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 신록이 가득한 숲길을 걷다. [2014 · 4 · 25 · 금요일 · 맑음]
많은 젊음이 스러져간 잔인한 4월에 하늘은 아는지 모르는지 싱그러운 신록을 피우나니.... 그 찬란한 신록에 슬픔이 더하네.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 신록예찬 중에서 -
"신록예찬"은 글중에서도 나오듯이 이양하 선생님께서 연희전문 교수 재직시 뒷산에 올라가 신록을 예찬하며 지은 수필이라 전한다.
▲ 걷기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하는건 절대 아니다 ⓒ 2014 한국의산천
날이 예년에 비해 더운 탓인지 올해는 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만개하여 눈이 호사하는 봄을 맞았다. 그리고 하나둘 꽃잎을 떨구었다. 하늘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며 살아가는 일상에서 불현듯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나의 시야를 사로잡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새순과 새잎이 돋으며 발산하는 연초록의 빛깔이었다.
아 ! 싱그럽고 아름답다.
문득 학창시절에 열심히 외었던 이양하 선생님의 수필 "신록 예찬"이 떠올랐다. 그렇게 외웠던 신록예찬 문체는 우유체로서 낭만적이고 사색적인 수필 등등 ...도대체 우유체가 무슨뜻이지? 우유처럼 부드럽고 맛있는다는 뜻으로 나름대로 해석하고 외웠던 신록예찬. 그 아름다운 신록을 사월하순에 만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신록예찬(新綠禮讚)
- 이양하(李敭河)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말고, 우리 연전(延專) 일대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 시간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 놓은 듯이 옷을 훨훨 떨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올라간다. 나의 자리래야 솔밭 사이에 있는, 겨우 걸터앉을 만한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오고 가는 여러 동료가 나의 자리라고 명명(命名)하여 주고, 또 나 자신도 하룻동안에 가장 기쁜 시간을 이 자리에서 가질 수 있으므로,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나는 한 특권이나 차지하는 듯이, 이 자리를 찾아 올라와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물론, 나에게 멀리 군속(群俗)을 떠나 고고(孤高)한 가운데 처하기를 원하는 선골(仙骨)이 있다거나, 또는 나의 성미가 남달리 괴팍하여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역시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즐거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갑남을녀(甲男乙女)의 하나요,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恍惚)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授受)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사람이란― 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 칠정(汚辱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寧日)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卑小)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汚點) 또는 한 잡음(雜音)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될 수 있으면 이러한 때를 타서,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한가지로 숨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씨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나의 모든 욕망(欲望)과 굴욕(屈辱)과 고통(苦痛)과 곤란(困難)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주객 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라 할까, 현요(眩耀)하다 할까,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장무애(無障無 ), 이러한 때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스럽고, 또 이러한 때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의 혼란(混亂)도 없고, 심정의 고갈(枯渴)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의 유열(愉悅)과 평화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이러한 때에 비로소 나는 모든 오욕(汚辱)과 모든 우울(憂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나의 마음의 상극(相剋)과 갈등(葛藤)을 극복하고 고양(高揚)하여, 조화 있고 질서 있는 세계에까지 높인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에, 초록(草綠)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淸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그러나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 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 염천(三伏炎天)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取捨)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淡綠)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혹 2, 3주일을 셀 수 있으나,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불과 3, 4일이 되지 못하여,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素朴)하고 겸허(謙虛)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丹楓) 또는 낙엽송(落葉松)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즈음의 도토리, 버들, 또는 임간(林間)에 있는 이름 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한 자색(姿色),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雅淡)한 향훈(香薰),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극치(極致)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를 드릴 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 신록예찬 전문 끝 -
신록을 통해서 자연을 조감하고 서정성과 낭만적인 문체가 가슴에 와 닫는다. 느낌이 포근한... 그래서 우유체로구나.
고등학교 학창시절 글을 읽고 40여년이 훌쩍 지나서야 이제 그 뜻이 가슴에 다가오네
이왕 내친김에 수필을 또 하나를 감상해본다.
이 글은 한국 현대 서정 수필의 경지를 개척하여 수필을 하나의 주변적인 글에서 독자적 장르로 확립하는 데 앞장섰던 이양하선생님의 대표적 수필이다
나무
- 이 양 하(李敭河)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滿足)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處地)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움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달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 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義理)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意思)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그야말로 바람장이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 올 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 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 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유달리 후대(厚待)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薄待)하는 일도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 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면 다행(多幸)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不幸)해 아는 법이 없다.같은 나무, 이웃 나무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나무는 서로 속속들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동정(同情)하고 공감(共感)한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기쁘고, 일생(一生)을 이웃하고 살아도 싫증나지 않는 참다운 친구다.
그러나, 나무는 친구끼리 서로 즐긴다느니보다는, 제각기 하늘이 준 힘을 다하여 널리 가지를 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더 힘을 쓴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고 묵도(默禱)하는 것으로 일삼는다. 그러기에, 나무는 언제나 하늘을 향하며, 손을 쳐들고 있다. 온갖 나뭇잎이 우거진 숲을 찾는 사람이, 거룩한 전당에 들어선 것처럼,엄숙(嚴肅)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로 옷깃을 여미고, 우렁찬 찬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理由)도 여기 있다.
나무에 하나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명(天命)을 다한 뒤에 하늘 뜻대로 다시 흙과 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다 장난 삼아 칼로 제 이름을 새겨 보고, 흔히 자기(自己) 소용(所用) 닿는 대로 가지를 쳐 가고 송두리째 베어 가곤 한다. 나무는 그래도 원망(怨望)하지 않는다.
새긴 이름은 도로 그들의 원대로 키워지고, 베어 간 재목(材木)이 혹 자기를 해칠 도끼 자루가 되고 톱 손잡이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요, 고독(孤獨)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다.
불교(佛敎)의 소위(所謂) 윤회설(輪廻說)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 - 나무 전문 끝 -
작자 이양하 (李敭河 평안남도 강서(江西) 출생 1904∼1963) 수필가, 영문학자
평양고보, 일본 제3고등학교, 1930년 동경제국대학 영문과 동 대학원 졸업하고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강사,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거쳐 광복 뒤 서울대 문리대 교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서리, 학술원 회원 등을 지냈다.
1951년 미국에 건너가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하고, 1953년 예일대학에서 언어학부의 마틴교수와 함께 《한미사전》을 편찬했다. 한편 C. 램·F. 베이컨 등의 정통 유럽풍의 수필을 도입하고 생활인의 철학과 사색이 담긴 수필을 발표했으며, 권중휘(權重輝)와 같이 《포켓영한사전》을 펴내 영미(英美) 어문학 보급에 기여했다.
저서에 수필집 《이양하수필집》 《나무》, 시집 《마음과 풍경》, 소설 《백조의 노래》 등이 있고, 역서 《시와 과학》, 논문 <루소와 낭만주의> <제임스 조이스> 등 다수가 있다. (연희전문 교수 재 직시 뒷산에 올라 가 신록을 예찬한 ‘신록예찬’ 등 주옥과 같은 작품이 수록된 <이양하 수필집>과 <나무>는 그의 대표작임.)
걷기의 역사는 곧 온 세상의 역사다. 걷다보면 그 순간의 기분, 타인이 곁에 있는지 없는지, 계절 또는 땅의 속성과 같은 것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겸허함과 그 순간을 붙잡고 싶은 갈망을 일으키는 세상으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다.
길 물어보기
- 문 정 희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가는 길 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비어 있는 것이 알차다고 하지만
그런 말 하는 사람일수록 어쩐지 복잡했다
벗은 나무를 예찬하지 말라
풀잎 같은 이름 하나라도
더 달고 싶어 조바심하는
저 신록들을 보아라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심지어 산자락 죽은 돌에다
허공을 새겨놓은 시인도 있다
묻노니 처음이란 고향 집 같은 것일까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나의 집은 어느 풀잎 속에 있는지
아니면 어느 돌 속에 있는지
갈수록 알 수 없는 일 늘어만 간다.
길을 걷는 사람은 잠정적으로 쓰고있던 가면을 벗어 던진다. 오솔길을 길을 걷는 그에게 다른 인물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혹은 오솔길에서는 낯선 이방인이다. 더는 자신의 신분이나 사회적 조건, 타인들에 대한 책임감에 파묻히지 않는다.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까다로운 요구사항들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는 가뿐한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게 된다.
"오랜 시간 호젓하게 걸어도 절대 외롭지 않다. 오히려 떼를 지어 걷다가 뼈저린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 소로"는 말했다. " 나는 고독만큼 좋은 동반자를 본적이 없다" 고...
▲ 길을 걷는 사람은 기회를 만들어 가는 예술가이다 ⓒ 2014 한국의산천
걷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어서 즐거운 상황에서든 복잡하게 일이 꼬인 상황에서든 서두르지 않고 적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 왕복 약 7km. 산을 내려서서 집에까지 총 11km를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 2014 한국의산천
▲ 보행자는 결코 도착하지 않는다. 늘 지나갈 뿐이다 ⓒ 2014 한국의산천
▲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다 ⓒ 201 한국의산천
속담에서 오직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첫걸음이라지만 그 첫걸음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그 첫걸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한동안 규칙적인 생활의 고즈넉함에서 뿌리가 뽑혀 예측할 길 없는 길과 날씨와 만남들과 그 어떤 다급한 의무에도 매이지 않는 시간표에 몸을 맡기게 된다.
▲ 걷기를 통해서 위대한 풍경을 만날수있다 ⓒ 2014 한국의산천
걷기는 존재에 비추어 보면 별것 아니어서 대개는 기억 속에 덧없는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 분명 거기에는 본질적인 소박함 속에서 삶에 대한 의욕을 키우는 힘이 있다.
그래서 또 다시 떠나고자 하는 욕구, 새로운 영역을 활보 하거나 예전에 지났던 흔적으로 되돌아가 그때의 추억과 느낌을 되찾고 싶어지는 것이다. 모든 목적지는 다시 길을 떠나기에 적당하다.
▲ 계양산 숲이 우거지고 등산로 주변이 깨끗해지고 생태계가 매우 좋아진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배가 고프다
온종일 걷고 난 뒤의 허기와 달콤한 피로가 뒷받침하게 되면 별것 아닌 음식이 침을 고이게 하는 미식으로 변한다. 한끼의 검소한 식사가 때로는 최고의 만찬보다 더 나은 것이니 그 포만감과 유쾌함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신발 수선
도보여행자에게는 신발이 전부다. 모자니 셔츠니 명예니 덕목이니 하는 것은 모두 그 다음의 문제다.
며칠 전 영종도 백운산을 오르다가 등산화 뒤축이 양쪽 모두 떨어져서 덜렁거리는것이 아닌가. 전에도 5.10 신발을 신었을때도 이런 현상이 있었다. A/S를 보내서 붙여왔지만 또 다시 떨어져서 버린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구두 수선방에 맡겨서 접착제를 바른 후 구두 밑창 꿰메는 방법으로 아래창을 고정 시켰다. 만족할만하다.
▲ 역시 구두수선집에서 장인의 손으로 고친 등산화 ⓒ 2014 한국의산천
신발 밑창이 떨어졌기에 수선집에서 접착제를 바르고 밑창을 꿰멨더니 아주 만족스럽게 되었다. 또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떠나는 것이고, 집은 또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곳이다. -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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