ 호조벌을 가로지르는 보통천 주변의 그린웨이(Green way)는 전국의 자전거동호회가 자주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바라지?
바라지 [명사] : 음식이나 옷을 대어 주거나 온갖 일을 돌보아 주는 일.

또는 그렇게 하여 일군 농토나 간척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 관곡지를 품고 있는 문중 한옥. 한옥 담장안에 작은 관곡지가 있다 ⓒ 2016 한국의산천

 

연꽃테마파크

 

  연꽃테마파크 바로 옆에 위치한 한옥내에는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돼 있는 관곡지가 있다. 조선 전기관료였던 강희맹(1424~1483) 선생은 세조9년(1463)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전당홍'이란 새로운 품종의 연꽃을 가지고 와서 이곳 관곡지에 처음으로 심었던 곳이다. 이 때문에 당시 이 지역이 연꽃의 고을 즉 연성으로 불렸다.

 

  시흥시에서는 관곡지가 갖는 상징·역사성을 기리기 위해 2004년 인근 논에 연꽃테마파크를 조성했다. 다양한 연과 수생식물을 볼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으며 재배단지 주위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조성해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에 방죽을 쌓아 물을 막고 흙을 부어서 기름진 옥토 호조벌을 만들다

 

  신천동(예전 신천리)에서 39번 국도를 따라 시청 쪽으로 오다 보면 미산동․포동을 지나며 왼쪽으로 드넓은 벌판이 펼쳐진다. 말 그대로 훤히 뚫린 평야인데, 이 곳을 이곳 주민들은 호조벌이라 부른다. 
 

  호조벌에서 ‘호조(戶曹)’란 조선시대 6부의 하나로서 국가의 경제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관청을 말하는데, 호조에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 갯벌에 방죽을 쌓아 밀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농지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주민들은 이곳 간척지를 호조벌, 호조들, 호조방죽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시흥시의 대표적 곡창지역 중 한곳으로 꼽히고 있다.

 

  호조벌의 맞은 편으로는 포동․방산동과 장현동․장곡동 사이에 넓은 내만갯벌이 펼쳐져 있고, 1930년대에 만든 소래염전이 그 위에 자리잡고 있다.

1910년대에 만들어진 지형도를 보면 갯벌을 통해 바닷물이 들어오다 현재의 39번 국도 앞에서 막힌 상태를 잘 볼 수 있는데, 이 바닷물을 막아서 생긴 것이 바로 호조벌이다. 

 

▲ 끝없이 펼쳐지는 인공평야 호조벌 ⓒ 2016 한국의산천

제 어린 시절 기억에 오래전에는 소래의 바닷물이 신천리를 지나서 소래산 아래 개울까지 드나들었습니다.

 

 시흥 물왕리저수지에서 호조벌, 연꽃테마파크, 갯골생태공원, 월곶포구, 배곧신도시, 오이도를 연결하는 자연생태 축은 바라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바라지라는 이름의 뜻은 '돌보다, 돕는다, 기원하다'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시흥 고유의 말이기도 하다.

햇볕을 방안으로 끌어들이는 창을 바라지 창, 조석에 의한 바닷물의 드나듦을 조절하는 수문을 바라지 수문이라 불렀다.

 

  바라지는 시흥 300년 간척의 역사를 보여주는 생태자원이다. 오이도를 간척해 육지와 연결했고 갯벌에 방죽을 쌓아 드넓은 논, 호조벌을 탄생시켰다. 간척을 통한 새로운 농지의 확보로 인구가 유입되고 새로운 촌락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호조벌

호조(戶曹)소속 진휼청(賑恤廳, 당시 당상관이며 인현황후의 오빠인 민진원)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해서 호조벌로 불리워졌다.

 

진휼청 [賑恤廳]이란

  조선시대 물가조절과 기민구제를 담당하였던 관청이다. 조선 초기에는 호조에서 담당하다가, 세종 말엽에 상평창(常平倉)을 두어 곡물가격 조절업무를 맡게 하고, 흉년에 빈민구제를 담당할 임시기관으로서 구황청(救荒廳)을 두었다. 1626년(인조 4)에 종래의 구황청을 개칭하여, 상평청과 합쳐서 선혜청에 소속시켰다.

  진휼청은 주로 서울 이외의 지방을 구제하였고, 백성을 진휼할 때에는 진휼청이라 하였으나, 진휼이 끝나면 상평청이라 하였다. 진휼·상평청은 1750년(영조 26)에 균역청의 설치로 균역청 낭관(郞官)의 관리 하에 두게 되었다가 균역청이 1753년(영조 29)에 선혜청에 합병됨으로서 다시 선혜청 소속이 되었다

 

  이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전국적으로 농토가 황폐해짐에 따라 국가재정은 궁핍해지고 기근으로부터 백성들을 구제할 진자(賑資)도 고갈되고 있는 상황에서 간척사업을 통해 새로운 농토를 확보하여 국가의 재정을 튼튼히 하고, 그 소출을 통해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된 것이다.

 

  제언의 축조와 관리는 진휼청이 담당하였는데, 이는 제언으로 마련된 경작지에 둔전을 경영하여, 그 소출을 구황에 필요한 곡식으로 활용하였음을 보여준다.  제방을 쌓은후 간석지가 농지로 바뀌는데 걸린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 걸렸으며 간척을 통해 새로 확보된 토지는 대부분 논으로 이용되었다.

 

  제방 축조는 어민들의 생업 기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어촌이라는 단일 성격에서 어촌과 농촌이 어우러지는 마을로 탈바꿈 되었다. 당시 새로운 경작지로 확인된 가구는 70여 호 그들의 경작지는 200여 섬지기 정도 였다.

 

 

  조선시대에는 갯벌을 경계로 포동쪽은 인천부에, 장현동 쪽은 안산군에 속했는데, <승정원일기> 경종1년 12월 6일에는 “안산과 인천 두 읍의 경계에 둑을 쌓아 논으로 만들만한 곳이 있는 까닭으로 따로 감관을 정하고. 군정을 고용하여 일을 시작하여 지금 이미 완성하여 끝냈으니, 서울 근처에서 이렇게 수백석을 얻는 논을 얻었으니 진실로 다행한 일입니다” 라  기록되어 있다. 

 

 같은 책 경종 3년(1723) 5월 25일에는 인천과 안산 사이에 새로 쌓은 둑이 범람하여 큰 피해를 입어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인천부에는 ‘진청신언(賑恤廳新堰)’, 즉 ‘진휼청에서 새로 만든 둑’ 이라는 표기가 있는데 진휼청이 호조의 관할 아래 있었던 점을 보면, 주민들이 ‘호조벌’, ‘호조방죽’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함을 알 수 있다.

 

  바닷물을 막아 땅을 만드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 쉬운일이 아닐터인데, 대단한 역사를 일군 조상들의 지혜가 놀라울 다름이다.

 

 

 

 

 

 

 

 

▲ 지금은 연근 채취작업이 한창입니다 ⓒ 2016 한국의산천

 

 

 

 

도심 속에 부는 갯골바람 시흥생태공원

 

갯골생태공원

  시흥시 장곡동에 위치한 갯골생태공원은 경기도 유일의 내만갯벌인 시흥갯벌 안에 있다. 시흥갯벌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염전으로 개발되어 1996년까지 소금을 생산했고, 국토해양부로 부터 12번째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갯골주변에는 희귀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인 모새달군락과 칠면초, 갈대, 갯개미취, 갯잔디, 천일사초, 해당화, 나문재, 퉁퉁마디, 갯질경, 갯개미자리, 큰비쑥 등이 군락을 이루고 말똥가리, 검은갈매기, 황조롱이, 잿빛개구리매 등도 관측된다. 도시와 어우러진 생명공간을 꿈꾸는 곳이 바로 시흥 갯골생태공원이다.

 

 29627

 

갯골생태공원 

  갯골생태공원은 2012년 2월 국가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 해양생태관광의 메카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는 150만6500㎡(45만5714평) 규모의 중심시설지구, 갯골생태관찰지구, 산림생태관찰지구, 습지생태관찰지구, 자연에너지관찰지구로 구성된 아름다운 자연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옛 염전 지역은 담수습지, 하천습지, 연안습지, 내륙습지 등 4가지 습지유형이 상존하고 있다. 조수의 차이로 독특한 내만 갯벌과 갯골이 형성되고, 서해 낙조와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월곶은 조선시대부터 월곶(月串) 혹은 달월이라 불렀다. 육지에서 바다로 내민 모습이 마치 반달같이 생겼다고 해 붙은 이름이고 월곶의 곶은 바다를 향해 뾰족하게 내민 땅이라고 해 인근에서는 ‘달월’이라고도 불렀다.

 

 

  갯골생태공원은 1934년부터 1936년에 조성되어진 소래염전 자리에 조성됐다. 당시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수인선과 경부선 열차로 부산항에 옮겨진 뒤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당시 지어졌던 소금창고의 모습도 그대로 보존하면서 갯골체험과 생태를 보존하는 명소가 됐다. 봄이면 갯골 옆에 심어진 벚나무들이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룬다. 벚나무 터널은 약 200m정도의 길이로 벚나무 터널을 지나면 흔들 전망대로 갈 수 있다.

 

 

 

 

 

▲ 흔들전망대 ⓒ 2016 한국의산천 

 

  벌판에 높이 솟은 6층 높이의 나선형의 목조 전망대. 바람이 불면 흔들거림을 느낄 수 있다. 나선형으로 돼 있어 전망대를 오르면서 주변의 경관을 살펴볼 수 있으며 소래포구 쪽 아파트 사이로 넘어가는 노을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 보면 시흥시의 호조벌, 월곶, 포동뿐 아니라 갯골생태공원의 시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길게 펼쳐진 갯골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오솔길을 따라 갯벌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길도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29626

 

나는 나는 갯바위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파도 어느 고운 바람 불던 날 잔잔히 다가와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감싸고 향기로운 입술도 내게 주었지
세찬 비바람에 내 몸이 패이고 이는 파도에 내 뜻이 부서져도

나의 생은 당신의 조각품인 것을 나는 당신으로 인해 아름다운 것을
나는 나는 갯바위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파도 우린 오늘도 마주보며 이렇게 서 있네

 

 

 

 

 

 

 

 

 

 

 

 

 

아름다운 시흥 9경

 

오이도낙조(烏耳島落照)

소래산망주(蘇萊山望周)

염전허사계(鹽田墟四季)

옥구정망월(玉鉤亭望月)

물왕수주영(物旺垂周影)

호조추야수(戶曹秋野穗)

관곡지연향(官谷池蓮香)

군자봉선풍(君子峰仙風)

월곶귀항선(月串歸港船)

 

 

계속해서 월곳 미생의 다리를 지나서 집으로 고고씽~

방산대교 앞에 갯골을 건너는 다리 미생교는” 미래를 키우는 생명의 다리 “라는 이름의 약자입니다

자전거 형상을 한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 별망성지 돌아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