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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스치는 바람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8. 내리교회 기독교 100주년 기념비

by 한국의산천 2016. 1. 3.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여덟번째 이야기

115년 역사를 지닌 내리 감리교회와 기독교 100주년 기념비  

 

 

제 뒤의 맥아더 장군 동상의 어깨위에는 한마리의 비둘기가 앉아있네요

어쩜 . 마치 조각처럼...

 

인천 상륙작전

작전명 : 맥아더의 크로마이트(Chromite)작전  >>> https://koreasan.tistory.com/15606297

여러가지 난관으로 인해 인천 상륙작전 성공 확률 5000分의1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끈 맥아더 장군

 

계속해서

내리교회로 갑니다

 

 

▲ 학창시절 자주 놀러갔던 용동 큰우물의 식당과 학사주점 ⓒ 2016 한국의산천  

내리교회는 이곳 입구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 창립 100주년을 맞아 새로이 건립되었다 ⓒ 2016 한국의산천

 

 1885년 제물포항으로 인해 외부 문화의 수용이 빨랐던 인천 지역에 북감리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세운 교회이다. 한국 최초의 교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한국의 어머니교회라고도 부른다.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로 꼽히는 영화학교를 설립하는 등 여러 부문에서 한국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내리교회는 이때부터 교육과 선교를 병행하여 한국에 개화 문물을 들여오는데 일조했다

 

  내리교회의 전신인 웨슬리예배당은 1901년 인천 최초의 서구식 개신교 예배당으로 건립됐으나 1955년 헐렸다가 2012년 9월에 복원됐다. 인근에는 성공회 내동교회(1890년 건축)와 천주교 답동성당(1897년) 등 한국 근대 종교사의 시발점이 된 곳이 많다.

 

▲ 재 건축하기 전에 머릿돌에는 AD 1901이라고 적혀있다. 115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 ⓒ 2016 한국의산천

 

 

 

內里敎會(내리교회)

 1885년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가 선교하러 들어와 초가집에서 한달간 머물면서 예배를 올린 후 한양으로 올라갔고 노병일을 내려보내 1901년 벽돌을 쌓아 교회를 짓게 하였다. 한국 감리교 최초의 교회가 되었다.

 

한국 최초의 교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한국의 어머니교회"라고도 부른다.

당시 선교사들은 대부분 인천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전국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존스 목사는 영화학당 및 선교사합숙소를 건립했고 강화, 해주, 남양지방의 전도를 담당했다.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 영화학교 설립 등 여러 부문에서 "한국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1901년에 옛 교회를 허물고 새 건물을 지었으며 지금의 교회는 1985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신축 완성하였다.

 

 

 

  조선에 기독교를 전파시키려는 노력은 상당 기간에 걸쳐 있어왔다. 1832년 네덜란드 선교회 소속 독일인 구츨라프 일행이 황해도 백령도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한문으로 된 성서 등을 나눠주고 간 일이 있었고, 또 1865년 중국 주재 영국교회 선교사 토마스가 황해도 연안에 상륙 백령도 근방의 여러 섬에서 2개월 반을 지내면서 주민들에게 한문 성서 등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당시 조선은 쇄국정책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었으므로 직접적인 전도보다는 성서의 번역과 그 보급을 통해 조선 선교를 실현하려 했다. 이러한 사업은 선교사들이 조선어로 된 성경으로 전도 사업에 종사할 수 있어서 보다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1883년 미국 공사관이 개설되면서 외국인의 입국이 가능해지자 미국의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부에서 조선 선교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인천 개항 이듬해인 1884년 7월 감리교측 선교사로 맥클레이가 조선을 다녀갔고 9월에는 알렌이 미국 공사관의 의사로 내한했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발생했는데, 당시 권력자이면서 조미수호조약 체결 후, 보빙사(報聘使)로 미국을 방문한 바 있는 민영익이 개화당의 습격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이때 의료 선교사인 알렌이 그를 완쾌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일로 선교사들에 대한 정계와 왕실의 신임이 커졌고, 자유로운 선교의 가능성도 높아져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에서의 선교에 주목하고 있었던 미국 장로교와 북감리교 본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조선에서의 선교를 결정하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우선 파견하게 됐다. 이때가 1885년 4월5일 부활절 날이었으며, 조선에 기독교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입국한 날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제물포에 입항했을 당시는 갑신정변의 소용돌이가 가시지 않아 정치상황이 매우 불안했다. 조선 주재 미국 공사 푸트는 이들의 상륙 소식을 듣고 언더우드의 입경(入京)은 용인했지만, 임신한 부인과 함께 온 아펜젤러의 경우는 신변의 위험을 들어 입경을 거부했다. 아펜젤러는 푸트공사의 권고에 따라 1주일간 대불호텔에 머물다가 4월13일 일본으로 돌아갔고 6월20일 다시 제물포항을 통해서 입국했다. 

 

  그리고 7월7일 일본에서 주문한 '풍금'이 도착하자 찬송가를 봉헌했는데 '이를 전후한 시기'를 인천 '내리교회'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후 내리교회는 인천 시내 곳곳에 지교회를 세우고 부평·강화·교동 등지에 교세를 크게 확장했다. 인천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경유지로서 만이 아니라 한국 최초의 포교지였던 것이다.

 

 

 

 

 

 

 

 

 

 

 

 

 

 

 

 

 

 

 

 

 

 

 

 

 

 

 

 

 

 

 

 

 

 

 

 

 

이제 가자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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